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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아들들 - 창세 38 [성경공부_타마르] [_페레츠] [_역연혼] [_수혼법] [_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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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1 ㅣ No.1414


질문 1:

창세기 38
에서 그리고 1역대기 2,4에서 언급되고 있는, 타마르(Tamar)가 시아버지인 유다(Judah)의 씨앗을 받아 쌍둥이들인 페레츠와 제라를 낳은 것은, 소위 말하는, 고대의 "역연혼(逆緣婚, levirate)"의 결과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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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답변: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우선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창세기 제38장의 어떤 부분도 미사 중의 제1독서로 발췌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글에 대한 배경으로서,

여기를 클릭하여,

창세기 제38장 전문을 잘 읽도록 하십시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7월 12일]

다음은 NAB창세기 38,1-30에 대한 주석 전문입니다:

출처: http://old.usccb.org/nab/bible/genesis/genesis38.htm

(발췌 시작)
[1-30] This chapter, from the Yahwist source, has nothing to do with the Joseph story in which Judah is still living with his father and brothers. The sacred author inserted this independent account from the life of Judah at this place to mark the long lapse of time during which Joseph's family knew nothing of his life in Egypt. This is apparently a personalized history of the early days of the tribe of Judah, which interbred with several Canaanite clans, though some of these soon became extinct.

[1-30] 야훼계 전승(Yahwist source)(*)으로부터 유래하는 이 장은, 그 안에서 유다(Judah)가 여전히 자신의 아버지 및 형제들과 함께 살고 있는, 요셉(Joseph)의 이야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성스러운 저자는, 그 기간 동안에 요셉의 가족이 이집트에 있는 유다의 삶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였던 기간에 있어서의 긴 경과를 표시하기 위하여, 유다의 삶으로부터 이러한 독립적인 이야기를 바로 이 자리에 삽입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언뜻 보기에, 여러 가나안 씨족(Canaanite clans)들과 이종 교배(異種交配)를 하게 되었던(interbred with), [그리고] 비록 그들 중의 일부는 곧 소멸하게 되었기는 하지만, 유다 부족(the tribe of Judah)의 초기 시절에 대한 한 개의 개별화된 역사인 것 같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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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다음은 "야훼계 전승"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783.htm
[바로 위의 출처의 마지막 부분의 게시자 주 아래의 제5-1항]

(발췌 시작)
5-1. 남쪽의 유다 왕국에서 먼저 토라 기록을 마쳤는데 (기원전 850년경), 이것을 두고서 야훼계 전승(Jahwist source 혹은 Yahwist source)이라고 부르며, 그 특징 중의 하나가 장자의 계승권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상, 발췌 끝)
-----

[이상, 내용 추가 끝].

질문 1에 대한 답변: 이어지는 제2항의 자료들에 의하면, 그렇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연혼(逆緣婚)"

= "levirate" or "brother-in-law" marriage (창세기 38,8에 대한 NAB 주석)

= "수혼법(嫂婚法)" 입니다.

게시자 주: 위의 질문 1에 이어지는 질문 2는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주어져 있습니다.

2.
2-1.
다음은 St. JosephNAB(New American Bible)의 부록으로 주어진 Bible Dictionary에 주어진 "levirate(역연)" 에 대한 설명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Levirate. This word, derived from the Latin levir (brother-in-law) designates an ancient Isralite custom (Gn 38, 8ff), codified in the Bible: when a man dies without leaving a male child, the closest relative of the deceased - generally, his brother - must marry the widow who is his sister-in-law and thus perpetuate the line. The first son born of this union would be considered the son and heir of the dead man (Dt 25,5-10).

역연(逆緣, levirate). 라틴어 단어 levir (법률상의 남자 형제, brother-in-law)로부터 유래하는 이 단어는 오래된 이스라엘의 관습 한 개를 나타내며(창세 38,8 및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 성경에 다음과 같이 성문화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남자 아이를 남김 없이 죽을 때에, 망자의 가장 가까운 친척은(*) - 일반적으로, 그의 남자 형제는 - 자신의 법률상의 여자 형제인(sister-in-law) 이 미망인과 혼인을 하여야 하며 그리하여 그 결과 가계를 영속시켜야 합니다. 이 결합으로부터 태어나게 된 첫 번째 아들은 죽은 사람의 아들 및 상속자로 간주될 것입니다 (신명 2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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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주석 성경" 신명기 25,5에서 "남편의 형제"로 번역된 표현에 대한 주석은 다음과 같다:

