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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용어의 우리말 번역에 대하여 2 1241_recapitulatio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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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7 ㅣ No.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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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앞부분 글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용량 초과로 부득불 나누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9월 19일]

특히, 총 3부로 이루어진 본글의 중반부인 이 글의 처음부터 제4항의 끝까지는, 지난 2012년 8월 21일자에 작성하기 시작하여 적어도 2012년 8월 27일 이전에 작성 완료한 본글의 전반부의 마지막을 부분을, 위에서 말씀드린 게시글의 용량 초과의 문제 때문에, 이 글로 옮긴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의 제4-1항에서 필독을 권고하고 있는 요약 논문을 필자가 처음 읽었던 시점은 좀 오래 되었습니다.

필자가 이미 알고 있는 바를 그대로 전달해드리면 이해할 수 없다는 분들이 많기에,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에 대한 독자들의 올바른 이해를 오로지 도와드리기 위하여, 과거에 읽었던 신뢰할 수 있는 근거 문헌/자료들을 다시 찾아 내어, 가능한 한 논리의 비약이 없도록, 순서대로 제시하는, 심지어, 우리말로 번역까지 제시하면서 전달해드리느라, 따라서 필자측의 많은 인내와 고통/괴로움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이러한 글의 작성은, 공적 및 사적 둘 다에 있어, 필자 자신을 위한 일이 전혀 아님은 이해가 되시는지요?

[이상, 내용 추가 끝].

(이상, 게시자 주 끝).

(앞부분의 글에서 발췌 시작)

(중간 결론 및 제안 한 개)
이상, 라틴어 정본 및 여러 지역 언어들로 번역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을 비교/검토한 바로부터, 우리는 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어로 "recapitulation"으로 번역되는 표현이 특히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해당 본문에서, 전후의 문맥에 따라 영어로 "summing up"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에, "總歸(총귀)"라는 표현으로 일관성있게 번역되고 있음을 직접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한자 단어는 우리말에서 사용하지 않기에,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총괄 되돌림(總歸)" 혹은 "총괄복귀(總括復歸)"라는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직역 번역이라고 생각하며, 이 번역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상, 중간 결론 끝).

(이상, 발췌 끝).

4. 필자가 지금까지 파악한 1987년 이후 국내에서의 제안들

지금부터는, 영어로 "recapitulation"으로 번역되는 용어를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해 왔는지에 대하여 필자가 찾아 본 국내 가톨릭계의 자료들연대별로 나열하도록 하겠습니다. 즉, 리옹의 성 이레네오가 도입한, 에페소서 1,10에 근거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그리스도교 신학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인 "recapitulatio (recapitulation)" 에 대응하는 우리말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관하여, 연대별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4-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발행 "사목" 잡지 1987년 7월 112호에 실린, 김태완 신부님(당시에 원주 용소막본당 신부)의 "성 이레네오의 수험 이론 - 반 이단론 III에 의해서" 제목의 논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영어로 "recapitulation"로 번역되는 표현에 대응하는 번역 용어로서 "수렴(收?)"이라는 단어를 사용 중임을 알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45.htm <----- 필독 권고

감사의 말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개념에 대하여 직접 좋은 가르침들을 주셨던 시기에, 그리고 이어서, 1992년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초판이 발행되기 이전인, 1987년에, 국내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하여 리옹의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개념에 대한 대단히 유익한 "내용 요약 논문"을 게재해 주신 김태완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4-2. 위의 김태환 신부님의 논문 이후 13년 되는 해에, 다음의 2000년 3월 31일자 "확정 교회 용어" 제목의 자료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습니다:

(발췌 시작)
재창조, 총괄갱신(Recapitulatio : 교리서, 518항)

이미 “총괄 갱신”이라 하기로 하였지만, “재창조”라는 말이 더 가깝다고 보아, 이 항의 문장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완성하는 재창조의 신비”로 다듬도록 하였다.
(이상, 발췌 끝)

4-3. 그리고 위의 제4-2항의 언급은 또한 2000년 8월 15일자로 출판된, 다음의 "천주교 용어집"에서도 재 확인되고 있습니다:

출처: 천주교 용어집으로 바로가기.

게시자 주:
(1)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에 대응하는 "총괄 갱신"이라는 번역 용어는 국내의 일부 개신교측에서 사용하고 있는 번역 용어로 알고 있으며, 위의 문장으로부터 우리는, 2000년 3월 이전에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이 개신교측의 번역 용어를 일단 수용하기로 결정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그러나 이 번역 용어가 그리 적절하지 않기에 "... 재창조"라는 표현으로 대체하고자 하였음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용어 변경은, 2005년 12월 25일에 초판 발행된 "새 번역 성경"의 번역 작업 과정에서, 국내의 개신교측과 함께 작업하여 1977년에 초판 발행된 "공동번역 성서" 에페소서 1,10의 우리말 번역문을 반영하여, 새로 번역 중인 "새 번역 성경"의 해당 절의 우리말 번역문을 확정 한 후에, 이것을 반영하고 또 고려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개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3) 그런데, 위에 제가 말씀드린, 김태완 신부님의 1987년 논문 중에서 "recapitulation"이라는 표현에 대응하는 번역 용어로서 사용 중인 "수렴(收?)"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위의 (i) "확정 교회 용어(2000년 3월 31일자)"로 불리는 자료와 그리고 (ii) "천주교 용어집(2000년 8월 15일자)" 책자에서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이 상당히 유감입니다.

질문: 사실 이 "수렴"이라는 번역 용어는, 예를 들어,

여기를 클릭한 후에, <----- 필독 권고

자료실의 두 번째 글 [제목: 리옹의 성 이레네오의 가르침,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노성기 신부, 가톨릭신문, 2003년 3월 16일자]을 읽으면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
 지금도 국내의 가톨릭계에서 사용 중인 용어인데,

문제는

국내의 보통 수준의 가톨릭 교우님들의 경우에 있어, 이 "수렴"이라는 용어가 현재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18항에서 "총괄 실현"으로 번역되고 있는 용어와, 나타내는 개념에 있어, 등가인 표현임을 알고 계시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4) 그리고 제가 볼 때에, "재창조"라는 표현은 리옹의 성 이레네오의 개념을 제대로 잘 전달하지 못하는 표현으로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총괄 갱신"이라는 국내의 일부 개신교측의 번역 용어보다 개념 전달에 있어 오히려 오해의 소지가 더 많다는 생각입니다. 나중에 이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5) 그런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사목" 잡지 2003년 5월호 (제292호)에 실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실린 교리 용어에 관한 몇 가지 제안" [정승현 신부님]에서의 제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10. ‘총괄 갱신'과 '총괄 실현’ (recapitulatio)

recapitulare는 원래 연설을 마치면서 종합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말한다. 신약성서에는 두 번 나오는데,로마 13,9에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있고("어떤 계명도 '네 이웃을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이 말로 요약됩니 다:’-200주년성서),에페 1,10에는신학적 의미로사용되어 있다Γ만물을 그리스도 안에 총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 200주년 성서).

