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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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수 [suya21] 쪽지 캡슐

2000-10-31 ㅣ No.1882

화분의 남천 잎이 발갛게 물든지도 이미 오래입니다.  

이 계절에는 길가 아무렇게나 자라 있는 잡초까지도 가장 잘 어울리는 빛으로 제 몸빛을 가꿉니다.

아름답습니다. 자연이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나이가 드는 표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좀 들었단들 어떻습니까. 아름다움에 대하여 사물을 보는 눈만 제대로 갖추어진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일 것 같습니다. 눈앞에 전개되는 일에 대하여 편견이나 왜곡되지 않은 시각으로 세상을 대한다면 그 사람의 가을 또한 자연에 못지 않을만큼 아름답게 가꾸어졌다고 볼 수 있겠지요.

가을에는 누구나 한 번쯤 시인이 된다고 합니다. 이 가을에는 모두가 시인의 마음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려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가 오래 묵은 친구라도 좋고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는 직장동료, 혹은 가족이라도 좋겠지요.어쩌면 가까운 사이일수록 마음에 담아둔 말이 더 많이 쌓여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원래 문제라는 것은 가까운 사이에서 더 많이 생기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몇 번이나 ’이번에는 꼭 말을 해야지’하고 벼르기만 하다가 지나가버린 일인들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또한 혼자서 속으로만 가슴 아파한 일도 적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깊은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본다면 문득 그 사람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쩌면 그 사람이 먼저, 아주 오래 전부터 마음을 활짝 열고 이쪽을 향해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 마음에 단풍이 드는지 실바람이 부는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것임에 이 가을에는 마음에 담겨진 풍경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습니다.

내 눈과 마음안에 저 하늘을, 타오르는 저 가을 잎을, 골짜기마다 흔들고 지나가는 저 서늘한 바람소리를 담아내 듯이 사람의 마음도 기꺼이 담아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것입니다. 거기 더할 수 없는 따뜻함까지 포함한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는 얼마나 너그럽고 넉넉해질런지요.

조금씩 지나간 일을 반추하게 되는, 아마 오늘 가을이 깊어가는가 봅니다.

 

 

 

* 이 글은 제가 어떤 사보에 보낸 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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