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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21,29-33 에서 -이 세대- 의 의미는? [성경공부] [무화과나무] 947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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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8 ㅣ No.957

 
 
주신 질문:


공관 복음, 특히 루카 21장의 '무화과나무의 교훈'에서 아래의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분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후의 '예수님의 부활'이 

 '일어 남'의 뜻을 나타내는 내용이라고 이야기를 하던데요?

-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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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 찬미 예수님

1. 지금 인용하신 구절은, 루카 복음서 21,29-33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비유(제목: 무화과나무의 교훈, 마태오 복음서 24,32-35; 마르코 복음서 13,28-31)로서, 이 비유는 매년 연중 제34주간(마지막 주간) 금요일의 복음 말씀(루카 복음서 21,29-33)입니다. 여기를 클릭하시면, "이 세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나바르 성경 주석서에 주어진 해설 전문(영문 및 우리말 번역)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 세대": 이 절은 우리가 마태오 복음서 24,1에 대한 주석에서 예루살렘의 파괴 자체가 하나의 상징임에 대하여 말한 바에 대한 하나의 분명한 예(example) 입니다. "이 세대"는 우선적으로 예루살렘의 파괴의 시기에 살아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언급입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한 상징이므로, 우리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와 함께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당시에 살아있었던 세대에 대하여서 뿐만이 아니라, 또한 믿는 이들로 이루어진 세대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중이셨는데, 이는 당신께서는 한 세대가 시간에 의하여서 뿐만이 아니라 또한 종교적 예배와 관습(practice)의 양식(mode)에 의하여서 구분됨을 알고 계셨기 때문인데, 이것이 바로 시편 작가(Psalmist)가 '이들이 그분을 찾는 이들의 세대'라고 말할 때에 그가 뜻하는 바입니다(시편 24,6)" ["Hom. on St. Matthew", 77].] 


2. (질문 2)"어떤 분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후의 '예수님의 부활'이 '일어 남'의 뜻을 나타내는 내용이라고 이야기를 하던데요?" 라는 질문에 대하여

2-1. 


(i) 이 비유 전문과 이 비유의 앞뒤의 문맥 안에서,
(ii) 다해 대림 제1주일 복음 말씀(루카 복음서 21,25-28.34-36) 본문 및 저의 졸저서(제목: "... 성경공부 해설서 다해-II")에 주어진 해설과, 
(iii) 제31항에 대한 다음의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에 의하면,


이 비유는 종말론적으로, 최종적으로 도래할,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즉, 하늘 나라)"가 어떠할 것인가에 대한 묘사이므로, 질문 2는 좀 아닌 듯 싶습니다:


- 다 음 -


31. 세례자 요한에 의하여 선포되었으며(마태오 복음서 3,2를 참조하라) 그리고 우리의 주님에 의하여 그 많은 비유들로 설명되었던(마태오 복음서 제13장을 참조하라; 루카 복음서 13,18-20), 하느님의 나라는 열두 사도들 사이에 이미 현존하고 있으나(루카 복음서 16,20-21), 그러나 이 나라는 여전히 완전하게 분명히 나타나지는(manifest)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이 나라가 그 모든 충만함으로 도래할 때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하여 설명하시며, 그리고 당신께서는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기도에서 바로 이 날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기도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아버지의 나라 오게 하시며"(마태오 복음서 6,10).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여기 지상에서 이미 그 시작을 하였던, 하느님의 나라는,  그 형태가 일시적인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그리고 이 나라의 진정한 발전은 문명, 과학 그리고 기술의 진보에 의하여 측정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의 참된 성장은, 사람들에 의한,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부함에 대한 끊임없이(ever) 깊어지는 지식에 있으며, 영원한 축복들에 대한 끊임없이 더 강한 희망에 있으며,  하느님의 사랑에 대하여 끊임없이 더 열렬한 응답(response)에 있으며, 그리고 끊임없이 더 관대한 은총과 거룩함의 받아들임에 있습니다" ("Creed of the People of God", 27). 이 세상의 종말에 모든 것은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될 것이며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영원토록 다스리실 것입니다(1코린토 15,24.28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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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RSV의 루카 복음서 21,5-33에 대한 소제목이 "Discourse on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and the End of the World(예루살렘의 파괴와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한 생각들의 표현)" 임을 또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2: 그리고, 루카 복음서 21,5-36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들은, 저의 졸저서인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I,II, 나-I,II, 다-I,II" 의 인터넷 각주로서 제공되고 있는, 여기에 있으니 클릭하신 후에, 파란 색깔의 화요일 - 토요일 글자들을 순서대로 클릭하여 읽으실 수 있습니다.


