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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동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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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록 [peterkauh] 쪽지 캡슐

2004-05-28 ㅣ No.3805

 초여름의 눈부신 태양 아래 신록은 벌써 짙은 녹음으로 약진하며 온갖 생명들을 포용하고도 여유롭습니다. 이토록 싱그런 생명의 환희가 충만한 대지 이면에는 병고와 죽음의 공포 속에 신음소리 또한 처절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 고통의 그늘에서도 생명의 향기가 피어나게 하십니다. 죽음을 향해 썩어가는 육신들을 보살피고 체념과 악몽에 시달리는 영혼을 일깨워 천상의 신세계로 인도하는 지상의 천사들을 거느리고 계십니다.

 

 그 천사들 중 한 분이 하계동의 박문옥 그레고리오 형제님이십니다. 그는 매 주말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내버려져 종말의 벼랑끝에서 방황하는 형제들과 함께하십니다. 다음에 그에게서 간신히 얻은 봉사기록의 일부를 인용 소개합니다.

 

  6월 21일. 603호실. 환자 세례명 마리노. K공대 졸업. 나이 28세. 병명 하반신 마비와 욕창. 형과 누이가 있으나 전혀 무소용이란다.

 매 주 악취 속에 썩어가는 그를 씻겨주고 식사를 돕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돌아 나올 때마다 하느님께 감사한다. 나와 가족에 건강 주심에 ...

 

7월 19일. 마리노를 돌본지 1개월이 다된다. 삶의 의욕을 상실해가는 그를 보살핀 후 주님을 원망하느냐고 물었다. "내 탓이요."하며 가슴을 친다. 졸업후 잘나가던 차에 누렸던 자만과 방탕에 대한 자책의 소리였다.

 

 8월 2일. 그는 악령에 시달리고 있었다. 주님만 믿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말의 기력조차 상실한 체 담배를 원하는 그의 욕구를 들어주지 못해 안타깝다.

 

 8월 26일. 죽음을 향해 치닫는 그의 병세는 속수무책인 듯.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함께 기도하자고 손을 잡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 ...    주님 이 불상한 영혼에 자비를 베푸소서."

 

 9월 21일. 주여 마리노를 받아주소서.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주여 망자 마리노와 죽은 모든 교우들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수 십년 주님의 지체로서 많은 구원사업에 자신을 봉헌해오고 계시는 그레고리오 형제님의 향기, 어찌 5월의 장미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매 주 토요일 그의 손길과 기도 속에서 마지막 가는 길에 구원의 희망을 얻는 성가복지병원의 중환자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함께 청하며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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