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Gregorius의 음역 단어 額我略(1684: ge-go-lio, 게에고리오; ŋɡraːɡ(상형문자)-o-lio, 그라고리오)에서, 額의 중국어 음값 변화에 대한 고찰 124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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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6 ㅣ No.2050

게시자 주: (1)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0.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이번 글에 서술된 바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2017년 3월 중순부터 4월 말 기간 동안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따라서 그 저작권(著作權, Copyright)이 필자에게 있는, Data Mining 기법을 적용한, "AI 기반, 한시(漢詩) 표준 해석법 [A Standard Method of Interpretation of Chinese Poems(漢詩), Based on AI(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또한 사용하여 분석하고, 이 분석의 결과에 따라 도출된 바들/결론들입니다.

 

 

1. 들어가면서

 

[내용 추가 일자: 2024년 1월 11일]

게시자 주: 본 졸고는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학습할 수 있는 졸고들에 이어지는 글이며, 연구자들 및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추가하였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39.htm <----- 필독 권고

[제목: 성 김대건 신부 등의 복사였던 이의창李宜敞의 영세명/세례명은 라틴어 이름 Venantius의 직역 음역인 베난시오 일 수가 없었다; 게시일자: 2020-04-01]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2.htm <----- 필독 권고

[제목: Gregorius의 음역은 額我略(1684: ge-go-lio, 게에고리오; ŋɡraːɡ(상형문자)-o-lio, 그라고리오) 였지, 셩경직해광익 에서처럼 에오랴오 가 아니었다; 게시일자: 2020-04-11]

 

태그(Tag): 게에고리오,에오랴오, 額我略,Gregorius,그레고리오

[이상, 2024년 1월 11일 내용 추가 끝]

 

1-1. 다들 잘 알고 있듯이, 한자 낱글자는 의미/뜻을 나타내는 상형문자이지, 우리말 혹은 영어처럼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가 이니기 때문에, 중국어 음운학에 문외한인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하더라도, 요즈음과 같이 방송 등의 통신수단들이 전혀 없었던 과거의 시절에 특정 한자 낱글자의 음값이 실제로 무었이었는지를 요즈음을 살아가는 우리가 파악하는 데에는 상당한 한계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1-2. 이번 글에서는, 17세기 중반쯤부터 19세기 후반까지의 기간 동안에, 중국어 낱글자 "額"의 음값의 변화를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2. 유관 사료 분석 I

 

2-1.

2-1-1. 다음에 발췌 된 바는, 라틴어 "Gregorius/Gregorio"(그레고리오)에서 "Gre"(그레)의 음값이, 아무리 늦더라도, 1620년대에 이르러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사용된 중국어 음역 단어 "額我略"에서 "額"의 음값으로 번역되었고, 그리그 이 음값이 1820년대까지, 약200여년간,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이 선교사로서 주로 활동하였던 중국 본토 내 지역들에서, 눈에 띄는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39.htm <----- 전문 필독 권고

(발췌 시작) 

2-1-1. 다음은 1823년 초간의 로버트 모리슨의 "자전", p1, ch03, 120th-214th Radical, 제698쪽에서 발췌한 바인데, 중국 사천 지방에서 낱글자 "" 의 발음이 "기히"라고 합니다. 특히, 용례에서 이 발음이 중국의 사천(四川, Sze-chuen) 지방(province)을 포함하는 중국의 방언 발음임을 밝히고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82-1834_로버트_모리슨/1815-1823_자전.htm   

(발췌 시작)

 

기히_그레_in_1823_자전_p1_ch03_120th-214th_Radical_1823_제698쪽.jpg

(이상, 발췌 끝)

 

[...]

 

2-3-1. 다음은 1684년 이전에 마련된 "한서자전" 에서 발췌한 바인데, 낱글자 "" 의 발음이 "게에"라고 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84_한서자전/1684_한-스페인어_자전_2-493.htm    

(발췌 시작)

게에_Gre_in_1684_한서자전_9_strokes_108.jpg

(이상, 발췌 끝)  

 

[...]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1월 4일] 

2-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들여다볼 수 있는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 성인명 음역어 대조표에 의하면, 라틴어 이름 "Gregorius"(그레고리오)의 음역 단어로서 "我略"을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분이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이신데,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한문문화권_천주교회_성인명_음역어_대조표.htm <----- 필독 권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 분의 저술로서 1615년에 초간된  "교요해략" 본문에서, 라틴어 "gratia"의 음역 단어로서 "辣濟亞"이 사용되었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66-1640_알퐁소_바뇨니/1615_교요해략.htm 

(발췌 시작)

교요해략_권지상_2_성모경_14-18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2018년 11월 24일) 주: "전기"라는 번역 용어가 제10b쪽에서 사용되고 있음]

 

辣濟亞_gratia_in_교요해략_권지상_2_성모경_제7a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6: (1)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는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바로 위에서 보고드리는 바를 처음으로 발견한 시점은, 아무리 늦더라도, 2020년 12월 초였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2) 그런데,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이 자신의 저서 "교요해략"에서 사용한 라틴어 "gratia"의 음역 단어 "辣濟亞"은, 다음의 제2-7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하듯이, 판토하 신부님에 의하여 1600년경에 저술된 "방자유전"에서 이미 도입되어 사용된 음역 단어를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이 자신의 저서 "교요해략"에서 그대로 수용하여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 게시자 주 2-6 끝)

 

2-7.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판토하 신부님(1571-1618년)에 의하여 1600년경에 저술된 "방자유전"에서 발췌한 바인데, 라틴어 "gratia"(라치아)의 중국어 음역 단어 "辣濟亞"에서 첫 글자가 "" 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1-1618_디에고_데_판토하/1600_방자유전.htm 

(발췌 시작)

방자유전_권1_27-33_전인사피리다삼다강잉생어마리아지동신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2017년 7월 25일) 주: 제23쪽에서 "母氏(모씨) 마리아"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으며, 따라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더 자세한 내용을 읽을 수 있는, 이벽 성조(1754-1785년)의 "성교요지", 5,1의 자구 출처 및 내용 출처임: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45.htm ] [(2018년 12월 4일) 주: 제24a쪽에 "전미"(= perfect)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辣濟亞_gratia_in_1600_방자유전_권1_27-33_전인사피리다삼다강잉생어마리아지동신_제23b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세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이상, 2021년 1월 4일자 내용 추가 끝]

 

[...]

