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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의 <<지식인의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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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peace-maker] 쪽지 캡슐

2008-09-08 ㅣ No.8359

Writers and Intellectual Responsibility 지식인의 책무


글쓴이: INVICTUS(닉네임)



요즘은 소수의 특권층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운 시대가 아니다. 하지만 희망의 시대, 낙관의 시대로 바꿔가야만 한다. 나는 인간의 본성과 권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이 책이 언젠가부터 추악한 얼굴로 변해버린 민주주의를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리고, 기본적인 인권마저 무시되는 현실을 뒤바꿔야 할 절박한 필요성, 그리고 정직한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앞으로 전진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줄 수 있기를 바란다. - 서문 중에서





1. 촘스키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책에서 촘스키는 냉전 종식 이후에도 여전히 진실을 말하지 않고, 진실을 은폐해야 하는 이유를 가진 부와 권력에 장악된 미디어에 기대 프로파간다를 양성하는 가짜 지식인들의 작태를 비판하며 ‘지식인의 책무’가 무엇인지 역설하고 있다.


또 아나키스트로서 자신의 사상과 함께 이루고자 하는 비전과 목표를 현실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정직한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며,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인식되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촘스키의 대다수 저작물들이 제국주의 세력의 만행과 어떤 가치보다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가진 자와 권력의 행태를 낱낱이 파헤치고 비판하는 데 머무르고 있는 반면, 이 책은 그러한 내용을 넘어서 행동하는 지식인이자 시대의 양심인 촘스키의 지적 행위의 목적, 그의 사상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세계까지 어느 글에서보다 일목요연하게 드러나 있다. 현실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 지식인이자 사상가로서 촘스키의 휴머니스트적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2. 이 책은 세 장으로 되어 있다



1) 지식인의 책무



이 글은 동티모르 구제협회 초청으로 시드니의 ‘작가 센터’에서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촘스키는 1967년 ‘뉴욕 타임스’ 북 리뷰에 드와이트 맥도널드(Dwight MacDonald)의 『사람들의 책임(The Responsibility of People and Other Essays in Political Criticism)』이란 시론집의 서평을 게재했다. 그 서평의 제목이 행동주의자로서 촘스키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 ‘지식인의 책무(The Responsibility of Intellectuals)’다.

이 글에서 촘스키는 베트남 전쟁에 빗대어 지식인들의 비양심적인 자세를 고발했다.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난 1995년,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글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글 쓰는 사람들과 지적인 책임(Writers and Intellectual Responsibility)’이란 제목으로 강연했다.


이번에는 냉전 종식 이후, 그리고 동티모르 사건을 빗대어 지식인의 이중 잣대를 나무랐다. 여기서 지식인은 기자만이 아니라 신문에 기고하는 평론가, 이른바 전문가들까지 포함된다. 촘스키는 “‘인간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그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해낼 수 있는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라며, “이 뻔한 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지식인 계급의 기본적인 실천 원리가 이 기초적인 도덕률조차 거부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2) 목표와 비전



이 글 또한 시드니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나키스트 모임 ‘자유의 비전’을 대상으로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촘스키는 계몽주의와 (산업자본주의의 발흥으로 의미가 왜곡되기 이전의) 고전적 자유주의에 기원을 둔 아나키스트적 비전이 자신의 이상임을 밝힌다. 그러나 제도적 억압을 받지 않는 아나키즘이 자신의 이상이긴 하지만, 정치ㆍ경제ㆍ이데올로기 시스템이 거대 민간 기업으로 넘어간 현대에서는 현실적으로 ‘정부’라는 조직이 아직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은행과 기업들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민중의 간섭과 공공의 감시에서 벗어나 세계 질서를 확대해나가고 기업 프로파간다가 현대 세계를 정의하는 현실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해온 진보의 물결을 되돌리려는 방해 공작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정부’라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의 지배 사상을 아담 스미스가 상스런 좌우명이라 나무라던 ‘돈을 벌어라. 너만을 생각하라’는 말로 정의하고, 이 시대를 ‘메마르고 상스런 시대’라며 개탄한다. 담론의 지적 수준은 경멸할 가치조차 없고, 도덕적 수준은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요즘 세상에 지식인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 당위성은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과 근본에서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고 역설한다.



3) 새로운 질서에서 민주주의와 시장



이 글은 뉴사우스웨일스 대학교와 디킨 대학교에서 가진 강연에 자료를 보충해서 쓴 글이다.

