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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공기업 민영화 어떻게 성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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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 [landpia21] 쪽지 캡슐

2008-09-04 ㅣ No.8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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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공기업 민영화 어떻게 성공했나
[기고]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세계적 민영화의 시발점이자 전범(典範)을 꼽는다면 영국의 공기업 민영화를 떠올리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영국은 1979년 이후 수백 가지의 민영화 기법을 동원하여 상업 부문 - 공익 설비 부문 - 공공 서비스 부문에 걸친 민영화를 성공시킨 바 있다.

주지하다시피 영국 민영화의 배경은 1970년대 유례없는 경제 위기이다. 19세기와 20세기 전반에 걸쳐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점했던 영국은 1970년 대 들어 미국에 비해 대부분의 산업에서 생산성이 3분의 1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저하되었고, 일상화된 파업으로 인해 경제 전반의 효율성이 전후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였다. 효율성 저하는 오일 쇼크가 전 세계경제를 강타하였던 1973년에서 1979년에 이르는 시기에 영국의 경제성장률을 1.5%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 ‘불만의 겨울’ 딛고 민영화의 전범(典範)이 된 영국

이러한 경제성적표는 후발 선진국가로 기세를 올리던 일본의 3.6% 성장률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유럽의 오랜 경쟁국인 프랑스(2.8%), 독일(2.3%)의 성장률보다도 못한 것이었다. 침체된 경제현실 속에서 영국민들은 상처받은 자존심을 안고 ‘불만의 겨울’에 침잠해 있었다.

‘불만의 겨울’을 딛고 ‘희망의 봄’을 맞이하기 위한 정책전환 가운데 하나가 민영화였다. 전후 영국에서는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경제정책 기조가 지속적으로 정책에 반영되면서 1979년 민영화가 시작될 때까지 공기업이 국내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았다. 1979년 영국의 공기업은 GDP의 10%, 국내 총투자의 7분의 1, 도매물가지수의 10%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약 1,500만 명의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었다.

영국의 공기업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었지만, 특히 운송·에너지·통신·철강·조선산업에서 압도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전력·통신·가스 등 공익설비산업에서 자연독점과 정부소유의 논리가 득세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처 총리는 어떻게 난공불락일 것 같았던 공기업들을 민영화시키는데 성공했던 것일까?

■ 영국 공기업 민영화의 전략과 수순

공공기관의 민영화 추진은 명확한 목표와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는 단계적 수순, 섬세한 민영화 기법 등 3요소가 전략적으로 어우러질 때 성공 가능성이 제고된다. 영국 정부는 바로 이러한 민영화 성공의 3요소를 놓치지 않았다.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영국정부는 경쟁을 통한 기업의 효율성 제고를 민영화의 목표로 설정하였다. 생산성 저하와 소모적 노사관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던 것이다. 민영화는 단순히 공공부문의 획기적인 효율성 향상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기업부문에 있어서도 세계 수준의 대외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영국 민영화 정책이 달성하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였던 것이다. 민영화를 통해 영국정부는 효율성 증대, 공공부문의 차입수요 감축, 기업경영에 대한 정부간섭 배제, 공공부문 임금 결정의 부담경감, 주식대중화와 종업원 지주제 장려를 통한 정치적 이익의 획득을 성취해내고자 했다.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은 단계적 접근을 통해 구현되었다.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영국 국영기업의 민영화는 대체로 4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1979~83년)에서는 규모가 작고 경쟁 환경이 조성된 기업을 우선 민영화하였다. 석유회사인 BP(British Petroleum) 주식 50% 매각을 필두로 항공(British Aerospace)·통신(C&W: Cable and Wireless), 운송(National Freight Corporation)회사들을 완전 매각하였다.

단계적 접근 통해 구현된 영국 민영화

재정수입(16억 파운드)에 중점을 두고 성공경험을 축적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던 1차 민영화에 이어 2단계 민영화(1984~87년)가 민영화 관련법에 의거하여 통신(BT: British Telecom)과 가스(BG: British Gas) 등 공익설비 산업에서 실행되었고, 경쟁도입을 위한 대대적인 규제완화와 함께 가격 상승 등의 부작용을 제어하기 위해 산업별로 독립적인 규제기관이 설립되었다. 거대 공기업을 민영화한 결과로 매각 수입은 총 24개 기업에서 110억 파운드로 확대되었다.

