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신명기 5,6-21의 십계명이 탈출기 20,1-17의 십계명보다 더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는 신명기의 십계명이 십계명의 원문에 더 충실하기 때문이다 Decalogue 124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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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ㅣ No.2031

게시자 주: (1)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31.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본들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십계명에서 열 개의 말씀(Decalogue)들의 구분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8-03-04]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04.htm   

(이상, 게시자 주 끝)

 

+ 찬미 예수님!

 

부제: 십계명에서 열 개의 말씀(Decalogue)들의 구분에 대하여 II

 

1. 들어가면서

 

1-1.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2020년인 올해의 경우 오늘 2월 16일인, 가해 연중 제6주일 복음 말씀(마태오 5,17-37)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계명의 계명들 중의 일부에 대하여 친히/직접 가르치시는 것을 듣습니다. 다음은 마태오 복음서 5,17-37 전문입니다:

 

출처: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1618&gomonth=2020-02-16&missatype=DA 

(발췌 시작)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 [주: 십계명 중의 제5계명]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 [주: 십계명 중의 제6계명]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 [주: 십계명 중의 제8계명]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상, 발췌 끝) 

 

1-1-1. 바로 위에 발췌된 예수님의 말씀들 중에서, 제21절 살인해서는 안 된다, 제27절 간음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제33절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에서의 말씀들은, 소위 말하는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에 포함되는 계명들이기 때문에, 특히, 예수님께서는 바로 위에 발췌된 마태오 복음서 5,17-37에서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 중에서 일부를 뽑아내어, 마태오 복음서 5,17에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듯이, 이들 계명들을 완성하기/구현하기(fulfill) 위하여, 더 자세하게 가르치고 계심이 분명합니다.

 

1-1-2. 다른 한편으로, 요즈음 사회에서 통계에 잡히는 살인 사건의 약 60% 정도가 남녀 간의 3각 치정(癡情) 관계에서 발생한다고 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는데, 아마도 예수님께서 공생활 하셨던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로 상당수의 살인 사건들이 남녀 사이의 3각 치정(癡情) 관계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생명의 주인이신, 성자 하느님이신, 강생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특히, 제21절에서의 말씀 "살인해서는 안 된다"[주: 십계명 중의 제5계명]에 곧바로 이어서, 제27절에서 그러한 말씀 "간음해서는 안 된다"[주: 십계명 중의 제6계명]을 하셨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또한, 일단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거짓 증언자들을 내세워 다른 이에게 살인죄를 전가하고자 하는 시도가 빈번하였기 때문에, 제33절에서 그러한 말씀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주: 십계명 중의 제8계명]을 하셨다는 하셨다는 생각을 또한 하게 됩니다.

 

1-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해 연중 제6주일 제1독서(집회 15,15-20), 제2독서(1코린토 2,6-10), 그리고 복음 말씀(마태오 5,17-37)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ot_6.htm

 

총 6권히 한 질을 구성하는,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가톨릭출판사), 가해 I, 연중 제6주일 제1독서(집회 15,15-20), 제2독서(1코린토 2,6-10), 그리고 복음 말씀(마태오 5,17-37)를 학습할 때에 또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게시자 주 1: 이어지는 제2항에서는, 구약 성경 모세오경 중의 십계명과, 소위 말하는, 613계명들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2-1. 우선적으로, 예수님께서 공생활 당시에, 아마도 유다교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오경에 약 600개 혹은 그 이상의 계명들이 있음은 알고 있었을 것이나, 그러나 이들 계명들이 정확하게 총 613개뿐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66.htm <----- 필독 권고 

 

특히, 하느님께서 모세오경 중의 계명들이 총 613개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기록 혹은 하느님께서 총 613개의 계명들을 주셨다는 기록은, 필자가 아는 한, 성경 본문 어디에도 없다고 알고 있으며, 따라서 이들 총 613개의 계명들의 구분은, 예를 들어, 아마도 유다교의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의하여 시도되었을 것이며, 그러나 누구가 이들을 구분하느냐에 따라, 그 항들이 달라질 수 있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2. 

