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자료실

2011.3.29 아름다운 쉼터(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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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4rang2] 쪽지 캡슐

2011-03-29 ㅣ No.634

<용서 안에 하느님 나라가>

 

 

    베드로 사도의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라는 질문을 묵상하며, 나름대로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수도공동체 생활하는 저희에게도 수시로 대두되는 꽤나 큰 도전이자 십자가 역시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가족처럼 어울려 살아가다보니 ‘서로 다름’으로 인해 주고받는 상처와 에너지 소모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때로 말만 형제지 형제로 인정하지도 대우하지도 못한 때가 많아 많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제자 공동체 내 다른 멤버들과 주고받았던 상처도 만만치 않았던가, 봅니다. 뭔 일인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을 찾아오기 전 베드로 사도는 형제들과 크게 한번 부딪쳤을 것입니다. 크게 마음의 상처를 입고, 너무나 속상한 나머지 예수님께 다가와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주어야 합니까?”

 

    천둥의 아들이라고 불리던 과격했던 요한, 어머니까지 등에 업고 인사 청탁을 서슴지 않았던 야고보, 열혈당원 출신 시몬, 늘 마음 안에 비수를 품고 다니던 유다...수제자 베드로의 마음고생이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불같은 성격의 베드로 사도, 날카롭게 모난 돌 같은 베드로 사도,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좌충우돌 럭비공 같던 베드로 사도였기에 다른 사도들 역시 그를 견뎌내느라 죽을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그에게 죄를 지은 형제는 멀리 떨어져 살던 이집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지도상으로도 꽤나 떨어진 그리스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같은 동족이자 제자공동체를 이루며 같은 빵을 나누어먹던 동료였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죄를 짓게 만드는 사람은 저 지구 반대쪽 남미나 유럽, 동남아시아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 가정 안에, 우리 공동체 안에, 우리 직장 안에, 바로 내 옆에 ‘그’가 있습니다.

 

    이런 ‘그’이기에 힘들지만 끊임없이, 일상적으로, 맺힌 것을 풀어야 합니다. 쌓인 감정들을 수시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밥 먹듯이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며, 심리적, 정서적 안정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배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때로 인간관계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하느님께 단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가까운 이웃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마치도 우리 발목을 꽉 잡아매고 있는 무겁고 단단한 족쇄와도 같습니다. 우리 영혼을 메마르게 하고 피폐하게 만듭니다. 충만한 영성생활은 물 건너가고 맙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지나치게 강한 어조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용서 안에 자비하신 하느님의 얼굴이 깃들어 있습니다. 용서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십니다. 형제끼리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용서 안에 하느님 나라가 건설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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