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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배낭여행-18] 대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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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대 [changjhon] 쪽지 캡슐

1999-12-07 ㅣ No.1110

◎세계인과 대화하는 배낭여행 - 18회 {대만-4}

 

 

나는 소인국을 다 돌아 본 뒤 다시 중니로 나와 4:20분 버스(120元)로 따이쭝(臺中)으로 향했다. 따이중에 도착하니 6:30분이었다. 이미 어둠이 깃들고 있었다. 버스 터미널을 중심으로 주변을 한 번 돌아보았지만 이곳 역시 부자 나라의 도시다운 면모는 없었다.

 

이 시간에 YH를 찾기란 이미 무리였다. 나는 다시 버스 터미널로 돌아 왔다. 왜냐면 배낭족을 만날 가능성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서 현지의 한 대학생을 만났다. 그 학생은 자신도 홍콩으로 배낭 여행을 해 본 경험이 있다며 나의 배낭 여행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부러워했다. 우리는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두 달 전에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할 정도로 마음이 여린 젊은이였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다며 앞으로 미국을 상대로 사업을 할 계획이란다. 어딜 가나 동류(同類) 전체의 30%는 꿈과 야망 그리고 확고한 신념을 가진 젊은이들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그 30%에 속하는 젊은이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보면 뭔가 느낌이 달랐다.

 

 

우린 주소를 교환했다. 나는 내일 아침 첫 차로 천상(天祥)엘 가기로 하고 버스표(320元)를 예매했다. 천상으로 가는 길은 아름답지만 매우 위험하다는 이 학생의 말이 유난히도 기대와 함께 긴장감을 더하게 했다. 벌써 시간이 꽤 흘러 버렸다.

 

나는 그 학생에게 주변의 저렴한 숙소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곳이 있다며 소개하겠다고 했다. 중급 호텔인데 1박에 500元이었다. 물론 YH 에 비한다면 싼 곳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현지인의 도움을 받은 셈이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인 셈이었다. 흔히 낮선 곳에 나 홀로 밤늦게 도착하면 격게 되는 경우였다.

 

나는 아침 8:00시 버스로 따이쭝을 떠났다. 이제부터 진짜 긴장되는 코스였다. 해발 2,500m의 험한 산맥 위를 오르내리며  열악한 도로 위를 달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난 코스에 비해 버스는 너무 빈약했다. 옛날 우리 나라의 시골길을 달리던 허름한 장거리 버스 정도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들의 안전 불감증은 아마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긴장감은 곧 2,500m의 산악 길을 오르면서 가드레인 설치가 전무(全無)한 도로를 달릴 때 실감했다. 천길 낭떨어지 같은 계곡을 바라보니 간담이 서늘했다. 어떤 이들은 일부러 차창 밖의 까마득한 계곡 밑바닥을 안 보려고 애를 썼다. 현기증이 나고 오금이 저리고 식은땀까지 날 정도였다. 구절양장(九折羊腸)같은 산악 도로의  특유한 풍광도 좋지만 그 좁은 도로에서 마주 오는 버스와 서로 교차할 때는 간이 콩알만해지는 스릴의 극치를 맛보기도 하는 코스였다.

 

이러한 경우 그것이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것이라면, 무모(無謀)하거나 혹은 용감하거나 둘 중 하나에 속하는 인간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마 생명을 담보로 말초신경의 극치감을 누리고자 하는 일종의 정신과적 영역에 속하는 경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실제로 일 년에 몇 번은 수 백 메터가 되는 낭떠러지로 버스가 굴러 떨어져 승객 전원이 사망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만은 그 희생자 명단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요행 심리가 있기에 이렇게 찾아 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묘한 심리가 아닐 수 없다.

 

버스는 12:00시 경 정상에 가까운 휴계소에서 멈추었다. 그곳에서 각자가 점심을 사 먹었다. 우리 나라의 시골 장터에서 맛볼 수 있는 막국수 같은 것이 있어 먹어 보았다. 우리 것과 다른 점은 국수 국물에 멸치 대신 돼지고기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다소 비싸지만 그곳 특산이라는 과일도 먹어 보았다. 배 맛이 그런 대로 괜찮은 것 같았다.

