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내가 만난 예수 -바리사이 시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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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이 [pear] 쪽지 캡슐

2000-07-12 ㅣ No.3583

 "하찮은 음식이지만 맛있게 드십시다. 자, 식사를 계속 하시죠."  내가 말했다.

 

 나는 그 여자가 예수를 떠나 자기가 떠나온 곳 - 어디가 됐든 - 으로 돌아가고 손님들이 다시 식사에 열중하기를 바랐다. 친구들을 쳐다보니 모두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일곱 명 모두 중병을 선고 받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식사를 계속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 불쾌한 일이 그들의 식욕을 빼앗아 가 이제는 아무것도 먹을 생각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유지해 왔던 편안한 분위기를 망가뜨린 장본인은 바로 그 여자였으며, 그 여자는 여전히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모두들 더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자포자기의 분위기에 짓눌려 있었다.

 

 이 때 예수가 몸을 돌려 그 여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두 사람이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는 그 여자를 계속 쳐다보면서 나에게 말을 했다.

 

 "시몬, 당신을 이 여자를 보고 있지요?"

 

 이 여자를 보고 있냐구? 이게 또 무슨 얼토당토아닌 말인가! 나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 보았다.

 

 "시몬." 예수가 다시 나를 불렀다.

 

 "네?"

 

 "당신은 이 여자를 보고 있지요?"

 

 "선생님." 나는 거의 사정하는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 이 여자를 보시오. 시몬. 내가 당신 집에 들어섰을 때 당신은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아주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입맞춤도 하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맞추었습니다. 당신은 내 머리에 기름도 발라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주었습니다. 그래도 모르겠소. 시몬?"

 

 내 집에서, 그것도 친구들과 가족과 시종들이 보는 앞에서 창녀와 집주인을 비교하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며 망신인가!

 

 "무엇을 모른다는 말입니까. 선생님!" 나는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며 간신히 물었다.

 

 "이 여자는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적게 용서받는 사람은 적게 사랑합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는 여전히 그 여자를 바라보면서 그 여자에게 직접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죄는 용서받았습니다."

 

 이 말에 나의 다른 손님들은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누구인데 죄까지 용서해 준단 말인가?"

 

 예수는 계속 그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 소리없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습니다. 평안히 가시오."

 

 가기 전에 그 여자는 예수에게 몸을 기울이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순간적으로 내 어깨에 닿은 젖어 있는 그 여자의 긴 머리카락을 털어내며 내가 가까스로 들은 것은 "답"이라는 단어였다. 그 여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예수는 몹시 기뻐했다.  예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여자를 보고 활짝 웃어 보였다. 그 여자가 일어서는 동안에도, 옷 매무새를 고치고 왔던 길로 다시 가는 동안에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도 예수는 계속 웃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빠져나가는 그 여자를 마치 루비보다 더 가치있는 여자인 양 바라보는 예수의 눈길을 보았다. 그 여자가 정원의 구경꾼들 사이를 헤치고 나가 대문으로 당돌하게 사라지는 모습을 내내 지켜보고 있는 예수의 눈길을 보았다.

 

 그 여자가 가고 나서야 예수는 자신이 만찬에 초대된 손님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듯이 몸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손을 내밀어 포도주 잔을 눈높이로 들어 보인 다음 단숨에 마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방금  그가 보인 제스처는 자신에게 대단한 헌신을 보였던 그 여자에게 침묵의 건배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만 그녀를 앞으로 더 이상 보지 않게 되기를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 이후의 만찬 분위기가 그런대로 양호하게 진행되었다고 말한다면 약간 과장한 것일까? 우리는 끝내 그 끔찍했던 사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예의상 사소한 말들을 주고 받으며 시간을  -천만다행으로 짧은 시간이었다 - 메웠다. 식탁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예의상 요구되는 최소한의 시간 외에는 더 이상 지체하기 싫어했다는 사실은 소경이 보아도 명확한 것이었다. 예수조차 말이 없었다.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식사가 끝나갈 무렵에는 정원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다 가고 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다른 이들은 분명 그 놀라운 이야기를 이웃에게 알려주려고 서둘러 갔을 것이다. 남은 한 사람의 구경꾼은 기둥 뒤에 쓸쓸하게 서 있었다. 아마 그에게는 이야기를 전할 만한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손님들이 지극히 격식을  차린 인사를 나누며 한심한 행사가 어쨋든 끝났다는 데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마지막 손님이 돌아간 후  대문을 닫으면서 앞으로는 절대 잘 모르는 사람을 초대하는 모험을 하지 않겠다고 아내에게 다짐했다. 아내는 상을 치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매우 지쳐 보였다.