(발췌 시작)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은 일반적으로 가장 가까운 친족을 가리키는데, 본문에서는 '남편의 형제' 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하 생략).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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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따라서 창세기 38에서, 자신의 남편이 죽은 후의 "타마르(Tamar)"의 두 번의 경우들 모두가 바로 이 역연혼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다음의 유다 백과 사전에 주어진 "levirate" 에 대한 설명에서도 분명합니다:

2-2. 다음은 유다 백과사전에 주어진 "levirate" 에 대한 설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jewishencyclopedia.com/articles/9859-levirate-marriage

(발췌 시작)
The case of Ruth is not one of levirate marriage, being connected rather with the institution of the Go'el; but the relations of Tamar with her successive husbands and with Judah are an instance (Gen. xxxviii.)

룻(Ruth)의 경우는 역연혼(逆緣婚, levirate marriage)의 한 개가 아닌데, 이는 그보다는 오히려 Go'el (즉, redeemer, 구제자)에 대한 제도(institution)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며; 그러나 타마르(Tamar)그녀의 연속하는 남편들유다(Judah)와의 관계들은 사례(an instance)입니다 (창세 38).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3. 다음은 Encyclopedia Judica에 주어진 "widow"에 대한 설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특히 우리말로 번역문들이 제공되고 있는 부분들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Encyclopedia Judaica]

(발췌 시작)
The earliest and by far the most famous biblical personage given the title of almanah was Tamar, the daughter-in-law of Judah (Gen. 38). [almanah 라는 칭호가 주어졌던 가장 이른 그리고 가장 유명한 성경의 개인은, 유다(Judah)의 법률상의 딸(daughter-in-law, 며느리)이었던, 타마르(Tamar)였습니다 (창세 38).] When Judah's son Er died, leaving Tamar a childless widow, Judah told Onan, his secondborn, to live with Tamar as husband and wife so as to beget an offspring for his dead brother (see Deut. 25:5–10). Onan, bearing in mind the fact that the offspring, whom he would have to bring up, would not count as his, practiced only coitus interruptus with her (Gen. 38:9). For this, God punished him with death, and the responsibility passed on to the third and youngest of the three sons, Shelah. However, Judah, fearing that marriage to Tamar was unlucky, claimed that Shelah was too young to fulfill his duty and sent Tamar away to live in the house of her own father "as an almanah" (Gen. 38:11). Given paragraph 33 of the Middle Assyrian Law Code quoted above,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Tamar was called an almanah only when Judah, her father-in-law, sent her out of his house. It might reasonably be asked whether Tamar would have been called an almanah at all had she remained in the house of her father-in-law.

When Shelah grew up and Judah still did not give him to her as a husband, she resorted to the following ruse. At a time when Judah was likely to be attracted by a sexual opportunity, she removed "her garments of almanah-hood," i.e., "the clothes of her status as almanah," and sat down, veiled, in a spot where she knew that Judah was to pass and where a woman sitting alone was likely to be taken for a prostitute. Judah, not recognizing her because of her veil, became her customer. When he later learned that his daughter-in-law was pregnant, Judah at first ordered that she be burned (Gen. 38:24). When Tamar, however, privately proved to him that he was the father of her child, he publicly declared that not she but he was at fault, since her conception through him was justified by his failure to give her to Shelah. The legal background of the episode is not only Deuteronomy 25:5ff. (levirate marriage), but also the Middle Assyrian Laws referred to above, for only the latter provides evidence that the father-in-law has the privilege of deciding to which of his surviving sons the widow is to be given or even of taking her for himself. [이 에피소드의 법적 배경은 신명기 25,5 및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 (역연혼) 뿐만이 아니라, 또한 위에서 언급된 중기 아시리아 법들(the Middle Assyrian Laws)인데, 이는 오로지 후자가 법률상의 아버지(father-in-law, 시아버지)가 자신의 생존 중인 아들들 중의 누구에게 이 미망인이 주어져야 하는지 혹은 심지어 자기 자신을 위하여 그녀를 취하여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특권(privilege)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evidence)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Elsewhere, the woman hired by Joab to play the part of an almanah so as to induce David to take back his son Absalom (II Sam. 14:1ff.) claims (verse 5): "I am an almanah. My husband died." Both Hiram (I Kings 7:14) and Jeroboam I (I Kings 11:26) are designated as sons of an almanah. With respect to the latter, who was responsible for the splitting of the United Monarchy, there is a very interesting, somewhat parallel, Akkadian omen, which occurs many times: mār almattim kussi'am isabbat. "The son of an almattum will seize the throne" (A. Goetze, Old Babylonian Omen Texts; Yale Oriental Series, 10 (1947), 41:30).
(이상, 발췌 및 일부 문장들에 대한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다음의 지료에 의하면, 중기 아시리아 법들(the Middle Assyrian Laws)기원전 1450-1250년대에 속한다고 합니다:

