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동(구 미아3동)성당 게시판

<펌> 조폭과 지하철을 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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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영 [Serina99] 쪽지 캡슐

2000-10-04 ㅣ No.4555

제 동기 중에 백지현 있죠? 본당 보조 교사하는.. 성당게시판에 글 좀 올리라고 올리라고 해도 여기는 안올리고 알럽스쿨에만 올려놔서 제가 일부러 거기까지 가서 가져왔습니다. 지현이의 경험담이 재밌더라구요. 하하하 즐거운 하루 되십쇼. 꾸벅.

 

 

<조폭과 함께 지하철을 타다>

 

푸하하! 역시 살다보면 별 웃기는 일이 다 있다니까.

 

오늘 낮에도 난 미아역에서 4호선을 타고 출근을 하고 있었어. ’프리즌호텔’이란 일본 야쿠자가 나오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데 뒤에 서있던 남자가 지하철 노선을 묻더라구.

 

’저기말입니다, 뭣좀 물어보겠는데 말입니다, 제가 이런걸 처음 타봐서 말입니다, 잘 몰라서 그러는데 말입니다, 3호선을 탈라문 말입니다..’

 

아, 짜식! 말끝마다 ’~말입니다’는..그러나..

남자를 돌아보는 순간 난 멈칫할 수 밖에 없었어. 첫사랑이라도 만났냐구? 네버!

한 떠바리 하는 그 남자 모습이 어땠는줄 알아?

무쓰 잔뜩 바른 깍두기 머리에 휠라 스웨터와 기지 바지(휠라가 조폭들이 제일 좋아하는 브랜든거 알지?) 한손엔 일수 가방, 한손엔 핸드폰.. 알만하지? 짜식, 살벌하게 생겼대~

 

난 아무렇지 않은척 태연하게 충무로에서 갈아타면 된다고 대답해줬지. 그러자

 

’아, 그럼말입니다, 거기서 표를 다시 사서 타는겁니까?’

 

황당하더군. 정말 지하철을 처음 탄거였나봐. 내가 표는 다시 살 필요 없다고 했더니 남자, 신기한 듯 그럼 이 표 한장으로 다 갈 수 있는겁니까? 묻더라구. 난 어디가시냐고 물었어. 그랬더니 녹번역을 간대. 그럼 저쪽에 있는 노선표에 주황색이 3호선이니까 녹번역을 찾아 보시라고 했지. 그러자 잠시후 다시 나한테 오더니 부끄러운듯

 

’저기 말입니다, 너무 복잡해서 잘 모르겠는데 말입니다..’하더라구.

 

하긴.., 서울 지하철이 좀 복잡해?

난 친절하게도 노선표가 있는 곳으로 그 남자를 데리고 가 녹번역을 가리키며 자세히 설명을 해줬어. 그랬더니 그 남자, 내 뒤에 서서 꼼짝 않고 있는거야. 자꾸 신경이 쓰이더라구. 아이씨, 일단 내렸다가 다음차를 타야되는거 아닌가...

근데 그 때 그 남자의 핸드폰이 울리는거야. 그러자 그 남자 갑자기 허리를 꼿꼿이 세우더니 큰소리로 ’편히 쉬셨습니까 형님!’하는거야. 푸하하! 이건 완전히 코메디였다니까.

 

’제가 말입니다 형님, 하하 처음으루다 지하철을 탔는데 말입니다 형님! 생소해 죽겠습니다 형님!’

 

난 책을 읽는척 큭큭 웃음을 참고 있었어. 근데 그건 나뿐만이 아니더라구. 사람들도 아까부터 다들 그 통화 내용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거야. 그런데 한참 지네 사업(?)에 관한 얘기를 하던 그 남자가 글쎄

 

’걱정마십쇼 형님! 처음엔 너무 복잡해서 뭐가뭔지 하나도 몰랐는데말입니다 형님! 여기 한 아가씨가 고맙게도 친절하게 가르쳐주셔서말입니다, 지금 잘 가고 있습니다 형님!’ 그러는거야.

 

순간 사람들이 일제히 날 쳐다보더군. 당황당황..^^;;

 

근데 그때 그 남자가 뭐랬는줄 알아?

 

’하하 형님두! 쪽팔리게 무슨 커피를 삽니까!’

 

순간 사람들 결국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더군. 아쉽게도(?) 바로 그때 열차는 동대문운동장에 도착했고 난 내려야했어. 내리자마자 난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지.

 

아, 진짜 재밌었는데.. 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삐질삐질 웃음이 새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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