 

3-3-3. 따라서, 지금까지 위의 제3-3-1항제3-3-2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2) 판토하 신부님의 한문본 수덕서인 "칠극"이 초간된 1614년에 이르기까지,  "제성열품도문", 즉, 성인 호칭 기도문은 당시에 사용 중이던 "천주성교일과" 중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4. 지금까지 본글에서 고찰한 바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들여다볼 수 있는, 필자에 의하여 마련된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 성인명 음역 대조표[착성일자: 2020년 4월 10일]로부터,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한문문화권_천주교회_성인명_음역어_대조표.htm <----- 필독 권고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3)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를 나타내는 "額我畧"(게에고리오; ŋɡraːɡ(상형문자)-o-lio, 그라고리오)이라는 음역 단어를 최초로/처음으로 도입한 분과 한문본 천주교 문헌은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28년 이전에 초간된 "성모행실"이었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3-4: 위의 주소에 있는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 성인명 음역 대조표을 들여다보면, 중국 마카오에 도착한 해인 1604년 이후에 중국 본토에 입국한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이 자신의 저술인 "성모행실""천주성교성인행실"1616년에 발생한 남경교난 이후의 어는 시점에 저술하기 전에, 1599년에 중국 본토에 먼저 입국한 판토하 신부님(1571-1618년)에 의하여 이미 저술되어 출판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인 "칠극"(1614년), "천주실의속편" 등을 입수하여 참조하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판토하 신부님의 이들 두 권의 저술들에서 라틴어 "Gregorius"의 음역 단어로서 선정되어 사용된 "厄勒卧畧"이 매우 적절함에도 불구하고, 알퐁소 바뇨닌 신부님께서, 이 음역 단어를 계속하여 사용하지 않고, "額我畧"을 새로 도입한 구체적인 이유에 대하여서는,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1월 4일]

3-5. (이 글의 결론 14) 위의 제2-6항 및 제2-7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에 의하여,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를 나타내는 음역단어 "額我畧"에서, 첫 낱글자 "額"1600년-1615년경 남경 관화 발음 음값이 "그"(G)이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6. (이 글의 결론 15) 위의 제2-6항 및 제2-7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에 의하여,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교요해략"을 저술하여 1615년에 출판하기 전에, 1600년경에 저술된 판토하 신부님"방자유전" 필사본을 입수하여 이미 참조하셨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상, 2021년 1월 4일자 내용 추가 끝]

 

3-6. (이 글의 결론 16) 개신교회 측의 선교사로서는 처음으로 1807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목회자 로버트 모리슨이 신약 성경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1813년 경에 출판 하였고 그리고 구약 성경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1823년 경에 출판하였음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 과정에 또한 저술한 그의 "자전"은, 비록 그가 광동 지역에서 저술 작업에 임하였으나, 예를 들어1684년 이전의 시기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마련된 "한서자전" 등의 사전들에 수록된 낱글자들의 발음들을 참조하고 또 일부 발음들을 그대로 수용하였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상, 발췌 끝)

 

2-1-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로버트 모리슨(1782-1834년)에 의하여 1815년에 마카오에서 출판된 "자전"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문 낱글자들의 발음이 남경 방언, 즉, 남경 관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82-1834_로버트_모리슨/Note_in_Radicals_직전페이지_in_1815_중영자전_p1_ch01_1st-40th_Radical.jpg <----- 필독 권고

 

2-1-3. 중국 관화에도 여러 방언들이 있다고 하는데, 다음은, 특히, 남경 광화와 북경 관화의 관계와 흐르는 세월 속에서 언제쯤부터 이들 둘 사이에 조금씩 상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하여 약간이나마 고찰하기 위하여 마련되었습니다:

 

(i)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남경은 중국 송나라의 수도였으며, 북경은 몽고족이 세운 중국 원나라의 수도였고, 그리고 중국 원나라를 명망시킨 중국 명나라의 황제 주원장은 남경을 다시 중국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ii) 그러나 명나라 영락제가 1407-1421년 동안에 북경으로 천도하였으며, 그 결과로, 남경 관화가, 1403년에 명나라가 북경으로 천도한 이후에도, 청나라 중기까지 관화의 기준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1644년에 명나라를 멸망시킨 중국 청나라는 멸망할 때까지 북경을 수도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청나라 시대의 북경 지역의 방언은, 왜냐하면 북경이 명나라 이전의 시대에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의 수도이었기 때문에, 이미 몽고어의 영향을 받은 상태였으며, 따라서 청나라 시절의 북경 관화는 여기에다 추가적으로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의 언어인 만주어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iii) 따라서, 1563년과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이,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적응주의 선교 방식에 따라, 당시의 중국 명나라의 한족 사대부들과의 원활한 교류를 위하여, 남경 관화를 중점적으로 및 집중적으로 배웠을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 위의 제2-1항에서 발췌되고 있는 1684년 이전에 마련된 "한서자전"에 수록된 발음들은, (i) 당시의 남경 관화 발음들이거나 혹은 (ii) 당시의 남경 관화 발음들에 매우 가까운 남경 방언 발음들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iv) 마찬가지로, 1807년에 처음으로 중국 본토에 선교사를 입국한 개신교회 측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도, 자신의 저술들인 "자전""5거운부"에서 채택하였듯이, 남경 관화를 중점적으로 배웠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2. 다음은 개신교회 측의 선교사 Medhurst(1796-1857년)에 의하여 마련되어 1837년 직후에 출판된 것으로 보이는, [대만 해협 건너 지역인] 중국 "복건 방언 사전"에 수록된 한자 낱글자 "額"의 음값은 "Gék"(기크)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96-1857_Walter_Henry_Medhurst/1832_복건_방언_사전.htm  

 (발췌 시작)

Gék기크_Gre_in_reading_form_in_1832_중국_복건_방언_사전_제189쪽.jpg

 

게시자 주: 위의 사전의 Preface 바로 앞 페이지에, 개신교회 측의 다른 선교사인 S, Wells Williams(1812-1884년)이 마카오에서 1837년 6월 1일자로 남긴, Advertisement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1842년 [중국] 영국과의 아편전쟁에 패한 직후 불평등한 남경조약

  

1844년 [중국] 불평등한 망하조약 및 황포조약

 

1851년 [중국] 태평천국의 난 일어남

1853년 남경이 태평천국의 수도가 됨 

 

2-3.

