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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 작위적/자의적 번역 용어 3/3 [용어번역오류_종교개혁] 1049_그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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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혁 - 3/3 [110.14.3.*]

2011-05-26 ㅣ No.1052

 
 
+ 찬미 예수님
 
     이 글은 "종교 개혁"이라는 번역 용어가 대단히 작위적이고 자의적으로 잘못 번역된 번역 용어임에 대하여 이어지고 있는 세 번째 지적의 글입니다.
 
  
이 잘못 번역된 번역 용어를 지작하는 저의 글들 모두(이 글 포함)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the Reformation"이라는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지칭하는 표현을 가톨릭 교회의 문헌들에서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찾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트리엔트 공의회 문헌에서는,
 
이미 첫 번째 및 두 번째 글에서 말씀드렸던,
 
1997년에 발행된 라틴어 정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400항에 등장하는,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지칭하는 "the Reformation"이라는 표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종교 개혁"이라는 번역 용어에 자구적으로 대응하는 "the religious Reformation"이라는 표현도 없습니다.
 
대신에, 이 공의회의 목적이 그러하였듯이, "Catholic Reformation(가톨릭 개혁)"에 대한 이 공의회의 결과들이 주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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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엔트 교리서(즉, 로마 교리서)에서는,
 
이미 첫 번째 및 두 번째 글에서 말씀드렸던,
 
1997년에 발행된 라틴어 정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400항에 등장하는,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지칭하는 "the Reformation"이라는 표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종교 개혁"이라는 번역 용어에 자구적으로 대응하는 "the religious Reformation"이라는 표현도 없습니다.
 
 
참고 2-1:
 
여기를 클릭하면, <----- 바쁘지 않으신 분들의 필독을 권유합니다.
 
이 공의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대단히 노력하셨으며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가톨릭 개혁(Catholic Reformation)"을 주도하신, 성 가를로 보로메오 대주교/추기경님(St. Charles Borromemo)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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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년) 문헌에서는 "the Reformation"이라는 표현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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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오 13세 교황님(재위 기간: 1878-1903년)의 1881년 6월 29일자 회칙(제목: DIUTURNUM, 국가 권력의 기원에 관하여) 제23항의 전후 문맥 안에서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지칭하는 "the so-called Reforma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동안의 인터넷 검색 결과를 참고하였을 때에, 이 표현이 가톨릭 교회의 문헌에서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처음으로 지칭하는 표현으로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여기를 클릭한 후에 부록으로 이동하면, 그 사용 방식이 안내되어 있는 DS(Denzinger) 전체 자료들에 대한 검색 결과에 의하면, 위의 문헌에 있는 바로 "the so-called Reformation"이라는 표현이, 가톨릭 교회의 문헌들 중에서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처음으로 지칭하는 표현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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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4-1: 비오 13세 교황님께서는 1891년에, 당시의 상당히 어지러웠던 유럽 지역의 정치적 및 경제적 상황을 직시하고는, 인간 인격의 존엄성에 직결된 노동의 신성함을 천명하기 위하여 대단히 중요한 가톨릭 교회의 사회 교리에 대한 첫 회칙[제목: 새로운 사태(노동 헌장)]을 공포하셨는데, 동일한 교황님에 의한 바로 위의 1881년도 회칙(제목: 국가 권력의 기원에 관하여)은 이 중요한 회칙의 당시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문헌으로 보입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레오 13세 교황님에 대한 비교적 잘 요약된 소개의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비오 13세 교황님과 이후의 교황님들에 의한 가톨릭 교회의 사회 정의에 대한 가르침들로 안내하는 글[제목: 교황님의 역할 IV - 사회 정의(social justice)에 대한 가르침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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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비오 13세 교황님의 1881년도 "국가 권력의 기원에 대하여" 제목의 회칙 제23항 전문입니다. 국내의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제공하는 우리말 번역은 제가 한 것입니다:
 
(발췌 시작)
 