이 말이 우리 교리서에는 매우 풍부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일반적 의미로는 2055. 2196항: 신학적 의미로는 518. 538. 668. 772. 831. 1043. 1138. 1161. 2055. 2196. 2748. 2823. 2854항). 하느님의 구원 계획 또는 구원 역사가 그리스도 그분과 그분의 삶에 총괄적으로 실현되어 있음을 말한다. 물론 그 구원 역사는 모든 이, 모든 것의 구원 역사이다. 따라서 한 처음에서 지금까지의 역사만이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의 모든이, 모든 것의 구원 역사가그리스도 안에서 종합적으로 마 무리되었음을 말한다.

용어위원회에서 '총괄 갱신’ 이라는 말을 제시하였는데, 갱신이라는 말은 요즈음 '무얼 바꾼다’ 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자격증 갱신). 그러나 예수 그 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하느님의 구원 계획 또는 구원 경륜은 무얼 바꾸는 임 시적인 것이 아니라, 완전히 성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총괄 실현’ 이 좋을 듯 하며, 동사 recapitulare는 '총괄 실현하다’ 또는 '총괄적으로 실현하다’ 로, 형용사 recapitulatus는 '총괄 실현된’ , '총괄적으로 실현된’ 으로 하면 될 것이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갱신"이라는 표현이 recapitulation 이라는 단어에 대응하는 번역 용어의 일부분으로서 부족하다는 것은, 여기를 클릭하여 찾아 볼 수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갱신"이라는 단어의 설며을 읽어보아도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여 키워드 "총괄 실현"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Search 기능으로 검색을 해 보면, 위의 (5)에서의 제안이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에서, 제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영어로 "recapitulation" 혹은 "recapitulate" 로 번역되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총 14개의 항들 중에서, 제430항제518항 단 두 곳에서만 반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전문)

그리고 또한,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이 글의 전반부에 있는 제3항에 나열된, 우리말본이 아닌,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여러 항들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면서 살펴보도록 하십시오.

(6) 위의 (1) - (5)에서 드리는 말씀들은 최근에 제가 처음으로 알게된 내용들 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끝)

4-4. 다음은, 2010년 12월 25일자로 초판 발행된 "주석 성경, 신약"에페소서 1,10에 대한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다'로 옮긴 말은 그리스 말 본문에서는 한 복합 동사이다. 본디 수사학에서 쓰였던 이 동사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곧 '(요점을) 되풀이하다, 모으다, 요약하다''어떤 것 또는 누구 밑으로 가져다/데려다 놓다'이다. 라틴 말에서는 이 동사를 recapitulare, 명사를 recapitulatio라고 하는데(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이 명사를 '재창조, 총괄 갱신' 등으로 번역한다.), 이 절의 내용 곧 만물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한데 모아진다는 recapitulatio가 2세기의 교부 이레네오 이후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7) 그런데 위의 "주석 성경"의 주석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직접 읽을 수 있는, 프랑스어본 공동번역 성경(TOB)의 에페소서 1,10에 대한 주석과 내용 면에서 거의 동일하다는 생각입니다.

즉, 에페소서 1,10 에 대한 "주석 성경" 주석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TOB 주석을 글자 그대로 직역 번역한 것은 아니나, 그러나 내용면에서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리고 국내에서 그동안 "recapitulatio"에 대응하는 번역 용어들로 사용하고 있다는 "총괄 갱신", "재창조"이라는 표현들을 또한 추가적으로 언급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bibliotheque.editionsducerf.fr/par%20page/120/flash/p2842.swf 

(이상, 게시자 주 끝).

이상, 제4항에서 "recapitulation"에 대응하는 우리말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와 관련하여, 그동안 국내에서의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5. 
완전히 다른 한편으로, 위의 제4-1, 4-2, 4-3항에서 말씀드린 바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필자는, 약 2주일 전인 2012년 8월 14일에, 교황청발 영문 문헌들 및 필자가 평소에 주로 사용하는 Merriam-Webster's Unabridged Dictionary로부터 독자적으로, 다음의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5-1. 다음은 Merriam-Webster's Unabridged Dictionary에 주어진 "recapitulation" 단어에 대한 사전적 정의(definition)입니다.

위의 (7)에서는 자구적 의미가 둘임을 밝히고 있다는 생각이며, 이와는 달리, 아래의 사전의 두 번째 설명은,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이라는 용어의 신학적 의미를 정의하고(define)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mw/u_d.htm

(발췌 시작)
recapitulation

Etymology: Middle English recapitulacion, from Middle French or Late Latin; Middle French recapitulation, from Late Latin recapitulation-, recapitulatio, from recapitulatus + -ion-, -io -ion

1 a : the act of recapitulating : a summing up [요약, 약술(略述)]  b : the process by which according to Irenaeus the Logos passed through all phases of human experience thus reversing the evil caused by sin and winning complete salvation for man [이레네오(Irenaeus)에 따라, 거룩한 말씀(the Logos)께서 인간의 경험의 모든 단계들을 겪으셨던 바로 그러한 방식(thus)으로써 죄에 의하여 야기되었던 악을 되돌려서(reversing) 그리하여 사람을 위한 완미한 구원을 쟁취하는(winning) 바로 그 과정을 말한다].

2 : the supposed repetition in the development of the individual of its phylogenetic history -- see RECAPITULATION THEORY
3 : the third section of a musical movement in sonata form consisting of a usually modified repetition of the exposition and typically followed by a coda

(이상, 발췌 끝)

참고: 사실 위의 사전에는, 예를 들어, 중세 스콜라 철학 분야(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포함)의 전문 용어들에 대한 정의들도 주어지고 있는데, 초기 교회 시절의 교부학 분야 전문 신학자들이 성 이레네오에 따른 "recapitulation"이라는 신학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위 사전측에 제공하였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게시자 주:
(9)
참고이지만,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보할 수 있는 열한 개의 다른 영어 사전들 중에는, 위의 제5-1항에서와 같이 성 이레네오의 신학 용어인 "recapitulation"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습니다:

http://www.glossarium.info/dict__global/search__recapitulation.html

5-2. 다음은 이전의 글들에서 이미 씀드린 바입니다만, 이 글 안에서의 연결의 수월성을 위하여 되풀이합니다:

교황 비오 12세 회칙,
AD CAELI REGINAM, 마리아의 모후 칭호 선포에 대하여
1954년 11월 10일

(발췌 시작)
38. From these considerations, the proof develops on these lines: if Mary, in taking an active part in the work of salvation, was, by God's design, associated with Jesus Christ, the source of salvation itself, in a manner comparable to that in which Eve was associated with Adam, the source of death, so that it may be stated that the work of our salvation was accomplished by a kind of "recapitulation,"[49] in which a virgin was instrumental in the salvation of the human race, just as a virgin had been closely associated with its death; if, moreover, it can likewise be stated that this glorious Lady had been chosen Mother of Christ "in order that she might become a partner in the redemption of the human race";[50] and if, in truth, "it was she who, free of the stain of actual and original sin, and ever most closely bound to her Son, on Golgotha offered that Son to the Eternal Father together with the complete sacrifice of her maternal rights and maternal love, like a new Eve, for all the sons of Adam, stained as they were by his lamentable fall,"[51] then it may be legitimately concluded that as Christ, the new Adam, must be called a King not merely because He is Son of God, but also because He is our Redeemer, so, analogously, the Most Blessed Virgin is queen not only because she is Mother of God, but also because, as the new Eve, she was associated with the new A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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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S. Irenaeus, Adv. haer., V, 19, 1: PG VII, 1175 B.
50. Pius XI, epist. Auspicatus profecto: AAS XXV, 1933, p. 80.
51. Pius XII, litt. enc. Mystici Corporis: AAS XXXV, 1943, p. 247.

