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 17주간 금요일 ’18/08/03

인쇄

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8-08-03 ㅣ No.3610

연중 제 17주간 금요일 ’18/08/03

 

제가 고등학교 학생이던 시절에 학교에서 예비고사 문제를 매년 서너 개씩 맞추는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분이 오시더니, “글쎄, 오늘 하도 어이가 없는 일을 당했단다. 부인이 아침에 아이들에게 너네 아버지가 뭘 안다고 너희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하고 핀잔을 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에게는 자신의 남편이 학교에서 얼마나 유능하고 능력있는 교사로 인정받고 있는지 관심이 없나봅니다. 그저 자기와의 연관관계 안에서 한 이불 덮고 자는 남편에 불과한 것이었나 봅니다. 그것도 뭔가 자신을 섭섭하게 하고 실망하게 한 기억을 던져준 남자! 그 때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참 의아해 하면서도, 또 다른 한쪽으로는 한 이불 덮고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존경하며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보다.’ 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바라보는 동네 사람들의 반응이 그렇습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마태 13,54-56) 그리고 결국 그들 마음의 실체를 밝힙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57)

 

때로는 아무 이해관계 없어도 나보다 더 잘 나 보이고, 잘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이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나에게 도움이나 피해를 가져다 준 정도에 따라 사람들을 평가하고 맞이하는 우리의 계산적인 관계에서 잠시 떠나 봅시다. 그래서 그 사람만이 간직하고 있는 가치와 의미를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주시기를.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 그에게 심어준 능력과 감추어진 신비를 발견할 수 있는 혜안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인가를 남보다 더 잘하고, 더 잘나지 않아도, 인간 생명 그 자체로 충분히 존중받고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며 살아갑시다. 그래야만 장애자도 외국인 노동자들도, 소생 불가한 환우들이나 또 소위 루저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밀려나가고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이들에게도, 심지어는 필요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에게도 그 삶의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고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그 사람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오늘을 공존하며 살아갑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47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