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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마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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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린 [dlchang] 쪽지 캡슐

2008-11-25 ㅣ No.6679

 
 

내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후암동 집은 신작로 도로가에 있던 작은 일본식 이층집이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큰 신작로에 차들이 별로 다니지 않았다. 가끔 미군짚차를 개조하여


만든 시발택시와 미군트럭엔진에 드럼을 펴서 덮어씌워만든 시내버스가 가끔씩 다니곤 했


었다. 또한 주위에 미8군이 위치하였으므로, 미군들을 위한 대형 택시와 미국 소유의 자가


용 승용차들이 운행되고 있었다.


이층 일본식 다다미방에서 누나와 동생과 함께 신작로를 내려다보면서, 미군 소유의 예쁜 승


용차가 지나가게 되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욕심이 많았던 누이는, 항상 자기는 좋은 차를 가지고 동생들에게는 별로 좋


지 않은 차를 나누어 주곤 했었던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50년에 그 당시에는 개인승용차란, 사업을 하는 재벌들이나 필요했던 특


별한 것으로 개인들은 감히 소유할 엄두가 나지 않는 대단한 물건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나라에 개인 승용차소유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88년 올림픽이후라는 생


각이 든다. 그 당시 정통성을 계승받지 못했던 정권은 민심수습의 한 부분을 경제성장에

 

찿으려는 시도로 승용차 소유를 은근히 권유했던 분위기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때 지방현장에 출장이 잦았던 나도 버스타기에서 벗어나 마이카 족에 합류하게 되었고,


1994년 11월에 두 번째 소유인 지금의 승용차를 구입하게 되었다. 그 당시만하여도 괜찮은

 

승용차급에 속했던 내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업그레이드되는 주변의 승용차들로 인해 차

 

급이 낮은 급의 자동차로 변모해 갔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자꾸 나로부터 멀어져

 

갔던는 세상 일들처럼, 실제로 성능 면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노후함으로 매년 과분할 정도


의 수리비를 부담하며 힘겹게 운행되가가,  급기야 지난주에는 아들이 운행 중에 미션에서 

 

'펑'하는 소리가 나며서 길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보험회사에 연락하여 도착한 레커차에

 

려와 아파트 주차장에 덩그러니 서있는 자동차를 바라보니, 그동안 자동차와 함께하였던

 

월 속의 회한이 밀려왔다. 수리비용이 많이들 것 같다는 레커차 운전기가의 말을 전해 듣고


아들에게 폐차를 시키라고 이야기하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가장 의욕적으로 사명감


을 가지고 일을 하였던 40대에, 나와 함께한 추억을 가지고 있던 주변의 소중한 물건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그것은 또 하나의 작은 아린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진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꼭 생명체에 국한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폐차를 시키기 전에 사진 한 장 찍어 놓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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