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우리 모두 바보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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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철 [haeminn] 쪽지 캡슐

2003-01-16 ㅣ No.2846

 

++++++++++++++++하느님아버지께 충실하며+++++++++++++

평화신문의 특별기고문입니다.

우리모두 참으로 묵상을 하며 자신을 돌아볼수있는 좋은 글입니다.

인천 교구장 최 주교님의 특별 기고문을 발췌하였습니다.

 

[특별기고] ‘새해엔 바보가 되어 봅시다’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

 많은 사람들이 바보가 되기를 싫어합니다. 남보다 약삭빠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남을 지배하고 남에게 명령하고, 거만한 몸짓으로 존경받기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새해엔 우리 모두 바보가 되어 봅시다. 그래야 이 나라의 발전과 번영이 약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가 발전할 수 있고 가정이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어느 누구도 자기 기만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자기가 세속적인 면에서 지혜로운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1고린 3,18)

 

성서는 왜 우리가 바보가 되어야 하는지를 자세히 말해줍니다.

 

1. 구약성서에서

창세기 6장 9-22절에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너무 악하게 놀아나자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한탄하시기까지 하시면서 물로 심판하시려고 하셨으나 의인 노아의 가족은 살리시려고 방주를 만들 것을 명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배를 짓는 노아를 향해 “저 친구 바보 아냐?”라고 빈정댔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노아가 지혜로웠고 그들이 바보였습니다.

 

사무엘 상 17장에는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 나옵니다. 다윗은 돌맹이 하나로 거구 골리앗을 쳐 이깁니다. 다윗이 나서자 골리앗은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나왔느냐?”라고 했습니다. 골리앗은 ‘쥐방울만한 저 놈이 바보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너는 칼과 창을 믿고 나왔으나 나는 하느님을 믿고 나왔다. 덤벼라”라고 소리쳤습니다. 바보처럼 보이는 다윗이 승리하였습니다. 하느님만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은 바보처럼 보이지만 강하고 승리합니다.(1 사무 17, 42-51)

 

2.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정말 바보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누가 오른쪽 뺨을 치면 왼쪽도 돌려대 주라.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주라”(마태 5, 40-42). 이 어찌 바보 같은 소리가 아닙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마태 5, 43-48). 원수를 어찌 사랑할 수 있겠는가?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립니다. “너희는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면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 20, 26-28). 요즘 사람들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남을 앞서야 하고 남을 눌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더욱 바보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루가 6, 20-21)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정말 바보스런 얘기라고 말할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요즘 돈 생기는 일이면 남이야 죽든 말든 뭐든 다 하는 세상이 아닙니까? 그러나 크리스천은 이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루가 복음 5장에 보면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그는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으나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물을 쳤습니다. 상식으로는 밤새 아무것도 못 잡았으니 고기가 없는 것을 알지만 바보처럼 그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물을 쳤습니다.

 

그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이제는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가족과 그물, 고기를 다 놔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가 바보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보가 되었고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어 현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1고린 4, 10). “이 세상의 지혜는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어리석은 것입니다”(1고린 3, 19).

 

3. 바보같은 신앙인

우리는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영성체를 하게 됩니다. 작은 빵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고 믿고 경건하게 받아 모시기 위해 나갑니다. 비신자들에게는 바보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보라고 해도 매주일 혹은 매일 그렇게 예수님을 믿고 모시는 것입니다.

 

성당에 들어서면 우선 우리는 감실을 향해 절을 드리고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감실 안에 예수님께서 현존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비신자들에게는 참으로 바보 같아 보일 것입니다. 더구나 한평생을 오로지 예수님만을 바라보면서 홀로 살아가는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바보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린 누가 뭐래도 바보처럼 살 것입니다.

 

4. 현실의 문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바보처럼 사는 사람들이 너무 적어졌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가정을 너무도 귀하게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어머니들은 온갖 어려움 가운데서도 바보처럼 가정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살았기에 오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희생과 인내는 바보 같은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수많은 태아가 죽어가고 있고, 이혼이 잦아지고, 고아원에 아이들이 늘어만 갑니다. 가정은 산산이 부서지고 있습니다.

누가 보지 않아도 교통질서를 지키는 사람, 길거리에 떨어진 지갑을 주워 경찰서에 신고하는 사람, 자신에게 손해가 나더라도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 이들이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이런 바보들이 정말 필요한 세상입니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물질과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우린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늘나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누군가 말한다 해도 우리는 꿋꿋이 노력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이 세상을 우리 모두가 다 이별하게 될 것이고 또 언젠가는 이 불완전한 세상이 새 세상으로 변화하는 때가 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을 마친 다음에 다시 새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행복하게 살게 하시려고 오셨고 돌아가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죽음도 두렵지 않으며 큰 희망을 간직한 사람들이기에 바보처럼 남을 위해서 자신을 내줄 수 있는 ‘큰 사람들’이어야 할 것입니다. 새해는 그리스도인들이 저마다 바보가 되는 생활을 함으로써 이 나라를 웃음이 있고 사랑이 있는 살고 싶은 나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새해에는 바보가 됩시다.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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