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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필독] 빵 늘림 기적(the miracle of the multiplication of the loaves)에 대하여.. [성경공부] 827_ 832_빵늘림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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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8 오전 3:29:4 [218.236.113.*]

2009-01-10 ㅣ No.827

+ 찬미 예수

[추가 일자: 2023-12-09]
게시자 주: (1)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는, 2008년 12월 17일에 진행된 가톨릭 신문 편집국장과 정진석 서울대교구 교구장 주교님/추기경님과의 2009년 신년 대담(A)이 있은 후에, 정진석 교구장 주교님과 2008년 12월 29일에 2009년 신년 대담(B)을 가졌는데, 우선적으로 아래에 그 주소들이 안내된, 가톨릭 신문사 기자와의 대담 (A)의 본문과 세속의 일간지인 중앙일보 기자와의 대담 (B)의 본문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해 보면, 현격하게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이 문제 때문에 굿뉴스 자유게시판에서 있었던 대화들이 (C)에 있습니다.

(2) 그리고 아래에 있는 본글은, 정추기경님의 중앙일보 대담에 대한 소견 - 조정제, 2009-01-10자에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와 조정제 형제님과의 대화 전문입니다.

(3) 그런데 무려 햇수로 15년이 경과한 시점인 2023년 12월 4일에, 중앙일보의 백성호 기자는 “오병이어는 기적이 아니다” 정진석 추기경 주목한 장면 제목의 글을 중앙일보에 올렸는데, 바로 이 제목을 읽고서, 매우 염려되는 바가 있어, 아래에 2009년 당시의 글들을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추가하였습니다.

2023-12-04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
“오병이어는 기적이 아니다” 정진석 추기경 주목한 장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1952 

"이적" "정진석" "2009"


굿뉴스 자유게시판 유관 게시글들의 목록 - 특히 댓글들도 꼭 읽도록 하십시오.

0. 나누세요 넉넉해집니다 그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 박명옥, 2009-01-03
https://bbs.catholic.or.kr/bbs/bbs_view.asp?id=226368&menu=4779

(A) 1.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신년 대담 [가톨릭 신문; 대답일자: 2008년 12월 17일] - 유재범, 2009-01-06

(발췌 시작)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신년 대담

"오늘날 위기, 인간 욕심이 화 부른 것"
"가정이 바로 서야 사회가 바로 선다"
창조된 것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
진리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현대의 순교
지구촌은 운명 공동체…나눔만이 살 길


▲ 이 땅에서 폭넓은 의미의 복음화가 조금 더 진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세계 평화가 하루 빨리 정착되길 소망합니다. 추기경의 소임은 교황님의 어려움을 함께하고 그분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

▲ 최근 경제문제를 바라보면 참으로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할 말이 많습니다. 지구는 하나뿐입니다. 둘, 셋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가 하나이고 그 자원 또한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뿐인 지구위에서 살아가는 인류는 그래서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분배가 골고루 이뤄지면 부족하지 않습니다. 

[...]

구체적으로 이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선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나라가 어려웠습니다. 그 때 우리 국민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습니까. 금을 모았습니다. 함께하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들과 아이들을 제외한 오천명의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러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마태 14,13~21 참조). 여기서 빵은 하늘에서 갑자기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땅에서 갑자기 솟아난 것도 아닙니다.

어떠한 해석에 따르면 [...]

나누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예수께서 바꿔 놓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 해석이 정통성 있는 학설인지 아닌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저는 이러한 해석에 공감합니다.

2000년 전 이스라엘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일어난 오병이어의 기적은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서로 나눌 수 있을까요. 공동체 의식이 중요합니다. 공동체라는 의식이 없으면 나누지 않습니다

[...]
(이상, 발췌 끝)

(B) 2. 미주중앙일보 - 백성호 기자; 대담일자: 2008년 12월 29일]
[정진석 추기경의 새해 메시지] 나눠야 넉넉…그것이 ‘오병이어 기적’ - 2009-01-03

출처 2: https://www.joongang.co.kr/article/3441013 <----- 이 대담(B)와 바로 위의 대담(A)를 정밀하게 비교/검토하십시오
(문제가 있는 부분 발췌 시작)

나누세요 넉넉해집니다 그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

 

그 말끝에 정 추기경은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 일화를 꺼냈다. 갈릴리 호숫가 언덕에서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여자와 아이들은 제외한 수치)의 군중을 배불리 먹였다는 이적(異蹟) 일화다. 정 추기경은 그 사건을 '기적'으로 풀지 않았다. 대신 '예수의 마음'과 '예수의 사랑'으로 풀었다.   

