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동성당 게시판

[청년] 정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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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정 [ljkjustina] 쪽지 캡슐

2000-02-28 ㅣ No.2966

준비하는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고, 그래서 더 기도할 수 있었던 덕분에, 정말 무사히 그리고 기쁜 마음 안고 다녀왔습니다.

먼길을 오고 가야 했기 때문에 심신이 그리 편치않았을텐데도 모두 열심히 일하고 왔습니다. 우리들이 했던 일은 주로 생활보조라고 해서, 몸이 불편하신 나환우분들을 위해 청소, 빨래, 식사 보조 등을 해드리고, 또 말벗이 되어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성심원 내에는 안토니오의 집, 프란치스코의 집 이라는 남자 독신사와 글라라의 집 등 여자 독신사, 그리고 루케치오의 집 이라는 부부 요양소, 그리고 가정사 등의 시설들이 있습니다.

저는 루케치오의 집에서 이틀을 일했는데요, 그곳은 부부가 모두 나환자이신 분들 중 가정사에서 살림을 꾸려가기에 힘들만큼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신 분들을 보살펴 드리는 곳이었습니다. 아주 중하신 분들은 아예 방밖으로도 못나오시기 때문에 많은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생활보조원이라고 하는 직원2명이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요, 제가 일하러 간 날은 두분중 한분이 번갈아가며 쉬시는 날이었습니다. 새벽잠이 없으신 노인분들인지라, 아침 새벽부터 아침식사 준비가 시작되고 개개인의 병 상태에 따라 식사 내용이 조절됩니다. 이가 없으신 분들을 위해서 반찬을 가위로 잘게 잘라 드려야 하고, 속이 많이 상하신 분을 위해서는 죽과 싱거운 반찬을 따로 차려 드려야 하며, 당뇨가 있으신 분의 반찬도 따로 준비됩니다. 손가락이 성하신 분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포크와 고무줄을 준비해 드려야 하며, 눈이 안 보이시고 고개를 숙일 수 없는 분들에게는 앞치마를 대어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면, 각 방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해 드립니다. 특히 눈이 보이지 않는 분들 방은 필수인데요, 하루에도 몇번씩 지저분해지는 냉장고와 이불 근처의 먼지를 수세미로 빡빡 문질러가며 닦아야 하고, 방마다 달린 화장실 바닥도 깨끗이 닦고 미끄러지지 않으시도록 마른 걸레로 물기를 말려줘야 하며, 환우분들이 내놓으시는 빨래거리를 세탁하기도 합니다. 그런 일들이 끝나면 또 금방 점심때가 되고, 점심식사가 끝나면, 오후에는 홀 및 바닥 청소, 유리창 닦기, 오전에 널었던 빨래 걷어와 개어 드리기, 그리고 주방 일을 도와 파 다듬기, 감자 깎기, 나물 다듬기 등등의 일을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말벗이 되어 드리는 일입니다. 자식들도 마다한 분들인지라, 젊은 사람들이 찾아가 할아버지 할머니 불러드리며 말씀을 건네드리면 너무나 좋아하시고, 일을 하고 있을 때엔 고생이다 하시면서 눈물을 글썽거리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쁘다면서 엉덩이를 툭툭 쳐주시거나 손을 잡아 주시고 볼에 뽀뽀도 해주십니다.  그렇게 오후가 지나면 또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식사가 마치면, 봉사자의 하루 일과는 끝이 납니다.

나환우 분들 이외에 제가 인상 깊었던 건, ’생활보조원’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제가 일했던 루케치오집의 생활보조원 중 ’안문숙’이라는 별명을 가진, 참 건강한 여인네를 만난 것입니다. 활달하고 씩씩하게 일하는 모습도 그렇지만, 놀란 것은 대학의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는 경력이기도 했는데요. 생활보조원의 업무라는 것이 위에 늘어놓은 것과 같은 청소, 빨래 등등 일종의 파출부 일과 다름없다라는 생각을 하면, 놀라울 수 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네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이 대단했습니다. 아무리 노인분들이라지만, 아주 간단한 것부터 거창한 행사에 이르기까지 늘 그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연구 개발해서 실행해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그냥 몸만 가지고 되는 일도 아니라 치밀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늘 공부해야 한다는 것도 그네로부터 배웠습니다. 경근이의 매끈한 얼굴 생김새를 놓치지 않고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 ’잘 생긴 총각’이라고 놀려대는 그네의 활달함이 나환우분들에게도 참 많은 힘이 되겠구나 싶어서 참 보기 좋았습니다.

준비하며 어려운 점들이 많았는데, 알게 모르게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함께 동행해서 열심히 일해준 비오, 미향언니, 영만이, 영민 오빠, 용식 오빠, 관병 오빠, 경근이, 야곱... 모두에게도 고맙구요.

느낀점 하나 더... 기도로는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 감사합니다.

나환우분들과 올 봄에 또 오겠다고 약속하며 돌아왔는데, 그 때가 되면 산청의 풍광은 푸르름과 알록달록함으로 더 빛을 발하겠지요. 이번에 마음은 있었으나 함께하지 못하신 분들은 그 때 다시 한번 뭉치도록 합시다.

쥬스타나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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