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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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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린 [dlchang] 쪽지 캡슐

2008-08-01 ㅣ No.6556

 

세월에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아침 출근과 퇴근길에 전철역 입구


에 놓여진 무가지 신문을 들 수 있겠습니다.


약 2년 전부터 한두 가지의 무가지가 전철역 입구에 놓여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약 5,6종


의 공짜 신문을 골라보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회라는 공동체는 마치 풍선 속 공기의 밀도와 같은 것이어서 한 곳에 변화가 생기면 다른


한 곳으로 그 변화치가 나타나는 것인가 봅니다.


무가지가 탄생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호황을 누렸던 전철역 안의 신문가판대에서는 이제


신문을 사서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전철 안 매점 주인들의 순이익은 신문 판매에서 얻던 이익만큼은 손해를 보고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생겨난 것이 있다면 무가지를 본 후에 상부 짐칸에 놓여진 구문을 수거하는 사람들


이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한 구문들은 전철역의 종점에서 근무하는 전철역 안에 종사하는 용역회사에


소속된 아주머니들에 의해 수거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남성 노인들이 전철이 종점에 도착하기 전에 수거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이러한


폐지 수집에 수익이 생긴다는 소문이 나서인지 할머니들까지 나서면서 언제부터인가 폐지


수집을 하는 동작들이 바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사회가 그렇듯이 경쟁으로 내 몰린 노인들은 수거에 몰입하느라 가끔씩 품위를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를 목격하게 됩니다.

 

특히 한 칸에 두 사람의 수거 자가 탑승을 하게 된 경우에는 하나라도 빨리 수거하려는 경


쟁의 몸짓은 안쓰럽기 조차 합니다.


동작이 빠른 사람이 상대편 수거자 앞에 놓인 무가지를 먼저 주어갈 경우에는 언성이 높아


지는 말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자주 목격되기도 합니다.


경쟁에서 벗어나 이제는 느긋한 삶을 살아도 될 나이의 노인들에게 이러한 경쟁은 사회가


어려워짐으로해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어김없이 이러한 무가지 수거 장면은 목격되었습니다.


전철이 망원 역에 이르러 좌석이 많이 비게 되었을 때, 허름한 차림의 여성노인 한분이 내


옆 좌석에 앉아 얼마 되지 않는 무가지를 정리하고 계셨다. 눈짐작으로 보아 2키로가 채 되


지 않는 적은 양이었다. 돈으로 환산한 다해도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이 보였습니다.


70살이 넘게 보이는 연세에 삶의 무게에 눌린 힘겨운 동작을 바라보고 있자니 울컥 연민의


감정이 들었습니다.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작게 접어 내 손안에 움켜쥐고, 잠시


노인의 자존심을 상하시지 않게 전해줄 방법을 고심하다가 직접 전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마침 노인의 왼쪽 검지에는 노란색 묵주반지가 끼워져 있었습니다.


“성당에 다니시지요. 저도 신자인데요. 이 돈으로 점심을 사드세요.”하고 노인과 두손으로


악수를 하며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돈을 전달하였습니다.


잠시 당황해하던 노인의 눈이 충열되는가 싶더니 “형제님 고맙습니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신변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래전에 남편을 잃은 노인은 장애인 자식과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정부로부터 매월 64만원의

 

생활보조금을 받아왔었는데 지난달부터 집이 있다는 이유로 보조금이 14만원으로 줄어들었다고 했습니다.

 

생계가 막막해진 노인은 주의에서 전철에서 폐지를 모으면 하루에


만 오천 원은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늘 처음으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일억 원이 조금 넘는 집도 노인의 당면한 생활에는 무의미한 것이 된 것입니다.

  

얼기설기 처진 사회 안전망 시스템에 그늘에 서있는 노인의 주름살은 깊어 보였습니다.


I. M. F 외환위기 이후의 중산층의 몰락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은 것처럼, 노인도


갑자기 닥친 최저생활비의 중단으로 삶의 의욕이 꺾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수색 역에서 내리면서 새로운 형태의 삶이 모색되기를 바라며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갖고 있지 못한데 그래도 자매님은 집을 가지고 계셔서 얼마나 좋으세


요. 희망을 잃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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