3단계(1987~91년)는 독점지위를 유지하고 있어 매각되기 어려운 공기업들을 대상으로 ‘先 경쟁체제 도입 後 민영화’라는 전략을 채택하였다. 보수당 정부가 수도공급사업을 10개의 지역회사로 수평적으로 분리한 뒤 1989년 민영화하였고, 핵발전소를 제외한 전력산업부문은 발전·송전·배전의 세 부분으로 수직 분할한 뒤 1990년 정부 지분 동시 공개매각 방식으로 민영화하였다. 이 시기에는 40여 개의 공기업이 민영화되면서 매각수입총액이 225억 파운드에 달하였다. 아울러 공공서비스에 대한 민영화도 추진되었는데, 주로 국민보건서비스(NHS)에 대한 부분적 민영화, 행정서비스의 민간회사 위탁, 국영버스회사의 종업원 인수방식(MEBO) 매각이 이루어졌다.

4단계는 1991~97년 4월까지로 앞선 민영화에 비해 추진동력이 떨어졌던 기관에 대한 민영화가 중심이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94년 석탄회사 British Coal이 민영화되었고, 1996년에는 영국철도(British Rail)가 선로 및 역사를 관리하는 Railtrack과 열차운행을 책임지는 회사로 분할되어 민영화되었다. 이 기간 중 공기업 민영화 매각대금은 약 215억 파운드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국 민영화 전략의 다양한 기법들

영국의 공기업 민영화 전략의 정수로 평가받는 것이 바로 다양한 민영화 방법론의 활용이다. 다양한 민영화 기법은 인센티브 제공과 주식매각방식의 다변화에서 잘 드러난다. 영국정부는 수익성이 있고 규모가 큰 공기업의 민영화는 공개모집방식(public share offering)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주식 배분 시 일반적인 비례할당 대신 분할 납부제도와 요금 할인쿠폰 제공 등의 소액투자자 우대 전략과 보너스 주를 배정하는 등의 구매 및 장기보유 인센티브 활용, 그리고 면밀한 광고 및 홍보 전략을 구사하여 매각 성사를 촉진하였다.

특히, 공기업을 매각하기 위한 정부의 마케팅 전략은 정부행동 패턴의 전환점이라고도 할 만하다. BT 매각 시에는 일반대중에게 민영화 관련 정보와 주식 구매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8개의 금융서비스 기관을 지정하는 한편, 주식매매 대행소(Share Shop)를 설치하여 개인투자자들의 60%가 이곳을 이용하여 주식매입을 신청하게 하는 등 세밀하게 배려하였다.

주식매각방식의 다변화도 영국의 민영화를 성공시킨 주요한 요인이다. 경험을 통해 진화해나간 영국의 주식매각방식은 매각가치 극대화를 위해 모험적이고 창의적인 방향으로 고안되었다. 해당 공기업의 특성에 따라서 공모매각과 직접매각, 일시 매각과 단계적 매각, 전체 매각과 분할 매각, 고정가격 매각(fixed price offer)과 입찰 매각(sale by tender), 국내 매각과 국제시장에서의 매각, 종업원과 경영진에 대한 매각 등이 활용되었는데 매각의 내용과 대상 기업은 다음 표와 같다.

 

■ 영국의 민영화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영국의 민영화 경험은 민영화에 대한 철저한 계획의 중요성을 실증하고 있다. 영국 민영화 정책의 성공 요인은 정부가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장기간에 걸쳐 보다 적절한 민영화 기법을 적용하여 매각을 시도함으로써 압축적 과정운영과 조급한 성과에 경도되어 민영화 자체를 그르치는 오류를 회피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업그레이드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는 한국 정부는 민영화 선진국 영국의 전략적 민영화 정책 운용 속에서 정책항해의 나침반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나침반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상황적합적인 정책개발과 조화로운 배치, 그리고 민영화 이후의 민영화 관리의 체계화로 구성될 것이다.

민영화의 교훈① : 정부의 강력한 의지

영국이 IMF 구제금융 이후 민영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개혁에 대한 보수당 정부의 강한 의지와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대처 수상은 영국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누적된 재정적자와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민영화를 선택하였다. 대처의 리더십은 전력산업 민영화의 여정 속에서 구체적으로 발휘되었다.