38. 이들 고찰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윤곽(lines)들 위에서 그 증명이 전개됩니다: 구원이라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에 있어, 마리아가, 하느님의 계획에 의하여, 그 안에서 하와가 죽음의 원천인 아담과 관련되어 있었던 바로 그 방식에 필적하는 방식으로, 구원 그 자체의 원천인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어, 그리하여 그 결과 우리의 구원이라는 일이, 한 명의 동정녀가 그 죽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 안에서 한 명의 동정녀가 인류의 구원에 있어 수단이 되었던(instrumental), 한 종류의 “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a kind of recapitulation)”(*)에 의하여 성취되었다고 말해질 수 있다고 한다면[49], 그리고, 더구나, 바로 이 영광스러운 여인이 “인류의 구속에 있어 그녀가 한 명의 협력자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모친으로 이미 선택되었다고 역시(likewise) 말해질 수 있다고 한다면[50], 그리고, 정말로, “본죄와 원죄의 얼룩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리고 그녀의 아드님께 참으로 가장 밀접하게 결합되어, 한탄스러운 타락에 의하여 얼룩지게 되었던 아담의 자손들 모두를 위하여, ”한 명의 새 하와(a new Eve)“처럼, 그녀의 모성적 권리들과 모성적 사랑의 완전한 희생과 함께 영원하신 성부께 바로 이 아드님을 골고타에서 봉헌하였던 이가 바로 그녀이라고 한다면[51], 그리스도, 즉 새 아담(the new Adam)께서, 단순히 그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기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그분께서 우리의 구속주이시기 때문에, 한 명의 왕(a King)으로 불려야만 하듯이, 마찬가지로, 유비적으로(analogously)(**), 가장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단순히 그녀가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새 하와(the new Eve)로서, 그녀가 새 아담(the new Adam)과 관련되어졌기 때문에, 모후(queen)라고 적법하게(legitimately) 결론이 내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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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S. Irenaeus, Adv. haer., V, 19, 1: PG VII, 1175 B.
http://www.newadvent.org/fathers/0103519.htm
50. Pius XI, epist. Auspicatus profecto: AAS XXV, 1933, p. 80.
51. Pius XII, litt. enc. Mystici Corporis: AAS XXXV, 1943, p.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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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1) "recapitulate""총괄적으로 되돌리다"로 번역한 것은  Merriam-Webster‘s Unabridged Dictionary에서 설명하고 있는 성 이레네오(St. Irenaeus)가 정의한(define) ”recapitulation“ 단어의 다음과 같은 신학적 의미 때문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mw/u_d.htm

(발췌 시작)
recapitulation: the process by which according to Irenaeus the Logos passed through all phases of human experience thus reversing the evil caused by sin and winning complete salvation for man

(악으로부터) 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recapitulation): 이레네오(Irenaeus)에 따라, 거룩한 말씀(the Logos)께서 인간의 경험의 모든 단계들을 겪으셨던 바로 그러한 방식(thus)으로써 죄에 의하여 야기되었던 악을 되돌려서(reversing) 그리하여 사람을 위한 완미한 구원을 쟁취하는(winning) 바로 그 과정을 말한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 이 중요한 신학적 용어를, 과거에는, 즉 적어도 2000년(대희년) 이전에는 "수렴(收斂)"으로 번역하였으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18항에서는 "총괄 실현(recapitulatio)"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국내의 일부 개신교측에서는 이 용어를 ”총괄 갱신“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러한 번역 용어들보다는, "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recapitulatio)"으로 번역하는 것이,

2-(i) 성 이레네오가 정의한 원 용어(라틴어: recapitulatio)의 신학적 의미에 더 충실하고,

2-(ii)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의 해당 번역 용어와 일치하게 되며, 그리고

2-(iii) 가톨릭 보편 교회에 의하여 이후의 세기들에 이르러 가톨릭 신학적으로 정립되었고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수용된 "통공 교의"의 범주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유일한 구속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에 있어서의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merit)에 의한] 회복[restoration/recovery/atonement, 벌충, 보(補)/보상(補傷)]"이라는 신학적 개념으로, 일곱 성사들의 핵심 신학적 근거들 중의 하나로서, 더 분명하고 명쾌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발전되었다고 생각한다.

(3) 다음의 주소에 있는 “Recapitulation theory of atonement [회복(벌충, 補, atonement)이라는 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이론]” 제목의 글을 또한 참고하라:
http://en.wikipedia.org/wiki/Recapitulation_theory_of_atonement

(**)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유비(analogy)”라는 가톨릭 신학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87.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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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5-3. 이제 위의 제5-2항에서의 전달 내용에 유념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과 이후에, 교황청 발신의 문헌들(여기에는 교황님들의 문헌들 포함) 중에서 리옹의 성 이레네오와 그의 "recapitulation"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문헌들을 필자가 나름대로 찾아 보았더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들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이들 중에서, 다음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2001년 2월 14일자 일반 알현 교리 교육 강론 말씀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1,10에 대한 리옹의 성 이레네오에 의한 해석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게시자 주: 다음의 글을 잘 읽어 보면, 리옹의 성 이레네오가 [초기 교회 시절인 기원후 2세기의 이원론자들과 영지주의자들 등의 이단들에 대적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에 대한 언급인 에페소서 1,10을 그리스도교 신학적으로 해석하여, 창세기 3,15의 그리스도교 신학적 해석에 있어, 동정 마리아의 역할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학적 이해에도 또한 적용될 수 있는, 가톨릭 보편 교회가 대단히 오래 전부터 받아들여 수용해온] 그리스도교 신학에 있어서의 한 개의 대단히 중요한 기본적인 그리고 추상적인 개념인 "수렴 이론(the theory of recapitulation)"을 정립하였음을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의 말씀: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이러한 교리 교육용 좋은 강론 말씀을 마련해 주신, 살아 계신 동안에 이미 성인이셨던, 네 번째 대 교황(Pope the Great)으로 이미 불리기 시작한, 이미 복자 반열에 오르신 그리고 조만간 성인 반열에 오르게 되실, 존경하옵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vatican/aud20010214en.htm 

(발췌 시작)

All creation will be "recapitulated' in Christ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총괄적으로 복귀될" 것입니다.

