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고민 끝에 응답한 부르심의 길이었기에 처음부터 성소에 대한 갈등은 없어 좀더 치열하게 살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제 삶에 대해 실망하는 경우가 있었고, 때로는 그 실망감이 ‘이런 모습으로 사제가 되어서 뭘하겠는가’라는 자괴감으로 이어져 ‘차라리 지금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는데,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어머니와 가리옷 사람 유다(아직까지 만나지는 못했지만)였습니다. 제가 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어머니께 같은 아픔을 두 번(?)이나 드릴 수는 없었고 예수께서 직접, 그것도 밤을 새워가며 성부께 기도하신 뒤에 뽑으신 제자들 중에 배반자 유다도 끼여 있었다는 사실에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붙들고 늘어져 겨우겨우 사제품을 받았고 올해로 5년째 이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신학생 때의 그 자괴감이 저를 보며 그때의 생각이 옳지 않았느냐는 듯이 웃음짓곤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다시 유다를 떠올리며 기도합니다. “주님, 여기까지가 제 한계인 것 같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유다처럼 모든 것을 제 스스로 하겠다는, 끝까지 제 힘으로 버텨보겠다는 어리석음에서 저를 구해주십시오”라고.
그런 의미에서 유다는 저에게 타산지석의 지혜를 가르쳐 준 또 한 분의 스승이시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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