2-2-1. 하느님께서, 통상적으로 말하는, 십계명(ten commandments)을 두 돌 판들에 써 주셨다는 기술은,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모세오경 중에서, 신명기 4,13; [신명기 5,6-21에 기술된 십계명 본문의 직후인] 신명기 5,22; 신명기 9,10; 신명기 9,11; 신명기 10,4에 있으며, 그러나 탈출기 본문에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1/RZ.HTM <---- 필히 확인 요망

 

왜냐하면, (i) 신명기 5,22에서처럼, '하느님께서, 통상적으로 말하는, 십계명(ten commandments)을 두 돌 판들에 써 주셨다'는 기술이 마땅히 있어야 할 위치들인, 탈출기 20,1 근처 혹은 탈출기 20,17 직후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탈출기 31,18에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는데, 그러나 이 기술 중에서 일컬어지는 "돌로 된 두 증언판"이 통상적으로 말하는 십계명을 가리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ii) 탈출기 20,1-17에 기술된 십계명으로부터 공간적으로 너무 떨어진 장소에 이 기술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발췌 시작)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들 다 하신 다음, 당신 손가락으로 쓰신, 돌로 된 두 증언판을 그에게 주셨다.

(이상, 발췌 끝)

 

그리고 왜냐하면, (iii) 특히, 전후 문맥 안에서 탈출기 31,18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구전으로 전해내려오던 바를 최종적으로 편집하여 탈출기 책으로 남길 당시에, 편집자(들)에 의하여 삽입되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왜냐하면, (iv) 모세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십계명아닌, 통상적으로 말하는 십계명완전히, 전적으로, 다른, 탈출기 34,10-26에 기술된 "또 다른 십계명"을 판들에 기록하였다는 기술은 탈출기 34,1; 탈출기 34,28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왜냐하면, 심지어, (v) 탈출기 34,1 중의 "그러면 네가 깨뜨려 버린 그 처음 돌 판에 새겨져 있던 말을 내가 새 돌 판에 다시 써 주겠다"라는 언급이, 탈출기 20,1-17탈출기 34,10-26을 언뜻, 대충 비교하더라도, 참으로, 대단히 모순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로 위의 제2-2-1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 하느님께서 직접 두 돌 판들에 써서 모세에게 주셨다는 십계명은, 신명기 5,6-21에 기술되어 있는 바를 말하는 것이지, 탈출기 20,1-17에 기술되어 있는 바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2-2-1: 바로 위의 (이 글의 결론 1)은, 아래의 제3-1항에 안내된 주소에 있는 논문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된 바, 즉, 아래의 제3-2항에 서술된 바 뿐만이 아니라, 다음에 발췌된 "주석 성경", 탈출기 입문, 제184쪽에 서술된 바와도 부합합니다(conform), 즉,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발췌 시작)

탈출기에 들어있는 비사제계 본문의 편집은 사제계 본문보다 훨씬 긴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들은 대부분 사제계 본문보다 오래 되었거나 같은 시대의 것이지만, 그 가운데 어떤 본문들은 분명히 후대의 것이다. 십계명이나 다른 특정 본문의2) 단락들은, 분명히 후대에 현재의 본문 자리에 삽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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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떤 주석가들은 탈출 3-4장과 19-24장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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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이상, 게시자 주 2-2-1 끝)

 

2-2-2. 그런데 심각한 문제점들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i)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 판들이 그 안에 보존되어 있었다는 궤약 궤(the ark of the covenant)는 오래 전에 사라지고 없으며,(*1) 그리고

(ii) 오래된 구약 성경의 본문을 기술할 때에 사용된 고대 글자인 히브리어 낱글자들은 모음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없고, 요즈음처럼, 띄어쓰기도 없으며, 그리고 심지어 쉼표, 마침표도 없어서, 따라서, 하느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어떻게 열 개의 계명들로 구분하여야 하는지가,

 