John Paul II, General Audience, Feb 14, 2001

요한 바오로 2세, 일반 알현, 2001년 2월 14일

1. God's saving plan, "the mystery of his will" (cf. Eph 1: 9) for every creature, is described in the Letter to the Ephesians with a distinctive term: to "recapitulate" all things in heaven and on earth in Christ (Eph 1: 10). The image could also refer to the roller around which was wrapped the parchment or papyrus scroll of the volumen with a written text: Christ gives a single meaning to all the syllables, words and works of creation and history.

1. 하느님의 구하시는 계획(saving plan), 즉 모든 피조물을 위한 "당신의 뜻이라는 신비(the mystery of his will)" (에페소 1,9를 참조하라)는 에페소 사람들에게 보내진 서간에서 다음과 같은 한 개의 두드러지는 용어(a distinctive term)와 함께 설명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읍니다(recapitulate)" (에페소 1,10). 이 묘사는 또한, 그 둘레로 기록된 본문을 가진 책인 양피지(parchment) 혹은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감겨져 있었던, 심대(roller)에 대한 다음과 같은 언급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계서는 창조와 역사에 있어서의 모든 말 한마디(syllables)들, 단어(words)들 그리고 일(works)들에 대한 한 개의 유일한 의미(a single meaning)를 제공하십니다.

The first person to take up this theme of "recapitulation" and develop it in a marvellous way was St Irenaeus of Lyons, a great second-century Father of the Church. Against any fragmentation of salvation history, against any division of the Old and New Covenants, against any dispersion of God's revelation and action, Irenaeus extols the one Lord, Jesus Christ, who in the Incarnation sums up in himself the entire history of salvation, humanity and all creation: "He, as the eternal King, recapitulates all things in himself" (Adversus Haereses, III, 21, 9).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데 모음(recapitulation)"이라는 바로 이러한 주제를 손에 집어들어 이 주제를 경이로운 방식으로 발전시킨 첫 번째 개인(the first person)은, 위대한 2세기 교부인, 리옹의 성 이레네오(St. Irenaeus of Lyons)였습니다.
구원 역사의 어떠한 파쇄(破碎, fragmentation, 조각들로 나누어짐)에도 반대하여, 옛 계약과 새 계약의 어떠한 분할(division)에도 반대하여, 하느님의 계시와 행위에 있어서의 어떠한 흩뜨림(dispersion)에도 반대하여, 이레네오는, 강생(Incarnation) 안에서 구원, 인류 그리고 모든 피조물에 대한 전체 역사를 당신 자신 안으로(in himself) 다음과 같이 요약하시는 분이신, 한 분이신 주님, 즉 예수 그리스도를 격찬합니다(extols): "당신께서는, 영원한 임금으로서, 당신 자신 안으로 모든 것들을 (악으로부터) 총괄적으로 되돌리십니다/총괄복귀(總括復歸)시키십니다(recapitulates)"  [성 이레네오, 이단반박(Adversus Haereses), III, 2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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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이단 반박(Adversus Haereses)"리옹의 성 이레네오의 저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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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Let us listen to a passage in which this Father of the Church comments on the Apostle's words concerning the recapitulation of all things in Christ. The phrase "all things", Irenaeus says, includes man, who was touched by the mystery of the Incarnation when the invisible Son of God "became visible, the incomprehensible became comprehensible, the impassible became passible, the Word became man. He recapitulated all things in himself, so that, just as the Word of God has primacy over heavenly, spiritual and invisible beings, so he does over visible and corporeal beings.

2.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데 모음(recapitulation)
에 관련한 이 사도의 단어(the Apostle's words)들에 대하여 바로 이 교부가 주석한 한 개의 구절(a passage)에 우리가 귀를 기울이도록 합시다. "모든 것들(all things)"이라는 구(句, phrase)는, 다음과 같은 때인, 강생 신비(the mystery of Incarnation)에 의하여 접촉하게 되었던 사람(man)을 포함한다고 이레네오는 말합니다: "비가시적인 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 성자)께서 가시적이 되셨을 때, 이해할 수 없는 분께서 이해할 수 있게 되셨을 때, 고통을 느끼지 않는 분께서 고통을 느낄 수 있게 되셨을 때. 당신께서는 모든 것들을 당신 자신 안으로 (악으로부터) 총괄적으로 되돌리시어/총괄복귀(總括復歸)시키시어(recapitulates), 그리하여 그 결과,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이 천상의, 영적 그리고 비가시적 있음(beings, 존재)들에 대한 수위(首位, primacy)를 가지고 계신 것과 꼭 마찬가지로, 또한 당신께서는 가시적인 그리고 육체를 가진(corporeal) 있음(beings, 존재)들에 대하여 수위(首位, primacy)를 가지고 계십니다.

Assuming this primacy in himself and giving himself as head to the Church, he draws all things to himself" (Adversus Haereses, III, 16, 6). This coming together of all being in Christ, the centre of time and space, gradually takes place in history, as the obstacles, the resistance of sin and the Evil One, are overcome.

당신 자신 안에서 바로 이러한 수위를 취하시어(assuming) 그리하여 당신 자신을 교회의 머리로서 제공하시어, 당신께서는 모든 것들을 당신 자신께로 잡아 당기십니다(draws)" [성 이레네오, 이단반박(Adversus Haereses), III, 16, 6].
시간과 공간의 중심인,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이러한 모든 있음(being, 존재)의 함께 모임(coming together)은, 장애물들, 즉 죄와 악마(the Evil One, 사탄)의 저항이 극복되어감에 따라, 역사 안에서 점진적으로 일어납니다.

3. To illustrate this movement, Irenaeus refers to the difference, already presented by St Paul, between Christ and Adam (cf. Rom 5: 12-21): Christ is the new Adam, that is, the Firstborn of faithful humanity, who lovingly and obediently welcomes the plan of redemption which God designed as the soul and goal of history. Christ must therefore cancel the work of devastation, the horrible idolatries, violence and every sin that rebellious Adam sowed in the age-old history of humanity and in the created realm. By his total obedience to the Father, Christ opens the era of peace with God and among men, reconciling dispersed humanity in himself (cf. Eph 2: 16). In himself he "recapitulates" Adam, in whom all humanity can see itself, transforms him into a child of God and restores him to full communion with the Father. Through his brotherhood with us in flesh and blood, in life and death, Christ becomes "the head" of saved humanity. St Irenaeus writes again: "Christ has recapitulated in himself all the blood shed by all the just and by all the prophets who have lived since the beginning" (Adversus Haereses, V, 14, 1; cf. V, 14, 2).

