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성당 게시판

새로운 '주님의 기도"(글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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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만 [HUMAN3217] 쪽지 캡슐

2001-07-12 ㅣ No.877

 

신 ’주의 기도’

 

* 다음 글은 책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중에서 뽑은 것입니다.

함께 음미하고 나누기 위하여 실어 보았습니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하고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태 26,39)라는 한마디 원의(願意)를 말씀하시는 데만 ’꼬박 하룻밤’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의 기도’를 단숨에 외워 버립니다.  우리는 기도를 바치면서 정신적으로 죽고  성령 안에 다시 태어나야 하는 과정도 없이 단숨에 외워 버립니다.

 

 말 속에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사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고  아버지를 부를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듭니까?  하느님은 인류 전체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늘 높이 계시는 분, 나무 하나하나를 보고 있으면 숲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마치 헬리콥터 위에서 숲을 내려 보듯 하늘에 계신 분으로 이해되고 느껴지지 않습니 까?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시던 당시의 셈족(族)의 사고 방식으로는 하느님을 하늘에 안치시키는 것이 곧 가까이 계심을 생각케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정신적 현존성(現存性)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은 사실 어느 곳이나

아니 계신 곳 없지만, 하느님께서 살고 계신 곳은 곧 사람이 아닙니까?

 

 하느님은 당신의 집을 실제로 우리 안에 정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이 곳을 떠나신 일이 없으십니다.  또 세상 사람들이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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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할지라도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살고 계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들을 일평생 미성년으로 남아

 있기를 원하실까요?  사실 미성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성인(成人)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이 있겠으나

첫째, 자립이 있겠지요. 자식이 분가하여 독립(자립)하였을 때 아버지는 자식에 대하여 사사건건 개입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이미 성인이 된 우리의 원의를 존중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통해서만 우리의 원의를 들어 주십니다.

 

  둘째, 가정 운영권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예속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아버지는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재산상속"을 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독립하여 아버지의 품을 떠나 왔고, 하느님 아버지는 우리를 자유로운 자가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자녀가 진정 성인답고 진실된 자녀이겠습니까?  

첫째, 감사.  ’아버지의 것은 모두 내 것’이라는 인식과 그에 대한 기쁨,

긍지,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둘째, 헌신. 아버지의 다정하심과 넓으신 마음을  우리 마음에

깊이 새기고, 우리가 받은 모든 특권을 남에게도 베풀고 나누면서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느님이 당신의 본질을 ’사랑’으로 계시하셨고, 그것을 거룩히 빛나게 하신 것은 저 십자가상에서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겠습니까?  우리는 사랑의 계시를 완성시켜 나가야 합니다.  

 

기쁜 소식을 널리 전파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모든 사람이 형제 자매가 되어서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사람들을 사랑하는가를 봄으로써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아버지를 볼 것이며,

아버지가 어떠한 분이신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 나라가 오기를 기다린다면 우리는 한없이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이미 와 있으며

"여러분 안에"(루가 17,20 ~ 21) "이미" 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넓혀 나가겠습니까?  하느님일까요?  미소한 겨자씨가

 자랄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 밭에 당신의 씨앗을 이미 뿌려 놓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인 그 겨자씨는 우리를 통해서,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접하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는 확장되기도 하고 질식사( 窒息死 )하기도 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느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사랑의 목적을 달성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당신 자신의 평화와 기쁨을 우리에게 부여하셨고,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하느님의 자녀들을 모두 ’한몸’으로 결합시켰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의 빈곤과 기아를 없애 나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 용서하고, 병자를 치료하고, 변모(聖化)되고, 빵을 부풀리고

또 나누며,  부활, 평화를 실현할 것이 우리의 책임이 되었습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이 기도를 글자 그대로 바친다면 실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시대에만 해도 그러한 기도는 위험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부여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자연의 법칙이라든가, 제2차 원인 등에 대하여 아무런 개념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생산 수단은 자연의 힘에 비한다면 전혀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 모든 것을 귀속시켰습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이제 자연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어느정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의 무신론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류가 가지는 창조적 사명을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도를 바치면서 이런 생각은 들지 않는지요?

 

 사람들이 애걸해 하는 모습을 기뻐하시는 하느님,  또 그 자녀들에게 빵을    부여하시고 모든 복을 자기 멋대로 내려 주시고… 하시는 하느님 말입니다.

 

인도인( 印度人 ) 전인구(全人口)가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빵을 내려 주시기 위해서 하느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직 인간의 손을 통해서 빵을 내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런 위험한 기도에 빠져있다 보면 분노와 냉소로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왜 나는 이렇게 가난하게 굶주리며 살아야 하는가?  