궤약 궤가 사라지고 난 이후부터, 유다인들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한 개의 커다란 숙제로 남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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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64.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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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2-2-2: 혹시 하여 말씀드립니다만, 성경 본문의 절 번호들이 처음/최초로 도입된 시점이 기원후 16세기인 점. 즉, 기원후 16세기 중반 경에 들어와 [독일어본 신약] 성경 본문이 금속 활자체로 처음으로 인쇄될 때에 식자공이 자신의 필요성에 의하여 처음으로 절 번호들을 도입한 것이므로,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을 구분 할 때에, 왜냐하면 성경 본문의 절 번호들은 성경 본문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아들 번호들은 모두 무시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중의 장 번호들도 성경 본문에 포함되지 않고 그리고 성경 중의 소제목들도 성경 본문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2-3. 따라서,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가,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수용되어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바대로,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을 구분하기 이전의 시기에, 유다교 측 혹은 그리스교 측의 다른 이들에 의하여 구분되었을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의 구분은 그 어느 것도 절대적이라고 할 수 없고, 누구가 이들을 어떠한 기준에 근거하여 판단하느냐에 땨라, 그 항들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중심 이동을 하여, 하느님께서 보실 때에, 누구의, 어떠한 기준에 근거한 판단에 따른, 구분이 더 바람직 한가?, 따라서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더 합리적인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다른 이들에 의한 여러 구분들 사이의 차이점들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가, 오래 전에 망실된 두 돌 판들에 새겨졌던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의 본나열(original numbering)을 회복하기 위하여,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을 어떠한 관점에서 구분하였는지를, 우선적으로, 자세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때에,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십계명을 담은 두 개의 돌 판들을 주셨던 바로 그 하느님이신, 강생하신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가르침들 중에 혹시라도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에 대한 가르침들이 있다면, 반드시 이 가르침들에 근거하여,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의 본나열(original numbering)을 회복하고자 힘써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3.

3-1. 십계명 중의 열 개의 계명들의 구분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논문[제목: 십계명에서 열 개의 말씀(Decalogue)들의 구분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8-03-04]을 되도록 많은 분들께서 읽으실 것을 강력하게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04.htm <----- 필독 권고 

 

3-2.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글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한 바에 의하여, 특히,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가해 연중 제6주일 복음 말씀(마태오 5,17-37)에 포함되는, 마태오 복음서 5,21-37을 학습할 때에 들여다보아야 하는 대응하는 구약 성경 본문 중의 십계명은,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 말 사이의 어느 시점에 히브리어 탈출기 20,17의 첫 번째 두 개의 어구들 사이의 배열 순서가, 대응하는, 신명기 5,21의 첫 번째 두 개의 어구들 사이의 배열 순서가 뒤바뀌는 오류가 발생한,(*2) 그리고 그 이후에 이 오류가 히브리어 탈출기 20,17에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따라서 16세기 혹은 그 이후에 개신교 측의 일부 분파들이 십계명 중의 열 개의 계명들을 구분하여 나열할 때에, 유다교처럼, 그 근거로 삼은, 히브리어 탈출기 20,1-17의 십계명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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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게시자 주: 바로 이 오류가 실제로 발생하였음을, 십계명이 기술된,

(i) 히브리어 탈출기 20,1-17; 

(ii) 칠십인역 그리스어 탈출기 20,1-17;

(iii) 히브리어 신명기 5,6-21;

(iv) 칠십인역 그리스어 신명기 5,6-21;

이들의 네 개의 본문들을 상호 정밀하게 비교/검토함으로써,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논문이 위의 제3-1항에 안내된 주소에 있는 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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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가 십계명 중의 열 개의 계명들을 구분하여 나열할 때에 그 근거로 삼은 성경 본문인, 그러나 ["새 번역 성경"의 번역 대본인] 지금의 히브리어 탈출기 20,1-17의 문장 구조와 다른, 위의 제3-1항의 주소에 있는 글 중에서 칠십인역 그리스어 성경 중의 대응하는 유관 본문들에 대한 정밀한 비교/분석에 의하여 히브리어 탈출기보다 더 오래전에 기록된 것이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되는 히브리어 신명기 중의, 신명기 5,6-21의 십계명과 "문장의 구조가 동일한" 히브리어 탈출기 20,1-17의 십계명임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달리 말하여, 요즈음의 대다수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십계명의 신뢰할 수 있는 성경 근거가 당연히 탈출기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는데, 그러나 그러한 추정에 문제가 있음을 위의 제3-1항에 안내된 글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3-1항에 안내된 글에 의하여, 십계명의 더 신뢰할 수 있는 성경 근거는, 다른 한편으로, 탈출기보다 더 오래전인 기원전 7세기 중엽에 히브리어 글자들로 기술되었음을, 예를 들어"주석 성경"의 주석자들, 즉, 프랑스어 "공동번역 성경"(TOB)의 주석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신명기 중의, 신명기 5,6-21 입니다.

