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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로 사는 괴로움(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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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우 [chun9999] 쪽지 캡슐

2001-12-14 ㅣ No.2545

 

 

 

 

신부로 사는 괴로움

신부에게는 황금같은 월요일인데도 집에 있심더.

 

주임 신부님하고 맞고도리쳐서 있는 재산 다

 

날렸심더, 놀러가고 싶어도 차비가 없어 못가고

 

바람쏘이고 싶어도 불안해 못갑니더. 전화가 와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심더.

 

오늘 점심 땐, 주임신부님한테 속은 것 같아서 화도

 

나고, 사십 다 돼가는 놈이 땡전 한푼 없다는게

 

부끄럽기도하고, 괜히 길에나갔다가 밥 사달라카는

 

사람 만날까 싶은 두려움 때문에 방에 틀여박혀서

 

중국집에 짝대기 그어놓고 볶음밥시켜 묵었심더.

 

앞으로도 보름넘게 이지랄삥(죄송)해야하기에

 

미치겠심더.

 

오후엔 방바닥에 쩌-억 달라붙어서 또 자야합니더.

 

그게 돈 안드는 유일한 비책입니더 괴롭심더.

 

지난 사순 때 대부분의 신자분들이 머리에 재를

 

얹었지예.

 

하지만 저는 한술 더떠서 참회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전례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재처럼 날아가지 않는 보라색 "브릿찌"를 세군데

 

너었어예. 기대반, 걱정반으로 초등부 미사에 입당하자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심더.

 

"와-아, 우리 보좌신부님 최고다. 우리하고 통한다.

 

나이하고는 다르게 신세대다"아이들의 반응에 용기를

 

얻어 공지사항 때 물었어예.

 

"브릿찌 지우까?"

 

"언지예"

중고등부 미사때도 똑같은 반응을 느꼈지예. 그렇게

 

용기백배해서 살다가 사순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초상이 났어예. 초상집에 가서 연도를 바치고

 

상주하고 인사를 하는데 상주의 얼굴 모양이 슬픈

 

바탕에 가제미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데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든지예.

그때부터 브릿찌는 안했심더. 그대신 부시맨 같은

 

’빠마’했심더.

 

 

김호균(신부, 대구 범어본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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