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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이야기]신데렐라와 누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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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섭 [jayhan] 쪽지 캡슐

2004-02-03 ㅣ No.4203

#장면 1

 

앞에 서 있는 30대 중반의 사나이가 갑자기 "퉷" 하며 기운차게 뭔가를 내뱉는다.

무얼까. 아스팔트 바닥에 내 던져진 사나이의 결과물을 유심히 살펴본다. 처음에는 침인가 했으나, 그건 아니다. 엄지손톱 보다 조금 큰 그 결과물은 흰 색의 고체였다. 살큼 내린 초겨울 비 탓에 아스팔트는 습기를 머금어 검은 색을 띠고 있고, 그래서 그 고체는 더 희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질주하는 차량의 불빛에 반짝이는, 그 것은 껌이었다. 껌으로 확인되고 나니 이빨자국까지도 확연히 눈에 잡힌다. 껌은 거칠게 씹혀 있었다. 이빨의 흔적은 흡사 ’진흙에 등산화’ 만큼이나 깊고 선명하다. 사나이의 불만과 신경질이 그대로 묻어나는듯….

 

미확인 물체에 대한 호기심이 충족되자 내 시선은 이제 그 원인, 즉 문제의 사나이에게로 옮겨간다.

 

입안을 비운 그는 막 호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물고 있었다. 라이터 불빛으로 인해 비로소 드러난 얼굴. 안그래도 하관이 빠른 데다 담배를 빠는 바람에 볼이 쪼그라들어 턱 주변에 살은 없고 수염만 거뭇했다. 담뱃불을 붙인 그는 얼굴을 들어 좌우를 빠르게 살핀다. 미간에 잔뜩 힘을 주었지만 눈빛에는 없는 자의 비굴함이 역력했다.

 

퇴근길, 한 무리의 샐러리맨(또는 우먼)이 우르르 몰려 겨울비 끝의 쌉쌀한 추위를 양복깃으로 막아내며 신호 바뀌기만 기다리는 광화문 네거리 건널목. 유독 그가 돋보이는 건 양복에 섞이지 않는 낡은 점퍼, 즉 허름한 행색 탓만은 아니었다.

 

남들은 다 보도블럭 쪽에 서 있는데 그 혼자 몇 걸음 더 나가 아스팔트 쪽에 서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택시를 잡기 위해 차도로 뛰어든 줄 알았으나 그도 아니었다. 전속력으로 줄지어 달려오는 택시들이 신경질적으로 그를 피해 차선을 바꾸고 있는데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위악과 불만이 가득한 어깨로 "덤빌 테면 덤벼 봐"하며 버티고 서 있다.

 

점퍼와 택시 사이의 팽팽한 긴장은 그러나 곧 풀려 버린다. 빨간불이 녹색으로 바뀌자, 허름한 점퍼는 다시 인파 속으로 흡수된 것이다. 화선지가 먹을 삼키듯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하루가 다 지나 모든 이들이 집으로 되돌아갈 시간. 그는 아직 빈 손이 분명하다. 시간에 쫓기든, 돈에 쫓기든, 그는 쫓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인파에 파묻히는 점퍼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저 사나이가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털어 로또복권을 산다면? 그래서 이번주 1등에 당첨된다면? 그는 과연 인생역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늦저녁 도심을 배회하는 대신 외제차 뒷자리에 파묻혀 광화문 네거리를 멋지게 통과할 수 있을까?"

 

이제 그 답을 찾기 위해 ’패스포트 형제’와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누드 신드롬’ 등을 들여다 보기로 한다.

 

#장면 2

 

20년전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전설 같은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이른바 ’패스포트 형제’에 관한 슬픈 스토리.

 

당시 전국은 부동산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도심이 확장되면서 시가지 주변의 논밭이 금싸라기 땅으로 거듭나고 있었던 것이다. 시골의 조그만 도시에서 농사를 짓던 패스포트 형제의 아버지는 그 덕에 목돈을 손에 쥐게 된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그 아버지는 손에 들어온 횡재를 채 누리지도 못하고 돌연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패스포트 형제는 적지 않은 재산을 현금으로 물려 받게 되는데….

 

당시 패스포트 형제의 형은 대학 4학년. 동생은 대학 3학년으로 연년생이었다. 둘 모두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 세상사 물정을 어느 정도 알만한 그런 나이였다.