 
DIUTURNUM
ENCYCLICAL OF POPE LEO XIII
ON THE ORIGIN OF CIVIL POWER
국가 권력의 기원에 대한 교황 레오 13세 회칙
 
(이전 생략)
 
23. On the other hand, the doctrines on political power invented by late writers have already produced great ills amongst men, and it is to be feared that they will cause the very greatest disasters to posterity. For an unwillingness to attribute the right of ruling to God, as its Author, is not less than a willingness to blot out the greatest splendor of political power and to destroy its force. And they who say that this power depends on the will of the people err in opinion first of all; then they place authority on too weak and unstable a foundation. For the popular passions, incited and goaded on by these opinions, will break out more insolently; and, with great harm to the common weal, descend headlong by an easy and smooth road to revolts and to open sedition. In truth, sudden uprisings and the boldest rebellions immediately followed in Germany the so-called Reformation,(29) the authors and leaders of which, by their new doctrines, attacked at the very foundation religious and civil authority; and this with so fearful an outburst of civil war and with such slaughter that there was scarcely any place free from tumult and bloodshed. From this heresy there arose in the last century a false philosophy - a new right as it is called, and a popular authority, together with an unbridled license which many regard as the only true liberty. Hence we have reached the limit of horrors, to wit, communism, socialism, nihilism, hideous deformities of the civil society of men and almost its ruin. And yet too many attempt to enlarge the scope of these evils, and under the pretext of helping the multitude, already have fanned no small flames of misery. The things we thus mention are neither unknown nor very remote from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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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Especially the Peasant Revolt and its repression by the German princes. Luther himself then had to stress the duty of the citizens to obey the civil power (On the Civil Power,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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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다른 한 편으로, 최근의 작가들에 의하여 고안된 정치적인 힘(political power, 政權)에 대한 교리(doctrines)들은 사람들 사이에 커다란 불행들을 이미 산출하였으며, 그리고 이 불행들이 후대에 바로 그 최악의 재난들을 불러일으킬까 염려하게 됩니다. 이는 통치권을, 그 주관자로서, 하느님께 귀속시키는 것을 꺼리는 것은 정치적인 힘(政權)의 가장 큰 화려함을 소멸시키고 그리고 그 권력을 파괴하는 것을 기꺼이 하고자 함보다 못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힘이 사람들의 의지(will)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견해에 있어 잘못이며, 그리하여 그들은 권위를 너무 나약하고 불안정한 기초 위에 앉힙니다. 이는, 이러한 견해들에 의하여 자극을 받고 선동된 대중의 감정(the popular passions)들은 더 무례하게 터질 것이며, 그리고, 공동 복리(the common weal)에 대한 커다란 해로움과 함께, 손쉽고 평탄한 행로를 통하여 반란들로 그리고 공개적 선동으로 곤두박이쳐 하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갑작스러운 반란들과 가장 커다란 대담한 폭동들이 독일에서 소위 말하는 그 개혁(the so-called Reformation)에 곧바로 뒤따랐으며(29), 이들의 입안자들과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교리들에 따라, 종교의 권위 및 국가의 권위 바로 그 기초 자체를 공격하였으며, 그리고 너무도 두려운 내란(civil war)의 분출과 함께 그리고 폭동과 유혈을 면한 장소가 거의 없었을 정도의 도살과 함께 이러한 공격을 하였습니다. 바로 이 이단(this heresy)으로부터 지난 세기에, 많은 이들이 유일한 참된 자유(liberty)로서 간주하는 고삐 풀린 방종(license)과 함께, 새로운 권리(a new right)(*)라고 불리는, 그리고 대중적 권위(a popular authority)라는, 거짓 철학(a false philosophy)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포들의 한계에, 즉 사람들로 이루어진 시민 사회(civil society)의 소름끼치는 기형들 그리고 거의 그 파멸인, 공산주의(communism), 사회주의(socialism), [19세기 러시아의] 무정부주의(nihilism)에 이미 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러한 악들의 범위를 넓히려고 하는 너무도 많은 시도는, 게다가 대중(the multitudes)을 돕는다는 것을 빙자하여, 비참(misery)으로 이루어진 결코 적지 않은 불꽃들을 이미 부채질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언급한 이 사태(the things)들은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아니고 그리고 우리로부터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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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그 중에서도 (독일에서의) 농민 봉기와 독일 제후들에 의한 이 봉기의 진압을 말한다. 그 무렵 루터(Luther) 스스로가 국가 권력에 복종하여야 하는 국민들의 의무를 강조하여야만 하였다 [On the Civil Power,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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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 a new right(새로운 권리)라는 표현의 의미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1878년도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을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vatican/hf_l-xiii_enc_28121878_qam_e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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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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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의 전후 문맥 안에서 살펴보면, "16세기의 그 개혁"이 단지 "종교적인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하고 있으므로, "the so-called Reformation"을 중국 및 우리나라 가톨릭계에서 "종교 개혁"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부적절한 번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고 4-2: 그리고 두 번째 글에서 이미 말씀드렸지만, 도서출판 작은예수 및 최형락 신부님 제공의 다음의 굿뉴스 서버 가톨릭 용어사전에 실린 "루터와 소위 종교 개혁" 이라는 제목에서, "소위"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이 가톨릭 용어사전을 편찬하신 분께서는 위에 발췌 인용한 레오13세 교황님의 회칙의 내용을, 혹은 이 회칙에 근거하고 있는 문헌에서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에 대하여, 이미 알고 계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두 번째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 용어사전에는, "종교 개혁" 이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은 아예 주어져 있지 않으며 다음은 이 용어사전에 주어진 "루터와 소위 종교 개혁"에 대한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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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와 소위 종교 개혁 ◆
한자 ~宗敎改革
[참조단어] 면죄부의 진상  대사 
 