http://www.well.com/user/aquarius/assyrian.htm
(이상, 게시자 주 끝).

3. (역연혼에 충실한 설명)
이번 항에서는 창세기 제38장의 이야기를, 위의 제2항의 정보를 염두에 두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1. 결국에, "유다"의 [이미 죽은] 장자 "에르"의 장자가 바로 "페레츠" 입니다.

그리고 다음의 내용은 그냥 참고하십시오:

다음의 유다 백과사전에 주어진, "페레츠"를 낳은 "Tamar(타마르)에 대한 설명에 의하면, 라삐 문헌에서 "타마르"는 "노아(Noah)"의 아들인 "셈(Shem)"의 딸(daughter)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셈(Shem)"은 사제였다고 합니다:

출처: http://www.jewishencyclopedia.com/articles/14222-tamar

그리고 지금 말씀드린 바는, 당시의 혼인 풍습을 먼저 이해하셔야 합니다. 다음은, 창세기 38,8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유다는 아시리아와 같은 다른 백성들도 알고 있던 역연혼(逆緣婚)을 적용한다. 이 제도에 따르면 (신명 25,5-10), 형제들 가운데 하나가 후사 없이 죽었을 경우 그의 다른 형제가 형수(또는 제수)와 혼인하여 죽은 이의 자손을 대신 낳아 주어야 했다.
(이상, 발췌 끝).

3-2. 그런데, 유다가 이 혼인법의 적용을 자신의 셋째 아들인 "셀라"가 장성한 후에 그에게도 적용하여 "타마르"가 이미 죽은 자신의 남편의 후손을 얻을 수 있게 허락하지 않으니, "타마르"가 이미 죽은 자신의 남편인 "에르"의 후손을 기어이 얻고자, 드디어 자신의 시아버지를 속여 쌍둥이 아들들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 쌍둥이 형제들은, 이미 죽은 "에르"의 아내인 "타마르"가 낳았기에, 이미 죽은 장자인 "에르"의 후손들이라는 생각입니다.

3-3. [... 이미 죽은 유다의 장자 에르가 아들을 낳았다 ...]

<----- 당연히,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이런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3-4. 이 때에 또한, "유다" 자신이, "타마르"의 그러한 행위가 자신보다 더 옳다고 인정한 다음의 창세기 38,26를 상기하십시오:

(발췌 시작)
유다가 그것을 살펴보다 말하였다. "그 애가 나보다 더 옳다! 내가 그 애를 내 아들 셀라에게 아내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하, 생략).
(이상, 발췌 끝).

그리고 다음은, 바로 위에서 발췌해드린 부분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 ... 나보다 더 의롭다." 로 옮길 수도 있다. 타마르의 행동이 비록 모든 면에서 완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후손이 끊기지 않도록 유다보다 더 정성과 힘을 쏟았다는 의미에서 의롭다는 것이다. 히브리 말에서 '의롭다' 는 개념은 어떤 관계 또는 어떤 원칙에 대한 성실성을 말한다. 이 점에서 성조의 후손은 이어져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성실성은 '의로운 행위' 로 평가된다.
(이상, 발췌 끝).

즉, 이미 죽은 남편인 "에르"는 성조의 후손이고 그리고 바로 이 성조의 후손이 "타마르"의 행위에 의하여 결국에 이어졌기 때문에, 그러한 "타마르"의 행위가 의롭다고 평가된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만약에 시아버지가 주도하여 자신의 죽은 장자의 며느리와 "혼인"을 하였더라면, 그러한 행위를 두고서 결코 "의롭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3-5. 그리고, 생물학적으로야, 당연히 그들 쌍둥이는, 유다의 친자들이지요. 그래서 1역대기 2,4에서 그렇게 기술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3-6. 위의 제2항에 주어진 당시의 관습의 범주 내에서, "타마르"는 자신의 막내 시동생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시댁의 나머지 남성들 중에서 가장 가까운 자인 자신의 시아버지의 씨앗을 받아, 자신의 죽은 남편의 후손으로 삼으려고 시도하였다는 생각입니다. 

