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동성당 게시판

3박4일의 이별연습 셋째날

인쇄

박상익 [asiaman] 쪽지 캡슐

2000-07-29 ㅣ No.1345

3박4일, 그 길었던 이별연습

 

 

세쨋날(7.13, 목)

 

 

간호원이 아침에 또 금식을 요구했다. 이왕 검사한 것 지정의가 기관지내시경 검사도하라고 했댄다.

 오후 1시반, 본관3층에서 부분마취를 하고 기관지 내시경을 하였다.

 

마취를 하였다지만 코 속으로 호스가 들어가서 속을 헤집으니 기침이 나서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돌아와서 왜 기관지내시경 검사까지 했을까를 생각했다. 아마 임파선이 부은 원인이 다른 부분의 악성종양때문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CT촬영에서 일단 폐 자체는 깨끗하다고 나타났으니 기관지쪽에서 뭔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겠지.

 

 

임파선이란 게 다른 부문의 종양 때문에 붓거나 아니면 자체적으로 종양에 걸린 것 두 개 중 하나인데, 조직검사를 해 보면 바로 알테지. 그런데 조직검사 전에 이런 검사절차를 거치는 건 악성쪽에 상당한 가능성을 두고 악성의 발병장소를 찾는데 주력하는 것 같군..

 

 

여기까지 생각에 다시 한번 절망감이 엄습하면서 온 몸에서 힘이 빠진다. 잠을 청하는데 옆 침대 아저씨는 산책을 간 듯, 아주머니가 친지의 전화를 받으면서 흐느낀다.

 

 

그 00병원 놈들이 아프다는 사람을, 8개월간을 CT촬영 한 번 안하고 정형외과, 소화기내과, 호흡기내과로 돌리더니. 여기와서 보니 폐암말기래, 이제는 늦어서 수술도 안된다는데 어떡하면 좋을지.. 아직 저 양반은 이사실도 모르고 있는데.. 멀쩡하니까 사무실 나간대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내가 중학교 3학년인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슴 절절한 사연에 차라리 눈을 꼭 감아 버린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인생의 흐름이 있지. 밝은 편과 어두운 편. 지금까지는 항상 밝은 편에 서 있어 왔고 또 그 걸 당연히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맞아, 삶에는 꼭 같은 양은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어두움이 있고 그건 언제든 죽기 전에 한 번은 나눠 가지거나 겪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지.

 

 

생의 끝까지 전진하는 동안 저 쪽 편에서는 무수한 화살이 날라오고 있고 내가 그 화살을 오늘 맞을지 내일 맞을지 10년후에 맞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 오늘도 내일도 수백 수천명이 화살을 맞고 대열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확실한 사실말고는.

 

 

신기한 것은 그 와중에서 화살이 날라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는 것,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당연한 이 사실을 그 동안 어떻게 그렇게 철저히

 

외면하면서 살아 왔는지.

 

 

어두운 면을 느끼면서, 항상 옆에 두듯이 살아 왔으면 이런 시점에서 훨씬 담담하고 성숙하게 마음을 정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후에 지정의의 회진이 없었다. 그래 지금 이순간 그 사람인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단순히 운명이 어떤 식으로 결정해 놓았는지 확인하는 절차만 남았는데...

 

 

저녁에 회사의 여러분과 가족들이 문병을 다녀갔다. 의연한 척 하려고 무척 애썼지만 1분,1분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래 내일 저녁이면 모든 것이 결정되리라. 기다리는 것이 차라리 더 고통스럽다. 저 위에 내 인생, 나의 가정의 운명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그 누군가가 과연 있을까?

 

 

 



11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