3. 바로 이러한 움직임을 예증하기 위하여(illustrate), 이레네오는, 성 바오로에 의하여 이미 제시되었던, 그리스도와 아담(Adam) 사이에 있는 차이점(로마 5,12-21을 참조하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새 아담, 즉, 역사의 영혼(soul)이며 목표(goal)로서 하느님께서 설계하셨던 속량의 계획(the plan of redemption)을 자애롭게 그리고 순종하면서 기꺼이 받아들이시는(welcome) 분이신, 믿음있는 인류(faithful humanity)의 맏배(Firstborn)이십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오래된 역사 안에 그리고 창조된 영역 안에 반역하는 아담이 씨를 뿌려놓았던(sowed), 황폐화의 결과(the work of devastation), 혐오스러운 우상숭배들, 폭력 그리고 모든 죄를 그리스도께서 상쇄시켜야만(cancel) 하십니다. 성부에 대한 당신의 전적인 순종에 의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흩어진 인류를 당신 자신 안에서 화해시킴으로써 (에페소 2,16을 참조하라), 하느님과의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의 평화의 시대를 여십니다. 당신 자신 안에서 당신께서는, 그자 안에서 모든 인류가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아담을 (악으로부터) 총괄적으로 되돌리시고/총괄복귀(總括復歸)시키시고(recapitulates), 즉 그를 하느님의 아이(a child of God)로 변화시키시고 그리고 그를 성부와의 완전한 하나 됨(communion, 통공, 친교)으로 회복시키십니다. 혈육에 있어, 삶과 죽음에 있어, 우리와 그의 형제됨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구하여진(saved) 인류의 "머리(head)"가 되십니다. 성 이레네오는 또다시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한처음 이후로 살아 온 모든 의로운 자에 의하여 그리고 모든 예언자들에 의하여 흘려졌던(shed) 모든 피를 당신 자신 안에서 이미 총괄적으로 되돌리셨습니다/총괄복귀(總括復歸)시키셨습니다(recapitulates)" [성 이레네오, 이단반박(Adversus Haereses), V, 14, 1; cf. V, 14, 2].

4. Good and evil, then, are considered in the light of Christ's redemptive work. As Paul shows us, this involves all creation with the variety of its elements (cf. Rom 8: 18-30). Indeed, nature itself, since it was subjected to the senselessness, degradation and devastation caused by sin, thus shares in the joy of the liberation achieved by Christ in the Holy Spirit.

4. 선과 악은, 이러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속량의 일(redemptive work)이라는 빛 안에서 고찰됩니다. 바오로(Paul)가 우리에게 보여주듯이, 이것은 모든 피조물을 그 요소들의 다양함(variety)과 관련시킵니다 (로마 8,18-30을 참조하라). 정말로, 자연 그대로는, 그것이 죄에 의하여 야기된 무감각함(senselessness), 퇴보(degradation) 그리고 황폐화(devastation)에 종속되었기에(was subjected to), 그 결과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취된 해방(liberation)의 기쁨에 함께 합니다.

Therefore, the full realization of the Creator's original plan emerges: that of a creation in which God and man, man and woman, humanity and nature are in harmony, in dialogue and in communion. This plan, upset by sin, is restored in the most marvellous way by Christ, who mysteriously but effectively carries it out in the present reality, waiting to bring it to fulfilment. Jesus himself said he was the fulcrum and point of convergence of this saving plan when he said: "I, when I am lifted up from the earth, will draw all men to myself" (Jn 12: 32). And the Evangelist John presents this work precisely as a kind of recapitulation: "to gather into one the dispersed children of God" (Jn 11: 52).

그러므로, 창조주의 원 계획의 충만한 실현이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emerges): 그 안에서 하느님과 사람, 사람과 여자, 인류와 자연들이 조화의 상태에 있는, 대화하는 그리고 하나 됨의 상태에 있는, 한 개의 창조(a creation)의 바로 그러함. 죄에 의하여 무질서 상태로 빠뜨려진(upset)(*) 이러한 원 계획은, 이 계획을 구현으로 이끄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현재의 실재(present reality) 안에서 이 계획을 신비롭게(mysteriously) 그리고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분이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가장 경이로운 방식으로 회복됩니다(is resoted).
당신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 때에 당신께서는 이러한 구하는 계획의 받침점(fulcrum)이며 그리고 수렴점(收斂點, point of convergence)임을 예수님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요한 12,32). 그리고 이 복음사가 요한(John)은 바로 이 일을 다음과 같은 한 종류의 총괄적 되돌림/총괄복귀(總括復歸)(a kind of recapitulation)로서 정확하게 제시합니다: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요한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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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타동사 "upset""무질서 상태로 빠뜨리다"로 번역한 것은 "Merriam-Webster's Unabridged Dictionary"에 주어진 "to throw into disorder" 라는 설명을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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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is work will reach its fullness at at the end of time when - as Paul again recalls - "God will be all in all" (cf. 1 Cor 15: 28)

5. 이러한 일은, 성 바오로가 또다시 상기시키듯이,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1코린토 15,26을 참조하라) 때인 시간의 끝에 그 충만함에 도달할 것입니다.

The last page of the Book of Revelation - proclaimed at the start of our gathering - depicts this goal in vivid colours. The Church and the Spirit are waiting and praying for the moment when Christ will "deliver the kingdom to God the Father after destroying every rule and every authority and power.... The last enemy to be destroyed is death. "For God has put all things in subjection under his [Son's] feet'" (1 Cor 15: 24, 26-27).

우리의 모임의 시작에서 선포된 요한 묵시록의 마지막 페이지는 바로 이러한 목표를 생생한 색깔들로 묘사합니다. 교회와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습니다.”" (1코린토 15,24.26-27) 라는 때인 바로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At the end of this battle - described on marvellous pages in the Book of Revelation - Christ will complete the "recapitulation", and those who are united with him will form the community of the redeemed, which "will not be wounded any longer by sin, stains, self-love, that destroy or wound the earthly community. The beatific vision, in which God opens himself in an inexhaustible way to the elect, will be the ever-flowing well-spring of happiness, peace and mutual communion" (CCC, n. 1045)

요한 묵시록의 경이로운 페이지들에 묘사된 바로 이러한 전투의 끝에 그리스도께서는 이 총괄적 되돌림/총괄복귀(總括復歸)(recapitulation)을 완수하실 것이며, 그리하여 당신과 결합된 자들은 속량받은 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형성할 것인데, 이 공동체는 "세속의 공동체를 파괴하거나 혹은 상처를 입히는, 죄, 오점들, 자기애(self-love)에 의하여 더 이상 상처를 입지 않을 것입니다.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선택된 자들에게 어떤 고갈시킬 수 없는 방식으로 당신 스스로를 개방하시는 지복직관(beatific vision)은 행복, 평화 그리고 상호 하나 됨(친교, 통공, communion)의 영원히 풍부한 더할 나위 없는 샘일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045항].  

The Church, the loving Bride of the Lamb, with her gaze fixed on that day of light, raises the ardent prayer: "Marana tha" (1 Cor 16: 22), "Come, Lord Jesus!" (Rv 22: 20).