 

 정원에 서서 아내가 내실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나에게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시몬 자러 가요. 이제 당신이 할 일은 없어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군." 내가 말했다.  "곧 올라가지."

 

 "그러면 먼저 잘게요."  계단을 돌아 올라가면서 그녀가 말했다.

 

 "잘 자구려. 그리고 오늘 수고가 많았소."

 

 그러나 아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집 안이 조용하다. 모두들 잠자리에 들었다. 자러 가기 전에 나는 다시 빈 만찬장으로 갔다. 아까 앉았던 자리에 앉아 유령들이 모이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빈 자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예수와 그여자 사이에 있었던 의외의 묵시적 교류. 친구들이 당황해하던 모습 등을 되새겨 보았다. 그런 일이 오늘 이 자리에서 일어났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 모든 일이 정말 여기서 일어난 것일까?  방안에 밴 냄새가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해 준다. 그 여자의 향유 냄새가 아직도 방안에 배어 있었다.

 

 포도주를 한 잔 따른다. 내가 특별한 손님들을 위해 아껴두었던 이 고급 포도주를 제대로 즐긴 손님이 있었을까? 다 소용없는 것이었다. 나는 포도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예수와 바리사이즘을 어울리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어리석은 생각으로 소중한 친구들까지 끌어 들였다는 생각에 자책감마저 들었다. 가문에 망신만을 가져왔을 뿐이다.  좀 더 지혜롭게 처신할 수는 없었을까?

 

 예수는 그 여자에게서 죄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볼 것과 그녀의 행위를 창녀의 더러운 행위로만 볼 것이 아니라 회개한 여자의 절실한 표현으로 이해하라고 도전장을 낸 것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나도 내 나름의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변화에 관한 한 경계심을 갖도록 교육받았다.  폭발적인 감정의 표출만으로 회개했다는 증거로서 부족하다.  그녀는 분명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지신이 살아온 삶을 정화할 만큼 충분치는 않았다.

 

 나는 그 여자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정말이지 내 말을 믿어주기 바란다. 오히려 나는 그 여자가 그 더러운 생활을 집어치우고 선한 일에 헌신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느님의 풍요로움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여자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새출발을 하든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내 삶과 그 여자의 삶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난 그 여자에 대해 어떤 책임도 없다.

 

 여자를 대하는 나의 입장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지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들아, 내 지헤에 마음을 쏟고

          내 슬기에 귀를 기울여라.

          탕녀에게 마음을 쏟지 말아라.

          그 입술에서는 꿀이 떨어지고

          그 말은 기름보다 매끄럽지만

          그 걸음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길을 헤맨다.

          그런 여자에게서 될수록 멀리 떨어지고

          그 집 가까이 가지도 말아라.

 

 

 나는 그 여자의 집 가까이에 갈 생각은 없지만 그 여자의 행위를 비난할 도덕적 의무는 있다. 이 사회의 기준이 보존되려면 올바른 행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심판해야만 한다. 범죄나 비행은 파괴적인 행위로 규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도덕적 둔감함과 구별이 되지 않는 무형의 사랑의 이름으로 결정적인 판단을 보류할 수는 없다.  반대자나 적을 살해하는 행위나 간통과 간음을 막기 위해서는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아내에게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나의 연약하고 덧없는 사랑보다는 오히려 율법의 힘인 것이다. 우리를 의로움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율법의 유죄 판결에 대한 성스러운 두려움이다. 그리고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인간 관계에 대해 교육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율법의 지혜이다.

 

 이 괴로운 마음을 또 한 잔의 술로 달래는 것도 나쁠 것은 없겠지. 나는 항상 포도주를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라고 말한다.  포도주를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라!