[...]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백성호 기자 자신이 '갈릴리 호숫가 언덕에서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여자와 아이들은 제외한 수치)의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사건'을 두고서 이적(異蹟) 일화다라고 단언하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왜냐하면, 정진석 교구장 주교님께서는 '이적(異蹟)'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였다고 백성호 기자는 자신의 기사 (B)의 본문 중에서 말하지 않았으며, 그리고 또한 정진석 교구장 주교님께서 위의 가톨릭 신문 편집국장 기자와의 신년 대담 (A)에서도 '이적(異蹟)'이라는 단어 자체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끝)

(C)

4. "기적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분은 없었다. - 김병곤, 2009-01-06
https://bbs.catholic.or.kr/bbs/bbs_view.asp?id=226517&menu=4779 

5. 성경을 교회가 해석할 수 있는 권한(근거) - 송두석, 2009-01-07
https://bbs.catholic.or.kr/bbs/bbs_view.asp?id=226526&menu=4779 

6. 오병이어 기적들에 대한 가톨릭 나바르 주석 성경의 주석들 외 - 소순태, 2009-01-07
https://bbs.catholic.or.kr/bbs/bbs_view.asp?id=226536&menu=4779 

7. 오천명을 먹인 사건의 반향 - 이상훈, 2009-01-08
https://bbs.catholic.or.kr/bbs/bbs_view.asp?id=226570&menu=4779 

8. 오늘날에는 나눔이라고 합니다. - 임덕래, 2009-01-08
https://bbs.catholic.or.kr/bbs/bbs_view.asp?id=226576&menu=4779 

9. 정추기경님의 중앙일보 대담에 대한 소견 - 조정제, 2009-01-10
https://bbs.catholic.or.kr/bbs/bbs_view.asp?id=226621&menu=4779 <-----
[이상, 2023-12-09일자 추가 끝]
 
게시자 주: 여기서부터 본글의 본문이 시작됩니다.
 
2009-01-08
 
중앙일보측의 그 문제의 기사를 편집한 기자분이, 오병이어 기적을, 기적이 아닌 "이적"이라는 개인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 기자분이 내용을 요약 편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신념"이 마치 본 글의 내용인양 삽입이 되어,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의 개인적 짐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월성(transcendence)" 보다는 "내재성(immanence)"을 조금 더 강조하신 듯 하나, 이 기자 분이 자신의 평소의 성향 때문에 상당히 잘못 알아들어, 요약 편집하는 과정에서 "내재성"만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듯 싶습니다.
 
참고입니다만, "기적(miracles)"은 "이적(wonders)"이나, "이적"은 일반적으로 "기적"이 아닙니다.
 
[ ...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느님이시기에 5,000명, 아니 8,000명 그까짓 정도의 사람들 먹이실 음식 마련해주신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교회의 정통 가르침이다. ...] <----- 이런 표현이 바로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월성"에 대한 언급인데,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오병이어 기적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에게 와 계시기에(내재성),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통하여,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인지를 강조하시고자 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그런 학설에 공감하신다는 말씀은, 그런 학설도, "내재성"을 통한 하느님 의지의 작용 면에서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면도 있다는 언급을 하셨던 것으로 보이며, 이것을 그 기자 양반이 대화 중에, 자신의 신념 때문이겠지만, 도로 변으로 자꾸 끌고 나간 듯 합니다. 즉, 이 기자 양반의 화술에 말려 들었다는 생각입니다. 신학교 교육을 받고 신품성사를 받으신 사제들께서 제가 한줄답변들로 드린 말씀들을 모르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단, 정양모 신부님과 그 분의 영향을 받은 분들은 모두 제외합니다.
 
사실, "경솔의 유무"도 대화의 상대에 따라 "상대적으로 판단되는 것"인데, 이 기자 양반이, 신정 특종감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에서, 추기경님께서 경솔한 발언을 하신 분으로 도가 넘은 비틀기를 시도하였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 말씀들을 읽고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처럼 기적을 일으키고자 하는 이상한 흉내를 내라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인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실천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하여, 각자의 처지와 여건에 따라, 나름대로 묵상하여 알아내어 실천하여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실천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기적들이 우리들 안에서 영원히 지속되도록 하고자 하심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가르친 궁극적 이유들 중의 하나 일 것입니다. 추기경님께서 지금 말씀드린 바로 이러한 내용을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전달하시려고 하셨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알아 듣기 쉽게 풀어서 말씀해 주신 ooo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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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앙일보 기자 양반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다음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023-12-09) 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3448681#home ]
솔직히 ‘현문우답’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얘길 처음 들었느냐고요? 그건 아닙니다. 그런 해석은 익히 들었죠. 그건 일부 신학자와 아주 유연한 목회자들 사이에서나 오가던 얘기였죠. 설사 그렇게 생각하는 성직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공개 석상에서 ‘도시락’ 이야기를 밝히긴 쉽지 않은 거죠. 왜냐고요? ‘오병이어’ 일화는 예수님이 보이신 완전한 기적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칫하면 ‘십자 포화’를 맞기 십상입니다.
 
문제의 자신의 기사(B) 중에서 "이적"이란 단어를 고의적으로 사용하였던 이 기자 양반은 오병이어 사건을 기적이 아닌 "이적"으로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분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기자 양반이 오병이어 사건을 말하면서, 요한 복음서 6,1-15가 아닌, 마르코 복음서 6,30-44를 자신의 블로그에서 언급한 것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요한 복음서에는, 오병이어 사건 다음에 "물 위를 걸으시다", "생명의 빵", 그 다음에 "영원한 생명의 말씀(60-71)" 소제목의 내용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다음의 구절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여야 할 것입니다:

(요한 복음서 6,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즉 그 내용 연결에 있어, 요한 복음서에서, "오천 명을 먹이시다(6,1-15)" ==> "생명의 빵(6,22-39)"으로 이어지고 있고, 그 다음의 "영원한 생명의 말씀(6,40-71)"은 6,22-39 내용을 믿지 않는 데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나무라고 계신 내용이므로, 결국에 "생명의 빵(6,22-39)"의 내용을 믿지 않으면 "오천 명을 먹이시다(6,1-15)" 사건을 기적으로 믿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논리적 구조이며, 이 논리적 구조에 동의하시는 분들 중에는 정양모 신부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기자 양반이 "오병이어는 이적이지, 기적이 아니다"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고 짐작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것으로, 위에 말씀드린, 요한 복음서의 논리적 구조를 사전에 알고는 의도적으로, "생명의 빵" 내용이 오병이어 사건 다음에 이어지고 있지 않은, 마르코 복음서 6,30-44를 자신의 블로그에서 언급하였다는 생각입니다.
 
