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그리스도 우리들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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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이 [pear] 쪽지 캡슐

1999-12-15 ㅣ No.1853

지난 12월 9일에 아재화 신부님이 올려주신 게시물 1803 번의 깜짝 이벤트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신부님께선 ’그리스도 우리들의 첫눈"이란 표현을 쓰셨군요.

그 외에도, 여러가지 것들이 있었지만,

이번 겨울엔  눈을 기다리는 많은 분들을 야속하다는 맘이 들 정도로 더디게 우리들을 찾아왔습니다.

첫눈이 내렸던 날에 저는 눈을 보지 못하였답니다.

그리구,

오늘 저녁에 눈이 많이 왔지요.

사람들이 눈을 기다리는 맘은 무엇때문일까요?

눈이 오면,

어린아이들에서부터 나이가 연로하신 어른들까지 얼굴에 환한 미소가 그려집니다.

물론 눈 때문에 거리에서 고생을 하시는 분께는 죄송한 맘도 적지는 않지만,

하여간 눈이란 것은 모든 이들의 맘을 들뜨게 하기도 하고

눈이 내리는 겨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잊고 있었던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또 맘이 평화로워지기도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가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이 대림절에

첫눈을 기다리며 동심으로 돌아 갈 수 있는 저희들을 예수님께서도 기쁜맘으로 바라다 보고 계실 것 같습니다.

 

눈이 오니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어렸을 때 동생들이란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 던 일,

눈이 오는 날엔 집을 나서면 조심 조심 곡예를 하듯 내려가야 했던 가파른 언덕에다가

동네 아이들과 반들 반들 윤이 날 정도의 스키장(?)을 만들고선 나무 썰매를 타다가 어른들에게 호통을 당하던 일,

남녀 공학이었던 고등학교 일학년 때

(믿기 어려운 꿈 같은 일로 여겨지겠지만 사실이었던...)

하루의 수업을 전폐하고 첫눈이 하루종일 내리던 교정에서 전교생이 뒤엉켜서 눈싸움을 하고 운동장의 스피커에선 선생님들이 틀어주신 ’Love story’ 영화의 배경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즐거웠던 사춘기의 겨울...

대학시절 써클의 회지 편집 작업중에 떨어진 편집용지(갱지)를 사러 을지로에 나갔다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펑펑 퍼부어대는 눈발 땜에  써클룸으로 돌아가지 않구서는

그 무거운 갱지 뭉치를 떠매고 거리를 활보 하던 일,

결혼 후 첫 눈이 오던 날 회사 선배 부부와 방배동 골목에서 밤새워 술마시던 일...

너무 많은 눈에 얽힌 추억들은 모두가 이쁘고 아름다운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 살아온 발자국들을 뒤돌아보면,

아름다워 잊지 못할 기억들의 너머로,

지치고 힘들고 아프고 외로웠던 눈물들 또한 우리들의 마음 속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들로 남아 있을 겁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주어지는 고통들은 대부분 희미해지고,

잊혀져 갑니다.

하지만 때로는..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 아픔이 너무 크고 깊은 것이어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로 고스란히 응어리진 상처를 묻고 있는 눈물도 있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다시 새롭게 예수님을 만나게 된 저로써는

신앙을 갖고 믿고 기대어 모든 것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그 분이

늘(내가 그 분을 모른 채로 살아온 날들에 조차..)

저와 함께 계셔 주셨다는 벅찬 깨달음에 아주 아주 많이 울었었지요.

그 하소연의 눈물과 함께 제 살아온 날들의 그늘이 많이 치유되었답니다.

그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내 사랑 주님, 하느님, 예수님께 이렇게도 할 말이 많았었구나...."하고 말입니다.

예수님, 그 분을 알게 되고나서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저는 마음의 위로와 평화를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요즘도,

살면서 부닥치게 되는 적지않은 어려움을 만나게 될 때마다

저는, 예수님의 의자에 앉는답니다.

예수님 그 분은 저에게 아주 편한 의자입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아픔이 다가올 때에,

예수님의 의자에 앉아서 그 분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저에게 힘과 용기와 또 다른 사랑을 심어줍니다.

내 친구 예수님은 제가 다른 곳을 방황하다 지쳐 다시 찾을  때마다 언제나,

늘 그렇게 있어왔던 그 자리의 의자처럼 저를 앉혀 주시고,

저의 잘못을 꾸짖지 않고 미소로써 용서해 주시며, 저의 변명과 아픔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신답니다.

예수님이 내어주신 의자에서 수다를 떨고 일어날 때는 언제나 다짐을 하곤 합니다만

저는 언제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겸연쩍어 하는 어린아이가 되곤 하지요.

 

나도 예수님처럼 또 다른 누구에겐가 편히 쉴 수 있는 의자가 되고 싶다구요.

.............................

 

판공이 코 앞에 다가오니까....

하느님이 제게 주신 사랑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죄스러움을

그 분의 의자에 앉아 고백해야 하려나 봅니다.

 

’그리스도 우리들의 의자’

 

하느님!

제게 이처럼 편한 의자를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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