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사순 제4주일(다해) 루카 15,1-3.11ㄴ-32; ’22/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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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3-16 ㅣ No.4972

사순 제4주일(다해) 루카 15,1-3.11-32; ’22/03/27

 

가끔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을 듣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작은아들은 자기 아버지가 죽기도 전에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우리 같으면 배신감과 분노에 떨면서 따귀라도 갈길텐데, 오늘 복음의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해달라는 대로 해줍니다. 마치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말씀은 외면하면서도 자신의 이익만을 청하는 것이나, 지금 자기가 살아 있고 자기가 누리고 있는 것이 마치 자기 것인 양 착각하며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고 계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스스로 실패함으로써 재물의 가치를, 인생을 배우라는 듯이 작은아들에게 자기가 땀흘려 얻은 것도 아닌 아버지의 재산을 그냥 넘겨줍니다.

 

그러나 작은아들이 자기가 땀흘려 얻은 것도 아닌 재산을 제대로 간수하고 쓸 리가 없습니다. 그는 얼마 안되어 알거지가 되었고, 그가 재산을 가지고 있을 때 그가 아니라 그의 재산 때문에 그와 함께했던 어느 누구도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경제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파산한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나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작은아들은 자유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기보다는 홀로 남겨진 불행한 자신을 발견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를 떠남으로써 얻으리라고 기대했던 것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아버지의 피조물과도 또 자신의 근거인 아버지와 떠났기에 자신도 잃어버린 것입니다.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챙기고 자신을 찾으려다가 아버지와 큰아들을 소외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도 자기 가족에게서부터 소외돼버린 것이 되었습니다. 알거지가 된 다음에야 작은아들은 그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런데 아주 아주 다행스럽게도 그는 그 소외를 풀기 위해, 반겨질지도 내쳐질지도 모르는 아버지께 마지막 희망을 걸고 돌아갑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고, 자기 것을 찾으려던 마음을 접고, 자신의 자존심도 잊고, 수치스럽지만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면서 자기 가정으로 돌아갑니다. 실제로 먹을 것이 없어 그나마 얻어 먹고 살기라도 하기 위해 아버지의 집을 찾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기대와 의도와는 관계없이 아버지와 형, 가정을 다시 얻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기 혼자 자기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자만하고, 하느님께서 만들어주신 동료 피조물의 모임인 공동체와의 이기적인 관계를 수립함으로써 얻는 것은 고립과 단절뿐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우리의 공허함과 외로움 그리고 우리 존재의 근원적인 바램을 어디서 채울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곳은 아버지 하느님의 품뿐입니다. 세상과 재물을 얻기 위해 하느님과 동료 인간을 포기한 이들이 얻는 것은 외로움과 허망함뿐입니다. 물론 그런 인간의 허망한 선택에도 불구하고 주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이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긴 합니다. 그런 반면에 하느님과 인간을 얻기 위해 재물이나 세상을 포기한 이들이 얻는 것은 하느님과 형제들과 함께 누리는 기쁨과 사랑입니다.

 

작은아들이 이렇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매일 문밖에 나와서 자신을 기다리고 계시리라는 것을, 그리고 자기가 돌아가면 자기를 굶어죽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루카 15,20)

 

그래서 작은아들은 아버지의 품에 안겨 죄를 고백합니다.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21)

 

그런데 아버지는 작은아들의 주제넘은 기대가 오히려 부끄러울 정도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더 큰사랑으로 맞아주십니다.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 잡아라. 먹고 즐기자!"(22)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큰아들입니다. 작은아들처럼 용기가 없어서 아버지께 자기 유산을 달라고 못했던 것이 큰아들과 작은아들과의 차이라면 차이라고 할 정도로, 큰아들은 작은아들이 돈을 날리고 돌아온 것에 대해 불쾌해 합니다. 게다가 그런 동생을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가 편애라고 느껴 서운해하다 못해 반항합니다.

 

큰아들은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데, 누가 봐도 잘못한 죄인인 동생을 그렇게 잘 해주는 것을 곱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큰아들이 볼 때 작은아들은 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잘못한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을 오히려 없던 것으로 하고 전과 같이 대해줄 뿐만 아니라 잔치마저 차려주자 화가 났습니다. 더군다나 큰아들은 작은아들이 자기 유산을 다 날리고, 이젠 자기 몫마저 나눠 주어야할 형편에 놓인 상황이 싫었습니다. 큰아들이 보기에 아버지의 작은아들에 대한 처우는 부당한 것이고 불합리한 처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은 이런 윤리주의자들이나 시기와 시샘을 감추고 탐욕의 이를 숨기는 이들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주 하느님은 인간이 선한 일을 해야만 상을 주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주는 계산적이고 조건적인 하느님이 아닙니다. 주 하느님은 과거에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를 문제삼지 않으시고, 지금 자기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다시 돌아온 것 자체로 기뻐하시고 상을 주십니다. 그리고 재물의 증감보다는 인간 생명을 얻은 것으로 만족하십니다. 아버지는 그저 자식이 돌아왔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기뻐하십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말합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 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31-32)

 

참으로 이런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마음은 안 그렇지만 다 하지 못했던 것들, 하지 말아야 했지만 눈앞의 유혹과 이해관계에 빠져 저질렀던 죄악들, 했어야만 했는데도 여러 가지 여건을 핑계삼아 지나쳤던 순간들 속의 부끄러운 우리 죄인들에게 언제든지 다시 주님께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받아들이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시며, 우리가 주님께 돌아가기만 하면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누리는 은총의 지위를 다시 회복시켜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집니다. 이런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주님께 희망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진정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과거를 없던 것으로 해 주시고, 다시 처음부터 아니 더 큰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를 향해 두 팔을 벌리시고 부르고 계시는 주님께 돌아가기로 합시다.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를 씻어주시고, 부족하고 나약한 우리의 허물과 약점을 채워주시며 하늘 나라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께 기꺼이 나아가기로 합시다.

 

돈과 세상의 유혹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악마에게 빼앗긴 하느님의 자녀인 인간들을 다시 구해오기 위해, 애지중지하며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외아들의 목숨까지 내 주셔서 우리를 구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자녀의 본분으로 어서 빨리 다가들기로 합시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 주셨고 또 사람들을 당신과 화해시키는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인간과 화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화해의 이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그분을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2고린 5,18-20)

 

주님, 제게 주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시고, 저를 주님 사랑의 도구로 써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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