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동성당 게시판

[답장]사랑하는 규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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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수 [kangcarolus] 쪽지 캡슐

2000-07-01 ㅣ No.2694

규남에게,

 

보내준 편지 잘 받았다.

첫 인사 ’필승! 대한 해군 이병 최규남입니다’라는 말에서부터 규남이가 힘차게 군생활을 잘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답장을 해야지 해야지 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에야 여기 금호동 성당 게시판에 이렇게 쓰게 되었구나.

 

그런데 규남이가 이 편지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 굿뉴스에 규남이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 군에서는 인터넷 사용이 어려운 것이라고 짐작은 간다.

 

아무튼 편지로 답장을 하려다 너무나도 대견하게 군생활을 잘 하고 있는 규남이의 모습을 금호동의 다른 친구들에게도 알리고 싶어서 이 게시판을 택한 것이다.

 

규남이 일단 네 허락없이 네 편지를 게시판에 실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금호동 성당의 신자 여러분! 다음은 주일학교 교사를 하다가 군에 간 최규남 안드레아 형제님이 제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래, 사실 규남이가 교사를 하면서 신부님도 규남이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한 것이 사실이다.

 

한 번은 2학기 중간에 어떤 문제로 규남이가 교사 생활을 그만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 그 때 내가 뭐라고 그랬는지 생각나니? 일단 이번 학년을 끝까지 마치라고 말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야 혹 다음에 다시 교사 생활을 하고 싶을 때 다시 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 일년을 끝맺음을 못하면 그 상처가 커서 다시 교사를 하고 싶을 때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 규남이가 내 의견을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우고 교사를 그만 두었다면, 그리고 군대를 갔다면 아마도 내게 이런 편지를 띄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성당에 잘 나가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물론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이런 가정을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때 규남이는 착하게도 그 어려운 일을 꾹 참고 내 말을 들어 주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일이 무척 고맙구나. 아마 규남이도 그 때 신부님의 의견을 따르기를 잘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규남이와 이것 저것 할 말이 많구나. 내가 머리 모양이며 복장에 대해서도 잔소리를 많이 하였지. 어찌 그것 뿐이겠는가? 어쩌면 규남이의 행동 하나 하나에 대해서 내가 여러 요구들을 많이 하였을 것이다. 그래도 교사로서 내 말을 잘 들어준 것 그 때는 말 못했지만 지금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규남이의 나이 때 이렇게도 해보고 싶고 저렇게도 해보고 싶은 마음 내가 어찌 모르겠느냐? 그래서 다른 청년들은 내가 이해하지 못할 차림을 하고 성당에 와도 이해하려고 하고 그냥 인정해 버리지.

 

하지만 교사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요구를 한 것이다. 너도 알지?

 

 

 

그래, 규남아. 처음 네 편지를 받았을 때 그렇게 예쁜 편지지를 어디서 구했을까? 그리고 규남이가 글씨를 이렇게 잘 쓰던가? 하는 생각들을 했다. 그리고는 네 편지를 꼼꼼이 두 번 세 번 읽었다.

 

군 생활 잘 하고 건강하게 지내라.

나도 규남이가 사랑하는 만큼 규남이를 사랑하고 또 금호동 성당의 모든 청년들을 사랑하며 살도록 노력하겠다.

 

그리고 휴가 나오면 네 동기들 다 모아라.

내가 한 번 쏘겠다.

 

그럼 안녕.

 

2000년 7월 1일 금호동에서 강 가롤로 신부.

 

추신 : 게시판에 올린 이 편지가 네 손에 닿도록 노력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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