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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에 관한 짱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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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진 [full] 쪽지 캡슐

2000-11-07 ㅣ No.1636

다음은 노세희(rshe@joongangusa.com)씨의 아버지가 도올 김용옥씨에게 당한 분노를 인터넷상에 기록한 글을 퍼온 글이다. 김용옥씨가 달리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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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17일 팔순에 가까운 한 노인이 공개방송 강의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방송국 녹화장에서 끌려 나와야 했습니다.

 

그 노인에게 독사같은 눈을 부릅뜨며 당장 나가라고 소리친 장본인은 KBS에서 논어를 강의하는 자칭 동양철학의 대가 김용옥이란 인물이었습니다.

 

중풍병력 때문에 몸마저 불편한 노인은 `늙고 병들고 힘없다’는 현실이 이처럼 사람을 참담하게 만들지 몰랐다며 큰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실은 그 노인이 제 아버지입니다.

 

미국 LA에 살고 있는 저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피눈물을 쏟아야 했습니다.

 

다음 글은 제가 아버지의 구술을 토대로 작성한 `김용옥의 노인학대 사건 전말’입니다.

 

저는 여기서 김용옥의 학자적 자질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를 학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만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병들고 힘없는 노인을 향해 행한 그의 비인간성에 대해선 이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이론의 여지가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다소 긴 글이긴 하지만 끝까지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을 올린 제 이름(노세희)이나 피해자인 제 아버지(노동두)의 이름은 물론 실명입니다.

 

혹시 저희 주장에 억지가 있었다면 어떤 비판도 달게 받겠습니다.

 

 

 

<김용옥씨에게 묻습니다>

 

 

 

저(노동두)는 지난해 EBS에서 기획한 김용옥씨의 노자 강의를 첫 시간부터 한번도 빠짐 없이 방청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91년 뇌출혈로 좌측 상반신이 불수가 되어 반세기에 걸친 정신과 의사 생활을 접어야 했던 저에겐 그의 강의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에 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김용옥씨는 매주 방청을 하는 저에게 한번은 친필 휘호를 써서 건네 주기도 했습니다.

 

마음속에 항상 고마움이 있었기에 김용옥씨에 대한 비판적이 목소리가 높았을 때도 전 그의 입장을 옹호해 왔습니다.

 

총 57회의 녹화 기간동안 저는 방청객으로서 예의에 벗어난 행동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고 같이 방청했던 사람들도 제가 어떠한 태도로 그의 강의를 경청했는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김용옥씨의 강의를 다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고대하던 중 KBS에서 논어 강의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지난 10월10일 첫 녹화가 있었습니다.

 

녹화 1시간 전에 도착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데 수백명의 방청객들이 한꺼번에 입장하는 바람에 몸이 불편한 저는 앞자리에 앉을 수 없었습니다.

 

방송연출을 맡고 있는 홍PD라는 분에게 제가 시력과 청력이 좋지 않으니 칠판이 보일 수 있는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부탁을 드렸고 그 분의 친절로 앞자리의 좌측 끝 부분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도 칠판 글씨가 잘 안보여 빈자리가 있는 곳으로 좌석을 옮겼습니다.

 

공자의 충효사상 및 경로사상에 대한 강의와 공자의 고향방문 장면을 찍은 녹화 필림을 보고 난 시간은 저녁 7시쯤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녹화가 끝나고 나서 김용옥씨가 남녀 두서너 사람과 단상에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기에 지난번 EBS 강의 때 휘호를 써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표시할 겸 잠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한 여자분이 돌아서서 하는 소리가 "몸도 불편하고 기침도 많이 하던데 집에서 TV나 시청하고 녹화장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비록 늙고 몸이 불편해도 녹화장에 나오는 문제는 내가 선택할 일이 아니냐"고 했더니 이번엔 김용옥씨 하는 얘기가 "노자강의 때와는 분위기를 바꿔 보려 하니 내 눈에 띄지 않는 중간이나 뒤에 앉으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순간 불같은 거부감이 들었으나 아무 말 없이 녹화장을 물러 나왔습니다.

 

집에 오는 도중 곰곰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더군요.

 

방청객 중에는 나이든 사람이 제법 많았는데 왜 저한테만 그리 말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집에 와서도 늙은이 주책으로 그런 대접을 받았다고 가족들이 생각할까 바 혼자서 내내 고심했야 했습니다.

 

10월17일 두번째로 녹화장에 갈 때는 전주의 수모를 생각해 기침이 안 나오도록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1시간30분 전에 도착했습니다.

 

안양에서 왔다는 한 여자분이 KBS 현관 입구에 서있다가 친절하게도 보행이 불편한 저를 위해 자리를 대신 잡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대기실에 들어가자 먼저 와 있던 60세쯤 된 분이 "지난주 녹화 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 왔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하니까 그이도 분개해 하더군요.