굶주리고 헐벗은 저 사람들에 대하여 불쌍하지만 나는 아무런 힘도

되어 주지 못할까?.  또 열심히 일하여 빵을 벌어들이고 싶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인가? ……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당신의 빵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빵을 주시기 위해 당신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당신은 빵을 저희에게 나누어 주심으로써  당신의 생명을 주셨고,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맘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하신 당신의 사랑에 눈뜨고, 당신이 사신 것처럼 살고, 당신이 나누어 주신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나눌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가 남을 용서할 테니 하느님도 그만큼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 말 속에는 우리의 이웃에 대하여 잘못을 용서해준

그만큼만 용서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또 ’무자비한 종의 이야기’(마태18,34)가 연상될지도 모릅니다.  즉, 그 왕은 몹시 노하여 그를 형리에게 넘기고……하는 식으로 ’복수하시고 벌하시는’  하느님 말입니다.  

 

하느님은 아무도 벌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너무나 크셔서 벌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벌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베풀어 주신 용서를 거두어들이고 복수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하느님의 용서받기에 합당치 못할지라도 하느님은 그들이 용서받고자 하는 그 이상으로 간절히 무제한으로 용서하시고자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  

 

하느님은 그 누구도 유인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폭군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제안(提案)하시고,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결정을 합니다.  하느님을 도외시(度外視)하거나 모르기 때문에 따르지 않는 것도 일종의 거부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사건건 개입하고 우리를 좌지우지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은총의 지배하에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강요하거나 유인하기보다는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묵시3,20)

구걸하시는 모습에 더 가깝습니다.

 

     "유혹을 당할 경우 아무도 ’하느님께서 나를 그릇된 길로 유혹하고 계시다’.하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의 유혹을 받으시지도

않고, 악을 행하도록 사람을 유혹하시지도 않습니다"(야고1,13)

 

"크리스찬은 하느님께 시련에 봉착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원합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지 않는 상태에

그냥 놓아 달라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  

 

하느님께서는 "사랑하는 것은 항상 옳은 일이다."라는 사실과,  "사랑은

악을 이기고 또한 그것은 십자가상 죽음에서조차

당신을 못박은 사람들까지 회개시킬 수 있는 위대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심으로써 우리가 악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웃들을 구원해야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어떻게 해서,

 사로잡힌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는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막달라 마리아를 정신 질고(疾苦)로부터, 자캐오를 금전의

노예 상태로부터, 마태오를 바람직하지 못한 직업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그 사랑만이 그들에게  행복과 자유를

가져다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당신과 함께,  당신을 통해서,  당신 안에 삶으로써  우리는 이 세상을 악으로부터 해방시키겠습니다."

 

* 현대인들은 하느님께 감사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웃에게 봉사할 책임을

 자각한 인간으로서,  아들이며 또한 성인(成人)이라는 마음으로

’주의 기도’를 바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긍지와 기쁨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

 

아버지, 제가 아버지께 말씀드리는 것을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이루어 주심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모든 것은 이제 모두 제  것이옵니다.  

아버지, 당신은 아주 많은 것을 제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저에게 있어서 다만 받는 선물로서만

머물러 있게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선물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이 선물을

 제 마음 속 깊이 침투시키기 위한 시간 외에는,

저에게 주십사 하고 말씀드릴 것이 이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당신에게 점유(占有)당했을 때,

저는 제 자신을 완전히 이웃에게 주게 될 것입니다. *

 

 

새로운 ’주님의 기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우리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그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러므로 우리는 친구·형제 자매·어버이들을 통해서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그 사랑 안에 살아가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안에 당신의 거처를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각 사람 모두의 안에 사시도록

우리는 각 사람에게서 그들이 지니는 존엄성을 보며,

그에 해당하는 존경을 되찾아 주고자 합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정의·나눔·사랑 등에 대한

당신의 원의를 성취시켜

이 정의가 세상을 지배하는 곳이 되어

모든 인간이 동료 인간을 사랑하는 곳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빵을 우리에게 완전히 나누어 주심으로써,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빵을 이웃과 나누어 먹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완전히 용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형제들과

 화해하는 데 필요한 배려, 상대방에 대한 존경,

이웃과의 화해 등의 기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어떤 시련·어떤 유혹 ·어떤 괴로움에 봉착했을지라도

 우리와 함께 계시오니, 당신이 하신 것과 같이 그것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그리하여 당신과 더불어,

 당신 안에서,  당신을 통해서

우리는 이 세상을

악에서 구하겠습니다. 아멘"

 

 

 ※ 책 소개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지은이 : 루이 에블리 / 펴낸곳 : 가톨릭 출판사

1992. 2. 20. 개정 초판 펴냄 / 옮긴이 : 金壽昌

 

-  E N 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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