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성당 게시판

무서운 야그라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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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범 [john27] 쪽지 캡슐

1999-07-13 ㅣ No.148

산속,,, 낡은 건물에서,,

 

 

 

늦은 봄의 비라 그런지 꽤나 쌀쌀하게 느껴졌다.

더욱이 해가 저물어가는 산속에서 맞는 비인지라 괜히 기분이

울적해져서 아까부터 형민이와 윤미는 산길을 아무말도 없이

그저 걷고만 있었다.

 

"거봐 오빠, 괜히 이쪽 길로 들어서서...

이러다가 마을이 안나오면 어떻게 해?"

 

결국 윤미가 볼맨 목소리로 형민에게 투정을 했다. 형민은 아무 말없이 자신의 외투를

벗어 윤미의 어깨에 둘러 주더니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다, 미안해. 나는 이쪽 길이 지름길인줄 알고... 어차피 친구 놈들 따라

잡으려면은 빨리 가야만 했잖아?"

 

하루전, 서울에서 형민과 윤미는 그들의 써클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 두메인 이름모를 이 작은 산을 탐험하기로 했다. 그들의 목적은 희귀 식물을

채집하는 것으로, 괜한 경쟁심에 둘씩 그룹을 나눠 누가 먼저 근사한 식물을 채집하나

내기를 했던 것이었다.

 

결국에는 두명씩, 세팀이 짝지워졌고 연인사이인 형민과 윤미는 당연하게도 한팀이

되어 산속을 헤매게 되었다.

그러나 둘은 낯설은 산의 초행길인데다가 날까지 궂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휴~ 계속 걷다가 적당한 곳이 나오면 하루 묵어가자. 내일 아침 일찍, 애들과

만나기로 한 집합장소에 가기로 하고 말이야."

 

형민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머리에 맞으며 중얼거렸다.

윤미는 약간 눈을 흘기며 뾰로통해져서 말했다.

 

"이러다가는 우리가 내기에 지는게 확실해. 아직 이렇다할 식물을 채집하지도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고 있으니 원..."

 

형민은 윤미의 어깨를 다정히 감싸며 물기어린 볼에 뽀뽀를 하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윤미야, 더 어두워 지기 전에 야영이라도 할 곳을 마련하자. 응?"

 

윤미도 다소 기분이 풀린 듯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

산을 아무리 뒤져도 민가는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군데 군데 몰려 있는 초가집들은

사람이 안 산지 꽤 오래된 듯 몹시도 퇴락해 있었다. 형민은 그런 집들 중 몇군데를

둘러보며 밤을 지샐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살펴 보았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그런

집들보다는 차라리 밖에서 텐트를 치고 비를 피하며 밤을 지새는 게 나을 듯 싶었다.

 

"아, 윤미야, 저기 어떠니? 이런 산속에 저런 건물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만... 그래도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고... 밖에서 지새는 것 보다는 훨씬 날 것 같은데?"

 

거의 산을 내려 올때쯤 둘의 앞에는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3층정도 밖에 안돼 보였는데 그나마 군데군데 벽이 허물어져 있어 꽤나 을씨년해

보였다. 윤미는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형민을 바라보았다.

 

"에휴~ 저런데서 밤을 보낼 바에는 아예 밖에다 텐트를 치고 그냥 지새자. 저기... 꼭

귀신 나올 것 같아."

 

형민은 그런 윤미를 보고 호탕하게 '껄껄' 웃으며 윤미의 손을 붙잡고 건물 안으로

무작정 들어가며 다정스럽게 말했다.

 

"에이구, 내가 있는데 뭐가 겁이나? 귀신? 나오라고 그래, 내가 콱 때려 줄테니."

"훗... 오빠나 먼저 겁먹고 도망가지나 말어."