2-3-1. 다음은 개신교회 측의 Samuel Wells Williams(1812-1884년)에 의하여 마련되어 1856년에 출판된, 중국 "광동 방언 음조 사전"에서 발췌된 바인데, 이 사전에서 "G" 자음으로 시작하는 글자들이 없음을 확인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2-1884_Samuel_Wells_Williams/1856_광동_방언_음조_사전.htm  

(발췌 시작)

G_자음으로_시작하는_글자들이_없음_in_1856_중국_광동_방언_음조_사전_제67쪽.jpg

(이상, 발췌 끝) 

 

2-3-2. 그리고 다음은 개신교회 측의 Samuel Wells Williams(1812-1884년)에 의하여 마련되어 1856년에 출판된, 중국 "광동 방언 음조 사전"에서 발췌된 바인데, 이 사전에서 그 첫 음값이 "G" 자음으로 시작하는 글자들이 모두 그 첫 음값이 "Ng"로 시작하는 글자들로 수록되어 있으며, 그리고 한자 낱글자 "額"의 광동 방언 음값은 "Ngák"(야크) 입니다. 그러나 낱글자 "額" 바로 아래에 관화(Mandarin) 발음"Geh"(게)임을 또한 밝히고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출처: 상동

(발췌 시작) 

Ngák(야크)_Gre_in_1856_중국_광동_방언_음조_사전_제318쪽.jpg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3-2: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낱글자 "額" 바로 아래에 관화(Mandarin) 발음"Geh"(게)임을 또한 밝히고 있는데, "Gr" 자음이, 1856년에 이르기까지, 낱글자 "額"의 음값 안에 여전히 보존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1858년 [중국] 불평등한 천진조약

 

1860년 [중국] 불평등한 북경조약 

 

1864년 태평천국이 멸망함

 

2-4. 다음의 제2-4-1항제2-4-2항에 발췌된 바는,1865년에 출판된 로버트 모리슨"5거운부", 2nd Edition(중각판)에서 발췌한 것들입니다. 

 

1851년경에, 한족이 아닌, 객가 출신인 홍수전이 세운 태평천국이라는 개신교 이단 신정 국가를 중국 양쯔강, 즉, 장강, 이남 지역에 처음으로 세우면서 건국 초기부터 중국 청나라와 전쟁을 시작하였는데, 1853년에 남경을 수도로 삼으면서, 따라서 남경 관화를 사용하면서 중국 청나라에 종사하던 기존의 기득권 집단이, 한족들의 땅이라고 불리던, 남경 지역에 더 이상 거주하지 못하였을 상황이 발생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태평청국이 1851년 건국 초기부터 중국 청나라 군대와 중국의 여러 지방의 기존 세력 집단들과 전쟁을 계속하다가 1864년에 멸망하였는데, 중국어 음운학에 문외한인 필자가 생각하더라도, 1851-1864년이라는 바로 이 기간을 거치는 동안에, 남경 지역 일대에서 중국 청나라에 종사하면서 남경 관화를 사용하던 기존의 기득권 집단은 세력을 잃어 사라지고, 대신에, 중국의 남쪽 지역의 다른 방언들을 사용하는 중국인들이 남경 지역 일대 거주자들의 다수를 구성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남경 관화뿐만이 아니라, 남경 방언도 또한, 1851-1864년이라는 태평천국이 난을 일으켜 지속하였던 바로 이 기간을 거치는 동안에, 상당히 급격하게 변화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양쯔강 이남 지역에서 1864년에 태평천국이 멸망한 이후에, 남경 지역에는 북경 관화 혹은 북경 방언을 사용하는 청나라 조정에 종사하는 지배계층 무리가 다시 들어왔을 것이며, 따라서 이들에 의하여 북경 관화 혹은 북경 방언이 남경 지역에서 관공서의 공식 언어로서, 즉, 중국 청나라의 과거 시험에서 사용되는 공식 언어로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을 것이며, 따라서 바로 이 변화의 일부가, 개신교회 측의 선교사 집단에 의하여 마련된, 다음의 제2-4-1항제2-4-2항에 발췌된 바에 수용되어 기록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2-4-1. 다음은,1865년에 출판된 로버트 모리슨"5거운부", 2nd Edition(중각판)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제2항에서, 위의 제2-3-2항에서와 마찬가지로, 초판에서 발음에 있어 단어의 첫 음값이 자음 "G"로 시작하는 모든 단어들의 경우에, 이들 단어들의 첫 음값이 두 번째 판에서 모두, 묵음(默音)이거나 혹은 묵음(默音)에 가까운, "Ng"로 교체되었음을 밝히고 있는데, 특히 그 예(example)로서 제시한 바가, 바로 낱글자 "額"의 음값의 변화임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82-1834_로버트_모리슨/1815-1823_자전.htm    

출처 1 중에 안내된 출처 2: Chapter 1 - 5거운부_중영자전_1865.htm (중각판)

(출처 2로부터 발췌 시작) 

 

G_changed_into_Ng_in_1865_5거운부_p2_ch01_자전_제ix쪽.jpg

(이상, 발췌 끝)

 

2-4-2. 다음은, 1865년에 출판된 로버트 모리슨"5거운부", 2nd Edition(중각판)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초판에서 발음에 있어 첫 자음 음값 "G"가, 위의 제2-3-2항에서처럼, 이 두 번째 판에서, 묵음(默音)이거나 혹은 묵음(默音)에 가까운, "Ng"로 교체된 경우가 바로 낱글자 "額"의 음값의 변화임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즉, 위의 제2-3-2항에서 낱글자 "額"의 음값인 "Geh"(게)가 바로 아래에 발췌된 1865년에 출판된 로버트 모리슨"5거운부", 2nd Edition(중각판)에서  "Ngeh"(에)로 교체되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82-1834_로버트_모리슨/1815-1823_자전.htm    

출처 1 중에 안내된 출처 2: Chapter 1 - 5거운부_중영자전_1865.htm (중각판)

(출처 2로부터 발췌 시작) 

NGEH_Gre_in_1865_5거운부_p2_ch01_자전_제89쪽.jpg

(이상, 발췌 끝) 

 

따라서,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2) 1851-1864년의 태평천국의 난이 발생한 기간 동안에, 남경 방언에 있어, 낱글자 "額"의 음값이 이전의 음값 "Gïh"(기히) (제2-1-1항)로부터, 북경 관화 혹은 북경 방언 발음에 매우 가까운 "Ngeh"(에)로 바뀌었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2-5.