촘스키는 냉전 종식 후 미사여구로 포장된 미국의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기만적인 수사인지 적나라하게 파헤치며, 이러한 사실은 냉전 종식 이후에 일어난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미연방 헌법이 제정될 때부터 있어왔던,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는 일관된 정책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 이익조차 미국인 전체가 아니라 가진 자들만의 계급을 위한 이익이지만 말이다.


이제 미국을 위협할 세력은 어디에도 없지만, 지금도 미국은 세계 모든 나라의 국방비와 맞먹는 비용을 국방에 쏟아 붓고 있다. 국방이야말로 부자들이 알량한 복지국가에 호통을 치면서 공공 기금으로 그들의 주머니를 채울 수 있는 금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많은 사례를 들면서, 진실을 감추고 있는 화려한 수사의 베일을 벗겨낸다면 역사와 정책에서 진실을 밝혀내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데 지식인들은 베일을 그냥 둔 채 진실을 보지 못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비꼬고 있다.




3. 참된 지식인과 진실이 지배하는 세상을 꿈꾸며



촘스키는 보수주의를 욕하지 않는다.

진정한 보수주의를 왜곡시키는 우파적 인물들을 비난한다. 좌파를 욕하지도 않는다. 좌파인 척하면서 언젠가는 권력 집단의 일부가 되려는 가짜 좌파적 인물들을 비난한다. 촘스키는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오로지 진실을 알고 싶어하고, 그 진실을 우리에게 전해주려 애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중도를 실천하는 인물이다. 우리 땅에는 자신의 이념이나 편견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는 지식인이 있을까? 미사여구로 포장되었지만 ‘돈을 벌어라. 너만을 생각하라’는 사상이 지배하는 이 메마르고 상스런 시대를 진실이 지배하는 세계로 바꾸는 것이 가능할까?


촘스키는 이뤄낼 수 있다고 얘기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그런 예가 있다는 사실을 찾아내고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희망을 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을 크게 뜨고 진실을 보려고 애써야 하며,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한다고 지식인들을 다그친다.



4. 지은이 소개



노암 촘스키 Noam Chomsky

1928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29세에 MIT대학 부교수가 되었고, 1955년 ‘언어이론의 논리 구조’라는 논문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은 후 세계적인 언어학자로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세계 문제와 미국의 패권주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수많은 논문과 비평을 통해 세계 도처에서 자행되는 강대국들의 폭력과 인권 유린을 고발함으로써 ‘세계의 양심’이란 평을 받고 있다. 현재 MIT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국의 국제 테러리즘과 신자유주의의 확산을 비판하는 글들을 왕성하게 발표하고 있다.

주요 저술로는 『Reflections on Language』 『Language and Responsibility』 『해적과 제왕』 『숙명의 트라이앵글』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불량국가』 『테러리즘의 문화』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등이 있다.

 
 
 
 
 
 
 
노암 촘스키,[ 지식인의 책무] - 촘스키 교수의 견해가 틀리면 얼마나 좋을까요?
 
 
도덕적 행위자로서 지식인이 갖는 책무는 '인간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그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해낼 수 있는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정의는 도덕적 행위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노릇이기 때문에 동어반복일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뻔한 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문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속한 지식인 계급의 기본적인 실천 원리가 이 기초적인 도덕률조차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입에 거품을 물고 말이다. - p16- 
 
 
 
지난 20년 동안 사회, 경제, 정치, 이데올로기 등의 전선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권력의 추가 진짜 주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요즘 세상을 지배하는 담론의 지적 수준은 경멸할 가치조차 없다. 도덕적 수준은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지경이다. 그러나 그 뒤에 감춰진 생각을 예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바로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이다. - 노암 촘스키, 지식인의 책무, 황소걸음
 

 

 
 
경제의 합리주의가 체계화되어 강요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중적인 면을 띠었다. 약한 사람들에게는 시장법칙이 가차없이 적용되었고, 필요할 때마다 부자와 특권계급을 보호하려는 정부의 개입이 있었다. -p88
 
 '모진 사랑'은 "부자에게는 사랑을, 그밖에 모든 사람에게는 모질게"라는 말로 요약된다. -p94
 
 
- 노암 촘스키, 지식인의 책무, 황소걸음
 
 - 옮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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