 

형민 자신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약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비오는 날이라 더욱 풍겨오는 퀘퀘한 냄새는 그렇다 쳐도 비가 내리는 중이라 달빛도

없어 무척이나 깜깜해 한치 앞도 분간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으면 더욱 공포스럽다는 말을 실감하며 자신의 어깨 배낭에서 랜턴을 꺼내

건물 안을 비춰 보았다. 나무로 된 마루는 거의 썩다시피하여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리는 파열음을 토해냈고 천장은 온통 거미줄 투성이었다.

 

"오... 빠... 그냥 나가자. 밖에서 지새는게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아."

 

형민이 또한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윤미가 두려워 하면 할수록 남자라는 자존심이

그를 부추겨 더욱 건물 깊숙히 들어갈 뿐이었다.

 

"도대체 이렇게 낡은 건물이 왜 아직도 철거가 안된 거지? 밖에서 볼때보다 더하네?"

"오빠... 무섭단 말이야."

"괜찮아. 적당한 장소를 찾아서 모닥불이라도 지피고 있으면 한결 기분도 좋아질

거야."

 

윤미의 손을 꼭 잡은 형민은 1층 마루 한 가운데에 서서 주위를 랜턴으로 샅샅이

둘러보았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그런지 처음 건물 안으로 들어 올 때보다는 많이

익숙해져 아까처럼 무서운 기분은 들지 않았다.

 

"자, 저쪽이 좋겠다. 배낭에 있는 침낭을 꺼내서 바닥에 깔어. 난 주위에서 땔감을 모아

올테니... 봄이라 하지만 오늘은 유난히 날이 싸늘해서... 불이라도 지펴야..."

 

형민의 말에 윤미는 두려운 눈망울만 이리저리 굴리다가 시킨대로 더듬더듬 따라

하였다.

잠시후 둘 앞에는 조그마한 모닥불이 피어 올랐고 한 침낭 속에 다정히 앉은 둘은

두런두런 얘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어때? 아직도 무서워?"

 

윤미는 형민의 어깨에 기대며 살며시 눈을 감고 말했다.

 

"아니. 오빠 말대로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괜찮네? 게다가..."

"게다가... 뭐?"

"오빠가 내 곁에 있으니까 안심이 되는데? 헤헤헤."

"훗훗... 그럼, 그럼. 당연하지."

 

형민이 다정한 손길로 윤미의 허리를 꼭 껴안으려는 순간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쩔거덕, 쩔꺼덕, 스윽.... 스윽....]

 

둘은 깜짝 놀라 서로 마주보고 물었다.

 

"무슨... 소리야?"

"오빠도 들었지? 이상한 소리..."

"응... 무슨 쇳소리 같기도 하고... 가위소리 같기도 한..."

 

[아.... 아.... 아~~~ 응, 으, 응~~]

 

이번에는 여자의 신음 소리가 나즈막히 들려왔다. 둘은 머리칼이 쭈볏서는 것을

느끼며 그자리에서 오들, 오들 떨기 시작했다.

 

"오빠... 나가자. 지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잠... 깐만... 이 늦은 시간에 나가서 어쩌자고? 비도 억수로 내리는데..."

 

형민은 입을 굳게 다물더니 건물을 둘러보리라 마음을 먹고 침낭에서 일어났다.

 

"윤미야, 여기서 잠깐만 있어라. 내가 건물을 둘러보고 올테니..."

"오빠, 무서워 가지마... 나 혼자 두고 가면..."

"그럼 같이 갈래?"

"아니... 그것도 싫지만... 오빠 그러지 말고 그냥 여기에 있자. 이상한 소리는 그냥

귀를 막고 안 들으면 되잖아?"

 

윤미가 거의 울상이 되어 말하자 형민은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알았어. 너 혼자 두고 가려니 내 마음도 그렇고... 아무튼 너무 신경쓰지마. 세상에

귀신이라고는 없으니까 말이야."

 

[스으윽...... 슥삭... 짤까닥... 텅... 텅...]

