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성당 게시판

Cu. 단장을 맡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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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득길 [4omega] 쪽지 캡슐

2003-11-07 ㅣ No.5088

Cu. 단장을 맡으면서   

                                                                        (2003. 8. 12)

 

저도 본당에서 꾸리아 단장이라는 자리에 대한 기대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잘 압니다. 그것은 비단 최대의 신심단체라는 규모 때문만이 아니라 레지오 본연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라는 도전적인 시대 상황에 적응하면서 그 맡은 바 사명을 어떻게 수행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뇌의 차원에서 그렇습니다.

 

레지오는 확장의 원리에 의해서 도입 반세기만에 오늘의 몸집을 불려왔다.

뿐만 아니라 교회와 이웃의 부름에 ‘보이지 않는 주님의 보이는 연장’이 되어 충실하게 응답해왔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교회 현대사에 레지오가 끼친 기여와 공로는 결코 누구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역사와 빛나는 공로를 자랑하며 자기만족에 빠지기에는 오늘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양적 팽창의 성과에 도취한 나머지 시대의 징표인 ‘변화’라는 코드를 읽는 데 성공하지 못함으로써 레지오는 오늘날 심한 ‘정체성 혼란’과 ‘방향성 상실’이라는 두 가지 문제점에 봉착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레지오 단원,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레지오 안에도 세속주의, 인간주의가 만연해진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책임은, ‘무능한 병사는 없고 무능한 장교만 있을 뿐’이라는 말처럼 ‘비전의 제시’와 ‘솔선수범’에 태만했던 리더십에 있다고 저는 감히 말하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래에서는 쁘레시디움 간부에서부터 저 높은 상급평의회의 간부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고 시대상황에 걸맞는 적응력을 회복하며, 변화라는 격랑 속에서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회복하는 데는 상황과 시대를 꿰뚫는 예지, 솔선수범하는 실천적 덕목, 그리고 비상한 결단력을 두루 갖춘 탁월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위기에는 위기관리의 능력이 있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느 일각에서 차기 후보로 제가 거론된다는 것을 감지했을 때 앞에서 제시한 이유로 해서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나름대로의 판단 아래 저는 마음으로부터 저항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잘못된 선택을 막는 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선택은 결국 선택되지 못해서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여기에 계신 평의회의원 여러분께서도 저를 선택한 잘못을 인정하시고 보속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협조하시어 여러분의 선택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결과적인 보람으로 거두시기 바랍니다.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무력한 노예근성도, 인간의 힘만으로 해내겠다는 턱없는 오만함도  다 벗어나 최선을 다해되 겸손되이 성령께 도움심을 청할 때 오늘도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되풀이하실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저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놓겠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이끄심과 성모님의 도우심, 전임 박골롬바노 단장님의 우정어린 조언, 그리고 유능한 세 분 꾸리아 간부님, 평의원 여러분을 비롯한 200명의 활동단원과 400명의 협조 단원의 협조와 기도에 기대어 이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이 글은 당시 인사 말씀을 드릴 기회가 없어서 접어 두었던 내용인 바,

  뒤늦게나마 자료 정리 차원에서 올리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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