2-5-1. 다음은 개신교회 측의 Samuel Wells Williams(1812-1884년)에 의하여 마련되어 1874년에 출판된, "A syllabic dictionary of the Chinese language", Introduction, 제xxiv쪽에서 발췌한 바인데, 북경 관화(mandarin) 발음에서 "ng"가 묵음(默音)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2-1884_Samuel_Wells_Williams/1874(명치7년)_A_syllabic_dictionary_of_the_Chinese_lan_5방원음에_따라.htm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5-1: 특히 위의 사전의 Introduction에는,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다수의 중영 사전 저자들이 사용한 발음 기호들의 음값들의 차이점들에 대하여 대하여,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국어 음운학 연구자들의 필독들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2-5-2. 다음은 개신교회 측의 Samuel Wells Williams(1812-1884년)에 의하여 마련되어 1874년에 출판된, "A syllabic dictionary of the Chinese language"에서 발췌된 바입니다.

 

Samuel Wells Williams는 바로 아래의 출처에 제시된 이 사전에 수록된 한자 낱글자들의 발음들이, 비록 북경 관화 발음들은 아닐 수도 있더라도, 양쯔강 북쪽 지역에서 듣게 되는 백화체 언어(spoken language)의 일반적인 평균 발음들에 메우 가까울 것이라고, 이 사전의 서문(Preface)의 첫 페이지 하단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힙니다:

 

(이 글의 결론 3) 낱글자 "額"의 발음에 있어, 양쯔강 이북 지역에서, 묵음(默音)이거나 혹은 묵음(默音)에 가까운, 첫 자음 음값 "Ng"가, 아무리 늦더라도 1874년 이전에, 전후 문맥 안에서, 발음되지 않는 경우들이 이미 존재하였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출처: 상동  

(발췌 시작)

Ngoh(ngö)_Gre_in_1874_A_syllabic_dictionary_of_the_Chinese_lan_제628쪽.jpg

(이상, 발췌 끝)

 

2-6. 다음은 개신교회 측의 Herbert Giles(1845-1935년)에 의하여 먀련되어 1892년에 초판 발행되고 1912년에 2nd Edition이 출판된, "Chinese English Dictionary", 권1에서 발췌된 바인데, 2nd Edition의 서문에서 초판 발행 후 20년 사이에 내용이 상당히 보강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2-6-1. 다음은 개신교회 측의 Herbert Giles(1845-1935년)에 의하여 먀련되어 1892년에 초판 발행되고 1912년에 2nd Edition이 출판된, "Chinese English Dictionary", 권1에서 발췌된 바인데, 위의 제2-3항, 제2-4항, 그리고 제2-5항에서 이미 발생한 바가 기록되어 있듯이, 이 사전에서도 또한 음값에 있어 자음 "Gr"로 시작하는 낱글자가 없음을 확인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45-1935_Herbert_Giles/1912_Giles_Chinese-English_dictionary_2nd_Ed_권1.htm

(발췌 시작)

G_로_시작하는_자음이_없음_in_1912_Giles_Chinese-English_dictionary_2nd_Ed_권1_제469쪽.jpg

(이상, 발췌 끝)

 

2-6-2. 다음은 개신교회 측의 Herbert Giles(1845-1935년)에 의하여 먀련되어 1892년에 초판 발행되고 1912년에 2nd Edition이 출판된, "Chinese English Dictionary", 권1에서 발췌된 바인데, 특히, 낱글자 "額" 바로 아래에 이 낱글자의 중국의 9개 지역 방언 음값들과 우리나라 조선, 일본, 그리고 베트남에서의 음값들이 기록되어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출처: 상동 

(발췌 시작)

É_Gre_in_1912_Giles_Chinese-English_dictionary_2nd_Ed_권1_제404쪽.jpg

 

게시자 주: 위에서,

R = 패문운부

C = Cantonese (광동)

H = Hakka (객가)

F = Foochow

W = Wênchow

N = Ningpo (영포)

P = Peking (북경), é, ngé

M = Mid_China, ngé

Y = Yanchow

Sz = Ssuch'uan (四川, 사천), nge

K = Korean

J = Japanese

A = Annamese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45-1935_Herbert_Giles/방언들에_대한_안내_in_1912_Giles_Chinese-English_dictionary_2nd_Ed_권1_제xii쪽.jpg <----- 필독 권고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45-1935_Herbert_Giles/방언들에_대한_음값표_in_1912_Giles_Chinese-English_dictionary_2nd_Ed_권1_제xvii-xviii쪽.jpg <----- 필독 권고

(이상, 발췌 끝)

 

따라서, 바로 위에 발췌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힙니다:

 

(이 글의 결론 4) 1912년에 이르기 전의 시기에, 낱글자 "額"의 음값이, 중국의 중앙 지역(M)의 방언, 사천 지역(Sz)의 방언, 그리고 북경 지역(P)의 방언(Mandarin)에 있어, 공통으로, "ngé"(어, as in hurry and hurt) 이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5) 1912년에 이르기 전의 시기에, 낱글자 "額"의 음값이, 북경 지역(P)의 방언(Mandarin)에 있어, 전후 문맥 안에서, 또한 "é"(어, as in hurry and hurt) 이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 유관 사료 분석 II


3-1. 다른 한편으로, 1644년에 중국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북경을 차지한 후에도, 그 당시까지 북경에서 사용되고 있었던 남경 관화가 청나라 와조에 의하여 존중되어, 북경 관화로서 북경 지역에서 계속 사용되었을 것이나, 그러나 청나라 시대의 북경 지역의 방언은, 왜냐하면 북경이 명나라 이전의 시대에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의 수도이었기 때문에, 이미 몽고어의 영향을 받은 상태였으며, 따라서 청나라 시절의 북경 관화는 여기에다 추가적으로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의 언어인 만주어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그 결과, 예를 들어, 1684년 이전에 마련된 "한서자전" 에 기록된 낱글자 "" 의 남경 관화 발음 "고"(go)가, 아무리 늦더라도 1795년 이전에, 첫 자음 음값인 "G"를 상실한, 북경 지역에서 통용되고 있는 북경 방언 혹은 북경 관화 발음인 "오"로 바뀌었음은, 다음에 발췌된 바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할 수 있듯이, 1795년에 출판된, 당시에 청나라의 수도 북경을 연례 행사로서 방문하였던 우리나라 역관들의 중국어 교재였던, "중간노걸대언해"에서 확실하게 찿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중간노걸대언해, 국립중앙도서관