아무턴 "오병이어 사건"을 묵상할 때에,

요한 복음서의, "오천 명을 먹이시다(6,1-15)" ==> "생명의 빵(6,22-39)"

의 내용 연결을 또한 함께 묵상하셔야 할 것이다 싶어 아래에 몇 말씀을 더 드립니다.
 
그 기자 양반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왜 굳이 마르코 복음서를 인용하였는지, 더 구체적으로, 왜 요한 복음서를 인용하지 않았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다음은 요한 복음서 6,26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먹이신 것"이 표징(sign)임을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고 계십니다. 일반적으로, 기적(miracle)은 표징(sign)이나, 표징은 기적이 아닐 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요한 복음서의 경우에 있어서는 표징은 또한 기적입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예를 들어, NAB의 요한 복음서 입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서 6,26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이 기적임을 직접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참고: 이적, 기적, 표징의 정의(definition)와 이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는 다음의 글에 있습니다. 바쁘신 분들께서는 끝부분만 읽으셔도 될 것입니다:
 
 
참고: 여기를 클릭하시면
1. 오병이어 기적들에 대한 가톨릭 나바르 주석성경의 주석들
2.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및 베네딕토 16세 교황님들께서 강론 말씀 중에 "오병이어" 사건을 기적이라고 직접 말씀하고 계신 자료를 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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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ㅇㅎ (2009/01/08) : 소순태님의 의견에 같이 합니다. 저는 기자들의 생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업무상 접촉을 많이 해왔습니다. 추기경님의 말씀만 100%가 아니라 기자양반의 생각도 어느 정도 들어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저는 충분히 생각하고도 짐작합니다. 다만 이 문제는 제 생각으로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냥 추기경님의 마음만을 헤아리시면 됩니다. 이성훈 신부님의 말씀으로 조용히 묵상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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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ㅇㅎ (2009/01/08) : ... 그냥 추기경님의 마음만을 헤아리시면 됩니다.] <----- 이 말씀에 동의합니다.

다만 제가 그 기자 양반에게 가지고 있는 큰 불만은, 추기경님께서 제가 드린 말씀들에 대하여 모르고 계시는 분이 결코 아니신데, 추기경님께서 이런 내용을 모르고 계시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의도적으로 글을 비틀은 것 같아서 입니다. 쪽지로 저에게 그 기자 양반의 블로그 주소를 교우님께서 알려 주셨기에 가서 그 기자 양반의 후속 글을 읽어 보았더니, 상당히 의도적으로 비틀었다는 생각이 추가적으로 들어, 몇 말씀을 더 드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의 요한 복음서 6,5-7 말씀에 따르면, "이 기적의" 시작은 예수님의 "의지(will)"이셨습니다. 이 부분을 함께 읽어 보도록 합시다: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하고 물으셨다.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 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He said this to test him, because he himself knew what he was going to do.).
 
그리고, 요한 복음서 6,5에 대한 NAB주석도 또한 그러합니다:
6,5: Jesus takes initiative(in the synoptics, the disciples do), possibly pictured as (cf John 6,14) the new Moses (cf Nm 11,13).
 
그리고, 요한 복음서 6,5에 대한 나바르 주석도 또한 그러합니다:
5-9. Jesus is sensitive to people's material and spiritual needs. Here we see Him take the initiative to satisfy the hunger of the crowd of people who have been following Him.
 
이러한 예수님의 의중을 모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의 대답이 매우 흥미롭다는 생각입니다:

(요한 복음서 6,8-9)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여기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전히 "오병이어 사건"은 도시락 나누어 먹어라는 권고의 말씀일뿐이지, 결코 기적이 아니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마태오 복음서 15,32-39, 마르코 복음서 8,1-10)도 또한 도시락 나누어 먹으라는 권고의 말씀이라고 주장하셔야 할텐데, 이것은 절대로 잘 안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이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 중에 다음의 구절이 분명하게 명기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따라서, "오병이어 기적을 두고서, 기적이 아니고 오로지 숨겨 두었던 도시락 꺼집어 내어 함께 나누어 먹으라는 권고의 말씀일 뿐이라는 주장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입니다.
 