이 어린양(the Lamb)의 사랑스러운 신부(Bride)인 교회는, 바로 이 빛의 날에 고정된 자신의 응시와 함께, 다음과 같은 열렬한 기도를 소리지릅니다: "마라나 타(Marana tha)" (1코린토 16,22), 즉 "오십시오, 주 예수님!" (요한 묵시록 22,20).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6.
6-1. 위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 중에서, 특히 다음의 언급에 주목하십시오:

(발췌 시작)
죄에 의하여 무질서 상태로 빠뜨려진(upset) 이러한 원 계획은 ... 그리스도에 의하여 가장 경이로운 방식으로 회복됩니다(is resoted). 당신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 때에 당신께서는 이러한 구하는 계획의 받침점(fulcrum)이며 그리고 수렴점(收斂點, point of convergence)임을 예수님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상, 발췌 끝)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i) 성 바오로에페소 1,10에 언급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데 모음(recapitulation)"이라는 바로 이러한 주제를 손에 집어들어 이 주제를 경이로운 방식으로 발전시킨 첫 번째 개인(the first person)은, 위대한 2세기 교부인, 리옹의 성 이레네오(St. Irenaeus of Lyons)였다는 점,

(ii) 죄에 의하여 무질서 상태로 빠뜨려진(upset) 것들 모두가 원죄 이전의 원 상태로 회복/복구/복귀된다는 것, 그리고

(iii) 되돌아가는 바로 그 자리인 "수렴점(收斂點, point of convergence)"이, 또한 에페소서 1,10에 언급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머리(head)"임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iii)' 과거에 국내에서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개념을 왜 "수렴 이론(收斂)"이라고 번역하였는지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ii)'  "회복/복구/복귀"라는 말이 "recapitulation"의 우리말 번역 용어 자체에 포함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6-2. 그런데, 원죄 이전의 상태로의 복귀 과정 그 자체는 단지 "가장 경이로운 방식"이라는 표현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개념을 신학적으로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바로 이 "가장 경이로분 방식"이 과연 어떠한 방식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바로 이 "가장 경이로운 방식"에는,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Incarnation), 장차 오로지 죄인들의 속량(Redemption)을 위하여 당신께서 세례를 받으심, 당신의 복음, 즉 "하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Heaven)"에 대한 가르침, 최후의 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심, 십자가 수난, 죽음 및 부활하심, 그리고 그 이후에 승천하시기 전에, 우리들로 하여금, 오로지 우리들의 속량을 위하여 당신께서 받으셨던 바로 그 동일한 세례인, "성령으로 기름부음받는 세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심(세례성사의 제정)(마태오 복음서 28,18-20) 등이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제, Merriam-Webster's Unabridged Dictionary에 주어진 다음의 정의(definition)를 다시 읽어 보도록 하십시오. 바로 이 "가장 경이로운 방식" 자체를 말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발췌 시작)
recapitulation: the process by which according to Irenaeus the Logos passed through all phases of human experience thus reversing the evil caused by sin and winning complete salvation for man

(악으로부터) 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recapitulation): 이레네오(Irenaeus)에 따라, 거룩한 말씀(the Logos)께서 인간의 경험의 모든 단계들을 겪으셨던 바로 그러한 방식(thus)으로써 죄에 의하여 야기되었던 악을 되돌려서(reversing) 그리하여 사람을 위한 완미한 구원을 쟁취하는(winning) 바로 그 과정을 말한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따라서, 성 이레네오에 의하여 처음으로 정의된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인 "recapitulation" 에 대응하는 우리말 번역 용어는, "죄에 의하여 야기되었던 악을 되돌린다"다는 관점이,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유관 항들에서 이미 總歸(총귀)라고 표현하고 있음을 우리가 이미 확인하였듯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번역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바의 중요성은, 위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글 중에서 발췌 인용되고 있는, 성 이레네오의 저서인 "이단반박(Adversus Haereses)" 본문을 들여다 보면 더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발췌 시작)

성 이레네오(Saint Irenaeus) (2세기-202년경),
이단 반박(Adversus Haereses) III, 22, 4

출처 1: http://www.clerus.org/bibliaclerusonline/en/bzm.htm
출처 2: http://www.newadvent.org/fathers/0103322.htm

CHAP. XXII.--CHRIST ASSUMED ACTUAL FLESH, CONCEIVED AND BORN OF THE VIRGIN.

제8장. -- 그리스도께서는 이 동정녀로부터 잉태되고 탄생하시어, 현실태적 육을 취하셨다.

4. In accordance with this design, Mary the Virgin is found obedient, saying, "Behold the handmaid of the Lord ; be it unto me according to your word."(Luke 1:38) But Eve was disobedient; for she did not obey when as yet she was a virgin. And even as she, having indeed a husband, Adam , but being nevertheless as yet a virgin (for in Paradise "they were both naked, and were not ashamed," (Genesis 2:25) inasmuch as they, having been created a short time previously, had no understanding of the procreation of children: for it was necessary that they should first come to adult age, and then multiply from that time onward), having become disobedient, was made the cause of death, both to herself and to the entire human race; so also did Mary , having a man betrothed [to her], and being nevertheless a virgin, by yielding obedience, become the cause of salvation, both to herself and the whole human race. And on this account does the law term a woman betrothed to a man, the wife of him who had betrothed her, although she was as yet a virgin; thus indicating the back-reference from Mary to Eve , because what is joined together could not otherwise be put asunder than by inversion of the process by which these bonds of union had arisen; so that the former ties be cancelled by the latter, that the latter may set the former again at liberty. And it has, in fact, happened that the first compact looses from the second tie, but that the second tie takes the position of the first which has been cancelled. For this reason did the Lord declare that the first should in truth be last, and the last first. (Matthew 19:30Matthew 20:16) And the prophet, too, indicates the same, saying, instead of fathers, children have been born unto you. For the Lord , having been born the First-begotten of the dead, (Revelation 1:5) and receiving into His bosom the ancient fathers, has regenerated them into the life of God, He hav ing been made Himself the beginning of those that live, as Adam became the beginning of those who die. (1 Corinthians 15:20-22) Wherefore also Luke , commencing the genealogy with the Lord , carried it back to Adam , indicating that it was He who regenerated them into the Gospel of life, and not they Him. And thus also it was that the knot of Eve's disobedience was loosed by the obedience of Mary . For what the virgin Eve had bound fast through unbelief , this did the virgin Mary set free through faith.

