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동성당 게시판

또 다시 그분을 십자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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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수 [kangcarolus] 쪽지 캡슐

2000-04-17 ㅣ No.1409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이 별로 반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지난 12월 24일 밤에 우리 모두 천번을 향해서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천번은 진작 넘었고 지금은 천사백번이 넘어 갑니다. 모두들 열심으로 게시판을 이용했고 활성화시켰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게시판을 열 때마다 사실은 속이 상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점점 열어보는 간격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컴퓨터가 고장이 난 이유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이삼일에 한 번 겨우 열어보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도 제가 사이버 공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게다가 사이버 공간을 많이 이용하는 계층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이버 공간이란 사이버 세대란 원래 그런거야. 그것을 이해 못하면 그 공간에 들어오지 말아야지 하고 저를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노력을 해보는데도 그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지난주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사제 평생 교육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사제 집중 교육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저는 미디어 교육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즉흥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연초에 미리 신청을 한 것이지요.

 

만화와 에니메이션에 대한 공부도 했고, 광고와 뮤직 비디오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영상 시대에 사목자가 갖추어야 할 그런 교육들을 받은 셈이지요. 특별히 ’메트릭스’를 이해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습니다.

 

강의 하시는 분이 메트릭스를 못본 신부님들 손을 들라고 해서 손을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그런 신부들이 많자 강사는 메트릭스를 봐야 오늘날의 영상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처음 십분간은 긴가 민가 했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본 영화더군요. 물론 한치 앞의 장면도 기억을 해낼 수는 없었습니다. 장면이 나와야 아--- 그랬었지 하고 말할 수 있었지요.

 

아무튼 그러고 보니 메트릭스의 많은 장면들이 광고에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것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지요.

그러다 보니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실습 중에 하나로 공익 광고를 한편씩 만들었습니다. 그때 우리 팀이 주제 노래로 정한 것은 ’타오른 꿈을 안고 사는 젊은이여, 우리 모두 함께 즐거웁게 노래해요.......’라는 노래였습니다. 그 광고를 발표하다가 슬라이드가 고장이 났습니다. 얼마나 썰렁했으면............

 

아무튼 어쩌면 그렇게 저는 정말 이 공간을 잘못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이해심 없는 고루한 사람으로 포기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리들의 게시판이 너무 사람 사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우리 전통 놀이 중에 ’가면놀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외국에도 ’가면 무도회’ 같은 것이 있지요. 그것이 갖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에 하나는 풍자와 해학입니다. 가면이란 무책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용기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무책임이라면 우리에게 혼란을 주었겠지만 가면놀이는 우리에게 기쁨을 얻게할 용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공간에서의 놀이가 가면놀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제가 이 마당에 나와서 놀이를 하고 있는 시간이지요. 관객들은 일단 저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자기 차례가 되면 마당에 나타나지요.

 

그런데 이 놀이가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천사백번이 넘게 놀이를 했는데 맨날 그 놀이가 그 놀이 입니다. 오히려 그 언젠가 마니또 문제로 논쟁을 벌이던 때는 이 게시판이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모두를 자신의 생각은 감춘채 조회수만 엄청나게 올라 가더군요.

 

그래도 약속한 날짜는 다가 옵니다. 4월 23일 예수님 부활하신 가장 커다란 축하 날까지 여러분들의 글들을 기다릴 것입니다. 천번을 차지한 사람은 사라졌더라도 그밖에 약속한 시상은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순절에 우리 모두 판공성사 보자는 메시지는 단 하나도 안올라와도 누구 군대 가는 것에는 그렇게 많은 메시지가 올라오는 우리들의 마음들을 한번쯤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부활절을 준비하면서 본당의 어른들은 성당 대청소를 하시는데 우리 젊은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5월에 청년연합회 생일을 맞이해서 무슨 행사를 한다고 했습니까? 그전에 5월 14일에 하는 경로잔치 때 우리 청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해서 해드릴 것은 무엇인지 생가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성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또 다시 죽으십니다.

우리가 또 다시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헬쭉 헬쭉 웃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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