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동성당 게시판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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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건기 [jamesbae] 쪽지 캡슐

2004-06-15 ㅣ No.2430

+ 찬미 예수님!

송파동 형제 자매님들 안녕하세요?

모두들 잘 계시죠? 저도 건강하게 잘 있습니다.

굿뉴스가 개편되면서 찾아 오는데 한참 머뭇거렸습니다.

개편되면서 좋은 공간도 많이 생겼네요. 그래서 저도 집 한채 지었습니다. ㅎㅎ

우리집 캡슐 주소는 http://my.catholic.or.kr/jamesbae 입니다. 많이 놀러 오세요.

제 홈페이지에도 가끔 놀러 와 주십시오. http://www.baejames.co.kr 입니다.

 

아래의 이야기는 어제 지방에 다녀 오면서 어느 할머니와 나눈 대화입니다.

 

++

 

지정 좌석 옆 자리에 이미 앉아 계신 분께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함께 가시죠."
"미안 합니다. 제 자리가 그쪽인데 관절 때문에 자리를 바꿔 앉았어유."
"괜찮습니다. 어디까지 가세요?"
"수원까지유"
"네, 저는 안양까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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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연세가 얼마나 되셨어요? 할머니 얼굴이 고우시네요."
"아이고 무슨 말씀을.....일흔인데 맨날 이렇게 다리가 아파 죽겠어유."
"병원에는 가 보셨나요?"
"여러군데 가 봤는데 잘 안 났네유. 그런데 이렇게 신경이 땡기면서 자고 나면 부어요."

안타깝지만 더 위로 해드릴 말이 없었다.
나이가 들면 자기 몸 아파도 자식들에게 말할 처지가 못 되는 부모의 마음 알기에 은근히 자녀들은 무얼 하는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자녀 분들은 몇이나 두셨어요?"
"아들 셋입니다."
"아이고 다복하시네요. 큰 아드님은 올해 몇이신데요?"
"마흔 다섯입니다."
.
??
.
"아니, 결혼을 늦게 하셨어요? 그때는 대략 시집을 빨리 가지 않았나요?"
"네, 위에 딸 둘이 있었는데 일찍 보냈어유."
"아 - 네, 죄송합니다. 아픈 마음을 건드렸군요."
".........."
"연세 드신 분들은 대부분 혼자 끙끙대고 아파하시는데 그러시지 말고 자녀들께 이야기 좀 해 보시죠. 수술이라도......"
"ㅇㅇ병원, ㅁㅁ병원 안 가본데가 없어유. 의사들은 수술 할 필요가 없다는디 나는 이렇게 아프고......."
"척추나 관절 같은 부위가 X레이로는 잘 나타나지 않을 수가 있으니까 MRI를 한 번 찍어 보십시오. 요즘은 절개하지 않고도 간단하게 수술하는 새로운 의술이 발전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디가 좋은데 있습니까? 어째 그리 잘 아십니까?"
"잘 아는게 아니라, 우리 딸 때문에 여기 저기 다녀봐서 좀 알게 되었죠. 나중에 사정이 허락하시면 ㅁㅁ병원에 한 번 가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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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침묵이 흘렀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오른쪽 관절 부분을 주무르시면서 가끔 왼손 엄지 손가락도 주무르신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자꾸 난다. 그토록 허리가 아프다고 하신 것을 돌아가신지가 얼마인데 이제서야 걱정이 되니......
슬쩍 보니 왼손 엄지 손가락 모양이 수술한 자국이 있고 좀 이상해 보였다.
측은한 생각이 들어 살펴보니 피부는 고우신데 오른 쪽 팔, 왼 손 여기 저기 상처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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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손자 보고 오시는 길이신가요?"
"아니요, 큰 아들과 함께 살아요. 금산 친척집에 일 도와 주러 갔다 오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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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랍 넓은 내가 침묵을 하니 할머니가 먼저 말씀을 시작한다.
"시집을 갔더니 맏동서 성님이 동서 넷이 한 집에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붙잡데요. 그런데도 우애는 참 좋아서 다툴 일은 없었어요. 나중에 우에 성님부터 차례로 집을 하나씩 사 주면서 분가를 시키데요. 큰 성님이 참 머리가 좋으셨데유. 함께 살믄서 애끼고 한 거로 집을 사서 내보내는 거 보고 고맙다고 생각했슈. 우리가 셋찐디 월매나 살고낭께 집을 사주믄서 내보내데유."
"그 때는 정말 기뻤겠습니다."
"암요, 좋고 말고유... 좋았지유, 성님한테 월매나 고맙던지 말도 못했슈."
"그렇게 살림 나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기분 좋은 건 마찬가집니다."
"왜 아니래유, 큰 딸은 낳자 말자 죽었고, 둘 째 딸은 네 살 묵어서 죽었고 영감하고 아들 셋만 데리고 집 한 채만 갖고 나왔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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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말끝이 흐려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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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이 시럼 시럼 아푸기 시작하더니 집 팔고 병원비 대봐야 죽었부리데유. 딸 둘 잃고, 영감은 집을 갖고 갔고, 달랑 아들 셋을 키워야 하는디 아무 것도 없응께로 막막하데유."
"아이고 정말 힘드셨겠습니다."
"어째서든지 저넘덜 갈쳐야 할 텐디 큰 넘은 공부 많이 못시켰어유. 중학교 밖에는유. 둘 째는 그래도 공부를 잘 해가꼬 고딩학교 나왔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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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장남의 희생이 있었던 것 같다. 큰 아들은 홀 어머니를 돕느라 중학교를 마친 다음 공장으로 취직을 해서 동생들 뒷바라지를 한 모양이다.
프레스에 손이 찍혀 왼 손 손가락 둘이 잘려 나가기도 했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자신도 프레스 기계에 왼손 엄지가 잘려 나갈뻔 했는데 의사는 썩어서 잘 못되면 손목까지 잘라야 하니 손가락은 잘라야 한다고 강조 했지만 프레스 공장 사장이 의사를 협박해서 붙여 놓으라고 윽박지르는 바람에 구부러지지는 않지만 이렇게 손가락은 붙었다고 설명한다.
아마 모자가 한 회사에 같이 다니면서 아들에 이어 어머니마저 함께 수난을 당한 것을 본 사장의 집념으로 그렇게 손가락은 살아남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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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 공장의 기계가 요즘은 자동화 되어서 그런 사고가 잘 나지 않는데 예전에는 안전장치가 없어 아마 사고가 많이 났을 것입니다."
"팔 하나 잘려 나간 사람도 봤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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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안타까워 멀쩡한 내 육신을 보면서 듣고 있기가 정말 민망했다. 자식이 무엇인데 어머니의 사랑은 이렇게 지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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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셋 다 모두 착하고, 전부 다 믿음 생활 잘 하고 나도 가진 거는 없어두 마음은 행복해유. 아픈데만 없으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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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지로 또아리를 만들어 손자들 줄 선물박스를 머리에 이고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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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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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앉았던 자리를 한참 내려다 보았다.
아직도 온기가 남은 그 자리에서 내 누님 같은 할머니, 내 어머니 같은 할머니가 떠나 가신 그 자리에서 나는 진한 사랑을 배웠다.
사랑은 남녀간에 나누는 사랑도 있지만 이런 찐한 어머니의 막무가내 사랑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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