의심이 대단히 많으신 분들을 위하여 추가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따르면, 매년 대림 제1주 수요일 매일미사 복음 말씀은 마태오 15,29-37 이고, 매년 연중 제5주 토요일 매일미사 복음 말씀은 마르코 8,1-10 이므로, 평생 동안 매일 매일 미사를 모시는 사제들께서 위와 같은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 관한 성경 말씀을 모르고 계실 것이라는 의심/추측은 또한 억측이라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먹이시는 기적"의 핵심은, "나눔의 권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그리고 매우 중요한, "빵을 늘리는 기적을 행하심"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나눔의 권고"는 그 다음에 우리들이 무엇을 어떻게 실천하여야 할까에 대한 묵상꺼리라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의 먹이시는 기적"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권능으로써 자연법을 초월하여 실제로 물질인 빵의 양을 늘리셨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단지 "나눔의 권고"로 설명하는 것은, 비록 "나눔의 권고" 내용 자체가 좋은 것이기는 하나, 성경 말씀의 내용을 놓고 볼 때에는, 본말이 전도된다는 생각입니다.
 
왜 "실제로 빵의 양을 늘리신 기적"이 중요한가 하면, 이 기적이 만나(manna)의 기적과 관련이 되어 있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 "성변화(transubstantiation)에 대한 표징(sign)으로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자연법을 초월하여 물질인 빵의 늘림의 기적"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 단순히 "나눔의 권고"로 생각하시는 분들은 어떤 분들일까요? 바로 "성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분들 입니다. 달리 말하여, "성변화"를 인정하는 분들 중에서는, 논리적으로, 그러한 분들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것 때문에 교황청 및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로부터 경고 및 제재를 받은 분이 정양모 신부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드려 봅니다: 여러분들은 "성변화"를 참 진리로 인정하시는지요? 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성변화가 참 진리라고 저는 고백합니다.
 
참고: 예수님께서 직접 빵을 늘리셨다는 증거는 마태오 복음서 15,36에 있습니다: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Then he took the seven loaves and the fish, give thanks, broke the loaves, and gave them to the disciples, who in turn gave them to the crowds.)
 
다른 데에서 누구가 예수님께 자꾸 가져다 준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직접" 빵을 어떻게 늘리셨는지 위에 줄을 쳐 드렸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위의 마태오 복음서 15,36과 마르코 복음서 8,6" 이외에는 "이 정도의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이라 함은 위의 줄친 부분으로부터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줄을 쳐 드렸던 것입니다.
 
As St. Jerome affirmed, "The multitude receives the food from the Lord through the apostles; as it follows, and he gave the loaves to his disciples, and the disciples to the multitude" (Thomas Aquinas, Catena Aurea, I.2).
 
성 예로니모(Saint Jerome)가 확언하였듯이, "군중들은, 다음에서와 같이사도들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음식을 받는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빵들을 당신의 제자들에게 주셨으며, 그리고 제자들은 군중에게 주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Qquinas), Catena Aurea, I.2].
(졸번역 끝)
 
"거기서" 하느님의 권능이 개입되는 기적이 일어 났으니, 이해가 힘들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만, 다른 주석자들도 그 부분이라고 합니다. 다음은 마태오 15,33-38에 대한 나바르 주석 성경에 있는 주석입니다:
 
33-38. As in the case of the first multiplication (14:13-20), the Apostles provide our Lord with the loaves and the fish. It was all they had. He also avails of the Apostles to distribute the food--the result of the miracle--to the people. In distributing the graces of salvation God chooses to rely on the faithfulness and generosity of men.(이하 생략)
 
[ ... 예수께서 단지 마치 마술처럼 빵 다섯개를 늘리시는 기적만을 보여주신 것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구약의 어느 예언자와 비교해도 그저 고만고만한 분이거나 겨우 몇갑절 능력이 나은 정도의 분으로 깎아내리는 결과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 요한 복음서 6,14-15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위의 구절은, 예수님의 먹이시는 기적을 직접 체험하고 나서 군중들 사이에 나타난 반응을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위의 나바르 주석은, 사도들을 통하여 음식을 분배하게 하신 것은 "이 기적"의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He also avails of the Apostles to distribute the food--the result of the miracle--to th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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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9
 
ㅈㅈㅈ (2009/01/09) : 오병이어의 본문에서 소형제님이 교황님의 말씀을 통해서 "기적은 빵을 늘리기"라는 말을 인용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성경 본문에는 추기경님의 말씀대로 ".... “성경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두 마리, 세 마리로 불어났다는 기록은 없어요.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얘기도 없어요. 그럼 예수님이 보이신 진정한 기적은 뭘까요...." 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기적은 빵을 늘리기"라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빵을 늘리셨는지.... 또한 소형제님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위의 나바르 주석은, 사도들을 통하여 음식을 분배하게 하신 것은 "이 기적"의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 묘하지요? 그리고 해당 본문 마지막에는 모두 먹고 남은 것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라 합니다. 열둘이란 사도들의 숫자와 동일한 상징이구요..... 이러한 단서를 염두에 둔다면 추기경님의 말씀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구요, 이 말씀을 몇가지 단락으로 풀이해 주신 이 신부님의 설명은 추기경님께서 인용하신 성경 본문의 여러 주석들을 종합하여 알기 쉽게 보충하신 글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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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 위의 [알아 듣기 쉽게 풀어서 말씀해 주신 ooo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는 한줄답변 위의 한줄답변들은 ooo 신부님께서 본글을 올리기 전에 제가 다른 글에 달았던 한줄답변들인데, 추기경님의 의도와 속마음은 저같이 부족한 사람도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만큼 대다수의 교우님들도 이해하고 계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기자 양반의 의중/의도가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굉장히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영문 자료들을 찾아 보는 등, 다시 자세히 들여다 본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무엇이 문제의 핵심인지, 무엇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좀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참고입니다만, 강론 준비 혹은 묵상 준비를 하시는 분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 싶어, 나해 첫 날부터 저의 졸저서인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시리즈"의 매 주일의 인터넷 각주로서, 그 주의 매일 미사 독서들에 대한 나바르 주석 성경의 주석(영문)들을 보기 쉽도록 편집하여 제공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번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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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ㅈㅈㅈ 형제님께서 주신 질문입니다.
 
