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동성당 게시판

[발췌:평화신문]우리도 부활해야 한다.

인쇄

배성호 [jacobs] 쪽지 캡슐

2000-04-26 ㅣ No.368

평화신문에 실린 "우리도 부활해야 한다 " 라는 제목의 글인데, 부활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글인 것 같아서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 예수부활대축일<요한 20, 1-9> 오늘은 부활주일이다. 주인공은 예수님이지만 우리에게도 조연의 몫은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어린이들은 날마다 빠른 속도로 자란다. 어린이가 자라지 않고 성장을 멈추면 큰 일이다. 육체적으로만 자라고 정신적 성숙이 따라가지 못해도 걱정이다. 영세하고 몇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어린이의 신앙에 머물러 있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영세하고 10년이 지났는데 예비신자 때보다 신앙심이 더 약해져 있다면 이것 역시도 잘못된 것이다. 왜 믿음을 가졌는지, 믿음 안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말할 수 없다면 원인을 찾아야 한다. 지식이 부족하면 채워야 하고 체험이 부족하면 깨달음을 청해야 한다. 그리하여 믿음이 자라나게 해야 한다.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해야 한다. 믿음의 꽃과 열매를 경험하면 신앙은 더 이상 짐이 되지 않고 삶의 동반자로 바뀐다. 믿음에 대한 이러한 점검이 부활을 맞이하는 조연자의 첫 번째 몫이다. 믿음은 바치는 행위다. 애정을 바치고 시간을 봉헌하고 정성을 드려야 한다. 그래야 자라난다. 예수님도 생명을 내놓으셨기에 부활하실 수 있었다. 봉헌하지 않으면 세월이 가도 신앙은 자라나지 않는다. 그러니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봉헌하는 신앙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조연자의 두 번째 몫이다. 복음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발견하고 놀란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스승의 부활을 그제야 깨닫는다. 그토록 오랫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란 말씀도 여러 번 들었는데 이제 와서 깨닫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활은 지식이 아니고 은총이기 때문이다. 부활사건은 머리로 깨치는 노력의 결실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셔야만 알 수 있는 그분의 가르침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우리도 청해야 한다. 주님의 빈 무덤을 발견하고 부활에 대한 깨달음을 주시길 청해야 한다. 빈 무덤은 무엇인가. 그분의 무덤이었다. 누구라도 죽어야만 다시 살아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장소였다. 나에게도 빈 무덤은 있다. 자신을 포기하고 죽어야 할 장소가 있다. 그곳이 어딘가. 우리들 조연자가 세 번째로 생각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다. 관계란 늘 어렵다. 굳어진 탈을 쓰고 사는 것은 아닌지, 마음의 문을 닫고서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을 위한 것이지 다른 어떤 존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간관계에 평화가 빠져있다면 청해야 한다. 꼭 주시기를 청해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겠는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면서 언제나 평화를 기원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 말씀에 담긴 의미를 우리는 묵상해야 한다. 희년은 기쁨의 해다. 금년 부활절엔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달라진 인생을 살아야 한다. 우리들 조연자의 결정적인 몫이다.

18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