   1. 마르틴 루터 :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1483년 독일의 빈농에서 태어나, 20세에 철학,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설에 의하면 1505년 친구죽음을 회상하던 중, 옆의 친구가 벼락으로 급사하자, 성녀 안나에게 수도 생활을 맹세하고 아우구스티노 수도원에 들어가 2년 만에 수사 신부가 되었다. 그 후 그는 비텐베르크의 대학 교수가 되었고, 1512년에는 신학 박사 학위를 획득하였다.

   2. 루터와의 논쟁 : 성 베드로
대성전 건립을 위해 대사령(大赦令 : 성 베드로 대성전 전대사)이 공포되자, 독일은 알베르토 대주교가 책임을 맡게 되었고, 당시 명성이 높던 테첼(Tetzel) 신부가 선전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루터는 그를 은근히 시기하였다.

   마침내 1517년
신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하는 관례에 따라, 테첼 신부가 비텐베르크에 오자, 루터는 그를 반박하기 위한 95개조 조항의 논문을 성당 문에 부착하였다. 이때 루터는 신학자 에크와의 논쟁에서, 교황 수위권공의회 무류성을 거부하였다.

   그 후 논박이 더욱 심해지자,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의 오견(誤見)을 정정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루터가 계속 고집하자, 1520년 교황은 엑수르제(Exsurge)라는 교서를 통해 반성을 촉구하였다. 그래도 루터는 반성은 고사하고 공개 석상에서 교서를 불태우며 교황에 도전하였다.

   결국 이듬해 루터는
파문(破門)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루터는 공공연히 교황을 배척하면서 성체, 세례 만 제외하고 다른 5개 성사는 폐기하였다. 그리고 다음의 3대 원리를 내세웠다. “사람은 원죄로 완전히 부패되어 자유가 없다. 그리고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만 얻는 것이지, 인간선행, 고행 등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또한 신앙의 규범은 성서뿐이다”가 그것이었다.

   3.
교회의 분열 : 그 후 루터는 1525년 26세의 카타리나 폰 보라 수녀와 결혼하였고, 1546년 세상을 떠났다. 물론 이때 루터를 따르던 일부 타락한 성직자도 있었다. 그러나 이 논쟁들은 소위 종교 개혁과는 무관하다. 그가 하느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된 것은 정통 교리를 자신의 임의대로 고치려는 데에 있었다.