영국 전력산업 민영화는 전력산업의 효율을 높이는 데 1차 목적이 있었지만, 동시에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고 영국병을 치유하려는 의도도 작용했다. 1970년대 말 이후 영국에서는 광산노동자 파업이 격심했고, 전력회사의 낮은 효율로 전기의 품질이 떨어지고 단전이 빈발했다. 전력회사는 국제가격보다 50% 이상 비싼 영국산 석탄을 구매하고 있었고, 광산노조의 장기파업이 발전에 지장을 주기도 하였다. 대처는 1984년 우선 석탄생산 감축 계획(국영 탄광 20개 폐쇄, 광부 2만여 명 감축)을 발표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광산노조가 총파업을 단행했지만 그들의 요구는 관철되지 않았다.

대처는 한 발 더 나아가 전력산업의 민영화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전력산업 민영화로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가 탄력을 받았고, 전력시장에 신규 진입한 발전회사들은 효율적이면서도 환경친화적인 발전방식을 선택하여 발전비용과 공해를 저감시키게 되었다. 또한 민영화는 전력산업 내부의 효율성 개선을 추동하여 전력요금을 물가상승률 이하로 유지되게 하면서도 전력기업들의 경영성과를 증진시켰다.

민영화의 교훈② : 상황에 적합한 정책개발과 조화로운 배치

아울러 영국 정부는 다각적인 정책 배치를 통해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배가하였다. 노조 내의 계층주의적 운영을 차단하기 위해 노동법을 개정하여 노조 내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노조의 면책특권을 대폭 축소함으로써 노조의 불법 파업을 법적으로 제지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전력공기업 전체 지분의 55%를 일반 국민에게 매각함으로써 여론의 지원을 얻어냈고, 이를 통해 노조의 반대 행동을 견제하였다.

영국정부는 전력공기업의 민영화뿐만 아니라 여타 공기업의 민영화에 있어서도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다양한 매각방식과 인센티브를 도입하여 이해관계자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는데 성공하였다. 사회협약을 통한 사전적인 의견조정으로 이해집단의 요구를 반영한다든지, 소규모 자회사 매각이나 프랜차이즈 계약 등에는 경영층이나 종업원을 인수 주체로 선정하는 등 이해관계자들이 민영화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국부유출과 외국자본에 의해 기간산업이 잠식될 것이라는 우려는 시한이 정해진 황금주(golden share)를 도입하여 급격한 경영권 변동을 통제함으로써 불식시켰다.

민영화의 교훈③ : 민영화 이후 민영화 관리의 체계화

민영화 이후의 민영화 관리도 영국에서 배워야 하는 민영화 전략이다. 영국의 민영화는 경쟁도입을 포함함으로써 성공 가능성을 제고했다. 그런데 경쟁은 반드시 유효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감시하는 장치가 운용되어야 기대했던 효과를 달성하게 된다. 영국은 전력산업 민영화 이후 한때 전력회사 사이의 인수전이 벌어지면서 발전시장에 과점이 형성되고 전력가격이 상승할 위험에 봉착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전력산업의 새로운 규제를 위해 설립된 독립규제기구인 전력규제청(OFFER: Office of Electricity Regulation)은 경쟁체제가 조성 중인 상황에서 발전회사인 National Power와 PowerGen가 수직통합을 목표로 전력판매회사를 인수하려는 것을 불허함으로써 경쟁을 유지하여 소비자 이익이 저하되는 것을 저지하는 한편, 미국식 이윤율 규제(rate of return regulation)보다는 가격공식{RPI(Retail Price Index; 소비자물가지수) - X(효율성)}에 의한 가격상한규제(price cap regulation)를 도입하여 기업들 스스로 효율성을 높이도록 독려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민영화의 목표인 효율성 증진에 기여하는 동시에 가격담합을 차단하였다.

아울러 새로운 규제기구는 소비자가 민영화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수준의 소비자 보호조치를 마련하였는데, 지역전력회사들이 공식적으로 서비스표준을 만들도록 하고 이를 준수하지 못할 경우 소비자에게 보상금을 지불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다. 실제로 영국의 전력공기업 민영화가 이루어진 지 만 1년이 지난 1992년에는 잉글랜드 및 웨일즈 지방에서의 전기중단이 약 60% 감소되었고, 서비스 기준 미달에 의한 보상 지불 횟수도 1992년에 비해 1995년에는 60% 가까이 줄어들었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 등록일 : 200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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