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동성당 자유게시판 : 붓가는대로 마우스 가는대로 적어보세요
아듀~ 마이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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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후암동 집은 신작로 도로가에 있던 작은 일본식 이층집이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큰 신작로에 차들이 별로 다니지 않았다. 가끔 미군짚차를 개조하여
만든 시발택시와 미군트럭엔진에 드럼을 펴서 덮어씌워만든 시내버스가 가끔씩 다니곤 했
었다. 또한 주위에 미8군이 위치하였으므로, 미군들을 위한 대형 택시와 미국 소유의 자가
용 승용차들이 운행되고 있었다.
이층 일본식 다다미방에서 누나와 동생과 함께 신작로를 내려다보면서, 미군 소유의 예쁜 승
용차가 지나가게 되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욕심이 많았던 누이는, 항상 자기는 좋은 차를 가지고 동생들에게는 별로 좋
지 않은 차를 나누어 주곤 했었던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50년에 그 당시에는 개인승용차란, 사업을 하는 재벌들이나 필요했던 특
별한 것으로 개인들은 감히 소유할 엄두가 나지 않는 대단한 물건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나라에 개인 승용차소유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88년 올림픽이후라는 생
각이 든다. 그 당시 정통성을 계승받지 못했던 정권은 민심수습의 한 부분을 경제성장에서
찿으려는 시도로 승용차 소유를 은근히 권유했던 분위기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때 지방현장에 출장이 잦았던 나도 버스타기에서 벗어나 마이카 족에 합류하게 되었고,
1994년 11월에 두 번째 소유인 지금의 승용차를 구입하게 되었다. 그 당시만하여도 괜찮은
승용차급에 속했던 내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업그레이드되는 주변의 승용차들로 인해 차츰
급이 낮은 급의 자동차로 변모해 갔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자꾸 나로부터 멀어져
갔던는 세상 일들처럼, 실제로 성능 면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노후함으로 매년 과분할 정도
의 수리비를 부담하며 힘겹게 운행되가가, 급기야 지난주에는 아들이 운행 중에 미션에서
'펑'하는 소리가 나며서 길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보험회사에 연락하여 도착한 레커차에
실려와 아파트 주차장에 덩그러니 서있는 자동차를 바라보니, 그동안 자동차와 함께하였던
세월 속의 회한이 밀려왔다. 수리비용이 많이들 것 같다는 레커차 운전기가의 말을 전해 듣고
아들에게 폐차를 시키라고 이야기하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가장 의욕적으로 사명감
을 가지고 일을 하였던 40대에, 나와 함께한 추억을 가지고 있던 주변의 소중한 물건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그것은 또 하나의 작은 아린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진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꼭 생명체에 국한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폐차를 시키기 전에 사진 한 장 찍어 놓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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