 

3-2-1. 따라서 지금까지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2) 특히,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가,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수용되어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바대로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을 구분할 때에, 제6계명의 구현을 위한 한 개의 발본색원(拔本塞源)의 계명으로서 제9계명을 헤아린 판단의 기준 혹은 또 다른 이유(another reason)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가해 연중 제6주일 복음 말씀에 포함되는, 마태오 복음서 5, 27-32에서의 예수님의 가르침 때문이었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3-2-1: 바로 위의 (이 글의 결론 2)를 도출한 후에, 성 아우구스티노가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을 구분할 때에 들여다 본 당시의 히브리어 탈출기 5,17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해설을 다시 들여다 보니, 71.4 중에 마태오 복음서 5,32를 언급하는 다음의 문장이 있었습니다:

 

출처: http://www.augustinus.it/latino/questioni_ettateuco/quest_ettateuco_2_libro.htm 

(발췌 시작)

Dominus enim dicit in Evangelio: Quicumque dimiserit uxorem suam, excepta causa fornicationis, facit eam moechari.

 

영어 번역:

Lord says in the Gospel who divorces his wife, except for fornication, makes her commit adultery.

 

우리말 번역:

주님께서 [마태오] 복음서 [5,32]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와 이혼하는 자는 그녀로 하여금 간음을 범하게 하는 것이다."

(이상, 발췌 및 졸번역 끝)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 중의 유관 부분, Ia IIae, q100, 옛 법의 윤리 규범들 에서, 당연히, 성 아우구스티노의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의 분류가 그 이전의 몇 명의 대표적인 다른 이들의 분류보다 더 나은 분류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으면도, 그러나, 예상 밖으로, 마태오 복음서 5,27-32 혹은 이 단락의 일부를 근거로서 인용하는 문장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07.htm  

 

따라서, 위의 (이 글의 결론 2)가 상당히 유의미함을, 재차 확인하였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3-2 끝)

 

3-2-2. 더 자세하게, 가해 연중 제6주일 복음 말씀(마태오 5,17-37)의 시작 부분인, 마태오 복음서 5,17에서, "내가 율법(the law)이나 예언서(the prophets)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구현하러(fulfill) 왔다."라고 예수님께서 친히/직접 말씀하셨음을, 성 아우구스티노는 또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마태오 복음서 5,17에 의하여, 그리고 위의 제1-1-1항제1-1-2항에서 이미 말씀드린 바에 의하여,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3-2-2-1. (이 글의 결론 3)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는, 하느님의 유일한 거룩한 말씀(the Word of God), 즉, 하느님의 아드님(성자, the Son of God)께서(*3) 직접, 그리고 또한 모세를 통하여, 마련해 주신, 탈출기 20,1-17신명기 5,6-21에 기술된,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을 구분할 때에,

 

왜냐하면, 하느님의 유일한 거룩한 말씀, 즉, 성자께서 육화하신 분이신,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또한 직접, 당신께서 육화/강생 이전에 이미 마련해 주셨던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 중에서, 심장(heart) 바깥으로 표출되는 한 종류의 윤리적 악(moral evil, 죄)인 행위(act)를 금지하는 한 개의 계명(제6계명)인 "간음해서는 안 된다"마태오 복음서 5,27에서 구체적으로 거명하면서, 왜냐하면 심장(heart) 안에서 나쁜 생각들,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 증언, 중상이 나와 사람을 더럽히기(마태오 복음서 15,19-20ㄱ; 마르코 복음서 7,20-23) 때문에,(*4) 바로 이 계명을 완성하고자/구현하고자(fulfill)(마태오 복음서 5,17), 곧바로 이어지는 마태오 복음서 5,28-32에서의 가르침을 주셨는데, 성 아우구스티노는 바로 이 추가적 가르침을 포괄(包括)하는 한 개의 속(屬)적/류(類)적 개념(a generic concept)이 탈출기 20,17 및 신명기 5,21 중의 "이웃의 아내를 탐내어서는(covet) 안 된다"임을 인지한 후에, 그 결과로서, 이 개념을 심장(heart)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심장 바깥으로 표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또 다른 한 종류의 윤리적 악(moral evil, 죄)인 행위(act)를 금지하는 [판단 및 절차에 있어] 하나의 수용(受容)된 올바름(rectitude)(*5)으로서 우리가 또한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마태오 복음서 5,27 중의 한 개의 계명(제6계명)의 완성/구현(fulfillment)을 위한 바로 이 예수님의 가르침 마태오 복음서 5,28-32을 포괄(包括)하는 한 개의 속(屬)적/류(類)적 개념(a generic concept)인 탈출기 20,17 및 신명기 5,21 중의 "이웃의 아내를 탐내어서는(covet) 안 된다"를,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 중의 한 개의 별도의 계명으로, 즉, 제9계명으로, 세워서 헤아렸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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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게시자 주: 이들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The Word(유일하신 말씀)(Logos, 성자)의 정의(definition); 게시일자: 2009-06-19] 중에 있으니 꼭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43.htm <----- 필독 권고