 

형제는 아버지의 현찰을 사이좋게 나눴다고 했다. 정확치는 않지만 소문에 따르면 각각 1억~2억원 정도 돌아갔다고 했다. 당시 형제가 살던 도시의 괜찮은 단독주택 가격이 2천만원이 채 안됐으니 지금의 돈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10억원은 넘지 않을까.(참고로 이 이야기에 형제의 어머니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는지, 아니면 재산 상속에 깊이 개입할 처지가 아니었던지 둘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졸지에 감당할 수 없는 큰 돈을 손에 넣은 형제는 유흥가 출입이 잦아진다. 이러저리 건수를 만들어 화려한 밤을 보내기 시작한다. 주변에 술과 여자에 굶주린 친구는 널려 있었다. 형제는 술 취향도 닮았던지, 술집에 가면 당시 최고급 양주였던 ’패스포트’만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패스포트 형제’란 별명을 얻게 된 것인데….

 

당시는 학생운동이 격렬할 때였고 휴강이 다반사였다. 때문에 그들은 돈을 쓰기 위해 따로 휴학할 필요도 없이 학교 밖 생활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국내 경제적 상황은 그들 형제에게 돈을, 정치적 상황은 시간이란 날개를 달아준 꼴이었다.

 

패스포트 형제의 술자리에 초대된 친구들은 그 자체로 영광이었다. 돈으로 맘껏 내지른 질펀한 하룻밤은 두고두고 그들에게 이야기꺼리를 제공했고, 그 무용담을 몸으로 경험하지 못한 채 귀로만 전해 듣는 변방의 졸개들은 "언제나 나도 패스포트 형제의 초대장을 받아보나" 마음 졸였다.

패스포트 형제가 발행하는 패스포트는 그 시절 우리 사이에는 일종의 권력으로 통했던 것이다.

 

아쉽지만 나는 그 초대장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패스포트의 밤을 귀동냥으로 접수해야 했는데, 귀로 듣는 경험에는 상상력이 덧칠되기 마련이어서 상실의 아픔은 더 컸다.

 

그나마 ’잘되면 내 덕이요, 못되면 조상 탓’이란 속담이 내 소외의 아픔을 달래주고 있었는데…. 무슨 말이냐 하면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똑같이 농부의 후손으로 태어났는데 왜 한 놈은 돈벼락을 맞고 다른 한 놈은 부러움에 몸을 떨어야 하는가?’

 

내가 내린 결론은 ’조상 탓’이었다. 농부가 땅을 고르는 기준은 간단하다. 농사짓기 좋으냐 나쁘냐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농번기에 물은 잘 들어오는지, 땅은 기름진지 등등. 같은 지역이라면 땅의 조건에 큰 차이가 없을 터.

 

그런데 왜 패스포트 형제의 조상은 훗날 대박이 터질 곳에 자리잡고 왜 우리 조상은 대박이 비켜가는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느냐 말이다. 조상을 잘 만났더라면 나도 20대 초반에 ’자본주의의 영웅’이 될 수 있었을텐데….

 

나의 조상에 대한 원망은 1년쯤 지난 뒤 우연한 계기로 해소됐다. 패스포트 형제가 다시 학교로 돌아온 것이다. 형제의 귀환에는 소문이 뒤따르지 않았다. 화려하지도 못했다. 눈여겨 찾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의 평범한 학생으로 형제는 우리 곁으로 돌아 왔다. (글쎄 겉은 평범해 보였으나 그 속은 들어가 보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지만.)

 

결코 줄어들 것 같지 않았던, 견고한 성 처럼 보였던 현찰더미는 술과 도박, 그리고 주식투자의 수순을 거치면서 산화했다. 형제를 주군 처럼 뒤따르던 가신 같은 친구들도 모두 흩어졌다.

졸업과 함께 사회의 미관말직을 하나 얻어 내가 눅눅한 학교 도서관을 탈출할 때까지 그들 형제는 도서관 한귀퉁이를 말없이 지키고 있었다.

 

매점이나 학교 식당에서 1000원짜리 식사로 끼니를 떼우고, 틈틈히 100원짜리 동전 몇 개로 자판기 커피를 받아 마시며 형제는 도서관에서 살고 있었다. 월 몇 100만원의 월급을 꿈꾸면서….

 

#장면 3

 

장면 1에 장면 2가 서서히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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