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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변화의과정2: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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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칠 [mpark] 쪽지 캡슐

2002-07-15 ㅣ No.2887

 변화의 과정 2 : 엘리야

(먼저 열왕기 상권 17장 이하를 읽으세요)

 

 

 

(엘리야는 이스라엘 아합 왕 시절의 예언자이다.)

엘리야는 가르멜 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예언자들과 이스라엘을 포로생활에서 해방시켜주신 분이 야훼 하느님인지, 아니면 바알 신인지 한 판 싸움을 벌인다. 싸움에서 이긴 엘리야는 450명의 바알의 예언자들을 학살하게 한다.

(그에 의하면) 참된 신을 섬기지 않는 자는 죽어야 한다.

엘리야는 어떠한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야훼께 대한 완전한 신앙의 증거자인 것이다(61쪽)...

 

엘리야는 하느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싸우는 사람을 상징한다.

즉, 자기 안에 있는 450명의 바알의 예언자들을 모두 죽이려는,

450가지의 모든 잘못을 근절시키려는,

하느님의 뜻에 상응하지 않는 모든 것을 억압하고 제거하려는 일에

자발적으로 뛰어든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다(62쪽).

 

그렇게 용감한 그가 이세벨의 위협에 놀라

광야로 도망가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세벨의 형태를 빌린 자기 자신의 그림자와 만나자

이미 항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세벨은 여기에서 아니마,

즉 그가 자기으 관념론 속에서 억압해 왔던 여성적인 그림자를 상징한다...

엘리야는 이제 자기의 그림자를 더 이상 피해 갈 수 없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한다(62쪽)...

 

천사도, 빵도, 물도 엘리야로 하여금 길을 떠나갈 힘을 주지 못한다.

그는 먹고 마신 다음 다시 누워버린다.

힘을 낼 수 있을 터이지만 그 스스로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하느님과, 그리고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잔뜩 심술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천사가 그것으로부터 그를 해방시키기에는,

그는 아직 너무 깊이 자기의 절망 속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64쪽)...

 

주의 천사가 두 번 째로 그를 흔들어 깨우며 말한다:

"갈 길이 고될 터이니 일어나 먹어라!"(1열왕 19,7).

이제 그는 먹고 마신 다음, 그 음식의 힘으로 40주야를 걸어 호렙 산에 이른다. 그의 길은 사막을 통과해야 하는 길이다.

아직 모든 것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그는 아직도 기나긴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가 여행을 통해 변화되어 다시 하느님께 자신을 열 때까지

전 생애을 통해 가야 하는 길을(40일. 40년). 그는 사막을 통과해야 한다. 오로지 자기 혼자서,

다른 데로 전향하거나 회피할 방법도 없이,

가차없이 자기 자신과 싸우며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64-65쪽)...

 

호렙 산에 도착한 엘리야는 밤을 지새기 위해 한 동굴로 들어간다.

동굴은 보호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것은 누구나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자궁에 대한 상징이다....

그는 다시 푹 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마침내 자신을 포기하고 안전하게 자기 집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것은) 퇴행에 대한 동경이다(65쪽)...

 

그러나 하느님은 엘리야를 쉬게 하지 않으신다...:

"엘리야,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1열왕 19,9)...

"밖으로 나와서 주님 앞에 있는 산 위에 서 있거라!"(1열왕 19,11).

엘리야는 동굴 밖으로 나와야 한다.

보호되어 있는 상태에서, 퇴행에서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는 서 있어야 한다.

스스로 서서 싸움에 대항해야 한다.

다시 일어서서 산 위에, 온갖 풍상을 겪게 하는 바람 속에 서 있어야 한다.

그는 자신을 변화시키시는 하느님을 동굴에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가 자신의 삶과 맞설 때 만나게 된다(65쪽)...

 

하느님은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길 가운데도 계지시 않는다...

하느님은 세상의 모든 악을 쓸어버리시는 폭풍의 하느님이 아니시다.

따라서 그분은 세상의 온갖 악 속으로 뛰어들어가서 넘치는 열정으로 모든 부정적인 것을 전멸시키려 하는 사람 또한 바라시지 않는다(66-67쪽).

 

하느님은 지진의 하느님이 아니시다.

모든 것을 가르고 부수어 온갖 것이 서로 뒤섞이게 하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모든 것을 둘로 쪼개어

절대적인 대립을 구축하는 사람 또한 원하시지 않는다(67쪽).

 

그리고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모든 부정적인 것을 태워버리는,

불의 하느님이 아니시다.

오히려 하느님은 부드럽고 그윽한 산들바람 속에서 나타나신다.

하느님은 엘리야가 상상했던 야단치고 호통을 치시는 신이 아니라,

그윽하고 다정하며,

자상하고 감정이 섬세하며,

부드럽고 온화한 신인 것이다(67쪽).

 

하느님은 이 놀라운 예언자를 그 놀라운 장면 속에서 변화시키셨다.

그분은 야단스럽고 격정적이며 완고하고 금욕적인 한 사람을

부드럽고 온화하며, 주의 깊고 상냥한 사람으로 만드셨던 것이다...

엘리야는 격정적인 사람이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격정을 변화시키셨다(68쪽)...

 

엘리야 사건에 의하면 우리에게 있어 격정의 변화는

우리가 자신의 격정과 충동, 분노, 질투, 불안 그리고

비애와 화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엘리야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의 비애와 우울의 밑바닥에까지 들어가서,

그것을 온 몸으로 견뎌내야 한다.

바로 우리가 그 바닥에 있을 때,

하느님께서 한 천사를 통하여

우리의 슬픔과 절망을 새로운 힘과 희망으로 변화시키신다.

우리는 자신에게 있는 노여움과 공격심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것들을 거친 다음에야

우리는 하느님께 귀를 기울이는 침착과 고요에 이르게 된다(69쪽)...

 

엘리야 사건은 우리에게,

우리의 온갖 격정은 하나의 의미가 있으며,

그것은 또한 에움길과 미로를 거쳐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한다는 확신을 준다(71쪽)...

 

 

 참조: 2876: 변화의 과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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