   결국 그의 반박은
종교 개혁이라기보다는 종교의 분열을 조장한 셈이다. 그 후 성서의 자유 해석 결과만 보더라도, 한국에서만도 수백 개의 종파가 난립하고 있다. 이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관계없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로마 3,28)라는 성서 구절을 인용하여 ‘믿음으로만 구원’을 주장한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26)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원죄로 부패해서 어떤 선행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은 엉뚱하게도 인간선행을 무시한 결과만 가져왔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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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4-3:
 
이 용어사전의 설명은 위의 레오 13세 교황님의 회칙의 내용과 동일한 내용의 설명이라는 생각이며, 오로지 차이가 나는 것이 있다면,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the so-called Reformation" 이라는 표현이 교리적으로 어불성설인 "종교" 라는 표현이 쓸데없이 추가되여 "소위 종교 개혁"으로 번역된 것인데,
 
이렇게 번역된 주된 이유는,
 
이 용어사전이 집필되기 이전에,
 
(1) "the Reformation"이라는 표현이 누군가에 의하여 매우 작위적으로 그리고 자의적으로 "종교 개혁"으로 대단히 잘못 번역되었으며, 그리고 

(2) 이렇게 번역된 번역 용어에 대응하는, 예를 들어 "the religious Reformation" 등의 용어가, 지중해 지역 언어(라틴어 포함) 및 영어 용어가 교회의 문헌들에서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기에 대단히 잘못 번역된 용어라는 것을, 지금까지 아무도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고 다들 별 생각없이 그냥 사용해온 것이,
 
그 주된 이유라는 생각이며, 
 
적어도 이 작위적/자의적 잘못 번역된 번역 용어인 "종교 개혁"이라는 용어와 관련하여 바로 이런 사정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국내 가톨릭계의 현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문헌들을 우리말로 번역할 떄에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 원문이 말하고 있는 "개념"을, 정확하게 그리고 축소나 확대 없이, 있는 그대로 전달함에 있어, 얼마나 필요하고 또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하여,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 정말 확실하게 인식하셔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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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터넷 검색 결괴에 의하면, 그 다음으로 "the Reformation" 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가톨릭 교회의 문헌이 첫 번째 글에서 이미 말씀드렸던 제2차 바티칸 공의화의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Unitatis Redintegratio, 1964년 11월 21일)"에서이며, 이 교령의 제13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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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We now turn our attention to the two chief types of division as they affect the seamless robe of Christ.

13.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솔기가 없는 통으로 짠 내복(seamless robe, 요한 복음서 19,23)에 영향을 주었던, 분리의 두 개의 대표적 종류들에 우리의 주의를 돌립니다.

The first divisions occurred in the East, when the dogmatic formulae of the Councils of Ephesus and Chalcedon were challenged, and later when ecclesiastical communion between the Eastern Patriarchates and the Roman See was dissolved.

첫 분리들은, 에페소 및 칼케톤 공의회들의 교의 정식(the dogmatic formulae, 교의 신앙고백문)들이 도전을 받았을 때에, 그리고 그 이후에 동방 총대주교좌(Eastern Patriarchates)와 로마의 사도좌(Roman See) 사이에 교회의 친교가 사라졌을 때에, 동방에서 발생하였습니다.

Other divisions arose more than four centuries later in the West, stemming from the events which are usually referred to as "The Reformation." As a result, many Communions, national or confessional, were separated from the Roman See. Among those in which Catholic traditions and institutions in part continue to exist, the Anglican Communion occupies a special place.

다른 분리들은 4세기보다 더 이후에 서방에서 발생하였는데, 이 분리들은 보통 "그 개혁(The Reformation)" 이라고 언급되는 사건(the events)들에 기인하였습니다. 그 결과, 많은 수의, 민족적 혹은 신앙 고백적, 교파(Confessions)들이 로마의 사도좌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가톨릭 전통들과 제도들이 부분적으로 계속하여 존재하고 있는 교파들 중에서, 영국의 교파(Anglican Communion)는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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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5-1: 위의 번역은 제가 한 것이며,

여기를 클릭하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이 교령의 우리말 번역문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13장 전반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13. 그리스도의 혼솔 없는 속옷을 찢어 놓은 분열의 주요한 두 부류에 눈길을 돌려 본다.
 