3-7. 다음은 창세기 38,14"과부의 옷을 벗고" 에 대한 주석성서 구약(상) [출판사: 성요셉출판사]의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과부의 옷을 벗고 장식품이 달린 사치스러운 창녀의 의복으로 갈아 입었다. 이런 행동은 (1) 남편의 '씨'를 남겨 한 가문의 여자로서 떳떳이 자신의 권리를 유지하려는 집념의 결과이고, (2) 유다가 계대(繼代) 결혼 규약 [즉, 역연혼]을 준수하지 않은데 대한 일종의 자구책이었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그런데, 위의 제2항에 전달해드린 정보들에 의하면, 바로 위의 제(2)항에서 말하는 "이 자구책" 또한 여전히 고대 히브리인들의 "역연혼(逆緣婚)" 관습의 범주 내에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그러므로, 그들 쌍둥이는 "역연혼(逆緣婚)" 에 의하면 "타마르"의 죽은 첫 남편(즉, 유다의 장자)의 아들들이고, 그리고 또한 생물학적으로는 유다의 친자들이라는 생각입니다. 즉, 모세 율법이 주어지지도 않았던 대단히 오래 전에,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의 근친상간에 의하여 잉태되고 그리고 태어난 그들은 성조인 유다의 법적 손자들이고 또한 성조인 유다의 친자들입니다.

3-8. 다음은 창세기 38,8에 대한 NAB 주석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old.usccb.org/nab/bible/genesis/genesis38.htm

(발췌 시작)
[8] Preserve your brother's line: literally "raise up seed for your brother." The ancient Israelites regarded as very important their law of levirate, or "brother-in-law" marriage; see notes on Deut 25:5; Ruth 2:20. (이하 생략)

[8] 네 형에게 자손을 일으켜 주어라: 글자 그대로, "너의 형을 위한 씨앗을 땅 위로 소생시키도록 하라." 고대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자신들의 역연혼(逆緣婚), 혹은 수혼법(嫂婚法)을 대단히 중요한 법으로서 간주하였으며, 신명기 25,5; 룻 2,20에 대한 주석들을 보라. (이하 생략)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9. 그리고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구약 성경의 본문에서 "아들(son)"이라는 단어는 "친자" 혹은 "자손"을 의미합니다.

3-10. 다른 한편으로, 미망인 "타마르"의 쌍둥이 아들들의 경우에도 재산 상속이 개입된 문제이기도 하므로, 만약에 구약 성경의 본문 중에서 그들 쌍둥이가 누구의 상속자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4. 그리고 마태오 복음서 1,3의 다음과 같은 기록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와 아무런 충돌이 없음은 자명합니다. 왜냐하면, "역연혼(逆緣婚)" 에 의하여 태어나게 된 이들 쌍둥이 형제들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유다"인 것은 창세기 제38장에 너무도 분명하게 그리고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발췌 시작)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
(이상, 발췌 끝).

질문 2: 만약에 "유다"가 자신의 쌍둥이 친자들을 자신의 며느리인 "타마르"를 통하여 얻게 되는 과정이, "유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나 "유다" 자신이 자신의 며느리 "타마르"에게 적용하였던, 모세 율법 이전부터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받아들여졌던 관습이었던, 바로 이 "역연혼(逆緣婚)"에 적법하게 근거하지 않았더라면, 후세의 창세기 기록자들 및 편집자들이 성조 "유다"와 그의 며느리 "타마르" 사이의 근친상간을 어떻게 모세 율법적으로 정당하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요?
 
질문 2에 대한 답변"역연혼(逆緣婚)" 이외의 다른 설득력있는 언급이 없음을 위의 제2항에서 이미 고찰하였듯이, 그리고 또한, 예를 들어, 레위기 18,15; 20,12 의 금지 규정들 때문에, 모세 율법적 정당화가 불가능하였을 것임이 많이 부족한 죄인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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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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