2009-01-10
 
2. 소순태형제님이 제공한 자료들 중 인용
(이름이 거론함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인용출처를 밝히느라 그렇게 한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이름은 익명으로 하겠습니다.)
 
2-1
참고: 추가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과 베네딕토 16세 교황님들의 강론 말씀들 중에서 오병이어 사건, 즉 "빵을 늘리시는 사건(multiplication of loaves)"을 기적이라고 직접 말씀하신 자료들에 대한 검색 결과를 쉽게 읽으실 수 있도록 아래에 링크 설정 조치를 하습니다. 이 자료들을 또한 필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2
(2009/01/08) : 참고: 예수님께서 직접 빵을 늘리셨다는 증거는 마태오 복음서 15,36에 있습니다: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Then he took the seven loaves and the fish, give thanks, broke the loaves, and gave them to the disciples, who in turn gave them to the crow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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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대목은 예수님께서 직접 빵을 늘리셨다는 증거로는 불충분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빵(과 물고기)를 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 그것들을(음식들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셨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쪼개어진(나누어진) 음식물을 들고 제자들은 다시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성경 분문은 진술을 하고 있지...
예수님이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 빵과 물고기를 수천배로 불리셨고 그걸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군중들에게 먹였다는 진술이 복음서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 먹을것을 자기가 꿍쳐놓은 것을 예수님때문에 내놓은 것 역시 음식을 직접 늘리신것과 다른점이 별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참고))
루가 19장 예수와 자캐오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수많은 군중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그 중 자캐오만 구원을 받았구요...
 
그 군중들은 그동안 어떻게 양식을 먹었을까요?
그 군중들에게 예수님이 먹이셨다는 기록은 물론  없습니다.
이런 사유를 볼때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닐때 어느 정도 자기가 먹을 양식은 가지고 다니지 읺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2-3
(2009/01/08) : 위의 나바르 주석은, 사도들을 통하여 음식을 분배하게 하신 것은 "이 기적"의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He also avails of the Apostles to distribute the food--the result of the miracle--to the people.
 
===>
 
나바르 주석에는 동의합니다.
주석은 위의 본문처럼 사도들을 통하여 군중들에게 음식들이 나누어진 것이야말로 기적의 결과라 혹은 기적의 결과로써 주님은 사람들에게 사도들을 통헤서 음식물을 나누어주도록 한 것이라는 해석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주님이 사도들에게 음식물을 분배하도록 하였다" 라는 것에 있습니다.  
 
위의 나바르 주석에는 구체적으로 기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있지않다고 생각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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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 질문에 대한 답글입니다. (즉, 위의 불충분하다는 데에 대한 답변) 
 
ㅈㅈㅈ 형제님께서 "나눔"이 "기적"의 결과임에는 동의를 하시니, 견해 차가 있는 다음의 "기적의 현장"에 대하여 추가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가.. 위의 2-2항에서, [ ... 예수님이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 빵과 물고기를 수천배로 불리셨고 그걸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군중들에게 먹였다는 진술이 복음서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 이 부분이 기적이 발생하는 자리이니, 어떻게 말로서 표현을 다 할 수가 있을까.. 싶습니다.
 
나. 위의 2-2항에서는 마태오 복음서 15,22-39에 있는 "사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살펴보고 있으므로, 특히 제32절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먼저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마태오 복음서 15,22-39 전체에 걸쳐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제32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위의 밑줄 친 부분은, (1)그들이 더 이상 내 놓을 먹을 것이 없음을 알려주고 있고, (2) 예수님의 주된 의도가 이들을 먹이려고 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먹을 것을 나누어 줄려고 하여도 턱없이 부족함을 또한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 그런 다음에,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를 건네 받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는 이 음식들만 전달되었다는 이야기이며, 아직 기적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라. 그 다음에 제 37-38항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사천 명이었다.

이 구절은, 이미 먹이시는 기적이 끝났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면, 제36절에서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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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ㅈㅈ (2009/01/10) : 저도 기적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마태15장의 기적사화는 마태14장의 기적사화와 함께 초대교회안에 존재하였으나 마태15장(마르코8장)의 기적사화는 좀더 후대에 마태14(마르코6장)의 기적사화의 변형이라는 새성경 주석이 있습니다..... 변형된 차이점 중에는 열두광주리에서 일곱 광주리로 된 것이 있는데 일곱이란 완전성과 교회안에 나타난 일곱 부제를 상징하는것이기도 하다라는 설명이 부언되어 있습니다..... 전 이정도입니다. 더 좋은 참고자료들은 소형제님이 댓글로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이것들을 근거로 나중에 그 본문에 대해서도 "본문구조비평"면에서 공부해 보겠습니다.
 