참고 3: GNB(Good News Bible)와 NAB(New American Bible)의 루카 복음서 21,29-33의 소제목이 "The Lesson of the Fig Tree(무화과나무의 교훈)"이며, 새 번역 "성경"은 이것을 또한 이 구절들에 대한 소제목으로 채택하고 있으나, 그러나 가톨릭용 프랑스어 성경인 "TOB"의 경우에 있어 루카 복음서 21,28-33에 대한 소제목은 "L'approche du Règne de Dieu(하느님 나라의 다가옴)"입니다. 또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4: 여기를 클릭하시면 가톨릭용 프랑스어 성경인 "TOB" 루카 복음서 21,25-36을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참고 5: 다시 말씀드리지만, 개념적으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늘 나라[kingdom of heaven, 즉 하느님의 나라(kingdom of God)]", 첫 성령 강림일 이후로 가톨릭 교회 안에 이미 존재하면서 점점 자라고 있는 이 하늘 나라가, 죽은 영혼들을 위한 "하늘(천당, heaven)"과 동일하지 않음을 여태 모르고 계신 분들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무화과나무의 교훈"으로 불리는 그리 어렵지 않은 내용의 이 비유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2-2.
다른 한 편으로, 

(i) 이 비유(제목: 무화과나무의 교훈) 전문과 이 비유의 앞뒤의 문맥 안에서, 
(ii) 위의 제1항에 발췌하여 제시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의 주석에 근거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에 의하면,


이 비유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것으로도 설명될 수 있는데, 이 경우에 있어, "이 세대"에 대한 해설은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저의 졸저서(제목: "... 성경공부 해설서")의 나해-II 연중 제33주일 복음말씀(마르코 복음서 13,24-32)에 대한 입문과 제30절의 해설에 주어져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이렇게 이해하더라도, 질문 2는 좀 아닌 듯 싶습니다.

다음은 저의 졸저서(제목: "... 성경공부 해설서")의 나해-II 연중 제33주일 복음말씀(마르코 복음서 13,24-32)에 대한 입문과 제30절의 해설입니다:


복음 - 마르코 13,24-32
 
     오늘 우리는 또한 마르코 복음서를 통한 우리의 학습을 끝마친다. 이 시기는 성 목요일과 최후의 만찬 바로 직전이다. 이 독서는 종말론적 묘사(apocalyptic description)이며 그리고, 예수님께서 (기원후 70년에 발생하였던) 성전의 파괴에 대하여 말씀 중이신, 마르코 복음서 13,3-8과 함께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
 
 
28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예수님께서 저주하셨던 그 무화과나무(마르코 복음서 11,21)가 아니라, 다음의 구절에 있는 원예(horticulture)에 대한 간단한 가르침. 봄과 여름에 있어 무화과나무의 자연적 성장 과정이 사람의 아들의 도래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비교되고 있다. 그대가 이들 표징(signs)들을 보게 되면, 사람의 아들이 조만간 올 것임을 알도록 하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 29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한 세대는 40년이다. 이 구절은 기원후 30년에 말해졌으며, 40년 후인,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파괴되었다. 성전은 이 세상의 구조(construction)에 대한 유다교 개념의 축소 모형(miniature)이었다. 그들의 세상이 파괴되었던 것이다.

기원후 1세기의 유다인 역사학자인 요세푸스(Josephus)는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램의 포위 공격에 있어 투석기(catapults)들의 사용을 묘사할 때에 다음을 기록하였다:
 
