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동성당 게시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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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경희 [rydia78] 쪽지 캡슐

1999-10-05 ㅣ No.628

한달에 한번 생활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달은 마태오 복음에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웃을 모른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두 마찬가지구요.

이번달은 다시 한번 이웃을 생각하게 해주는 말씀 같습니다.

전농동 신자분들도 우리 주위에 있는 이웃을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티오 22.39)

 

이 말씀은 구약 성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레위기 19.18참조)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함정에 몰아넣으려는 질무에 답변하시기 위해, 예언자들과 랍비들이 성서 안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즉 토라는 근본 정신을 강조한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인용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의 랍비 힐렐은 "네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을 남에게도 하지 말라.  모든 율법이 이 안에 있다. 나머지 것들은 단지 이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다교의 율법 교사들에게 있어서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창조물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참된 동기이며 "율법의 위대하고도 일반적인 원칙입니다."(Akiba랍비.Slv19.18)

예수님께서는 이 원칙을 강조하시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첫째이며 가장 큰 계명과 비슷하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이 두 계명의 비슷한 점을 분명하게 말씀하시면서 그 두 계명을 결정적으로 결합시키셨으며, 그리스도교 전통도 이를 강조합니다.  요한 사도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요한1 4,20)하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복음 전체가 분명히 말해 주듯이, 이웃은 모든 사람을 말하며, 그가 남자이거나 여자이건, 친구이거나 원수이거나 간에 우리의 존경과 염려, 보살핌과 배려를 받아야 합니다.  형제에 대한 사랑은 보편적임과 동시에 개인적인 것입니다.  이 사랑은 전 인류를 위한 것이며, 곁에 있는 형제 안에서 구체화됩니다.

누가 우리에게 이토록 넓은 마음을 줄 수 있으며, 누가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가까운 이웃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이기심을 극복하고 그 이웃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해 주는 큰 자비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이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부어주신 하느님의 사랑"(로마서 5,5)과 똑같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평범한 사랑이 아니고, 단순한 우정이나 박애심도 아닙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시는 사랑입니다.  이는 곧 하느님의 삶 자체이고, 복되신 삼위일체의 삶 자체로서 우리는 이 삶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이를 잘 살기 위해서는 복음과 성서에서 드러나는 사랑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랑은 몇 가지 근본적인 특성으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이를 사랑하시면서 모든 이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참 사랑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흔히 하듯이 가족, 친구, 가까운 이웃들만 사랑하는 단순히 인간적인 좁은 반경의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참 사랑은 차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든느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잘생긴 사람, 못생긴 사람, 어른, 아이 등으로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런학 하면 동족인고 외국인, 같은 교단 사람과 다른 교단 사람, 같은 종교인과 다른 종교인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이 사랑은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참 사람은 먼저 사랑합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사랑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보통 인간적인 사랑에서는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참 사랑은 먼저 사랑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기에 사랑하지 않았을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아드님을 보내주셨던 것처럼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이를 사랑하고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 사랑은 모든 이웃 안에서 예수님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 때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오 25,40참조)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웃에게 행하는 착한 일만이 아니라 나쁜일도 해당됩니다.

참 사랑은 친구를 사랑하지만 원수도 사랑합니다. 원수에게 선을 베풀고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 가져오신 사랑이 상호적인 것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함으로써 일치에 이를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이 모든 사랑의 특성들은 우리로 하여금 이 달 생활말씀을 더 잘 깨닫고 실천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그렇습니다. 참 사랑은 다른 사람을 내 몸같이 사랑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 안에서 자기 자신을 보아야 하고, 남이 자기 자신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참 사랑은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 고통받고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할 줄 암려, 다른 사람의 짐을 함께 짊어질 줄 압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그저 감성적인 것이거나 아름다운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와 믿음이 다른 사람들도 모든 종교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황금률’을 따라 이렇게 생활하고자 노력합니다. 이 ’황금률’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대로 다른 사람에게 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간디는 황금률은 아주 단순하고도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그는 "나를 아프게 하지 않고서 당신을 아프게 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럼 이번 달은 사랑에 다시 불을 당기는 기회가 되도록 합시다. 이웃집 사람, 학교동료, 친구, 가까운 친척 등 여러 모습을 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텔레비젼을 통해 알게 되는 전쟁과 자연재해로 절망에 빠진 이웃의 모습도 있습니다. 이들은 수억 만리 떨어져 있었던 이름 모를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그들도 우리의 이웃이 되었습니다.

사랑은 매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깨닫게 해 줄 것이며, 차츰차츰 우리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처럼 넓은 마음이 되게 해 줄 것입니다.

 

- 끼아라 루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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