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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Abba), 아버지(Father) 라는 호칭에 대하여 [성경용어_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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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8 ㅣ No.1192


질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 "아버지",

기도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아버지는 아빠(Abba)로부터 온 표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Abba라는 말은 구체적인 인격적 관계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이 Abba 라는 말과 우리가 일상적인 가족관계에서 부르는 아빠, 혹은 아버지라는 말과 어떤 관계로 생각해야 하나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아빠"라는 표현이 가족관계에서 말하는 아빠와 다른점은 무엇인가요?

일반적인 아빠는 육신상의 아빠를 뜻하고 Abba는 영적인 아빠를 의미하나요?

그리고 아버지는 본디 어린이 말인 Abba를 어른스럽게 표현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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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 찬미 예수님!

1.
1-1.
유다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느님과 자신들의 관계 [즉, 계약(covenant) 관계]를 설명하고 또 이해할 때에, 유비에 의하여, 인간들에게 매우 친숙한, 한 가정 안에서의 가족 관계(family relation)로서 설명을 하였는데 [family covenant theology], 그리스도교에서는 이러한 유다인들의 전통을 이어받았기에, 위에서 인용하신 "주님의 기도" 중의 "아버지"는 성삼위 하느님의 제1위격이신, 흔히 창조주 하느님으로서 이해하는, 성부(Father) 하느님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을 한 인격(a person)으로 대하여 주시는데, 이에 근거한 "유비에 의한 설명임"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1-2. 그리고 성경 본문 중에서, 예를 들어, 갈라티아서 4,6에서 사용되고 있는, "Abba" 는, "Father(아버지)" 에 해당하는 아람어(Aramic)를 음역(音譯, transliteration)한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Abba"는, 우리가 보통 추측하는, 자신들의 아버지에 대한 어린 아이들의 호칭이 아닙니다

출처: http://www.catholicreference.net/index.cfm?id=31564  
      (Modern Catholic Dictionary)

1-3. 그리고 마르코 14,36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은, 제가 직접 확인한 바에 의하면 프랑스어 공동번역 성경(TOB)의 해당 주석을 우리말로 직역 번역한 것이며, 다음과 같습니다:

(발췌 시작)
아빠라는 아람 말은 아버지를 부르거나 아버지에 대해서 말할 때에 쓰인다. 유다인들은 기도하면서 하느님을 부를 때에 이 낱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본보기에 따라, 그리스도인들도 이렇게 하느님을 부르게 된다(루카 11,2 각주; 로마 8,15 각주; 갈라 4,6).
(이상, 발췌 끝).

그런데 이 주석 중에 "전혀" 라는 강조의 표현이 있는 것은, 다음의 유다 백과사전의 설명에 주어진 "abba" 단어에 대한 설명에 의하면 상당히 무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http://www.jewishencyclopedia.com/articles/121-abba

다음은 위의 주소에 있는 유다 백과사전에 주어진 abba 단어에 대한 설명의 첫 단락 전문입니다:

The Aramaic word for "Father," "my Father," which, together with the Greek equivalent, occurs three times in the New Testament. It is an invocation to God, expressive of a close personal or filial relation of the speaker to God. It is found in Mark, xiv. 36, the parallel passage, Matt. xxvi. 39, having only the Greek words "my Father." Paul, in Rom. viii. 15 and Gal. iv. 6, shows that, in admitting proselytes to membership in the new faith, they were declared to be the children of God while addressing Him as "Abba, Father." But there is nothing specially Christian about this. It was the formula for addressing God most familiar to Jewish saints of the New Testament times:

(마지막 세 개의 문장의 졸번역)
바오로는, 로마서 8,15 및 갈라티아서 4,6에서, 개종자들을 새 믿음에 있어 구성원으로 받아들임에 있어, 한편으로는 그분을 "아빠, 아버지"로서 부르면서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들이라고 선포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것에 관하여 특별히 그리스도교적인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신약 성경 시기의 유다교의 거룩한 자(Jewish saints, 유다교의 현자, 유다교의 의로운 자)들에게 가장 친숙하였던, 하느님께 청원하기 위한 상투적인 문구(formula)였습니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위의 문장들에서, proselytes는 당연히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자들을 말합니다. 
-----

2.
2-1.
그런데, 위의 유다 백과사전의 이러한 설명은, 심지어 마르코 14,36에 대한 다음과 같은 NAB(New American Bible)의 주석에도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36] Abba, Father: an Aramaic term, here also translated by Mark, Jesus' special way of addressing God with filial intimacy. The word abba seems not to have been used in earlier or contemporaneous Jewish sources to address God without some qualifier. Cf Romans 8:15; Gal 4:6 for other occurrences of the Aramaic word in the Greek New Testament.

(졸번역)
[36] 아빠, 아버지: 여기서 또한 마르코에 의하여 번역되고 있는 아람어 단어인데, 친자의 친밀성(filial intimacy)과 함께 하느님을 부르는 예수님의 특별한 방식이다. 아빠(abba)라는 단어는 초기의 혹은 [예수님과] 동시대의 유다인들의 출전(出典, sources)들에서 어떤 한정사(수식어, qualifier) 없이 하느님을 부르기 위하여 사용되어 왔지 않은 것 같다. 그리스어본 신약 성경에 있어 이 아람어 단어의 다른 나타남들에 대하여서는 로마 8,15; 갈라티아 4,6을 참조하라. 

