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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의 옹졸한 교만의 결과는? - 루카 4,21-30; 마태오 13,54-58; 마르코 6,1-6 <다연중4주일복음> prid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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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4 ㅣ No.1332


질문:

예수님의 말씀에 고향사람들은 좋게 말하고 놀라워하였다고 성경에 나오며 다만 그분의 신분에 대해 의구심을 표현했다고 해서 회당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화가 잔뜩 날 그런 말씀(엘리야가 단지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엘리사 시대에는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을 왜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화를 돋우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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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주신 질문은,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있어, 다해 연중 제4주일 복음 말씀(루카 4,21-30)으로 발췌되고 있는 신약 성경의 본문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에 병행하는 복음 말씀들은, 루카 복음서 4,21-30에서처럼 구약 성경으로부터의 구체적인 예(examples)들의 제시가 주어져 있지 않은,

(i)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매년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복음 말씀(마태오 13,54-58),

(ii)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서 발췌되고 있지 않는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는, 마르코 4,16-30이 있습니다.

2.
2-1.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해-I"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연중 제4주일 복음 말씀(루카 4,21-30)의 제22절의 두 번째 문장에 대한 해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발췌 시작)
복음사가 루카가 예수님의 동정 수태(virginal conception)를 이미 기록하였으나(루카 복음서 1,26-38), 그러나 마리아는 요셉(Joseph)의 아내이기에 이 통상의 반응은 예수님을 요셉에게 귀착시킨다. 아마도 친척들이었을 청중들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로서 알았으며 그리고 당신께서 성장하시는 것을 지켜보았을 것이기에 당신을 오로지 인간(human)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상, 발췌 끝).

그리고 이어지는 제24절에 대한 위의 "성경공부 해설서"에 주어진 해설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발췌 시작)
그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권리(entitlement)를 가지고 있다고 망망(妄望)하여(presume), 자신들의 심장(hearts)들을 바꾸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자만심(vanity)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당신께서 기적들을 행하실 것을 그들은 요구한다. 
(이상, 발췌 끝).

2-2. 그리고 다해 연중 제4주일 복음 말씀(루카 4,21-30)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에서는 그 이유가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의 옹졸한 교만(narrow-minded pride) 때문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단히 좋은 해설이 주어져 있으므로,

여기를 클릭한 후에 <----- 필독 권고

전문을 읽으실 것을 권고 드립니다.

2-3. 그리고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교만(pride)은,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Pope Gregorio I, the Great)에 의하여 처음으로 "칠죄종(seven capital sins)들"로 나열되고 그리고 불리게 된, 일곱 개의 죄의 우두머리들 중의 한 개입니다.

그리고 "칠죄종"들에 대한 글들은 다음의 주소에 있습니다. 추가적인 읽을꺼리로서 또한 안내해 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seven_capital_sins.htm

3.
특히 신약 성경 중의 한 개의 복음서의 특정 구절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서, 신약 성경 중의 다른 복음서들에 있을 수 있는 이 구절의 병행 구절들을 또한 읽고서 함께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동일한 사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의 폭을 넓혀 주므로, 대단히 중요할 것입니다.

3-1. 다음은 마태오 복음서 13,57의 첫 문장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전문입니다. 또한 참고하십시오:

(발췌 시작)
직역: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에게 걸려 넘어졌다" (또는,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셨다.") 셈족 방식의 이 표현은 경우에 따라서 '죄짓게 하다' 는 뜻도 지니는데(5,29 각주 참조), 여기에서는 '거부하다', '밍으려고 하지 않다', '상관하려하지 않다' 등으로도 이해한다.
(이상, 발췌 끝).

3-2. 그리고 다음은 마르코 복음서 6,3의 마지막 문장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전문입니다. 또한 참고하십시오:

(발췌 시작)
직역: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에게 결려 넘어졌다" (또는,"그분께서는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셨다.")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미 잘 안다고 여기면서 그분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6절), 그분께서는 그들이 부딪혀 넘어지는 걸림돌이 되신 것이다(마태오 5,29 각주; 26,31 각주 참조).
(이상, 발췌 끝).

3-3.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매년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복음 말씀(마태오 13,54-58)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17_fri.htm


참고 사항 한 개: 끝으로, 필자가 들여다 본 바에 의하면,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성경 구절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인용 혹은 발췌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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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 3시간 (우리말 번역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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