그 첫째는 동방에서 생긴 것으로서, 에페소와 칼케돈 공의회의 교의 정식 논쟁에서, 또는 그 후대에 들어 동방 총대주교좌와 로마 사도좌 사이의 교회적 친교의 단절로 생겨난 것이다. 또 다른 분열은 그 뒤 4세기가 더 지난 다음, 서방에서, 일반적으로종교 개혁’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건들에서 일어난 것이다. 거기에서 국가나 교파의 공동체들이 로마 사도좌에서 갈라져나갔다. 가톨릭의 전통과 제도가 부분적으로 존속되고 있는 교회들 가운데에서는 영국 성공회가 특수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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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5-2: 
 
 
저 역시 한참 전에 여기에 실린 설명을 이미 읽었기에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실린 "the Reformation(그 개혁)"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실린 "the Reformation" 용어에 대한 설명의 첫 문장입니다. 그리고 우리말 번역은 제가 한 것입니다:
 
The Reformation
 
The usual term for the religious movement which made its appearance in Western Europe in the sixteenth century, and which, while ostensibly aiming at an internal renewal of the Church, really led to a great revolt against it, and an abandonment of the principal Christian beliefs.
 
...
 
(졸번역)
16세기에 서방 유럽에서 나타났으며, 그리고, 표면상으로는(ostensibly) 교회의 내적 쇄신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이에 반하는 커다란 봉기(revolt)를 불러일으켰으며, 그리하여 주된 그리스도교 믿음들의 포기를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 종교 운동(the religious movement)을 나타내는 통상적 표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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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 영어 가톨릭 대사전의 설명 중에도, "the religious Reformation" 이라는 표현은 단 한 번도 등장하고 있지 않으며,
 
그리고 그 내용은 이미 첫 번째 글에서 말씀드린,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다음과 같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 에 요약 설명된 범위를 벋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다음의 설명은, 위의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실린 설명을 잘 요약한 것으로도 생각됩니다. 아래의 우리말 번역은 제가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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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REFORMATION
개혁
 
서방 그리스도교를 분리하였으며 그리하여 세계적인 프로테스탄트주의(Protestantism)를 만들어 내었던, 종교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격변(upheaval)(1517-1648년)을 말합니다. 이 개혁의 원인들은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였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오랜 거주를 통한 교황의 권위의 약해짐과 일부 교황들의 세속적 경향(worldliness); 실제로 세속의 지배자들이었던 많은 주교들의 로마에 대한 불충성(disloyalty); 로마 교황청으로의 성직 임명에 있어서의 지나친 유보(reservation); 많은 사제들의 지성적 및 도덕적 부적합함(unfitness); 수도원들 일부에 있어서의 부(wealth) 및 이들의 지위들에 있어 불화(dissension); 평신도들 사이에서의 미신과 무지; 봉건 제도의 해체에 의하여 야기되었던 사회 불안(social unrest); 정치적 힘에 의하여 주어졌던 교회 안에 있는 반대자들에 대한지지(support); 지리학상의 새로운 발견들에 의하여 야기되었던 불안과 세속주의(secularism); 새로운 개념들을 퍼뜨리기 위한 활자 매체의 사용. 이 개혁(the Reformation)의 결과들은 다음과 같이 멀리까지 미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는 산산이 부수어지고, 종교에 있어 개인적 자유는, 근대 세속 국가의 일어남, 들쭉날쭉한 개인주의로서 자본주의의 일어남과 함께, 그리고 거의 천년 동안 서방 문화를 형성해 왔던 한 개의 공통의 믿음(a common faith)에 근거하였던 문화적 연대성(cultural solidarity)의 상실과 함께, 인간 행위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A religious, social, and political upheaval (1517-1648) that divided Western Christendom and created world Protestantism. Its causes were manifold: weakening of papal authority through long residence in France and the worldliness of some popes; disloyalty to Rome of many bishops who were really temporal rulers; excessive reservation of ecclesiastical appointments to the Roman Curia; intellectual and moral unfitness of many priests; wealth of some of the monasteries and dissension in their ranks; superstition and ignorance among the laity; social unrest brought on by the disentegration of the fuedal system; support given by political power to dissenters in the Church; unrest and secularism brought on by the new geographical discoveries; and the use of the printing press to propagate the new views. The effects of the Reformation have been far-reaching: Christian unity was shattered, personal liberty in religion affected every sphere of human activity, with the rise of the modern secular state, of capitalism as rugged individualism, and with the loss of the cultural solidarity, founded on a common faith, that had shaped Western civilization for almost a millennium.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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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the Reformation”을 지금까지처럼 제한적 의미를 가진 표현인, 그러나 교리적으로 및 어법상으로 상당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표현인, 그리고 도대체 누구가 이렇게 번역하였는지도 모르고 있는, “종교 개혁으로 번역된 용어를 우리나라라는 지역 교회의 언어로 번역된 교회의 문헌들에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은, 다양한 원인들을 가졌던 상당히 포괄적인 바로 이 “16세기의 개혁”을,
 
