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성월 기원미사 요한 15,9-17; ’18/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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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8-06-02 ㅣ No.3553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성월 기원미사 요한 15,9-17; ’18/06/02

 

오늘 예수 성심 성월 기원미사를 드리면서, 예전에 중림동 성당을 다닐 때 주임사제이신 김창석 타태오 신부님께서 예수 성심 성월에 해주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느 한 청년이 폭력조직에 가입하려고 했답니다. 그러자 그 두목이 여기에 들어오려면 아주 독해야 한다. 그러니 네가 가서 어머니의 심장을 도려오면 너를 받아주겠다.” 고 했답니다. 그 청년은 그 조직에 가입하고만 싶은 욕망에 빠져, 집에 가서 어머니의 심장을 도려내어 어서 빨리 두목에게 갔다 주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달려가다가, 그만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답니다. 넘어지는 바람에 손에 들고 있던 어머니의 심장이 땅에 떨어졌답니다. 저만치 떨어진 어머님의 심장이 피를 뚝뚝 흘리면서 말했답니다. “얘야, 다치지 않았니?” 그제서야 그 청년은 어머니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를 들으면서 회개와 통회의 눈물을 흘리며 땅을 쳤다고 합니다.

 

자식의 배반으로 자신의 목숨을 잃기까지 했으면서도 그 자식을 염려하고 돌보는 어머님의 마음을,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에 빗대어 하신 말씀으로 기억합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유다인들을 구하러 오셨지만, 유다인들은 시기와 질투 그리고 탐욕과 원망으로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그 옛날 이스라엘의 골고타 산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게 한 유다인들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주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할 때마다, 주님 사랑의 계명을 이행하지 않을 때마다, 자신의 탐욕과 이기적인 이익으로 이웃을 돌보지 않고 심지어는 해를 끼칠 때마다, 그리고 해서는 안 될 죄악을 저지를 때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의 몸에 대못을 박고 있음을 고통스럽게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탐욕과 이익을 취하기 위해 죄악을 저지를 때, 순간적으로 기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하고 올바른 길이 아니기에, 늘 가슴 한 구석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있습니다. 혹시라도 들킬까 봐, 지금 이 기쁨이 얼마 안 갈까 봐, 나중에 이 일이 탄로나서 내가 불이익을 당할까 봐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그것이 죄악일 때는 죄책감마저 더하여져 괴롭고, 다른 사람 앞에서 큰 소리도 못치고, 어딘지 모르게 숨고 싶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비밀이 발각되어 불이익이나 벌을 받지는 않을까, 자기가 취득한 것을 빼앗기지는 않을까 싶어 타인을 향해 문을 열어 놓지 못합니다. 오늘 기쁘지만, 늘 불안 속에 머물게 되고, 나중에 불이익을 당하게 될까 두려워하는 기쁨은 참 기쁨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안과 괴로움의 연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예수 성심 성월 기원미사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9-11)

 

우리가 진정 기쁘게 살고 싶다면, 우리는 이웃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접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마음이 편해질 것입니다. 내가 잘못해서 생긴 것이 아니건만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감정은 내 마음 속에서 마치 멍에처럼 나를 편치 못하게 하고 괴롭힙니다. 그로 인하여 내 안에 간직하고 있는 분노와 원망이 내 영혼을 갉아 먹습니다. 그것은 바로 원수인 악마에게 내 영혼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원수인 악마는 나에게 복수하라고 말합니다. 기회를 봐서, 힘만 생기면, 그를 괴롭히고 복수하라고 부추깁니다. 그러면 내 마음 속에 주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사랑이 점점 줄어들고, 악마가 부추기는 미움과 원망, 분노와 복수의 감정이 들끓게 되고 나를, 결국 나를 악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 하신 첫 말씀이 용서인가 봅니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요한 20,19) 그러시면서 그 평화를 얻는 방법을 용서라고 일러주십니다. 그리고 그 용서는 성령을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22-23) 이어서 토마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는 성령은 우리의 믿음으로 모실 수 있다고 알려주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29)

 

복수를 가져오는 미움과 원망이라는 감정은 내가 작정하고 마음 먹고 만들어 내는 감정이 아니라 악마가 심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스스로 지워내기 어렵습니다. 마음만 먹는다고 해결되는 감정이 아닙니다. 또 미움과 원망은 내가 잊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감정이 아닙니다. 그저 기억의 한 곁으로 잠시 숨어버릴 뿐이고, 나도 모르게 무의식 안으로 묻어버릴 뿐입니다. 그 때와 같은 상황이 내게 닥치거나 그와 비슷한 사람과 마주치게 되면, 그 미움과 원망의 감정은 증폭되어 나를 더 괴롭히고 한없이 약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 때마다 악마는 우리를 부추깁니다. 도망가라고! 피하라고! 복수하라고! 그러면서 우리를 악의 굴레에서 놓아주지 않고 계속 잡아 흔들어 대어, 마치 중독자처럼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 살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안팎으로 이겨내지도 못하고 타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도 못하는 우리는 이중고를 겪게 됩니다. 또 복수는 복수를 낳듯이 반복됨으로써 우리는 악의 마수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나에게 원수 같은 대상에게 복수하라고 부추기는 악이 처음 나를 괴롭힌 대상의 마음 속에서 나를 괴롭히도록 충동질하였으므로,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상대 사람이 아니라 바로 악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본의가 아니라 악에게 사로잡혀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악과 싸우는 우리의 무기는 화와 증오와 폭력의 복수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21)

 

악에서 헤어나는 일은 악에 빠져 나쁜 일을 한 상대를 용서하고, 나 스스로 그 복수하고자 하는 악의 감정에서부터 헤어나는 길입니다. 용서하는 마음 역시 우리가 마음을 먹는다고 말처럼 그렇게 쉽게 다 이루어지는 감정이 아닙니다.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은, 악마가 미움과 원망을 심어 놓듯이, 우리가 결심하고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주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청하는 우리에게 오시는 성령께서 치유해 주시는 큰 사랑의 행위입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의 상처와 아픔과 억울함과 고통을 씻어 주시고 위로해 주시며 치유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와의 대화 중에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라고 하시면서, 성령의 움직이심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8) 우리 마음대로 성령께서 움직이시기를 바랄 수도 없고, 우리가 청하는 대로 활동하시지도 않으십니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나눠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마침내 우리의 주님이 되신 주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깊이 하며,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기를 청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오셔서 우리를 치유해 죄와 악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구원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하면,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애쓰시는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거룩하신 예수성심, 성령을 보내시어 저희 죄를 씻어주시고 악에서 해방시켜, 우리 안에 주님 사랑을 회복시켜 주시어, 기쁨과 평화의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해주소서. 아멘.

성모 마리아님, 어둠과 죽음의 그늘 아래 신음하는 저희를 위하여, 거룩하신 예수 성심께 빌어주소서. 아멘.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7.11)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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