(발췌 시작)

오_아_in_1795_중간노걸대언해_건_제1쪽.jpg

(이상, 발췌 끝)

 

따라서, 바로 위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에 의하여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6) 1684년 이전에 마련된 "한서자전" 에 기록된 낱글자 "" 의 남경 관화 발음 "게에"기. 아무리 늦더라도 1795년 이전에, 첫 자듬 음값인 "Gr"를 상실한, 북경 지역에서 통용되고 있는 북경 방언 혹은 북경 관화 발음인 "어"(é) 혹은 이와 유사한 음값으로 바뀌었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2. 이번 항에서는, 아무리 늦더라도 1864년경에 그 초판이 출판되었다고 알려진, 우리말본 "천주성교공과", 권4에 수록되어 있는 "연옥도문" 중의 성인 호칭 기도문에서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을 나타내는 "그레고리오"의 음역 표기가, 이 한글 기도서가 20세기 초까지 여러 번에 걸쳐 출판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연대순에 있어 거슬러 올라가면서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3-2-1. 우선적으로, 다음에 발췌된 바로부터, 르 장드르(Le Gendre, 崔昌根) 신부에 의하여 저술되었고 뮈텔(Mutel, 閔德孝, 1854-1933년) 주교가 감수한, 1923년에 초간된 "회쟝직분", 부록, 3월 12일,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 첨례일에 여전히, "그레고리오" 대신에"에오리오"라는 중역 음역(secondhand transliteration)이 된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췌 시작)

에오리오_in_3월12일_성_그레고리오_첨례일_in_1923_회장직분_부록_제3a쪽.jpg

(이상, 발췌 끝)

 

3-2-2.

3-2-2-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논문[제목: 성 김대건 신부 등의 복사였던 이의창李宜敞의 영세명/세례명은 직역 음역인 베난시오(Venantius)일 수가 없다; 게시일자: 2020-04-01]에서, 현재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소장 중인 우리말본 "성년광익"의 필사본이 마련된 시점이 20세기 초이었을 것임을 한 개의 결론으로 도출하였는데, 그 근거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모친인 성녀 모니카 축일인 5월4일에, "아프리카"라는 음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39.htm <----- 필독 권고

 

3-2-2-2. 그런데, 현재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소장 중인 우리말본 "성년광익"의 필사본에서 3월 12일,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 첨례일에, "에오료", "에오랴오" 등의 중역 음역(secondhand transliteration)이 된 이름 대신에, 직역 음역(literal translation)이 된 이름인 "그레고리오"가 사용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3-2-3. 다음은, 1900년에 출판된,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감수한, 중각판인 우리말본 "천주성교공과", 권4 중의 "연옥도문" 중의 성인 호칭 기도문에서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을 나타내는 "그레고리오"의 음역 표기가 "그레고리ㅗ", 즉, "그레고리오"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900_텬쥬셩교공과/1900_텬쥬셩교공과_권4.htm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3-2-4. 다음은, 본글의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이어지는 제3-3항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https://www.nl.go.kr/NL/contents/search.do?srchTarget=total&pageNum=1&pageSize=10&kwd=%EC%84%B1%EA%B2%BD%EC%A7%81%ED%95%B4#viewKey=1150132&viewType=AH1&category=고문헌&pageIdx=1  

(발췌 시작)

(1)-(ii) 그리고 또한, 만약에 여러분들이, 다음에 발췌된, 국립중앙도서관, 국가전자도서관 제공의 1897년판 "성경직해" 권2, 3왕래조후 제6주일, 잠을 들여다 보면, "그레고리ㅗ", 즉, "그레고리오"임이 틀림 없습니다: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이상, 발췌 끝)

 

3-2-5. 다음은, 1866년에 시작되어, 실제적으로 거의 10년 혹은 그 이상 지속된, 참혹하기 그지없었던, 소위 말하는, 병인 박해의 우리나라 조선 전국에 걸쳐 순교자들에 대한 증언들을 담은, 1895년에 초간 발행된 우리말본 "치명일기"에서 발췌한 바들인데, 순교자들의 세례명으로서, "에오리오""그레고리오" 둘 다가 사용되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3-2-5-1. 1895년 초간의 우리말본 "치명일기", 제598번, 김 그레고리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95_치명일기/1895_치명일기.htm  

(발췌 시작)

598_김_그레고리오_in_1895_치명일기.jpg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3-2-5-1: 136번 니 그레고리오 순교 당시 28세; 179번 니 그레고리오; 598번 김 그레고리오 1879년(기묘년) 순교 때에, 아내, 며느리, 그리고 손자까지 함께 순교함; 656번 김 그레고리오는 1868년(무진) 순교 당시 42세; 667번 간 그레고리오 1867년(정묘) 순교 당시 63세;

 

3-2-5-2. 1895년 초간의 우리말본 "치명일기", 제600번, 원 에오리오:

 

출처: 상동 

(발췌 시작)

600_원_에오리오_in_1895_치명일기.jpg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3-2-5-2: 600번 원 에로리오1866년(병인) 순교 당시에 나이가 60여세 이었음. 따라서, 이분은, 아무리 늦더라도, 프랑스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의 신부님들이 우리나라 조선에 처음 입국한 1836년보다 이전인 시점에 "에로리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됨. 그리고 "치명일기"에 수룍된 순교자들 중에서 "에오리오"라는 세례명을 가진 분은 600번 원 에오리오 한 분뿐임.

