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이름이 주는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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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옥 [yimariaogi] 쪽지 캡슐

2008-03-15 ㅣ No.7948



        
        
        
        이호자’가 ‘보호자’로 되었네
        
        
        가끔은 내 이름 석 자가 
        정확히 생각나지 않아 
        오락가락할 때가 있다. 
        수녀원에 입회하고 나서 
        오랫동안 이름 대신 
        수도 명을 사용하다 보니 
        그런 증상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호자인지, 
        자이호인지, 
        호자이인지, 
        자호이인지…. 
        
        
        이름에 대한 나의 이런 
        건망증 현상은 공항 창구에서 
        여지없이 드러 났다. 
        출국카드의 이름 표기란에 
        ‘Ho Ja Lee’로 써야 할 것을
        ‘Ja Lee Ho'로 써버렸기 때문이다. 
        
        
        이걸 받아본 공항 직원은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그때부터 붙은 또 다른 별명이 
        ’자이호‘이다.
        
        
        이름 이야기가 나왔으니 
        어릴 적 어설픈 추억 얘기를 해야겠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처음 받아든 통지표에서 
        맨 먼저 눈에 띈 ‘보호자’라는 세 글자...
         
        
        ‘아니, 내 이름이 바뀌다니, 
        '이호자'가 '보호자'로 되었네...
        어린 마음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곧장 
        선생님께로 달려갔다. 
        “선생님, ‘보’자를 
        ‘이’자로 고쳐 주세요.”
        
        
        
        이런 넌센스에 
        대한 체험 때문인지 
        수녀원에서 매일 함께 드리는 끝기도 
        마지막의 성모찬가 중에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여, 
        불쌍한 우리, 인자로운 눈으로 굽어 보소서“
        라는 구절을 노래할 때마다
         ’보호자‘라는 부분에서는 유독 힘주어 
        발음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호자‘보다는 
        ’보호자‘가 더 낫다는 
        분심도 섞어가면서 말이다.
        
        
        이름 석 자는 어쩌면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한마디로 축약해서 알리는 
        언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수녀원에서 서원을 하면서 
        나는‘마지아’라는 수도명을 얻었다. 
        
        
        이 수도명은, 
        내가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나의 정체성은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되리라.
        
        
        한때 집안 조카 일로 
        신경을 좀 썼던 적이 있었다. 
        그때 전화기에서 
        울려나온 어머니의 
        대쪽 같은 목소리는 
        나의 안일한 생각들을 
        질타하며 가슴을 파고들었다. 
        
        
        “민간인도 아닌기, 
        왜 집안 일로 신경쓰노?” 
        어머니는 이제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그분의 이 한마디는 지금까지도 
        바쁘고 번잡스런 주변을 돌아보고 
        정리하게 해주는 따끔한 채찍이 된다. 
        
        
        가끔씩 내겐
        “왜, 하느님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세상일에 그렇게 신경 쓰노, 민간인도 아닌기...” 
        하는 어머니의 노기 띤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쟁기를 잡고 
        자꾸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과 함께....
        
          
        
         - 이호자 마지아 수녀
        (서울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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