“이제 던져진 돌들은 1탈렌트(75파운드, 0.453 x 75 = 33.98kg)의 무게였으며, 그리고 2 펄론(furlong)(1/8 x 2 = 1/4마일, 약 402.34meter) 그리고 그 이상 (투석기에 의하여) 도달 되었다(were carried). 이 돌들이 주었던 타격은, 이 돌들의 이동 경로에 있어 첫 번째로 서 있었던 것들뿐만이 아니라, 상당한 거리로 이들의 경로 밖에 있는 것들까지도, 결코 버티어 낼 수가 없었다. 유다인들에 관하여 언급하면, 그들은 처음에 이 돌이 오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이는 이 돌이 흰 색깔이었기 때문인데, 그리고 따라서 그들은 이 돌이 만드는 커다란 잡음에 의하여 인지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이 돌이 그 밝음과 함께 또한 도착하기 전에 볼 수 있었다. 따라서 망루에 앉아 있던 초병들이 투석기(catapult)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들에게 알려 주었고, 그리고 이 기계로부터 돌이 날아오기 시작하면, 이 돌의 경로에 있는 자들이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 고유의 지방 언어(country language)로 ‘아들이 온다(THE SON IS COMING).’라고 크게 외쳤다.” [요세푸스(Josephus), The Wars of the Jews, 5.7.3(270-273)].
 
이 기록의 번역자의 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초병들이 투석기로부터 날아오는 돌을 보았을 때에, ‘아들이 온다(THE SON IS COMING).’라는 신호 혹은 표어(watchword)의 의미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혹은 번역(reading)에 있어 무슨 실수가 거기에 있었는지에 대하여, 나는 말할 수가 없다. 그리스어 및 라틴어 둘 다의 사본들 모두는 이 번역과 일치하기에 나는 이 본문에 대하여 근거가 없는 추측의 어떠한 변경(alteration)도 허락할 수가 없다.” [Whitson, William, The Works of Josephus, Hendrickson Publisher, Peabody, MA, 1987, page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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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결론) 이상 살펴 본 바로부터, 이 "무화과나무의 교훈"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의 2겹의(two-fold)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i) "무화과나무의 교훈"으로 불리는 예수님의 비유 가르침은 예언으로서, 다음과 같은 두 종류의 "종말론적 시대"에 대한 묘사이다.


(ii) 예수 그리스도를 강생하신 하느님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그 당시의 유다인들의 경우에 있어, 이 "무화과나무 교훈"은 이후 약 40년 경에 발생하였던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에 대한 "종말론적 예언"이었으며, 이 종말론적 예언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은 이 세상의 구조(construction)에 대한 유다교 개념의 축소 모형(miniature)이었는데, 바로 이 그들의 세상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iii) 예수 그리스도를 강생하신 하느님을 받아들인 믿는 자들의 경우에 있어, "예수 재림의 날에 대한 종말론적 예언", 즉 최종적으로 도래할 "하느님의 나라(하늘 나라)"에 대한 예언적 묘사이다.


참고: 특히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이후로 신앙적으로 (ii)과 같이 이해를 하였던 지중해 지역의 상당한 숫자의 유다인들이,


(기원후 약 6세기경에 이르기까지 히브리어 글자에는 모음이 없었기에), 팔레스타인 지역을 제외하고, 이미 그 당시의 지중해 지역의 대부분의 유다인들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자신들의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가 없었으며 그리고 실제로 히브리어로 대화를 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나, 


그러나 이미 지중해 지역 전역의 공통 언어로 자리를 잡은 그리스어를, 이미 모음과 자음을 나타내는 글자들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유다인들이, 


그리스도교 신자로 많이 개종을 하게 되었을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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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기원후 70년까지의 유다인들의 신앙 생활은 크게, 


(1)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회당에서 안식일에 성경 말씀의 봉독과, 
(2) 해마다 여러 차례 예루살렘 성전에 참례하여 하느님께 제사 봉헌 
이렇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으며, 


따라서
예루살렘의 성전 파괴 이후로, 이들이 신명기 등의 모세 오경에 명해진 바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더 이상 하느님께 제사를 봉헌할 수가 없게 된 것은 유다인들 모두에게 신앙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였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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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유다인들의 움직임"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하여, 주로 당시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었던 유다교 라삐들은 기원후 85년경에, 소위 말하는 "얌니아 회의"를 개최하여, 유다교를 지키기 위한 특단의 결정들을 하게 됩니다.


여기를 클릭하시면, 이들 결정들에 대한 내용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꼭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내용들이니, 모두가 꼭 읽어 보실 것을 강력히 권고합니다.

-----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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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순태 마태오 교수
자료찾기 등 작업에 소요된 총 시간: 약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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