성경의 주해와 주해가 달린 본문에 대한 신학적인 판단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만 두 가지면이 모두 존중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묵상 및 고찰할 수 있을 참고자료를 올려주시는 소형제님께 감사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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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제36절은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순서대로 나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마-1.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Then he took the seven loaves and the fish, give thanks,)>

미-2.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broke the loaves,),

마-3. 제자들이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who in turn gave them to the crowds.).
 
바. 우선, 위의 마-3에서 제자들이 기적을 일으킬 수 없으므로 기적이 일어 났다고 볼 수 없으며, 위의 나의 밑줄 친 부분 때문에 군중들이 마-3. 중에 주머니에서 내 놓을 것이 없습니다.
 
사. 그 다음으로, 만약에 마-1. 중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면, 늘어난 빵의 양이 엄청나 예수님 손 위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인데, 남자만 4천 명이 먹을 양으로 빵이 예수님의 손 위에서 늘어났다는 것은 납득이 매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아. 따라서, 기적이 일어 날 수 있는 순간은, 진짜로 기적이 일어 났다고 하면, 바로 마-2.의 순간 뿐입니다.
 
자. 그래서, 결론적으로 "진짜로 기적이 일어 난 것이냐"는 질문으로 귀착이 되는데, 바로 이 부분은 복음사가들이 "예수님의 먹이시는 사건"들을 기적으로 해석한 것에 대하여 가톨릭 교회가 오류가 없음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Dei Verbum을 통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마-2의 순간에 대하여 더 자세한 기록이 성경에 없으니, 마-2의 순간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을 믿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의 이성적 판단으로 믿기가 어렵다는 것이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먹이기 위하여 자연법을 초월하여 빵의 양이 엄청나게 늘러아는 것(multiplication of loaves)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또한 합니다. 따라서 진짜로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면, 기적이 발생한 순간은, 바로 위의 나. 에서 말씀드린 제32절 말씀 때문에, 마-2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차. (1) 마태오 14,13-21의 오천 명 먹이시는 기적과 (2) 마태오 15,32-39의 사천 명 먹이시는 기적의 차이점에 대하여 NAB 마태오 15,32-39에 대한 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32-39] Most probably this story is a doublet of that of the feeding of the five thousand (Matthew 14:13-21). It differs from it notably only in that Jesus takes the initiative, not the disciples (Matthew 15:32), and in the numbers: the crowd has been with Jesus three days (Matthew 15:32), seven loaves are multiplied (Matthew 15:36), seven baskets
 
(계속) of fragments remain after the feeding (Matthew 15:37), and four thousand men are fed (Matthew 15:38).
 
위의 NAB주석에 따르면, 이들 두 기적들 사이의 차이점은 (1) 기적의 첫 시작에 대한 주도권을, 제자들이 아닌, 예수님께서 가지셨던것, (2) 군중들이 예수님과 사흘 동안 함께 있었다는 점, 늘어난 빵의 양과 먹고 남은 빵의 양 등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추가 설명에서, 교도권의 가르침이 개입되어 있는, 위의 자. 항을 특히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Dei Verbum을 통한 교도권의 가르침은, 네 복음사가들이 사실이라고 주장한 바들은 오류가 없다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카. 따라서, 마태오 복음서 15,32-39 및 마르코 복음서8,1-10 이렇게 두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사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을 기적으로 인정하게 되면, 네 복음서에 다 기록된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을 기적으로 인정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며, 역방향의 인정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타.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말씀드리면, 요한 복음서의 구조 때문에,

요한 복음서의, "오천 명을 먹이시다(6,1-15)" ==> "생명의 빵(6,22-39)"

관계가 성립하는데, 요한 복음서에서의 "표징"들은 모두 "기적"이라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요한 복음서 6,26에서, 요한 복음서에 기록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표징이라고 직접 말씀하시므로, 바로 이 말씀에 의하여, 요한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은, 단순한 논리적인 결과로서, 기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Dei Verbum의 가르침에 의하여, 다른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먹이시는 사건들은 모두 기적입니다. 그리고 기적의 발생 순간은 위의 마-2라는 결론에, 자동적으로, 도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가지고 다니던 도시락을 꺼내 먹은 사건을 두고서, 어느 한 복음사가가 기적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을 듣고는,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이 기적이라고 동의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 말씀을 드리는 가 하면, 성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요한 복음서 6,22-39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요한 복음서의 "오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을 기적으로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이럴 경우에, 네 복음서에 있는 예수님께서 먹이시는 기적 모두를, 논리적으로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파. 그럴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빵을 늘리시는 기적"을 "단순한 나눔"으로 대체하려고 할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여, 제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하. 끝으로,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성변화"를 참 진리로 인정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십시요. 바로 사도로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교도권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떤 사건이 기적이냐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바로 교도권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살아 있는 동안 우리들의 신앙 생활 전반에 걸쳐, 사도 전승에 따라 가르치는 교도권의 가르침이 더 없이 중요합니다. 사실은, 이 교도권에 순명하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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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더 말씀드립니다. 나바르 주석 성경,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강론말씀, 그리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강론말씀에서는 예수님의 먹이시는 기적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표현하고 있습니다:

"the miracle of the multiplication of the loaves"
"빵들에 대한 증식의 기적"
"빵 늘림 기적"

이렇게 부르는 것은, 이 기적의 내용을 분명하게 포함하고 있기에 이 기적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또 그 내용에 동의할 때에만 그렇게 부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음은 요한 복음서 6,14-15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인데, 만약에 통상의 도시락을 나누어 먹은 후라면, 절대로 이런 반응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참고입니다만 위에서 말하는 그 예언자는 모세 오경(신명기 18,15-19) 단 한 곳에 언급되어 있는 "예언자"를 말합니다.
 