 

녹화장에선 아까 그 여자분이 앞에서 두어 줄 떨어진 곳에 제 자리를 잡아 놓고 있었습니다.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냥 앉았습니다.

 

예정시간 보다 30분 정도 늦게 김용옥씨가 도착했고 방청객들은 PD의 지시대로 그를 박수로 맞이했습니다.

 

의기양양하게 단상에 올라선 김용옥씨는 저를 보자마자 호통을 치며 "내가 앞자리에 앉지 말라고 했는 데 왜 앞에 앉았느냐"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공개 녹화장에서 왜 당신이 좌석문제로 그러느냐"고 항변했습니다.

 

그러자 김용옥씨는 "녹화장에서 좌석배정은 내 권한"이라며 "당신 같은 사람은 앞으로 녹화현장에 절대로 나오지 말라"고 계속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

 

저는 너무 분해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혈압마저 높아져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습니다.

 

만인들이 지켜 보고 있는 가운데 반신불수의 늙은이가 이런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처참하기만 했습니다.

 

분위기가 소란해지자 방송국 직원들이 달려와 저를 붙잡고 퇴장을 시켰습니다.

 

끌려 나올 때(그들은 저를 정중하게 모셨다고 주장할 터지만)의 제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요.

 

저는 방송 자체를 방해한 행동은 결코 한 적이 없습니다.

 

늙은이가 와 방청하는 게 싫다면 아예 연령제한을 하는 광고를 할 것이지 아무런 제한 없이 받아 놓고 이게 무슨 짓이란 말입니까?

 

그는 끌려 나가는 제 등에다 대고 "노자강의 때 내가 저 사람한테 잘해줬다"는 말을 해댔습니다.

 

휘호 한장 써준 것에 대한 자기 자랑이었겠지요.

 

전후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소란을 피운 장본인이라 끌려 나가는 것처럼 보일까 바 더 참담했습니다.

 

이 때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와서 "왜 난동을 부린 사람을 경비원들이 와서 붙들어 내지 않느냐"고 질책을 했습니다.

 

좌반신 불수에다 8순이 가까운 노인에게 난동을 피웠다니요.

 

"당신은 도대체 누구냐"고 물으니 "여기 총책임을 맡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이가 누구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큰 모멸감을 느꼈지만 제 허약한 몸으론 더 이상 맞설 수 없음을 알고 그냥 끌려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KBS 직원중 한 사람이 차 한잔 대접하겠다며 저를 커피샵으로 데리고 같습니다.

 

그 분의 도움으로 집에 연락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복도 한구석에 앉아 식구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제 심정이 어떠했는지 상상이 가십니까.

 

그는 노자를 강의할 때 자기 어머니를 위대한 분이라고 칭송하곤 했습니다.

 

노자강의 종강 때는 그의 누이가 어머니를 모시고 나타나자 단상에 자리를 깔고 방석을 높여 큰 절을 하면서 `효심’을 과시하더군요.

 

꼭 김용옥씨 한테 묻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효도는 오직 본인의 어머니한테만 하는 것이고 다른 노인이나 남의 노부모에게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 지르고 호령하는 것은 올바른 행위라 생각하는지요.

 

그것이 소위 동양 고전의 1인자라고 자처하는 학자의 인간적 면모인지요.

 

김용옥씨는 강의 때 마다 그를 비판적으로 평하는 지식인층을 향해 원색적인 용어를 사용, 욕을 퍼붓곤 했습니다.

 

그를 아끼려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하고 자존심과 명예에 비수를 꽂는 행위를 하면서 별다른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이 동양철학을 했다는 사람이 할 짓 인지요.

 

저는 지금 매우 참담한 심정으로 변호사를 선정, 김용옥씨를 상대로 민사 및 형사소송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반신불수에다 물리적인 힘도 없는 팔순에 가까운 노인을 학대한 사실은 이 사회의 윤리적 기준을 위반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노자나 공자를 논하면서 그분들의 사상에 위배되는 행동거지를 수백명의 청중 앞에서 증명해 보인 김용옥씨에게 한 늙은이가 당한 정신적, 육체적 치욕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PS: 김용옥씨는 제 아버지가 KBS 사장실과 시청자 상담실에 강력히 항의하자 사건 다음날인 15일 밤에 부모님 집을 찾아와 제 어머니에게 대신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제 아버지는 본인이 공개적으로 명예훼손을 당한 만큼 그의 사과도 공개적이여 한다는 생각에 사과를 거절했습니다. 참고로 사건현장이었던 `도올의 논어이야기’ 책임 프로듀서는 박해선, 연출자는 오강선, 이태현, 홍경수 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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