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게시판
당신 영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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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누워계신 유리관이 안치된 곳, 열여덟 살 제가 성스러운 물로 이마를 씻김 받고 다시 태어나던 곳입니다. 저의 첫 성탄자정미사, 당신께서 집전하셨지요. 당신의 집 지척, 명동가톨릭 여학생관에서 젊음을 보내며 사순절 성목요일 무덤조배엔 주교관 뒤 쪽문을 통해 성당에 가기도 했습니다. 당신 머무시는 집을 돌아 어둠 속 계단을 오르던 한 무리의 여대생들을 그 밤 당신은 모르고 계셨겠지요. 철통같은 독재에도 남몰래 돌던 유인물 속, 눈 가린 언론이 미끄러뜨린 일들에 분통이 터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신은 그 즈음 외치셨지요. 이 세상에 먹힐 빵과 같은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당신의 말씀처럼 누가 세상에 먹힐 지도자였던가요? 아무도 빵 같지 않았고, 오히려 세상은 국민을 빵 삼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내 삶, 내 신앙 어지간히 상하고 깊어졌던 겨울날, 원주 땅 새 주교님 성성식에서 당신을 뵈었습니다. 늘 인기 최고시던 당신은 그날만큼은 주인공 새 주교님에게 밀리시며 한쪽 구석에 서신 채 빙그레 웃으셨지요. 그 다음해 훌쩍 떠나온 저를 마치 따라오신 양 당신은 로스안젤레스 성령대회 목마른 영혼들 앞에서 ‘사랑으로’란 노래를 부르셨지요.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모르는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시다고요. 그 말씀 얼마나 희망이 되었던지요. 아직도 그 가장 좋은 선물을 받지 못했다면 나는 덧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나봅니다. 출애굽의 백성들이 그토록 광야를 헤매듯이.
하늘로 가기까지 우리는 모두 목말라한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인용하시던 어느 사순절 피정도 당신 누워계신 그 명동성당이었습니다. 그곳에만 가면 힘이 솟던 시절, 저는 지금보다 더 목이 탔던 영혼, 아 정말 이 갈증 죽기까지 해소될 길 없습니다.
이제는 충만하실 당신, 이 세상에 오셨던 것 너무 감사했습니다. 들끓는 세상에 아니 오셨어도 충분했을 당신 영혼, 87년 동안 얼마나 목이 마르셨습니까. 지상의 삶에서 갈증을 느끼셨을 당신을 생각하면 나의 타는 목은 너무나 당연한 일, 내 가뭄의 목줄기를 더는 불평 않겠습니다. 갈라진 내 영혼, 나 돌아가기까지 바수어지지 않게만 잘 간직하다가 당신 가신 곳 나도 갈 수 있다면 그때에 영원토록 단비를 맞겠습니다. 계심으로 힘이 되던 그 날들은 가고, 이제 계셨음, 그 힘으로 더 긴 날이 흐를 것입니다. 당신이 세상에 계셨던 것,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떠나심을 애도하면서도 영원한 자리에 드셨음 축복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