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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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완 [raph] 쪽지 캡슐

2000-11-12 ㅣ No.2207

사계가 뚜렷한 우리 나라에서는 개개인이 좋아하는 계절이 확연히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난 봄을 좋아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가을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끔찍히도 추운 겨울을 좋아하는 특이 체질도 있지만 말이다.

결실의 계절 가을, 아니 이제 떠나야할 때를 생각하는 계절.

이 가을에 난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의었다.

생각하니 그냥 가슴아픈 아버지의 죽음.

가실 때 키워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말 한마디 드리지 못하였기에

더욱 슬픈 이별이었다.

빈소에 찾아와 연도를 바쳐주신 본당의 모든 교우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20년 전에 쓴 시 한 편을 옮긴다.

 

" 기   도 "

 

가을엔 날게 하소서.

 

나래없는 모든 것들도

이 하늘 이 자연 위를 날아

당신의 크신 영광을 찬미케 하소서.

 

멈추어선 모든 것들도

이 숨결 이 젊은 속에

조금씩 움직여 당신을 찾게 하소서.

 

가을엔 웃게 하소서.

 

눈없고 입없는 모든 것들도

이 영광 이 기쁨 속에

몸으로 영혼으로 당신을 찬미케 하소서.

 

이미 죽어 묻힌 모든 것들도

생전의 사랑을 빌어

당신의 은총 속에 모두를 알게 하소서.

 

가을엔 돌아가게 하소서.

 

말씀과 사랑으로 살찌워진

세상의 작은 미물까지

당신의 커단 품안에 영원케 하소서.

 

길이 어두워 헤매이는 모든 것들에게

빛으로 사랑으로 이끄시어

당신을 뵈옵게 하소서.

 

가을에

눈멀고 귀멀어 당신을 알지 못하고

가을에

마음이 병들어 당신을 찾지 못하고

가을에

이미 죽어 땅에 묻힌 모든 것들에까지

더는 당신을 떠나지 말게 하소서.

 

이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소서.

                                                                                                 -----1981.9월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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