 

나는 잠깐 쉬는 사이 미국서 온 배낭족 두 명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그들은 나와는 반대편인 화련에서 오는 길이었다. 그들이 나보고 일본인이냐고 물어 볼 때 나는 한국인이다고 일본어로 답하자 이 친구들은 놀라는 시늉을 하며 나보고 몇 개 국어나 하는가를 묻었다. 나는 불어, 독어, 스페인어, 중국어로 간단한 인사말들을 했더니 이 친구들의 눈들이 진짜 휘둥그레졌다. 약간의 장난기가 섞이긴 했지만 실제로 외국어를 잘 하면 절대 무시당하지 않는다. 아니 무시할 수가 없다.

 

                 

버스는 다시 출발하여 2,500m 정상을 넘었다. 문자 그대로 천상(天上)의 세계인 운해(雲海)가 끝없이 펼쳐졌다. 천사(天使)가 나팔 불고 신선(神仙)이 춤을 춘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설악산에서 본 운해와는 또 다른 신비함이 숨어 있는 듯했다. 버스는 약 2시간을 가시(可視)거리가 불과 몇 메타밖에 안 되는 짙은 운해 속을 헤치며 거북이 걸음으로 내려왔다. 불안과 긴장, 신비와 감탄이 연속적으로 교차된 실로 멋있는 체험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드디어 천상(天祥)에 도착했다. 나는 심심유곡(深深幽谷)에 자리잡은 YH(靑年活動中心)에 숙소(100元)를 잡았다. 한 방에 6개의 침대가 있는데 침대 위에 배낭 등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걸 봐서 방이 거의 다 찬 것 같았다. 그러한 분위기로 봐서 서양 배낭족들이 틀림없었다. 그네들은 대체로 자유분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대화하기를 적극적으로 즐긴다. 그렇다고 결코 낭비를 한다거나 고급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오리려 정반대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경제 법칙을 잘 활용하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배낭을 풀어놓고 밖으로 나왔다. 이곳 천상은 타이루꺼 협곡 중 가장 넓은 곳으로 주차장, 성당, 사원, 토산품점, 우체국, 상점 등 갖가지 편의 시설이 다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20Km의 타이루꺼 협곡의 출발점이자 종점이기도 한 곳이다. 한 쪽은 수십 메타 높이의 하얀 대리석 암반으로 이뤄진 산이고 또 한 쪽은 짙푸른 녹엽(綠葉)으로 뒤덮인 수백 메타의 병풍 같은 산이 내려다보고 있다. 절묘한 대조를 이루는 이들 사이에 좁은 사행천(蛇行川)이 형성되어 회갈색(灰褐色)의 물이 흐르고 있다.

 

수 십 메타 높이의 V자(字) 계곡 사이를 이어 놓은 구름다리를 건너면

맞은편 산중턱에 칠중탑(七重塔)과 천봉탑(天峰塔) 그리고 맹모정(孟母亭)과 비구니절인 상덕사(祥德寺)가 있다. 연꽃 위에 서 있는 거대한 금불상(金佛象)의 온화한 미소는 따스한 햇살을 받아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나는 사원 앞마당에 다다라서 마치 꿈속에서나 봄직한 자연과 완전히 일치된 평화롭고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에 사로잡혀 그만 넋을 잃고 무아경(無我境)에 빠지고 말았다.

 

사당(寺堂)내 어디선가 청정산세(淸淨山勢)의 미풍(微風)을 타고 흘러나오는 보드랍고 곱디고운 독경(讀經)소리에, 어느 100세는 족히 넘어 뵈는 노스님 한 분이 싸리비를 움켜쥐시고 마당에 흩어진 나뭇잎들을 쓸어 내시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오욕칠정(五欲七情)에 물든 속세인(俗世人)은 결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고요하고도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나는 저녁 8시쯤 돼서 숙소로 돌아 왔다. 몇몇의 서양 친구들과 담소를 나눈다. 그 중 프랑스인 글랑이란 친구가 자신은 한국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며(사실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한국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있어도 부정적이거나 왜곡된 이미지를 지닌 게 사실이다.) 우리 문화 특히 대만과 관련지어 식생활 문화의 차이점을 물었다.

 

 

나는 항상 이런 기회가 주어지면(때론 내가 유도하지만)신바람이 난다. 대화를 통한 상호 문화 교류는 그만큼 이해의 폭도 깊어지고 자국의 이미지 상승 효과 역시 크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는 것만큼 전할 수 있고 또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풍부한 교양과 상식을 쌓는데 게을리 해선 안되겠다는 절실함을 나는 항상 느끼곤 한다. 어느새 밤은 깊어 갔다.  

 

▶씨에 씨에(謝謝).     <대만편-5 계속>        -장 정 대-

 

▶E-mail: jackchang7@yahoo.com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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