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부족하고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시골 본당의 어려움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강당은커녕 변변찮은 회합실조차 없는 저희 본당은 장소(공간)의 어려움까지 겪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그럭저럭 지낼 수 있는데 문제는 부활대축일이나 성탄대축일같이 본당에 잔치가 있는 날, 그것도 비가 오거나 날씨가 몹시 추울 때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닙니다. 마당에 음식을 차리는 것도 그렇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추위에 떨면서 음식을 드시게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제가 부임해 온 첫해에 당장 그 문제가 닥쳤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부활에는 날씨가 좋아서 잘 넘어갔는데 성탄때는 유난히 추웠는데다 눈발까지 비쳤거든요. 어떻게 할 것인지 사목위원들과 함께 잠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신학생 시절에 들은 ‘성전을 성사거행이나 그에 준하는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교구장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학장 신부님의 말씀도 생각났고, 신학생 때 성당에 성탄 장식을 꾸미다가 동료 신학생 어머니가 가져오신 부침개를 먹었는데 때마침 다른 본당에서 판공성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주임신부님 눈에 띄어 혼쭐이 났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는 주님의 말씀으로 두 기억을 밀어내면서 성당 안에 차리자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한 번 일을 저지르고 나니 그 다음은 거리낄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주저없이 성당 안에서 잔치판을 벌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성체를 제의방에 모시며 말씀드립니다. “주님, 이래도 되지예? 안 된다면 용서해 주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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