 

3-2-6. 다음은, 1881년에 일본 요코하마에서 출판된, 활판본인, 우리말본 "천주성교공과", 권4 중의 "연옥도문" 중의 성인 호칭 기도문에서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을 나타내는 "그레고리오"의 음역 표기가 여전히 "에오료"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81_텬쥬셩교공과/1881_텬쥬셩교공과_권4_일본_요코하마_출판.htm  

(발췌 시작)

에오료_in_련옥도문_in_1881년판_텬쥬셩교공과_권4_제75a쪽.jpg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3-2-6: (1) 1880년에 일본 요코하마 소재 한 출판소에서 "한불자전" 초판이 발행되었는데, 바로 그 다음 헤인 1881년에 일본 요코하마에서 또한 우리말본 "천주성교공과", 전권의 최초 활판본이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음이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되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 확인된 바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논문에서 훨씬 더 구체적으로 입증/고증되고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30-1884_리델/2018_한국_천주교_활판_인쇄와_인쇄_장소에_관한_연구_신의식.htm <----- 필독 권고  

 

(2) 특히, 바로 위에 안내된 논문은, 출판물들을 통한 가톨릭 문서 선교의 중요성이 리델 주교님 등에 의하여 이미 잘 인지되었음과, 그러나, 당시의 우리나라 조선 안의 여건 때문에, 실제로 양질의 활판 인쇄를 하여 책들로 출판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웠는지에 대하여서도 잘 서술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3-2-7. 다음은, 달레 신부님(1829-1878년)의 프랑스어 원문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사", 권1, 제199쪽에서 발췌한 바인데, 황사영에 관하여 언급하는 문맥 안에서, "Gregorie"라는 세례명을 받은 조선인 천주교 신자가 1801년에 황사영 옆에 이미 존재하였음을 확인합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29-1878_달레/1874_권1_histoiredelgli01dall.htm [주: 권1]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29-1878_달레/1874_권2_histoiredelgli02dall.htm [주: 권2] 

(출처 1, 제199쪽으로부터 발췌 시작)

Gregorie_Han_.in_1874_조선의_천주교회사_권1_제199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야래에서 세 번째 줄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3-2-7: (1) 그런데,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바로 위에 발췌된 "Gregorie"의 우리말 음값이, 바로 위의 자료에만 오로지 의존하여서는, "에오랴오"인지 혹은 "게에고리오"인지 전혀 알 수 없는 데에 있습니다.

 

(2) 그러나, (i) 위의 제3-1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와 (ii) 아래의 제3-3항에 발췌된 바의 제(1)-(iii)항에 제시된 실증적(positive) 유관 자료에 의하여, 1801년에 황사영의 옆에 있었던 "한"씨 성을 가진 조선인 천주교 신자의 영세명은, "게에고리오"아니고"에오랴ㅗ", 즉, "에로랴오" 혹은 이것과 거의 유사한 우리말 음값을 가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3) 그리고 또한, 달레 신부님에 의한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사" 집필에 그 근거 문헌들이었던, 프랑스어로 번역된 자료들을 프랑스 파리 외방 선교회 측에 발송한 다블뤼 주교님 등, 1866년 병인박해 이전에 우리나라 조선에 와서 사목활동을 하고 계셨던 프랑스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의 신부님들께서는, "에오랴ㅗ", 즉, "에로랴오" 혹은 이것과 거의 유사한 우리말 음값을 가진 세례명이,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의 라틴어 이름인 "Gregorius"의 우리말 음역 세례명임을 명백하게 잘 알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위의 제3-2-6항에 발췌된 바에서 고찰한 "에오료"라는 발음이, 다음의 제3-3항에 발췌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는 현존하는 우리말본 "셩경직해광익"의 필사본들 중에서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는,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 발상지인 천진암에서 소장 중인, 우리말본 "셩경직해광익"의 필사본에서 사용되고 있는 표기인, "에오랴ㅗ"를 약간 빨리 발음하였을 때에 귀에 들리는 음값을 표기한, 축약음의 한 표기임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3-3. 다른 한편으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이미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 완료한, 다음에 발췌된 바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도록 하십시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39.htm

(발췌 시작)

1. 들어가면서

 

다음의 발췌된 바에서, (1)-(iii)에 발췌된 사진은, 현재까지 전해내려온, 가장 오래된 필사본들 중의 하나로 추정되고 있는, 우리말본 "셩경직해광익" 중의 한 페이지인데, 본문 중에서 "에오랴ㅗ"라는 우리말 표기의 성인 이름이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읽도록 하십시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39.htm

(발췌 시작)

게시자 주 2-1: (1) 요즈음 우리가 말하는 "그레고리오"는 라틴어 "Gregorius"직역 음역(literal transliteration)된 우리말 음값은 분명합니다만, 예를 들어,  다음에 발췌된 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4-1659_엠마누엘_주니오르_디아스/1636_천주강생성경직해.htm

(발췌 시작)

권2_40_3왕래조후제6주일_164-170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ixth Sunday after Epiphany, 마태오 복음서 13,31-35(1969년에 개정된 지금의 전례력에 있어, 매년 연중 제17주간 월요일 복음 말씀)] [주: (번역 오류) 영어로 "kingdom of heaven"으로 번역되는 표현이 여기서 "천국자"로 번역되었는데, "자" 글자가 중국어로 번역 과정에서 추가되지 말았어야 함. 그리고 이 명백한 번역 오류는, 여기를 클릭하면 가지게 되는 "국립중앙도서관 국가전자도서관" 화면 제공의 우리말본 "성경직해"(1938년 출판) 자료에서, 원문 보기 > vol : 권 1, 본문 제184쪽에서 "천국"으로 이미 바로잡아져 있음] [(2017년 1월 6일) 주: 서리아 = 시리아; 라마 = 로마].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일곱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성 그레고리오"에서 "그레고리오"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의 한문본 전례 성경인 한문본 "천주강생성경직해", 권2, 3왕래조후 제6주일, 잠에서, "額我略"(액아략)으로 번역되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질문 1: 그런데, 여러분들 생각에, 우리나라 조선의 임금인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 생존 시기에 우리나라 조선에 전달되어, 심지어 사도제자마저도 읽었음이 이미 실증적으로 입증된, 바로 이 한문본 "천주강생성경직해" 일부분의 우리말 번역본이 포함되어 있는, "셩경직해광익", 3왈래조후 제6주일, 잠에서 번역된 이름 "額我略"(액아략)이 어떠한 우리말 음값으로 번역이 되었을 것 같은지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판단의 기준/잣대로 적용하여, "그레고리오"일 것으로 생각하시는지요???

 

(1)-(i) 만약에 여러분들이, 다음에 발췌된, 국립중앙도서관, 국가전자도서관 제공의 1938년판 "성경직해" 권1, 3왕래조후 제6주일, 잠을 들여다 보면, "그레고리오"임이 틀림 없습니다: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1)-(ii) 그리고 또한, 만약에 여러분들이, 다음에 발췌된, 국립중앙도서관, 국가전자도서관 제공의 1897년판 "성경직해" 권2, 3왕래조후 제6주일, 잠을 들여다 보면, "그레고리ㅗ", 즉, "그레고리오"임이 틀림 없습니다:

 

출처: https://www.nl.go.kr/NL/contents/search.do?srchTarget=total&pageNum=1&pageSize=10&kwd=%EC%84%B1%EA%B2%BD%EC%A7%81%ED%95%B4#viewKey=1150132&viewType=AH1&category=고문헌&pageIdx=1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질문 2: 따라서, 위의 두 개의 용례들을 보고서, 여러분들께서는, 이들에 근거하여, 연대순에 있어 더 옛날의 우리말본 "셩경직해광익", 3왈래조후 제6주일, 잠에서도 또한 마찬가지로, "그레고리오" 혹은 이와 등가인 우리말 음값으로 번역이 되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것인지요???