예수님 공생활 당시에 유다인들 및 사마리아인들 모두가 기다리고 있던 예언자인, "그 예언자"라는 언급이 나오는 곳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요한 복음서 1,21; 1,25; 4,19; 6,14; 7,40

따라서, 당시에 빵을 먹은 군중들이 왜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하였는지를 생각해 보면, 단순히 가지고 온 도시락 나누어 먹게 하였기 때문에, 왕으로 삼으려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요한 복음서 6,14-15의 기록은, 실제로 the miracle of the multiplication of the loaves(빵들에 대한 증식의 기적)이 발생하였다는 것에 대한 분명한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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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저는 사실은 다음의 세 가지의 증거를 제시하였습니다:

증거-1. 마태오 복음서 15,22-39

증거-2. 요한 복음서의, "오천 명을 먹이시다(6,1-15)" ==> "생명의 빵(6,22-39)" 및 6,66말씀
증거-3. 요한 복음서 6,14-15

증거-1과 증거-3에 대하여서는 이미 위에서 말씀드렸으므로, 증거-2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증거-2.는 두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1) "... ==> ..." 과 (2) "6,66말씀"입니다.
 
요한 복음서6,66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이 내용은 (1)의 " ... ==> ..."의 implication이 참(true)임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서 6,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즉 요한 복음서 6,66에 의하여, "생명의 빵(6,22-39)"의 표징(sign) = 기적(miracle) (요한복음서이므로 성립함)으로서 증거-2. 요한 복음서의, "오천 명을 먹이시다(6,1-15)"을 받아 들이지 않은 자들은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는 내용이 바로 요한 복음서 6,66입니다.
 
요한 복음서 6,66은 "성변화(transubstantiation)"을 믿지 않는 자는 교회를 떠나라는 것을 또한 말하고 있기에, 가톨릭 교회가 신앙을 걸고 가르치는 실천하고 있는 성체성사는 바로 the miracle of the multiplication of the loaves(뺭들에 대한 증식의 기적)에 대한 네번째 증거입니다.
 
즉, "누구든 성변화를 참 진리로 믿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떠나라"는 논리적 구조를, 요한 복음서가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네번 째 증거를 분명하게 지키고자, 거룩한 교회의 교도권은, 성변화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세례성사를 집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세례를 받고자 하는 예비신자에게 "성변화를 진리로 믿느냐?"고 묻지는 않으나, 교리 학습 과정 및 세례성사 집전자와의 최종 대면 면담을 통과하지 못하는 자는 세례성사를 받지 못하게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참고입니다만, 개신교에서는 "성변화"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다른 개신교 목회자들을 설득하는 데에 실패하였던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동방 교회 및 한 두 개의 분파를 예외적으로 제외한) 대다수 개신교측 어느 누구도 사도 계승에 의하여 그 권능이 이어져 오고 있는 신품성사를 받지 않았기에, 예배 중에 성변화를 일으킬 권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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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ㅈㅈ 형제님께서 추가로 궁금해 하시는 것,
즉 "이 기적"과 "Eucharist"(제가 말한, 성변화) 와의 관계는 마르코 복음서 6,41에 대한 나바르 주석에 잘 설명하고 있는데, ooo 신부님과 말씀을 좀 더 나눈 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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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ㅈㅈㅈ 형제님께서 추가로 주신 질문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르코 복음서 6,41의 나바르 성경 주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41. This miracle is a figure of the Holy Eucharist: Christ performed it shortly before promising that sacrament (cf. Jn 6:1ff), and the Fathers have always so interpreted it. In this miracle Jesus shows his supernatural power and his love for men
 
(계속) --the same power and love as make it possible for Christ's one and only body to be present in the eucharistic species to nourish the faithful down the centuries. In the words of the sequence composed by St Thomas Aquinas for the Mass of Corpus Christi : "Sumit unus, sumunt mille, quantum isti, tantum ille, nec sumptus consumitur"
 
(계속) (Be one or be a thousand fed, they eat alike that living bread which, still received, ne'er wastes away).
 
41. 이 기적은 성체성사에 대한 표상(figure)인데,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성사를 약속하시기(cf. 요한 복음서 6,1그리고 그 이후) 직전에 이 기적을 행하셨으며, 그리고 교부들께서는 이 기적을 항상 그렇게 해석해 왔다. 이 기적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하여 당신의 초자연적 권능과 당신의 사랑을 보이시는데,
 
(계속) -- (이 당신의 초자연적 권능과 사랑은) 여러 세기를 내려오면서 열심 신자들을 먹이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단 하나 뿐인 몸(body)이 미사용 빵과 포도주(eucharistic species)에 현존하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바로 그 권능 및 사랑과 동일하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미사를 위하여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여 지어진 부속가(sequence)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Sumit unus, sumunt mille, quantum isti, tantum ille, nec sumptus consumitur"
 
