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7주간 금요일 ’2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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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2-17 ㅣ No.4942

연중 제7주간 금요일 ’22/02/25

 

가끔 부부관계에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차라리 이혼하는 것이 낫다. 어려운 상황에서 굳이 희생하면서까지 힘겹게 사느니, 서로를 위해 갈라서는 것이 낫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유다와 요르단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군중이 모여들자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그들을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와서 이혼문제를 거론하여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르 10,2)

 

예수님께서는 모세 율법의 가르침이 어떠하냐고 되물으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자기 사회의 이혼제도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예외적인 것을 합법화합니다.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4)

 

예수님께서는 혼인의 자연법적 권리에 대해 이르십니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5-9)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예수님께 다시 묻자,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11-12) 라고 답해주십니다.

 

왜 사람들이 결혼하여 같이 살까? 사랑하니까. 서로 좋아하니까. 혼자 살 수 없으니까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산다. 자식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함께 산다. 여러 가지 답을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 내가 어떤 경우에 해당하는지 모르지만,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우리는 주 하느님께서 우리를 함께 살라고 맺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내가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내 눈앞에 띄고, 내 마음에 들도록 보내주셨기 때문이다.’라고 되새길 수 있습니다.

내가 산아조절을 할 수는 있지만, 이미 생긴 아이의 성별을, 남자아기나 여자아기로 정할 수는 없는 것처럼, 어쩌면 주어진 대로 받아 모실 수밖에 없는 처지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주 하느님의 뜻 안에서 바라보고 받아들이면서 삽니다.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을 겪고 살도록 하셨는가를 주님의 섭리와 안배 안에서 해석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선택을 비록 내가 했다고 여기면서도 내 선택을 축복해주시고 허락해주신 주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살 듯이, 우리의 배우자를 주 하느님께서 내게 점지해 주신 분으로 여기며 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부부간의 어려움이 생겼을 때, 주 하느님의 섭리와 안배 안에서 그 순간의 어려움이 어떤 의미와 과제인지도 되새겨보며 행복하게 살면 좋겠습니다. 몇십 년 후에 오늘의 선택이 후회와 아픔이 아니기를 빌면서, 오늘 주님의 섭리와 안배 안에서 우리의 삶을 주 성령께 맡기며 나아갑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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