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동성당 게시판
회합실과 사발면 |
---|
회합실 구석에 홀로 앉아 사발면을 먹는다.
교사들이 올 때는 저만큼 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늘은 김치사발면이다.
큰 사발, 큰 일꾼이라는 광고 카피.
나는 그 '큰'이라는 형용사를 묵상해본다.
크기가 크다는 것일까,
중요하고 위대하다는 것일까?
......
나는 어느 쪽일까 생각해보다가 말았다.
물을 붓고 난 후 3분이란 시간은 참 길다.
내 평생 먹은 사발면의 절반 이상은 아마 성당에서 먹었을 거다.
나무 젓가락은 가시가 너무 많이 일어나서 먹다가 내 목을 찌를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나의 배고픔을 이길만큼은 걱정스럽지 않다.
옷에 튀기지 않도록,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환기를 꼭 시킬 것......
젓가락에 김치가 잘 잡히지 않아 서운한 마음을 억누르는데
천장 위에선 쥐들이 냄새를 맡고 발광을 한다.
얼마전 본 영화에서 춤추며 머리에 쥐가 난다고 외치던 쥐들이 떠올랐지만
지금 내 눈 앞에는 보이지 않으므로
나는 여유있게 사발면을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사발면을 먹고 있노라면
예전에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생각난다.
그 사람과 사발면에 얽힌 유별난 추억이 있다거나
그가 사발면을 좋아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회합실 구석에 앉아 사발면을 먹고 있으면
그가 생각이 난다.
하긴 언젠들 생각이 안 나랴마는......
나는 오늘도 회합실 구석에서
캐비넷 안에 단 하나 남은 사발면을
다른 구석에서 찾아낸 나무젓가락으로 저으며
'결식아동돕기 바자회'를 준비한다.
결식아동돕기 바자회를 준비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꼭 끼니를 챙겨먹게 되는 이 아이러니.
사발면 하나 사 먹을 때마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
사발면 공장 아가씨들
구멍가게 아저씨가족이
행복해지면 좋겠다.
암튼 아무리 김치사발면이라도
김치는 있는게 좋겠다.
밥도......
오늘 저녁에도 국물이 라면발에 스치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