아무리 긍정적으로 이해하더라도, 
 
"종교 "이라는 표현으로 번역함으로써, 단지 “종교 분야의 개혁”만으로 축소 해석하려는 자들의 작위적/자의적 시도에, 알게 혹은 모르게, 동의 혹은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대단히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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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터넷 검색 결괴에 의하면, 그 다음으로 "the Reformation" 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가톨릭 교회의 문헌이 첫 번째 글에서 이미 말씀드렸던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1997년에 라틴어 정본 발행)로 파악이 되고 있으며, 이 교리서의 제1400항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00항에서 "the Reformation" 으로 번역되는 파란 색으로 굵게 표시한 단어들을 비교/검토해 보십시오. 어디에 "religious" 등의 단어가 거기에 추가로 있는지요?
 
 
(라틴어 정본)
1400 Communitates ecclesiales e Reformatione ortae, ab Ecclesia catholica seiunctae, « praesertim propter sacramentum Ordinis defectum, genuinam atque integram substantiam mysterii eucharistici non » servant. Hac de causa, pro Ecclesia catholica, intercommunio eucharistica cum his communitatibus possibilis non est. Hae tamen communitates ecclesiales « dum in sancta Cena mortis et resurrectionis Domini memoriam faciunt, vitam in Christi communione significari profitentur atque gloriosum Eius Adventum exspectant ».

(아탈리아어본)
1400 Le comunità ecclesiali sorte dalla Riforma, separate dalla Chiesa cattolica, « specialmente per la mancanza del sacramento dell’Ordine, non hanno conservato la genuina ed integra sostanza del mistero eucaristico ». Per questo motivo, non è possibile, per la Chiesa cattolica, l’intercomunione eucaristica con queste comunità. Tuttavia, queste comunità ecclesiali, « mentre nella santa Cena fanno memoria della morte e della risurrezione del Signore, professano che nella Comunione di Cristo è significata la vita e aspettano la sua venuta gloriosa ».
 
(프랑스어본)
1400 Les communautés ecclésiales issues de la Réforme, séparées de l’Église catholique, " en raison surtout de l’absence du sacrement de l’Ordre, n’ont pas conservé la substance propre et intégrale du mystère eucharistique " (UR 22). C’est pour cette raison que, pour l’Église catholique, l’intercommunion eucharistique avec ces communautés n’est pas possible. Cependant, ces communautés ecclésiales, " lorsqu’elles font mémoire dans la sainte Cène de la mort et de la résurrection du Seigneur, professent que la vie consiste dans la communion au Christ et attendent son retour glorieux " (UR 22).
 
