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2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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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1-03 ㅣ No.4893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21.01.07

 

용인에 가면 인보성체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중증 지체 장애아 요양원인 요한의 집이 있습니다.

겨울방학 때는 아이들이 대부모 집이나 자매결연을 맺은 가정으로 놀러 가고, 남은 아이들만 한곳에 모여있습니다.

 

어느 날 한 번은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갔습니다. OOOO이하고 간지럼 태우기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저를 향해 오는 것 같았습니다. 잠깐 놀고 있는데 갑자기 울음소리가 났습니다. 저를 향해 오던 아이가 제가 다른 아이와 놀고 있으니까 오다 말고 선생님께로 향했나 봅니다. 그런데 선생님도 다른 아이들을 돌보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면초가. 그 아이는 자기 한 몸 둘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선생님 저 선생님 사이를 그야말로 맴돌다가 갈 곳이 없으니까 울고 만 것입니다.

 

그 아이를 보면서 정말 몸 둘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점점 이상해지고, 또 이상해지니까 더욱더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들. 어느 누구 하나 따뜻하게 맞아주지 않아서 맴도는 사람들. 감싸주고 안아주지 않아 방황하는 수 많은 영혼들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많은 아이가 다 저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혹시 자기에게 오지 않나 해서 말입니다. 그 중엔 침대에 눕혀져 주삿바늘로 위에 직접 영양을 공급해 주어야만 할 정도로 증세가 심각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너무나도 큰 짐을 진 아이들입니다. 애처롭다는 감상적인 표현보다는, 너무나도 쉽게 포기하는 표정 없는 아이들의 모습이 서글프고 안타깝습니다.

 

나병환자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루카 5,12)하고 청합니다. 저도 한동안 매일 같은 지향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만 하시면 저를 주님의 거룩한 사도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는 요한의 집 아이들을 보면서 그 기도는 제가 주님께 청할 기도가 아니라, 그 아이들이 주님께 그리고 그 집을 찾는 이들에게 하는 청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제 손길이 자기에게 스쳐 가기를 바라는 아이들의 마음입니다. 적극적으로 요구할 기력조차 없고, 저항하고 극복할 아무런 희망조차 간직하지 못한 아이들. 그저 남이 자기에게 다가와 먹여주고 안아주기만을, 그야말로 처분만 바라는 아이들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나병환자는 유다 사회에서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간주하고 동네 밖에서 기거하도록 했습니다. 또 나병환자들 스스로도 자신들은 천형을 받은 것으로 여겼기에 그러한 상황에 저항하거나 거부하지 못하고 자포자기해 버렸습니다.

 

주님은 그런 이들을 고쳐 주시고, 그들을 다시 사회에 복귀시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14) 라고 엄하게 이르십니다.

 

저를 바라보는 이들이 떠오릅니다. 저의 처분만 바라는 이들은 요한의 집에서뿐 아니라 본당의 우리 교우들 그리고 본당 관할구역 내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가슴 속에 익명으로 남아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당을 향해 거는 지역사회의 기대들. 정의와 진실 그리고 선행은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더욱더 절실히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할 일이 많은가!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에제 36,25-26)

 

주님, 주님은 하고자만 하시면 저를 새로 나게 하시어 가난한 이들의 사도로 삼으실 수 있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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