4. 이러한 계획에 따라, 동정녀 마리아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라고 말하면서, 순종하는 것이 발견됩니다. 그러나 하와는 불순종하였는데, 이는 그녀가 아직 그녀가 한 명의 동정녀였을 때에 [이는 낙원에서, 그들이, 바로 직전에 창조되었기에,  자녀들의 출산에 대한 이해를 전혀 가지지 못하였던 한, "그들은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창세기 2,25)  때문인데, 이는 그들이 우선적으로 성인의 나이에 도달하는 것이 필요하였고, 그러고 나서 바로 그 시기부터 이후로 자손을 늘렸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녀는, 아담이라는 한 명의 남편을 정말로 가지고 있었으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 명의 동정녀였으며, 불순종하게 됨으로써, 그녀 자신에게 그리고 전체 인류에게 죽음의 원인이 되었는데, 그리고 마찬가지로 또한, [자신에게 약혼하였던] 사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동정녀였던 마리아는, 순종을 허락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전체 인류 둘 다에게 구원의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율법은 사람에게 약혼하였던 여인을, 비록 그녀가 여전히 동정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이미 약혼하였던 사람의 아내라고 부르며,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마리아로부터 하와로 되돌아가는 언급(back-reference)을 나타내는데, 그 이유는, 후자가 전자를 풀어주는 한(that), 전자의 매듭(ties)들이 후자에 의하여 상쇄되도록(be cancelled) 하기 위하여, 함께 하나로 결합되었던 바가, 그것에 의하여 결합의 이러한 구속들이 이미 발생하였던 바로 그 과정의 역[逆, 전도(轉倒)]에 의하는(by the inversion of the prosess) 것 이외에는, 달리 잡아 떼어놓아 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첫 번째 계약(compact)이 두 번째 매듭(tie) 때문에(from) 느슨해지나, 그러나 두 번째 매듭이 이미 상쇄된(has been cancelled) 첫 번째 계약의 자리를 차지함이 발생하였기 때문입니다(but that).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주님께서는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될 것이다 (마태오 19,30; 마태오 20,16) 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예언자도, 또한, 선조들 대신에, 자녀들이 당신께로 이미 태어났다고 말하면서, 동일한 것을 지적합니다. 이는 주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요한 묵시록 19,30) 그리고 당신의 품 안쪽으로 고대의 선조들을 품으심으로써, 그들을 하느님의 생명 안쪽으로 이미 갱생시키셨기(regenerated)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아담이 죽은 자들의 처음이 되었듯이, 당신 자신을 살아있는 자들의 처음으로 이미 만드셨습니다 (1코린토 15,20-22). 바로 이러한 이유로 루카(Luke) 또한, 주님의 족보를 시작하면서, 족보를 아담에게로 거슬러 확장하였는데, 이러한 확장은 그들을 생명의 복음 안쪽으로 갱생시킨 분이 바로 당신이셨지, 그들이 당신을 생명의 복음 안쪽으로 갱생시킨 것이 아님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또한 하와의 불순종의 매듭은 마리아의 순종에 의하여 풀렸던 것입니다. 이는 동정녀 하와가 불신(unbelief)을 통하여 이미 단단하게 묶었던 바 바로 그것을, 동정 마리아가 믿음을 통하여 자유롭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1)
(***) 시작
 
위의 글에서 우리는, 성 이레네오가 자신의 "recapitulation" 개념을 동정 마리아의 역할에 적용하면서, 자신이 도입하는 개념 안에는, 성 바오로 에페소서 1,10의 표현 그 자체가 명시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방향과 순서(direction and order)에 있어서의 "역[逆, inversion, 전도(轉倒)]"의 과정이 개입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 끝.

(2) 다른 한편으로, 위의 성 이레네오의 글로부터, 우리는 "recapitulation"을, 국내의 일부 개신교측에서 처럼, "총괄갱신(總括更新)"으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총괄갱생(總括更生)"으로 번역하는 것이, 이들 두 개의 번역 용어들 만을 비교하였을 때에, 성 이레네오의 원 개념에 더 적합한 번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그러나 "총괄갱생(總括更生)"이라는 표현 자체가, 위의 글에서 보듯이, 성 이레네오"recapitulation" 개념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인 방향과 순서(direction and order)에 있어서의 "역[逆, inversion, 전도(轉倒)]"의 과정의 개입을 표현하는 "회복/복구/복귀" 과정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못하므로, "총괄갱생(總括更生)"이라는 표현보다, 필자가 제안하고 있는, 그리고 2010년 4월 이후에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사용 중인 "總歸(총귀)"라는 해당 번역 용어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 "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라는 표현이 훨씬 더 성 이레네오의 원 개념을 잘 전달하는 번역 용어라는 생각입니다.

7.
위의 제6-2항에서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개념의 핵심이 바로 그 과정의 역[逆, 전도(轉倒)]에 의하는(by the inversion of the prosess) 것에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언급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추가적인 설명이 어쩌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 시작

7-1. 하느님께서 한처음에 만물을 창조하셨을 때에, 유형 무형의 피조물들과 이들 사이의 질서(순서, order)는 소위 말하는 "코스모스(cosmos)의 상태"에 있었다. 즉 가능태 상태에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사람에게서 출발하여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상향 구조로 말씀을 드리면(A), 단지 개체들로서의 천지만물인, 처음부터 완미한 선(perfect good)의 상태에 있는, 피조물들만을 창조하셨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미한 선의 상태에 있는, 이들 개체(objects)들 사이의, 질서(orders between objects)들, 더 나아가, 처음부터 완미한 선의 상태에 있는, 이들 개체들 사이의 관계(relations between objects)들, 그리고 더 나아가, 처음부터 완미한 선의 상태에 있는, 이들 관계들 사이의, 관계(relations between relations)들, 더 나아가, 처음부터 완미한 선의 상태에 있는, 관계들 사이의 관계(relations between relations between relations)들 사이의, 관계들, 등 등을 또한 모두 완미한 사물(perfect things)들로 창조하셨다, 혹은 현실태 상태에 계신 하느님의 관점에서, 논리적 등가로, 하느님에게서 출발하여 사람에게 내려오는, 하향 구조로 말씀을 드리면(B), ... 등 등, 관계들 사이의 관계들 사이의 관계들, 관계들 사이의 관계들, 개체들 사이의 관계(relations)들, 개체들 사이의 질서(orders)들, 개체(objects)들을 또한 모두 완미한 사물(perfect things)들로 창조하셨다.

게시자 주 7-1: 위의 "귀납적 추론(inductive reasoning) 과정"인 (A)와 "연역적 추론(deductive reasoning) 과정"인 (B)에 있어, "아래에서 위로[(A)의 경우]"와 "위에서 아래로[(B)의 경우]"라는, "이성적 추론(reasoning)에 있어서의 진행 방향"이 있음에 주목하라.

7-2. 아담과 하와의 원죄(original sin)로 인하여, 애초에 완미한 선의 상태에 있었던 개체들로서의 피조물들 뿐만이 아니라, 애초에 완미한 선의 상태에 있었던, 이들 피조물들 사이의, 질서들, 관계들, 그리고, 애초에 완미한 선의 상태에 있었던, 관계들 사이의 관계들 사이의, 관계들, 등등 모두에 "악(evil)들", 즉 "선(good)의 결여/상실들"이 발생하였으며, 이 결여/상실들은 되물림되어 왔다. 즉, 유형 무형의 피조물들과 이들 사이의 관계들은, "코스모스의 상태"를 상실당하였다, 즉 "혼돈(chaos)의 상태"로 전락하였다. 즉, 원죄의 결과 개체들로서의 피조물들에게만 선의 결여/상실들이 오로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또한 개체들 사이의 질서에도 선의 결여/상실들이 발생하였으며, 관계들 사이의 관계들에도 또한 선의 결여/상실들이 발생하였으며, 관계들 사이의 관계들 사이의 관계들에도 또한 선의 결여/상실들이 발생하였다. 등등.