(계속) (한명 혹은 천명이 먹게 되거나 간에, 그들은, 여전히 배령하였을 때에 결코 쇠약해 지지 않는, 이 살아있는 빵을 차별없이 동등하게 먹는다.)
(이상 졸번역 끝)
 
따라서, 성변화를 믿지 않는 자, 즉 성체성사의 효능을 믿지 않는자는 "생명의 빵(6,22-39)"의 내용을 믿지 않는 자이기에, 그 결과 the miracle of the multiplication of the loaves(뺭들에 대한 증식의 기적)을 또한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의 네번 째 증거 바로 위의 언급에 대한 추가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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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ㅈㅈ (2009/01/10) : 소형제님 감사합니다. 나바르 주석과 동일한 새성경 주석 "1-6, 3-2-6"에서 색깔까지 입혀 게시하였습니다. 저는 우리의 한글로 된 새성경의 주석을 신뢰합니다. 물론 해당 부분의 나바르 성경주석도 중요합니다만. 우리가 보통 미사라 하지만 미사는 포괄적으로 성체성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언급하였듯 주어진 텍스트안에서 주석을 찾아내어 정리한 후 추기경님의 말씀을 묵상하였으며 묵상한 결과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대단히 유익한 대담임라 믿습니다. 이 신부님이 다른 글에서 성 이냐시오를 인용하시면서 하신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이젠 그만하셔도 될 것같습니다.
 
참고로 제가 텍스트로 사용한 본문은 마르코 6장 30절 이하입니다. 요한 복음의 6장 텍스트 역시 만약 "본문구조 비평"할 기회가 생긴다면 조언해 주신 주석도 충실히 참조하겠습니다. 애써주시는 소형제님께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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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적"과 "Eucharist"(제가 말한, 성변화) 와의 관계는 또한 교황님들의 강론 말씀에서도 주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2000년 대희년 6월 22일 그리스도 성체 성혈 대축일 강론 말씀의 제 3항을 들 수 있겠습니다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성체성혈대축일 강론말씀 (클릭하십시요)
 
이 제3항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This is an amazing miracle which marks in a way the beginning of a long historical process: the uninterrupted multiplication in the Church of the Bread of new life for the people of every race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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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님께서 주신 말씀과 ooo 신부님께서 이 말씀을 쉽게 풀어서 해 주신 데에 무슨 하자가 있을 수나 있겠는지요?

문제는, 그 기자 양반이 "이 기적"을 "이적"이라고 부르기에 "이 기적"을 인정하지 않는 분이라, "이 기적"의 결과로서 "나눔"으로 생각하면서 "나눔"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나눔" 차원으로 "이 기적"을 호도하려는 듯 하여, 제가 크게 우려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 기자 양반의 의중이 제가 보고 있는 큰 문제점입니다.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조만간 발행될 "우리말 주석 새성경"의 주석은 프랑스어 성경인 "Tob"의 주석을 많이 참고한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바르 주석 성경에 대하여서는 국내의 가톨릭 신자 대부분이 아직 그 존재도 모르고들 계시는데, 지금까지 발행된 가톨릭 주석 성경들 중에서, 가장 방대한 주석이 달린, 2000년 대희년에 발행된, 그리고 교도권의 가르침에 매우 충실한, 가톨릭 주성 성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기적은 하느님의 초자연적 권능이 개입되어 있으므로, 하느님의 초월성(transcendence)이 우리에게 드러나는 경이로운 현상이기에. 지엽적인 자구 해석을 통하여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특히 "이 기적, 즉 the miracle of the multiplication of the loaves(빵들에 대한 증식의 기적)"은 매우 중요하여 네 복음서에 다 기록이 되어 있으므로, 최대한 이들 기적들을 함께 놓고 검토를 하여야 그래도 조금은 더 "이 기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네 복음서들 중에서 특히 요한 복음서가 "이 기적"에 대한 확실한 증언이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누구든지 간에 혼자만 경험하여 알고 있는 것은 별로라는 생각입니다. 교우님들 모두가 함께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데, 이렇게 조 형제님께서 부족한 이사람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해 주시는 것이, 모두가 함께 알게 되는 데에 좋은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질문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제가 자세한 답변을 드리지 않았고 또 요즈음 성경 공부 해설서 나해-II의 집필에 우선 높은 순위를 두고 있는 이유 때문에라도, 답변을 자세하게 드리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좋은 주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09년 2월 17일(화)
다음은 마르코 복음서 8,19-21입니다.  이 복음 말씀은 연중 제6주간 화요일 복음 말씀(마르코 복음서 8,14-21)의 일부로서,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를 떼어(broke) 오천 명을 먹이셨음을 직접 말씀하고 계십니다.
 
19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 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열둘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0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는, 빵 조각을 몇 바구니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이 구절을 읽고서도,
 
굳이 군중들이 품속에서 도시락을 꺼집어 내어 나누어 먹었다고 주장하면서,
 
오천 명을 먹이신 이 "빵 늘림 기적"을 두고서 기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은,
 
성경 말씀과 사도 전승을 인정하는 그리스도교 신자들 중에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내용 추가 일자: 2015-08-02]

끝으로,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행하셨던 "빵 늘림 기적들(the miracles of the multiplication of the loves)"에 관련된 졸글들 모두를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miracle_of_mult_of_loaves.htm. <----- 필독 권고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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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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