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토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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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venivediveci] 쪽지 캡슐

2000-03-27 ㅣ No.2138

토르소 눈을 감아도 흐려지지 않는 잔상이 있을 때 나의 전신을 토르소에 붓는다. 달리려 해도 나의 다리는 늪에 빠져있고, 팔을 들어 구원을 짖고자 해도 나의 손은 이미 그 형상을 잃었다. 망념에 지친 끝에 나의 목을 따고 팔과 다리를 자른 뒤 토르소가 되었다. 표정도 생각도, 미소도 눈물도 없는 사지의 몸부림 없이 그저 흙뭉치로 존재하는 토르소 주님이시여! 나의 단상과 몸짓들은 결국 당신으로부터 나를 멀리 떨어뜨리고야 맙니다. 나의 머리 속 두부가 악의 꽃을 피울 때, 나의 손이 민첩하게 무엇을 저지르느라 땀 흘릴 때, 나의 발이 비참과 잔악의 길을 가고 있을 때, 나를 받으소서. 가시관을 받아 쓸 머리도, 못박힐 손과 발도 없는 나의 토르소를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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