출처: http://old.usccb.org/nab/bible/mark/mark14.htm

게시자 주: 위의 NAB 주석의 근거는, 아직은, 확인하지 못하였습니다.

2-2. 제가 궁금해 하는 것은, 1970년에 초판 발행된 NAB의 주석에서는 "사용되어 왔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 1975년경에 초판 발행된 프랑스어 공동번역 성경(TOB)의 주석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로 주석된 것이, 주석학적으로 발전인지 아니면 퇴보인지 궁금합니다. 

2-3. 그리고 이 유다 백과사전의 제일 마지막 문장은 다음의 언급으로 끝납니다:

The opinion expressed by Weber ("see Altsynagogale Theologie," p. 150) and others, that Jesus was the first to invoke God by the name of Father, does not rest on a solid foundation, and has already been refuted by Dalman.

(졸번역)
Weber("Altsynagogale Theologie," p. 150을 보라) 그리고 다른 이들에 의하여 표현된, 예수(Jesus)가 아버지(성부, Father)라는 이름에 의하여 하느님을 불러내는(invoke) 첫 번째였다는, 견해는 확고한 기초에 의거하고 있지 않으며, 그리고 Dalman에 의하여 이미 반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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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필로, 필론, 20 BCE – 50 CE), 그리고 Titus Flavius Josephus (요세푸스, 37 – c. 100) 입니다. 그리고 유다인 역사가인 요세푸스도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 상투적인 문구(formula)였습니다: ]

<--- 위의 제1-3항에서 발췌한 문장들 중에서 제일 마지막 문장의 끝인, 이 : (콜론) 다음의 반론들에 등장하는 이름을은 대부분 유다인들의 이름들이고 문헌들은 유다교측의 문헌들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인터넷 검색으로 영문 자료들을 찾아 읽어 보아도 "jewish saints"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자들 중에서 성인/성도로 불리는 자들"을 말한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따라서 "유다교측의 거룩한 자들" ("유다교측의 현자들", 혹은 "유다교측의 의로운 자들)을 말한다는 생각입니다.

2-5.
[이 Abba가 우리가 말하는 아버지를 의미하는것인지가 궁금한거거든요.]

<----- 성삼위의 제1위격인, "성부(Father) 하느님"을 말한다고 이미 말씀드렸는데요.

Abba 는 그냥 "Father"의 아람어 등가 표현이라는 생각입니다. NAB 주석은 그래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나, 프랑스어 공동번역 성경(TOB) 주석은 상당히 아닌 것 같습니다.

-----

3.
3-1.
가족 관계에 있어 "아버지"를 아람어로는 "Abba"로 부르는 모양입니다. 이것을 유비적으로 적용하여, 성부 하느님을 또한 "Abba"로 부르셨던 것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유비적으로"라는 표현의 신학적 의미를 여러분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3-2. 피조물인 인간들의 가족 관계에 있어 "아버지"를 아람어로는 "Abba"로 부르는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 위에, 그 다음 단계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심으로부터, 바로 이 하느님의 아드님을 "낳으시는[begets, 즉 생성하시는(generates)] 하느님"을 - 유비에 의하여 - "성부(the Father,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 및 당신의 지체인 그리스도교 교회측에서, 유다교측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제1위격으로서 부르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3-3. 그러나 이것은, 유다교측에서 전통적으로 하느님을 "아버지"로 전혀 불러오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유다교측에서도 전통적으로 대단히 오래전부터 하느님을 아버지(Father)로 불러왔던 것은, 예를 들어, 신명기 32,6; 2사무엘 7,14; 시편 2,7; 89,27; 지혜서 2,13; 집회서 23,4; 이사야 63,16; 64,7; 예레미야 3,4; 말라키 1,6; 2,10 등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은 2사무엘 7,14의 첫 번째 문장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입니다:

(발췌 시작)
주님께서는 임금을 당신의 양아들로 삼으신다(시편 2,7, 그리고 시편 89,27 참조). 주님의 양자 채택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는 신약 성경의 사상에 이어진다 (루카 3,22; 사도 13,33; 히브리 1,5; 5,5 참조).
(이상, 발췌 끝)

바로 위의 제3-1,3-2,3-3항들을 읽은 후에, 위의 제1-1항의 설명을 다시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제1-1항에 주어진 매우 잘 요약된 설명이 훨씬 더 잘 이해될 것입니다.

3-4. 그리고 다음의 유다 백과사전에 있는 설명도 또한 참고하십시오:

출처: http://www.jewishencyclopedia.com/articles/6037-father  

(발췌 시작)
When used of God it generally refers to the covenant relation between Him and Israel.
(이상, 발췌 끝).

(졸번역)
하느님에 대하여 사용될 때에,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그분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 관계(covenant relation)에 대한 언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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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제 남은 것은 "유비(analogy)"정의(definition)가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이것은,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필독 권유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의 입문서인 "신학대전여행"에 주어진 설명이 그래도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클릭한 후에 제5항을 읽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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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 7시간 (자료 조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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