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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남 [obbji] 쪽지 캡슐

2003-04-20 ㅣ No.2356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데도 평생 죽지 않을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살아온 제 자신입니다. 제 시신 옆에 저의 친지들이,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고 어떤 이는 지나간 제 이야기를 합니다. 두렵습니다.

살면서 귀가 아프도록 들어온 사랑과 희생, 나눔에 부족함이 많았기에 또 알게 모르게 지은 저의 죄 때문에 하느님 앞에 가기가 두렵습니다.

 

저의 죽음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슬퍼하는 가족들이 보입니다.

배우자의 부족하고 못난 점을 감싸주기 못하고 아프게 상퍼를 주었던 것 용서를 받고 싶습니다. 이렇게 떠날 줄 알았더라면 더 아끼고 사랑하며 살았을 텐데 후회가 됩니다.

 

저기 저곳에 제 아이들이 울고 있습니다. 내 아이들!

뜨거운 눈물이 또 다시 흘러내립니다.

신앙적인 삶을 가르치기보다 "공부 좀 하라"고 몰아 세웠던 제 아이들이 울고 있습니다. 그들이 좌절하고 힘들어 할 때 좀 더 따뜻하게 용기를 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구속하고 제 욕심만을 앞세웠던 것이 지금에 와서야 부끄럽습니다.

일찍 깨달았다면 오늘의 이 서러움이 좀 덜 하였을까?.....

 

늙으신 내 어머니. 불쌍한 내 어머니.

당신보다 먼저 떠나보낸 이 불효한 자식 때문에 몸도 가누지 못하고 내 영정 앞에 쓰러져 계시는 내 어머니.

살아 생전에 좀 더 잘해 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에 가슴이 이어져 옵니다.

 

저쯤에, 때로는 부담스러워서 멀리했던 친척들, 인사조차 먼저 나누기 귀찮아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내 이웃들이 있습니다.

가진 것 나눠주는 아량을 베풀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때에는 왜 그토록 인색해서 오늘 이렇듯 부끄러운 죽음을 맞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나의 죽음 앞에 비웃음을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 사람 잘 죽었어" 이런 마음이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깝다고 만만하게 여겨 예의 없이 굴었던 말과 행동,

장담해 놓고 지키지 못했던 약속들.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주지 못한 무분별과 무관심.

기대를 저버렸던 나의 이기적이고 교만했던 태도.

너그러운 이해심과는 거리가 먼 선입견, 고정관념, 편협한 태도.

자기가 속상하고 우울하고 화가 났다는 핑계로 얼마나 자주 퉁명스럽고 불친절한 말투로 주위 사람들까지도 우울하게 만들었ㄴ느지........

또 다른 이들을 충고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냉랭하고 모진 말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곤 했는지.......

얼굴이 화끈 달아오릅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과 맺은 크고 작은 원한의 매듭을 풀고 싶은데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누가 나를 거부하고 나에게 심한 모욕을 주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는 용기와 참을성은 지닐 수 없었던 것이었는지.

가장 겸손하고 온유하게 그리고 성실하고 검소하게 살았더라면 오는 내 죽음 앞에 참된 평화가 있었을 것을.......

후회를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입니다.

 

나를 위한 장례미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성당봉사 좀 하라고 하면 겸손을 가장하며 바쁘다고 냉정하게 거졀했던

나였습니다. 어쩌다 봉사를 하면서 하느님보다 인간에게 더 칭찬받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사람이란 열 번 잘하다가도 한 번 잘못하면 그 한번만 기억하고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인간의 못남이기에 나에게 상처를 준 교우를 위해 기도하기보다 미워하며 흉을 본적도 있습니다.

제안에 사랑과 포용의 바다를 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세상의 허망한 유혹에 빠지고 싶어했던 적도 있는 죄 많은 저를 위해 미사를 봉헌하시는 신부님과 교우들이 보입니다.

이제 흙에 묻히기 위해 떠나갑니다.

이승의 삶을 부여잡으려는 저의 환상과 두려움과 집착과 열망을 봅니다.

그것을 당신은 너무도 잘 알고 계시지요?

나를 지으시고 자라게 하신 분은 바로 당신이시기에........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알고 계시는 당신이시기에........

 

당신은 보고 계십니다.

제가 붙잡혀서, 이끌려서, 제가 알지 못하는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함을..

저의 기력은 스러지고 저의 총명도 소용이 없습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저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연옥 영혼들이 끔직한 고통을 받으며,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오늘은 나의 것이지만 내일은 너의 것" 이라고.

 

당신 앞에 저는 아무런 비밀이 없습니다.

두려움과 부족한 답변을 감추지 않겠습니다.

눈이 볼 수 없고, 귀가 듣지 못하는 것을.

당신께서 죽음 너머에 저를 위해 마련해 놓은 것을 제가 알고 있기에.

사랑이 모든 것을 가늧케 한다는 것을 믿고 있기에.

당신의 이름 안에 저른 내어놓습니다.

 

주님, 죄 많은 제가 여기 있습니다.

감히 당신께 바라오니 하찮은 영혼이지만

저의 마지막 여정에 내내 함께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영원히 당신과 함께 머무를 집으로.....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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