 

지금드린 질문 2와 관련하여, "1897년 이전의 시점에 발생한 그 무엇이 과연 무엇이었을까?"에 대하여 여러분 스스로 알아차리기 위하여, 바로 아래에 발웨된 바와 바로 위에 발췌된 바를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도록 하십시오.


(1)-(iii) 다음은, 2019년 2월 어느날, 필자가 직접 사진 촬영하여 마련한 대단히 중요한 자료들에서 발췌한 바인데, "셩경직해광익", 3왈래조후 제6주일, 잠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이상, 발췌 끝)

 

3-4. 따라서, (i) 바로 위의 제3-1항에서 도출된 (이 글의 결론 6), (ii) 위의 제2-4-2항에서 도출된 (이 글의 결론 2), 그리고 (iii) 위의 제2-3-2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들에 의하여, 다음의 결론을 한 개의 따름정리(a corollary)로서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7) 1684년 이전에 마련된 "한서자전" 에 기록된 낱글자 "" 의 남경 관화 발음 "게에"기. 아무리 늦더라도 1795년 이전에, 첫 자듬 음값 "Gr"를 상실한, 북경 지역에서 통용되고 있는 북경 방언 혹은 북경 관화 발음인 "에"(ngeh) 혹은 이와 유사한 음값 "어"(é) 등으로 바뀌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3-2: 바로 위의 (이 글의 결론 7)은 위의 제2-6항에 발췌된 바에 기록된 ""의 북경 지역, 사천 지역, 그리고 중국 중부 지역 음값들과 부합(conform)함에 주목하십시오.

 

4. 유관 사료 분석 III (위의 제2항의 유관 사료 분석 I 및 제3항의 유관 사료 분석 II의 결과들) 

 

4-1. 위의 제2항에서 진행한 유관 사료들에 대한 필자의 분석은, 예상밖으로, (i) 로버트 모리슨의 5거운부, p2, ch01, 중영자전, 제xvii쪽에 있는 다음의 단락이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ii) 이 사전에서 음값에 따라 한자 낱글자들을 분류하면서 제공하고 있는 정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게 한다는 생각입니다.

 

4-1-1. [위의 (i) 설명의 연장]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로버트 모리슨의 5거운부, p2, ch01, 중영자전, xvii에 있는 단락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중국어 음운학 연구자들의 필독을 강력하게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82-1834_로버트_모리슨/Manuscript_Dictionaries(예수회_신부님들에_의하여_마련된_필사본_사전들에_대한_언급)_in_1819_5거운부_p2_ch01_중영자전_제xvii쪽.jpg <----- 중국어 음운학 연구자들의 필독 권고

(발췌 시작)

ORTHOGRAPHY

OF THE

MANUSCRIPT DICTIONARIES

 

With the corresponding Orthography in this Work. The first word is that found in the Manusript Dictionaries, the opposite one that of this Dictionary. The Manuscript used on this occasion was a copy of that in the Library of the Royal Society, and which was once the property of Sir William Jones. The French and Germans have altered some of the Syllables.

(이상, 발췌 끝)

 

따라서, 다음의 결론을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8) 로버트 모리슨이 자신의 저서인 5거운부, p2, ch01, 중영자전, 제xvii쪽에서 말하는 Manuscript Dictionaries들이란,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 등에 의하여 마련된, 필사본 한자자전들을 말함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예를 들어, 위의 제1항에 발췌된 바에서 그 일부가 발췌되고 있는,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 등에 의하여 1684년 이전에 마련된 "한서자전"(Chinese-Spanish Dictionary)과 같은 필사본 한자자전을 말합니다.

 

또한, 위의 제2항에서 도출된 다수의 결론들에 근거하여, 특히 위의 제3-1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와 (이 글의 결론 6)에 근거하여, 다음의 결론을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9) 다음에 발췌된 바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할 수 있듯이, 로버트 모리슨은 자신의 사전인, 5거운부, p2, ch01, 중영자전, 제xviii쪽에서, 그 첫 자음 음값이 "G"로 시작하는 한자 낱글자들의 경우에, 예수회 소속 신부님들 등이 필사본 한자자전(Manuscript Dictionaries)들에 이미 남견 관화 발음 음값[주: 왼쪽 끝에 있는 발음]과 북경 관화 발음 음값[주: 중간에 있는 발음] 둘 다를 기록하였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발췌 시작)

Manuscript_Dictionaries(예수회_신부님들에_의하여_마련된_필사본_사전들에_대한_언급)에서_음값G로_시작하는_경우_in_1819_5거운부_p2_ch01_중영자전_제xviii쪽.jpg

(이상, 발췌 끝)

(이상, (이 글의 결론 9) 끝)

 

4-1-2. [위의 (ii) 설명의 연장] 예를 들어, 다음에 발췌된 바는, 로버트 모리슨의 사전인 5거운부, p2, ch01, 중영자전에서 음값이 "GIH"로 시작하는 낱글자들의 경우에, 자신이 들여다본, 본인보다 먼저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천주교회 측의 예수회 소속 신부님들 등에 의하여 마련된 필사본 한자자전(Manuscript Dictionary)에 기록된 북경 관화 발음 음값(들), 그리고 광동 방언 음값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4-2. 다른 한편으로,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드 메야 신부님(1669-1748년, 주: 북경에 거주하였으며 북경에서서 선종)께서 "성년광익"을 저술하여 1738년북경에서 초간 출판한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바로 이 "성년광익" 본문에서, (i)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의 이름과 (ii) Gregory of Nazianzus 의 이름 그리고 (iii) Gregory of Taumaturgus 의 이름, 이들 세 분의 이름인 라틴어 "Gregorius"의 음역 단어로서 "額我略"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한문문화권_천주교회_성인명_음역어_대조표.htm <----- 필독 권고 

 

