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RE:1630]나를 울게한 슈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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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stephenking] 쪽지 캡슐

1999-11-29 ㅣ No.1642

  안녕하십니까? 박동규입니다. 가끔 들리는 게임방에서 우리 성당 게시판에 들어오는 것은 작은 기쁨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특히 혜진이의 따뜻한 글은 국시 공부에 얼어붙은 제 마음까지도 녹여 주는 것 같군요.

  ’나를 울게한 슈퍼맨’ 잘 읽었습니다. 물론 추천도 했죠. 그 내용을 혜진이가 직접 본 것인지, 아니면 어떤 글에서 본 것을 옮겨 적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혜진이의 글에 몇가지 덧붙여야할 것이 있을 것 같기에 오랫만에 여러분을 찾아뵙는 것입니다. 만일 감동으로만 끝났다면, 혜진이의 글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추천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쳤겠지요.

  슈퍼맨,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엾은 사람이기도 하지만요.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사회의 정의(사실은 자신의 거주지와 가까운 거리의 정의이지만)를 지키려는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그 슈퍼맨이 좀 더 큰 일을 할 수는 없었을까요? 꼭 그처럼 슈퍼맨 복장을 해야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은 슈퍼맨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와 같은 슬픔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고아들이나,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님들을 위로할 수도 있고, 교통사고 감시단으로 이 사회에 봉사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물론 슈퍼맨을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 길지 않은 삶에서 보여준 그의 정의와 사랑은 쉽게 잊어버리기엔 안타까운 것이지요. 그렇지만 슈퍼맨이 하나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성의 현실입니다. 사람에게는 공익을 추구하는 면도 있지만 사익을 추구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일수록 사익을 추구하는 면이 더욱 강하고, 비범한 사람일수록 공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강한 편이죠. 하지만 분명한 건 사익을 희생하면서까지 공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주 아주 아주 드물다는 겁입니다. 예수님 정도를 예로 들 수 있겠죠. 이것이 현실이라면, 그리고 비범한 사람보다는 평범한 사람이 많은 것이 세상이라면 슈퍼맨의 방법은 너무나 감상적이고 어떻게 보면 유아적이지는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역시 박동규,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차가운 놈!" 등등. 하지만 제가 불쌍한 사람을 보고 불쌍하게 여길 줄 모르기 때문은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그 불쌍한 사람을 돕는 방법, 불의로 가득찬 세상을 정의롭게 하는 방법, 그 ’방법’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죠. 서울에서 부산에 가려는 열정만 있다고 부산에 간다는 건 좀 무모한 짓입니다. 물론 걸어서도 갈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에는 승용차부터 비행기까지 여러 교통수단이 완비되어 있고, 자신의 모든 상황과 여건에 따라 합리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짧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슈퍼맨은 ’열정’이 있긴 했어도 ’방법’을 찾는 데는 조금 무관심했던 건 같습니다. 바로 그게 그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비극적이지만 다소 어이없는 죽음으로 몰고 간 게 아닐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신 주일학교 교사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추진하려는 일은 천재지변이 일어나지만 않는다면 거의 대부분 현실화할 수 있습니다. 가끔 반항하기는 하겠지만 결국 학생들은 여러분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따르게 됩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열정’과 ’방법’의 관계 설정입니다. 열정만을 강요하면 무대포가 되고, 방법에만 집착하면 야비해지니까요. 여러분들은 ’열정’과 ’방법’을 예술적으로(?) 조화시켜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해 일하여, ’나를 울게한 슈퍼맨’이 아닌 ’우리를 웃게 하는 슈퍼맨’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칼을 갖지 않은 예언자는 파멸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 알기 쉬운 한방 상식은 지면 관계상 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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