 

그리고 또한,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우리말본 성경직해는 성자(聖子)의 정의(definition)도 제대로 전달하였다; 게시일자: 2016-07-24]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6.htm <----- 필독 권고 

 

(*4)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매년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복음 말씀(마르코 7,14-23)에 포함되는 마르코 복음서 7,20-23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주: 우리말 번역문 포함]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5_wed.htm <----- 필독 권고

 

(*5) 게시자 주: 이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수용(受容)된 올바름(rectitude) 안에서만 오로지 의화가 가능하다; 게시일자: 2016-04-021] 중에 있으니 꼭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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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3-2-2: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2월 10일]

(1) 다른 한편으로, 일단 바로 위의 제3-2-2항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은 이유, 즉, "심장 안에서 탐을 내지(covet) 말아야 한다"는 이유에 따라, 심장 바깥에서 지켜야 하는 계명인 제6계명완성/구현(fulfillment)을 위한 계명으로서 심장 안에서 지켜야 하는 계명인 제9계명이 세워짐을 이해한다면, 바로 이 동일한 이유에 따라, 심장 바깥에서 지켜야 하는 계명인 제7계명완성/구현(fulfillment)을 위한 계명이 바로 심장 안에서 지켜야 하는 계명인 제10계명임을, 제9계명의 경우처럼 별도의 설명이 예수님에 의하여 추가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더라도, 거의 유사한 문맥 안에서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2021년 2월 10일자 내용 추가 끝]

 

(2) 그리고, 위의 (이 글의 결론 2)(이 글의 결론 3)은, 설사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당시의 히브리어 탈출기 20,1-17에 대한 해설을 학습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04.htm  

 

(i) 요즈음의 탈출기 20,1-17[혹은 신명기 5,6-21]과 (ii) 마태오 복음서 5,17-37 둘 다를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면서 읽으면서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의 깊이있는 묵상을 하면, 어쩌면 도출될 수도 있는 결론들임에 또한 주목하십시오.

(이상, 게시자 주 3-2-2 끝)

 

3-3. 이제, 위의 제3-1항에 안내된 글에서 구체적으로 전달해 드리고 있는 내용을 알지 못할 경우에 해당할 것입니다만, 예를 들어, 바로 위의 제3-2항에서 지적한 바에 의하여,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의 Numbering 소제목 아래에 어떠한 오류가 있는지 또한 살펴보도록 하십시오:

https://en.wikipedia.org/wiki/Ten_Commandments <----- 여기를 클릭한 후에 꼭 살펴보라  

 