(포르투칼어본)
1400. As comunidades eclesiais saídas da Reforma, separadas da Igreja Católica, «não [conservaram] a genuína e íntegra substância do mistério eucarístico, sobretudo por causa da falta do sacramento da Ordem» (242). É por esse motivo que a intercomunhão eucarística com estas comunidades não é possível para a Igreja Católica. No entanto, estas comunidades eclesiais, «quando na santa ceia fazem memória da morte e ressurreição do Senhor, professam que a vida é significada na comunhão com Cristo e esperam a sua vinda gloriosa» (243).
 
(스페인어본)
1400 Las comunidades eclesiales nacidas de la Reforma, separadas de la Iglesia católica, "sobre todo por defecto del sacramento del orden, no han conservado la sustancia genuina e íntegra del misterio eucarístico" (UR 22). Por esto, para la Iglesia católica, la intercomunión eucarística con estas comunidades no es posible. Sin embargo, estas comunidades eclesiales "al conmemorar en la Santa Cena la muerte y la resurrección del Señor, profesan que en la comunión de Cristo se significa la vida, y esperan su venida gloriosa" (UR 22).
 
(영어본)
1400 Ecclesial communities derived from the Reformation and separated from the Catholic Church, "have not preserved the proper reality of the Eucharistic mystery in its fullness, especially because of the absence of the sacrament of Holy Orders."236 It is for this reason that Eucharistic intercommunion with these communities is not possible for the Catholic Church. However these ecclesial communities, "when they commemorate the Lord's death and resurrection in the Holy Supper . . . profess that it signifies life in communion with Christ and await his coming in glory."237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_
 
 
1400 종교 개혁으로 가톨릭 교회에서 갈라져 나간 교단들은 “특히 성품성사의 결여로 성찬 신비 본연의 완전한 실체를 보존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가톨릭 교회는 이들 교단들과 성찬례 공동 거행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교단들도“거룩한 만찬에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고,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는 삶을 상징한다고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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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결언 및 잠정 결론)
 
7-1. 이번의 글에서는, 구글 검색 기능을 사용하여, 교회의 문헌들(교황청 홈페이지 제공 문헌들 포함) 중에서 "the Reformation" 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문헌들을 연대순(chronological order)으로 찾아 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비록 위에서 말씀드린 자료들이 전부는 아닐 것이나, 그러나 가톨릭 보편 교회의 문헌들에서 "the Reformation"이라는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의 전후 문맥을 파악하는 데에는 충분하리라 생각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첫 번째 글과 두 번째 글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지적을 하였듯이, 우리나라라는 지역 교회의 문헌들에서 현재까지 사용 중인 "the Reformation"에 대응하는 번역 용어로서 "종교 개혁"이라는 번역 용어는, 교리적으로 그리고 어법에 있어, 대단히 작위적/자의적으로 잘못 번역된 번역 용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며,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반드시 바로잡아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7-2. 그리고 그동안 제가 심사숙고하면서 찾아본 영문 인터넷 검색 결과들을 고려하였을 때에, "the Reforma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 중인 1881년 이전의 출처가 분명한 보편 교회의 문헌이 발견될 때까지는, 비오 13세 교황님(재위 기간: 1878-1903년)의 1881년 6월 29일자 회칙(제목: DIUTURNUM, 국가 권력의 기원에 관하여) 제23항의 전후 문맥 안에서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지칭하는 "the so-called Reforma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바로 이 표현이, 가톨릭 교회의 문헌들 중에서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지칭하는 첫 표현으로 사용되었다는 잠정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7-3. 이상, 제가 드린 세 번에 걸쳐, 작위적/자의적으로 잘못 번역된 번역 용어인 "종교 개혁"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지적하는 글들이, 우리나라라는 지역 교회의 교우님들 모두가(성직자 및 수도자들 포함), 우리말로 번역된 문헌들을 읽으면서, 교황청 발 가톨릭 보편 교회의 문헌들에서 가르치고 있는 내용들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에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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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순태 마태오 교수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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