따라서,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0) 1738년에 이르기까지, 북경 방언 지역 혹은 북경 관화 발음 지역에 "額"의 발음 "게에""我"의 발음 "고"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4-3. 위의 제3-2항제3-3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1)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 내에서,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의 우리말 음역 이름으로서, (i) "에오랴오", "에오료", "에로리오" 등의 중역 음역(secondhand transliteration)이 된 용어와, (ii) 직역 음역(literal translation)이 된 용어 "그레고리오" 둘 다가, 아무리 늦더라도 1897년부터 심지어 1923년에 이르기까지, 사용되고 있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12) 현재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는 우리말본 "성년광익"의 필사본이 필사된 시점은, 위의 제3-2-2항제3-2-3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에 의하여, 1897년경부터 1900년경 사이의 어느 시점이었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13) 위의 제3-2-5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에 의하여, 1895년에 이르면,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 안에서 1836년경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글 전용의 한 결과로서, 세례명 "에오리오"가 라틴어 이름 "Gregorius"의 음역 발음임을 모르고 있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14) 1881년 이전에 출판된 우리말본 "천주성교공과", 권4, "연옥도문" 중의 "성인 호칭 기도문"에서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을 나타내는 "그레고리오"의 음역 표기가 "에오료"이었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15) 1864년경에 그 초판이 출판되었다고 알려진, 천주성교공과", 권4, "연옥도문" 중의 "성인 호칭 기도문"에서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을 나타내는 "그레고리오"의 음역 표기 "에오료"우리말본 "셩경직해광익"의 필사본에서 사용되고 있는 표기인, "에오랴ㅗ"를 약간 빨리 발음하였을 때에 귀에 들리는 음값을 표기한, 축약음의 한 표기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4-4.

4-4-1. 1836년에 우리나라 조선에 처음 입국한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의 신부님들이 한글 전용을 알차게 수행하게 된 배경에는, 예를 들어, "성인 호칭 기도문" 중에서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에게 전구의 기도를 청할 때에 이분의 이름을 정확하게 소리내어 불러내어야(invoke) 하는데, 그러나, 그 당시까지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이 지속적으로 열독해 왔던, 1790년대 혹은 그 이전에 이미 우리말로 번역된 "셩경직해광익" 등에서, 중국어로 음역된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의 음역 이름인 "額我略" 이 당시의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에 의하여, 귀로 들었을 때에 우리말 음값 "에오랴ㅗ", 즉, "에오랴오"라는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중역 음역(secondhand transliteration)이 된 것을 바로잡아야 할 어떤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임은, 대단히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4-4-2. (이 글의 결론 16) 다른 한편으로, 예를 들어제3-2-5-2항에서 1879년(기묘년)에 순교한 제598번 순교자인 김 그레고리오와, 치명일기에 기록된 세례명이 그레고리오인 순교자들의 기록들로부터, 1836년과 그 이후에 우리나라 조선에  선교사로 파견된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의 신부님들로부터, 점차로 신자들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라틴어 공부를 하게 되었을 일부 평신도들은, 예를 들어, 1630년경에 중국에서 중국어로 올바르게 음역된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의 음역 이름인 "額我略"이, 그러나 1780년대 혹은 그 이후에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에 의하여, 귀로 들었을 때에 우리말 음값 "에오랴ㅗ", 즉, "에오랴오"라는 이름으로 중역 음역(secondhand transliteration)이 된 것이, 대단히 잘못된 것임을 차츰 알게 되었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춯합니다.

 

4-4-3. 그럼에도 불구하고, 1864년경에 초간된 것으로 알려진 우리말본 "천주성교공과", 권4 중의 "연옥도문" 중의 "성인 호칭 기도문"에서 여전히, "에오랴ㅗ", 즉, "에오랴오"의 축약 음값인. "에오료"가 사용된 이유는, 사목적 관점에서, 소위 말하는 5가작통법까지 적용하였던, 참혹하기 그지없었던,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와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를 겪으면서도 신앙의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천주교 신앙을 지키고자, 1790년대 혹은 그 이전에 이미 우리말로 번역된 필사본 형태의 "셩경직해광익"을, 1860년대까지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이 주일들과 첨례일들에 공소 등에 함께 모여서 지속적으로 열독해 왔던, 당시의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의 입장을 십분 고려하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4-4-4. 그리고, 예를 들어, 중국어로 올바르게 음역된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의 음역 이름인 "額我略"이, 그러나 당시의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에 의하여, 귀로 들었을 때에 우리말 음값 "에오랴ㅗ", 즉, "에오랴오", 혹은 "에오료"라는 이름으로 대단히 잘못 중역 음역(secondhand transliteration)이 된 것을, 한글 전용을 통하여, 바로잡는 것이, 1881년에 이르러 활판본 "천주성교공과"가 출판되어 우리날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에게 배포될 때까지도 성취되지 못한 또다른 이유는, 1871년 혹은 그 이후까지 지속되었던, 매우 참혹하였던 그리고 최대 규모였던,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4-4-5.  질문 3: 위의 질문 2와 관련하여, "1897년 이전의 시점에 발생한 그 무엇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질문 3에 대한 답변들: 위의 제3-2-2항제3-2-3항, 그리고 제3-2-5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에 의하여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7)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인들에 대한 기나긴 참혹한 박해의 시기가 종결되고 난 후인 1890년에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대목)으로 임명된 뮈텔 주교님(Mutel, Gustave Charles Marie(1854-1933)에 의하여,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의 우리말 음역 이름으로서 그 당시까지 사용되어 온 "에오랴오", 혹은 "에오료"등의 잘못 음역된 중역 음역(secondhand transliteration)이 된 용어 대신에, "그레고리오"라는 직역 음역(literal translation)이 된 용어의 사용이, 우리말본 "성경직해광익", 우리말본 "천주성교공과" 등의 천주교회 교회의 우리말본 문헌들의 출판을 통하여, 우리나라 천주교회 안에 공식적으로 처음으로 도입되었기 때문이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18) 1895년에 초간된 "치명일기" 등에 근거하여,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 안에서 이들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을 추진하기 위하여, 1895년을 전후하여, 그러나 1897년 이전, 이들의 순교 기록들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우리말 세례명 "에오리오", "에오료", "에오랴오" 등이 라틴어 이름 "Gregorius"의 음역 이름임을 또다시 알아차리게 되었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작성 중입니다. 

 

https://ctext.org/dictionary.pl?if=en&char=%E9%A1%8D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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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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