3-3-1.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글 중의 Numbering 소제목 아래에 있는 십계명 중의 열 개의 계명들의 비교표를 살펴보면, 신명기 5,6-21아닌, 위의 제3-1항에 안내된 글에서서 이미 지적한 배열상의 오류가 있는 요즈음의 탈출기 20,1-17에 따라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을 나열하다 보니, 제9계명과 제10계명의 나열에 있어 순서가 바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3-2. 그리고 또한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글 중의 Numbering 소제목 아래에 있는 십계명 중의 열 개의 계명들의 비교표를 살펴보면, 다음의 결론을들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4) 유다교 측의 십계명 중의 열 개의 계명들의 구분은,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을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심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위의 결론 2)(위의 결론 3)에서 지적하는 바가 전혀 반영되지 못한, 따라서 그 구분에 있어 완성되지/구현되지 못한 상태로 머물러 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5) (i) 아무리 빠르더라도 10세기 경 혹은 이후에 마련되었을 동방 정교회 측의 십계명과, (ii) 아무리 빠르더라도 16세기 중반 혹은 그 이후에 마련되었을 개신교회 측의, 루터파를 제외한, 대표적 분파들의 십계명, 둘 다 중의 열 개의 계명들의 구분에 있어, 비록 이들이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신앙 고백을 함(believe in)(*6)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왜냐하면 (위의 결론 2)(위의 결론 3)에서 지적한 바를 거부하거나 혹은 배척하기 때문에, 따라서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의 구분이 또 다른 종류의 완성되지/구현되지 못한 상태로 오히려 퇴화하게 되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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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게시자 주: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신앙을 고백함(believe in)"의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적 의미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믿다believe와 쪽으로 믿다believe in의 차이점; 게시일자: 2014-05-12]을 꼭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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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성 아우구스티노의 십계명의 열 개의 계명들의 구분 방식이 얼마나 합리적인가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논문[제목: 십계명에서 열 개의 말씀(Decalogue)들의 구분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8-03-04]제5항을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04.htm <----- 필독 권고 

 

3-4.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나해 사순 제3주일 제1독서(탈출 20,1-17)[주: 십계명]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주: 우리말 번역문 포함]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3.htm <----- 필독 권고

 

게시자 주 3-4: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신명기 5,6-21은 주일 혹은 주간 어느 날의 제1독서로 발췌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신명기 5,6-21탈출기 20,1-17과 논리적으로 등가이기(logically equivalent), 즉,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4.

다음은,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을, 예를 들어, 위의 제3-3-3항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정보들입니다:

 

4-1. 예를 들어, "신학 대전" 등의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이 수용한 가톨릭 교회의 핵심 문헌들에서 "자연법"(natural law)이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십계명"을 말함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자연법과 계시된 법(신성적 [실정]법)의 차이점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2--6-02]을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07.htm <----- 필독 권고 

 

4-2. 그리고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께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의 내용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소개/전달할 때에,

 

(i) 영어로 "law"로 번역되는 용어를, "법"(法) 대신에"교"(教, 가르침)로 번역하였고, 그리고

(ii) "natural law"를, "자연법" 대신에, "성교"(性敎)로 번역하였음 등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들에 있는 글들을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47.htm <----- 필독 권고

[제목: 教(교) 를 무작정, 1869년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역어, 종교(宗教, religion) 로 번역하는 것은 명백한 번역 오류이다; 게시일자: 2017-08-01]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58.htm <----- 필독 권고

[제목: 성교(性敎), 서교(書敎)/경교(經敎), 은교/총교(寵敎) 용어들의 최초 출처는 천석명변 이다; 게시일자: 2017-01-23]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20.htm <----- 필독 권고

[제목: 주교연기 에서 인교(人教) 는 인정법(human positive law), 즉, 인정법으로 규범화 되는 바를 말한다; 게시일자: 2018-05-17]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84.htm <----- 필독 권고

[제목: 천주실의 의 내용 이해를 위한 필독서들에는 수신서학 이 포함된다; 게시일자: 2018-01-02]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03.htm <----- 필독 권고

[제목: 주교연기 의 내용 이해를 위한 필독서들에는 수신서학 이 포함된다; 게시일자: 2018-02-25]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05.htm <----- 필독 권고

[제목: 영언여작 의 내용 이해를 위한 필독서들에는 수신서학 이 포함된다; 게시일자: 2018-03-04]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66-1640_알퐁소_바뇨니/1630_수신서학.htm <----- 필독 권고

 

게시자 주 4-2: 위의 글들을 읽으실 것을 추가로 권고드리는 또 다른 이유는, 이들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는 한문몬 천주교 문헌들을 또한 학습할 경우에, 한문 문화권 내에서 태어나 성장한 분들이, 예를 들어, (i)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의 내용을, 그리하여, 신학 대전의 용어들을 사용하는, 정통 토미스트(Thomist)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1920-2005년)의 교황 문헌들을 많이 인용하는, 1992년에 초간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필자의 판단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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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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