 

형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이상한 소리가 그들의 귓전에 울려퍼졌다. 윤미는

사색이 되어 형민의 팔에 매달렸지만 형민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다 싶어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다.

 

"안돼겠어. 내가 살펴보고 올께. 불안해서 있을 수가 없잖아. 별거 아닐테니

걱정말고... 알았지?"

 

형민은 자신의 팔을 붙잡는 윤미를 뿌리치고 랜턴을 굳게 움켜 쥔 채 재빨리 이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엉겁결에 혼자가 된 윤미는 침낭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윤미는 점점 죄어오는 불안감에 아무말도 못하고 멀뚱, 멀뚱 꺼져가는 모닥불만

바라보며 형민이 다시 오기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극도로 긴장이 되면 오히려 졸음이

오는 법인지, 윤미의 의식상태는 몹시도 불안했고 형민이를 걱정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눈꺼풀이 감겨 버렸다.

 

"윤미야... 윤미야..."

 

아스라이 형민의 목소리가 들리자 윤미는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떴다. 아직도 창밖이

깜깜한 것으로 봐서는 자신이 얼마 졸지 않은 것 같았지만 앞에서 타오르던 모닥불은

이미 꺼져 있었다.

 

"아... 형민오빠... 괜찮아?"

"나야 뭐... 그런데 이리저리 건물을 돌아다니다가 일기책 같은 걸 하나 발견 했는데...

아무튼 읽어봐봐..."

"너무 어두워서... 잘 안보여..."

"그럼 내가 읽을 테니 잘 들어봐..."

 

형민은 천천히 글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이 병원으로 온 것은 이년전 일이었다. 그 당시만해도

꿈많은 의학도였기에 스스럼없이 외진 이 곳에 자원을 했던 것인데... 지금 돌이켜

보면 후회할 짓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처음 이 병원으로 왔을 때 마을 사람들은 무척이나 나를 반겼다. 당시까지만 해도

1층짜리 목조 건물이었던 이 곳을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3층 짜리 병원으로 개축해

줄만큼... 하긴... 강원도 골짜기, 아무런 의료혜택이 돌아가지 않던 이 마을에 젊은

의사가 왔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렇게, 지난 이년간은 내 자신의 의료행위에 대해 만족을 하며 보람도 느낄만큼

만족한 생활을 했다. 다만, 마음에 걸리던 것은 이곳, 그리 크지 않은 이 마을은 도시

사람들이나 더 나아가 정부의 간섭없이 독자적으로 운영이 된다는 것이었다.

 

즉, 이 산 전체에는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하나의 독립된 마을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으며 100여호 되는 가구들은 모두 인척 아니면 친척 관계로 얽혀져 있어

가장 촌수가 높은 최노인의 말을 절대시 하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들은 모두 내게 다정했으며 불편한 것 하나 없이 잘 대해 주었기에 그런

점에 대해서는 별로 상관을 하지 않았는데... 바로 두달 전 발생한 이상한 사건으로

인해 안정됐던 내 생활이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그 이상한 사건이란...

 

결혼도 하지 않은 이 마을 처녀 한명이 임신을 했다는 것이었다. 도시 같으면야 흔한

일이겠지만 이곳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당장 최노인에게 끌려가 물고를

당했고 반쯤 초죽음이 된 그 여자는 곧바로 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나역시 그런 그들의 생활방식이나 개개의 감정을 관여할 바가 아닌지라 담담한

마음으로 그 여자를 치료해 줄 뿐이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그 여자가 정신을

차리고 약간씩 거동을 하게 되었을 때 이상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 여자의 얘기에 따르면 자신과 같이 몰래 임신을 한 여자가 이 마을에 여럿이 있는데

그녀들은 모두 마을에 떠돌아 다니던 거렁뱅이 남자들을 꼬드껴서 유행처럼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내 추측으로는 억압된 성에 대한 이 마을 처녀들의 무지와

보수적인 부모들에 대한 반항 비슷한 것 같았다.