게시자 주 7-2-1:
어떤 순서(an order, 질서)가 몇 개의 추가 조건들을 만족하는 어떤 관계(a relation)로 정의(is defined)됨에 대하여서는, 예를 들어, 논리학 분야 혹은 집합론 분야의 입문서를 참고하라. 다른 한편으로,

여기를 클릭하면, <----- 필독 권유

영어로 "the order of grace"로 번역되는 표현을, "은총의 순서/질서"로 번역하는 대신에, 국내의 가톨릭계에서 그동안, 관계(relation)의 한 종류인, 바로 이 "order(순서, 질서)"에 대한 올바른 개념 이해를 하지 못하여"은총의 세계" 혹은 "은총의 계획" 등으로 대단히 잘못 번역한 것에 대한 지적의 글을 읽을 수 있다.

게시자 주 7-2-2: 완미한 선(perfect good)의 상태에 있던 피조물인 어떤 대상(an object)에, 원죄의 결과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진적으로 선의 상실/결여가 더 발생하는 것, 즉 점진적으로 더 악해지는 과정(process)이, 결국에 "악의 극한(limit)"인 죄(sin)으로 향하는, 그리고 위의 제7-1항에서 언급된 "이성적 추론(reasoning)에 있어서의 진행 방향"과는 전혀 무관한"성향(disposition)에 있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진행 방향"이 있음에 또한 주목하라.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피조물인 어떤 대상(object)에는, 또한 피조물들인, 순서(orders, 질서)들과 관계(relations)들도 포함된다.

7-3. 이제 위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일반 알현 교리 교육 강론 말씀의 제2항 첫 부분에서 발췌 인용하고 있는 부분을 포함하는, 성 바오로에페소서 1,9-10인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에 대하여, 리옹의 성 이레네오는, 성 바오로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다음과 같은 내용, 즉, "대상(objects)들로서, 피조물들에 뿐만이 아니라,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질서(orders)들, 관계(relaltions)들 모두에게 있어, 원죄 이후에 발생하여 점차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악(evil)들을, 즉 선의 결여들을, 그 과정에서 성향에 있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진행 방향을 온전히 거꾸로 되돌림으로써/총괄복귀(總括復歸)시킴으로써 원죄 이전의 상태로 회복시킨다는,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대로, 가장 경이로운 방식인,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Incarnation), 장차 오로지 죄인들의 속량(Redemption)을 위하여 당신께서 세례를 받으심, 당신의 복음, 즉 "하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Heaven)"에 대한 가르침, 최후의 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심, 십자가 수난, 죽음 및 부활하심, 그리고 그 이후에 승천하시기 전에, 우리들로 하여금, 오로지 우리들의 속량을 위하여 당신께서 받으셨던 바로 그 동일한 세례인, "성령으로 기름부음받는 세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심(세례성사의 제정)(마태오 복음서 28,18-20)" 등으로, 총괄적 되돌림/총괄복귀(總括復歸)로, 총체적으로 해석하였다는 생각이다. 

즉,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에 동참하는 바로 이 과정이, 그 과정에서 성향에 있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진행 방향을 온전히 거꾸로 되돌림으로써/총괄복귀(總括復歸)시킴으로써 원죄 이전의 상태로의 회복에 우리들을 처음으로 참여하게 하고(콜로새 2,12 참조), 그리고, (i) 기도 생활, (ii) 성사 생활, 그리고 (iii) 실천 생활로 이루어진, 이어지는 우리들의 삶 안에서, 역시 총괄복귀(總括復歸)의 나머지 부분인, 소위 말하는, 각자의 몫인 "주관적 구속(subjective redemption)"(*)을, 선행 구속(pre-redemption)에 의하여 피조물인 동정 마리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즉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처음으로 실천하여 우리들에게 모범을 보이셨던 "믿음의 순종(the obdience of faith)"이라는 바로 그 실천을, 우리들도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즉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마찬가지로 실천하여야 함에까지 적용할 수 있게 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적 기초/근거 개념으로 추상화(abstraction)된 개념이, 성 바오로 에페소서 1,10의 표현 그 자체가 명시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방향과 순서(direction and order)에 있어서의 "역[逆, inversion, 전도(轉倒)]"의 과정이 개입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개념이, 바로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개념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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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여기를 클릭하면, "객관적 구속" 및 "주관적 구속"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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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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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복음서 3,14-15).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르코 복음서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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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총괄복귀에 있어 맏이인 "새 아담"이시며, 그리고 이 맏이인, 수렴점(收斂點, point of convergence)인, "머리"를 향하여 우리가 수렴(收斂)하고자 한다면, 즉 총괄복귀(總括復歸)되려면, 애덕(charity)과 더불어 실천적으로, "제 십자가"를 지고, 즉 이어지는 절인 마르코 복음서 8,35에서 언급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당신의 복음"을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7-4. 위의 제7-3항에서 절대로 간과하여서는 아니 되는 바가 바로 "하느님의 뜻(his will)""하느님의 의지"동사형이 바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새 계명에서의 "사랑하다(to love)"의 의미인 것에 있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복음서 13,34):

요한복음서 13: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복음서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서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요한복음서 14: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요한복음서 14: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요한복음서 14: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요한복음서 14: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서 14:31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일어나 가자.”
요한복음서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요한복음서 15: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요한복음서 15: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복음서 15: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복음서 15: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복음서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게시자 주 7-4: 리옹의 성 이레네오(<----- 클릭한 후 필독 권고)가,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사도 성 요한의 제자인 폴리카르프(Polycarp, 155년에 죽음)의 제자였음을 상기하라.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 필독 권고

예수님께서 행할 것을 새 계명으로 명령하신, 향주삼덕들 중의 애덕(Charity)을 정의할(define) 때에 사용되는 개념인"하느님의 사랑(God's love)", 즉 "그리스도의 사랑(the love of Christ)"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cept_of_love.htm]

7-5. 따라서, 성 이레네오는 바로 이 지고한 "하느님의 뜻(God's will)"을, 성향에 있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진행 방향을 온전히 거꾸로 되돌림/총괄복귀(總括復歸)시킴이라는 한 개의 등가의 표현(one equivalent expression)으로, 사람을 포함한 피조물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서술의 방식으로(in a descriptive way) 정의(define)하였다는 생각이다.

게시자 주 7-5: 다음의 주소에 있는, 2006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의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강론 말씀을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vatican/hf_ben-xvi_hom_20060106_e_en.htm

(***) 끝.


여기를 클릭하면, 이 단어의 우리말 번역과 관련하여 계속되는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용량 초과로 부득불 나누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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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대단히 많음


게시자 주: 총 3부로 이루어진 이글을 처음부터 읽고자 하는 분들께서는, 여기를 클릭한 후에, 1/3, 2/3, 3/3이 붙어있는 글들만을 게시글의 날짜 순서대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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