 

 아마 예수의 독립성과 끊임없는 전도여행이 예법과 관례에 관한 기존 의식에 불만을 갖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예수는 독신이고, 가정에 매여 있지 않으며, 또한 어떤 특정한 계충이나 장소, 직업에 얽매이게 하는 정상적인 일상의 의무에서 자유롭다. 그는 가는 곳 마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부인들의 지원을 받으므로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이 편할 것이다.  그 돈 많은 부인들이 없었다면 그는 과연 어떤 처지가 되어있을까?

 

 예수는 과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느님을 섬기고 가족을 사랑하며 그들을 먹이고 입힐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알고나 있을까?  예수가 당연시하는 "일용할 양식" 을 얻기 위해 보통 사람들이 기울이는 엄청난 노력을 생각하면 외경심조차 인다.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며 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세 살아가는지 모를 거라는 의구심도 든다. 우리와는 달리 그는 한 곳에 계속 멀물러 살면서 자신이 한 말의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눈물로써 죄를 뉘우치는 그런 여자들과 한 공동체를 이루고 살지 않아도 된다면 그들을 낭만적으로 대하기란 쉬운 일이다.

 

 예수는 언제든 자유롭게 떠나 열린 길을 마음껏 다니다 이 마을 저 도시로 들어간다. 새로운 고장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초대를 받아 음식과 포도주를 마시며 정체되었다고 주장하는 기존의 평안함을 깨어버린다. 그러고는 다시 그 고장을 떠나 순회의 여정에 오른다. 그 여정은 마치 전혀 새로운 여정처럼 되풀이된다. 그가 제아무리 예언자라 하더라도 그의 가르침은 안정된 삶을 꾸려나가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우리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언젠가 사람들은 자신들이 받은 상처로 인해 지혜로워져 예수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함으로써 자신과 가족들을 보호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잠자러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잔 더 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겠지. 나는 몸을 숙여 술병을 빈 잔에 기울여 본다. 그러나 거기에도 위안은 없다. 술병은 비었다.  모든 기쁨도 지나갔다. 이제 더 이상 마실 것도 없으니 잠을  자러 갈 땐가 보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무릎이 휘청거리며 말을 듣지 않는다. 몸을 추스리고 열린 창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시원한 밤 공기가 달아오른 얼굴을 식혀준다. 칠흑 같은 하늘은 이지러진 달과 수많은 별들로 수놓아져 있다. 우주는 모든 것이 질서있고 평화롭게만 보인다. 저 별들이 생각할 수만 있다면 이 무질서한 세상과 실패한 만찬과 이루어지지 않는 소망들로 상처받는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모든 것을 내려다보면서 아무것도 다가오지 못하게 거리를 두는 것이 그들을 더욱 지헤롭게 보이게 한느 것일까? 우리가 슬픔에 차 있을 때에도 변함없이 빛나고 있는 저 별들은 우리가 언제나 그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있을까?

 

 창가에서 돌아서면서 나의 정신 나간 질문들도 떨쳐버렸다. 질문, 질문,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은 낳을 뿐이다.  ’시몬, 당신은 이 여자를 보고 있지요?" 스스로 자문해 본다.  무엇이 보이는가?

 

 만찬장은 더욱 어두워져 좁아 보인다. 나는 벽을 더듬어 의자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문쪽으로 빠져나간다. 손에 아무것도 닿지 않는 것을 보니 입구 쪽이 확실한 모양이다.  잠시 멈추어서 냄새를 맡아본다. 그러나 공기가 정화되었는지 확실히 알기가 어렵다.  아침쯤이면 확실히 깨끗해지겠지.

 

 어두운 만찬장을 힐끗 뒤돌아보고 나서 나는 정원을 가로질러 어두운 계단을 오른다.  등잔불을 켜지 않은 것에 대해 자신을 탓해본다. 나는 왜 어두움 속에서 더듬거리며 헤매고 있는가? 기름을 절약하려고?  게단을 오르는 것이 마치 헤르몬 산을 오르는 것처럼 힘들다. 엉거주춤하게 엎드려 무겁게 느껴지는 발을 층계에 옯겨놓는다. 이제 조금만 올라가면 된다.

 

 그 여자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리고 예수는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서로의 꿈속에 있는 것일까?  예수가 지금의 내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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