 

이 마을 처녀들의 그러한 행동은 모든 면에 개방적인 나로서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은 일단 벌어진 것 같았다. 조금 있으면 속속 임신한 처녀들이 나타날테고

그에 따른 파문은 실로 상상하기 끔찍한 것이었다.

 

성에 대한 무지에서 온 처녀들의 어리석음도 문제였지만, 처음으로 발각된 그 여자의

말로 미루어 보아 이후로 발생되는 일련의 사태가 피바람으로 이어질 것은 눈에 보듯

훤한 일이었다.

 

이 마을에 단 하나뿐인 의사로서 결국 나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즉, 그 음모에

가담한 처녀들을 개별적으로 은밀히 만나 진찰을 하고 임신 중절을 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으며 그에 따른 파문을 최소화할 한가지 꾀를 생각해 내기에 이르렀다.

 

그 꾀라는 것은... 아직은 문명사회와 동 떨어진 이 마을 남자들을 부추겨 현재

우리나라 처녀들에게 이상한 전염병이 돌고 있으니 건강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설득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결국 내 예상은 맞아 떨어졌고 그들은 아무 의심없이

자신들의 딸자식들을 내게 진찰받게 하였고 나는 검사를 한 후 임신일 경우 낙태

수술을 하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일이 순조롭게 풀려 나갔다. 물론 하루에도 몇건씩 되는 낙태수술에 온 몸이

피곤하고 지쳐갔지만 오직 그녀들을 위한다는 보람에 아무런 죄의식 없이 수술을

해나갔다.

 

그러나 곧 새로운 문제가 닥쳐왔다. 바로 수술을 하고난 죽은 태아들의 처리 문제였다.

태아의 소각은 이곳 형편상 생각지도 못하니 천상 파묻을 수 밖에 없는데 만일

어설프게 묻었다가는 금방 발각이 될 것 같기에 적당한 곳을 물색하다가... 이 병원

지하실에 위치한 수술실 옆 창고에 묻기로 결심했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피묻은 태아들을 보며 어떨때는 안쓰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지만 어이없는 이번 사태를 일으킨 이 마을 처녀들의 몰상식함과 마을 사람들의

지나친 보수성에 책임을 돌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조용히 일이 마무리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며칠전부터 밤이 되면 지하실에서 애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환청이겠거니 하고 무시해 버렸지만 갈수록 또렷해지는 울음소리에 밤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요사이 너무 많은 수술에 몸이 약해져서 잘못 들은 것이라 여기며 그냥 넘기려 했지만

등골이 오싹해 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처녀들을 위한 일이라 하여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들을 무참히, 그것도 너무 많이 죽여 버렸다는 죄책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처음 애기 울음소리가 난후 며칠을 고민하던 나는 밤중에 또다시 애기 울음소리가

들리자 결심을 하고 지하 수술실로 내려갔다. 그러나 막상 수술실 문 앞에 서니 이층

내방에서 매일 같이 들리던 그 애기들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섬뜩한 기분에 수술실 문을 열고 불을 켰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둠속에서 잠시

멍하니 서있는데, 바로 그때... 내 발 밑에서 물컹거리는 물체가 밟히는 느낌이 들었다.

깜짝 놀라 급히 발을 드는데 어린 아기 한명의 처절한 비명소리를 시작으로 지하

수술실 온통, 아기들의 처절한 울음 소리가 한대 어우러져 내 귓전을 때렸다.

 

황급한 마음에 품속에 있던 라이터를 꺼내 불을 밝히는 순간... 지하 수술실 가득히

내가 그동안 낙태 수술을 하여 묻어 놓았던 태아들이 꿈틀거리며 기어나와 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 반쯤 넋이 나가 버렸다. 어떤 태아는 내 발을 붙잡고 늘어

지고 있었고 어떤 아이는 수술할 때 짤려진 팔과 다리를 끌어 안고 울부짖고

있었는데... 그 광경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그들이 살아났건 혹은 환상이건 간에 형체도 분간하기 어려운 작은 태아에서부터

제법 성숙한 태아들이 한데 엉켜 울부 짖는 것은 차마 눈을 뜨고는 볼 수가 없었다.

 

나는 허겁지겁 1층으로 올라와 지하실 문을 굳게 잠그고 숨을 헐떡이며 생각했다.

저들을 저리 만든건 바로... '나'라는 죄책감이 밀려오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얼만큼 시간이 지나고 다시 지하 수술실이 잠잠해 졌길래 용기를 내어 문을 열어

보았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보통때의 지하 수술실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하루만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모르겠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그런 일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항상 같은 시간에 태아들의 끔찍한 울음소리와 시간이 흐르면 고요해지는 그런

피말리는 시간들이...

 

누구에게 알릴 수도 없고 또 하소연 하기도 마땅치 않은 나로서는 이곳에서 도망을

갈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이미 여러번 그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기에 내 뇌리속에 너무도 선명히 남아있어 어디를 가든 평생

나를 괴롭힐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차츰 내 몰골도 말이 아니게 될 즈음 내가 수술을 해주었던

여자들 중 한명이 임신을 했던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실수로 발설을 해 버렸다. 결국

최노인을 비롯한 이 마을의 남자들은 임신을 했던 처녀들을 색출해 처벌을 하기

시작했고 나의 노력과 무수한 태아들의 죽음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져 버렸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일련의 사태에 내 판단은 흐려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나는 누구를

위해 그런 일을 저질렀는가... 지하 수술실의 태아들은 나를 원망하듯 밤마다 더욱

절규하며 울부짖었고 마을 사람들은 병원을 둘러싸고 주된 원흉인 나를 처단할

방법을

의논을 하고... 그렇다면... 그렇다면 과연 내가 지금 해야할 일은......

 

저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던 간에 이미 일들은 벌어진 것이고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바에야..."

 

글을 읽던 형민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흐느낌 비슷하게 어두운 건물안에

울려퍼졌다. 기괴한 그 얘기를 심각하게 듣던 윤미는 이상한 느낌에 형민이 쪽을 바라

보았다.

조금 전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형민이가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어떻게 글을

읽을 수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오... 빠.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끝까... 지 읽어줘. 어? 오... 빠.."

 

때마침 깨진 유리 창문 너머로 번개가 한차례 치며 동시에 윤미 바로 앞에앉아 있던

형민의 형체가 파르스름한 불빛에 언뜻 보였는데...

 

"엇? 아... 악~~~"

 

윤미 앞에 있는 형민의 등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한 남자가 반쯤 썩다만얼굴을 하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의 한쪽 얼굴은 심하게 부패되어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고

허리 아래 쯤에는 시뻘건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더욱이 등에 그 기괴한 모습을 한 남자를 업고 있는 형민의 두눈은 희멀건하게 뒤로

까뒤집어져 있었고 입에는 게거품을 문 채 허황한 손짓만 할 뿐 이었다.

 

너무 놀라 아무말도 못하고 앉은 채로 뒷걸음질만 하는 윤미에게 앙상한 손을 뻗치던

하얀 가운의 남자는 이빨이 반넘어 보이는 끔찍한 입술을 오물, 오물거리며 마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마을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 몸... 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여 버리기로 결심했지. 물론 살아 있을 때는 불가능할테니... 내

손으로 목숨을 끊은 뒤 내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서라도 말이야... 더불어 이 곳에

들리는 인간들 모두, 죽어간 아기들처럼 끔찍하게 죽여 버리기로 작정했지... 훗...

도대체 나는 누구를 위해 그런 일을 한거지? 쿠쿠쿠... 인간들에 대한 배신감과...

허탈함... 너희는

그걸 느껴봐야 돼. 이젠 곱상하게 생긴 너! 바로 네 차례인 거야...

쿠하학~~ 우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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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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