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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그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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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연 [anes2] 쪽지 캡슐

2000-08-29 ㅣ No.2828

▶◀ 그녀의이야기

 

나는 매일 우리 가게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이름도 나이도 알지 못하는 그를 사랑한다.

 

그는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에 항상 즐겨입는 곤색 잠바가 참

 

잘 어울린다.

 

한번은 그가 우리 가게에 들어와서 딸기우유를 사며

 

나에게 혼자서 가게를 하는지 물었다.

 

"네, 그래요." 라고 속으론 말하고 있었지만

 

난 아주 어렸을때 부터 말을 할 수 없다

 

아무말도 없는 나를 보며 무척 당황해 하던 그에게 참 많이 미안했다.

 

그는 매일 우리 가게에서 딸기우유를 산다.

 

딸기 우유를 정말 좋아하나 보다.

 

그날도 그가 가게로 들어와 냉장고 문을 열고 딸기우유를 꺼내려 했다.

 

그러다 많은 음료수 캔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쩔줄 몰라하는 그에게 "괜찮아요."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난 웃음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 저기 굴러다니는 캔들을 쫓아다니며 열심히 줍는 그의 모습이

 

참 귀엽게 느껴졌다.

 

난 하루종일 그의 모습을 생각하며 웃고 또 웃었다.

 

그 일이 있은 다음날 난 딸기우유를 미리 꺼내 손에

 

가지고 있다가

 

그가 오면 건네주었다. 딸기우유를 받아들던 그가 얼마나

 

기뻐하던지

 

난 그날 이후로 매일 매일 딸기우유를 직접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항상 7시30분 쯤에 버스정류장에 나온다.

 

 

그런데 언젠가 부터 7시에 나와서는 기다리던 버스가 와도

 

7시30분이

 

지나서야 그 버스에 타곤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그의 모습을 난 몰래 몰래 바라보다가

 

그가 버스에 올라탈때면 무척이나 아쉬워 했다.

 

난 그가 딸기우유를 좋아하기 때문에 매일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매일 만나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게

 

아쉽긴 했지만 그를 매일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하루하루가 참 행복했다.

 

어느날 아침이었다. 그가 밖에서 딸기우유를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가내렸다. 그는 가게쪽으로 몸을 바싹 붙였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난 재빨리 창고에서 우산을 찾아 그에게 씌어 주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우산이 하루종일 그와 함께 할거란 생각에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괜히 우산에게 질투가 났다.

 

그렇게 그날 내린 비는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또 아침, 그가 딸기우유를 받아들고 동전을 내 손에 놓아주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후에 버스가 그를 데려 갔다.

 

무심코 바닥을 보니 검은색 가죽 지갑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지갑을 열어보니 주민등록증에 그의 사진이 있었다.

 

그가 지갑을 놓고 간 덕분에 그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그의 생일이 며칠 뒤라는걸 알게 되었다.

 

그의 생일을 알게된 그날부터 그에게 줄 목도리를 짜기 시작했다.

 

목도리를 받고 기뻐할 그의 얼굴을 생각하니 너무나 행복했다.

 

그에게 지갑을 건네준 다음날 아침

 

언제나 버스를 기다리며 서있던 그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몇일째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오늘이 그의 생일인데.. 혹시..무슨일이 있는건 아닐까..

 

알 수 없는 불안함에.. 선물상자만 만지작 거렸다.

 

보름이 지나도록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를 본지 한달이 지난날

 

한 남자가 가게를 찾아왔다.

 

그의 친구라고 밝힌 그 남자는

 

분홍색으로 곱게 포장된 선물상자와 편지를 건네주었다.

 

그 상자속엔 너무나 예쁜 은색 나비핀이 들어있었고

 

편지엔 멀리 떠나기에 아쉽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정말 그를 다신 볼 수 없게되는걸까.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못했는데..

 

아니. 말을 할 순 없지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이젠 그의 얼굴조차 볼 수 없게 되버린것이다.

 

너무나 예쁜 나비핀 위로

 

떨어지는 눈물을 애써 참아보려 했지만

 

한없이 한없이 흐르는 눈물에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그의이야기

 

나는 버스 정류장 구멍가게에 이름도 나이도 알지 못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는 길다란 생머리에 항상 즐겨입는 긴치마가 참 잘 어울린다.

 

한번도 이야기를 나눠본적은 없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정말 예쁠것이다.

 

한번은 딸기우유를 사면서 용기내어 말을 걸어 본적이있다.

 

"저..혼자서 가게 하시나 봐요."

 

"..."

 

 

그녀는 아무런 말없이 살며시 미소만 지었다.

 

큰맘 먹고 건넨말이었는데...많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녀가 날 보고 처음으로 웃었으니까

 

난 매일 그녀의 가게에서 딸기우유를 샀다.

 

딸기 우유를 그렇게 좋아하는건 아니었지만

 

그녀를 가까이서 보기위해 매일 딸기우유를

 

마시는 버릇이 생겼다.

 

왜 그런지 그녀 앞에만 서면 나도 모르게 많이 긴장을 하는것 같다.

 

그날따라 냉장고에 음료수들이 가득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딸기우유를 꺼내다가 수많은 음료수 캔들이

 

큰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저..정말 미안해요..빨리 다시 올려 놓을게요.."

 

미안해서 어쩔줄을 모르는 내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예쁜 미소만을 짓고 아무말 없이 나와 그 캔들을 주었다.

 

그날 난 하루종일 그녀와 캔을 주었던 기억을 되내였다.

 

그녀와 함께 무언가를 했다는게 너무도 기뻤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내가 가게에 들어가면 기다렸다는듯

 

그녀는 손에 꼭 쥐고 있던 딸기우유를 직접 건네주었다.

 

물론 값을 지불하고 받은 것이었지만 내겐 지금까지 받은 어떤

 

선물보다

 

소중하게 느껴졌고 뭐라 말할수 없는 기쁨에 하루종일 싱글벙글 했다.

 

그렇게 난 매일 매일 그녀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난 항상 버스가 조금만 더 늦게 오기를 바랬다.

 

구멍가게 유리 너머에 그녀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였다.

 

어느날 아침부터는 평소보다 30분 정도 일찍 정류장에 가서

 

한참동안 그녀를 몰래 몰래 바라보다 원래 내가 버스를 탈시간에 마지못해

 

버스에 올라타곤 했다.

 

유난히 아침잠이 많아서 어머니께서 갖은 방법을 다해 깨워도 힘들게

 

일어났었는데 그녀는 이 세상에 존재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의 이른아침을 깨워주었다.

 

난 매일 그녀의 가게에서 딸기우유를 사며 그녀를 만났다.

 

그렇게 매일 만나면서 이야기를 나눈적은 한번도 없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알싸한 느낌에

 

하루 하루가 참 행복했다.

 

어느날 아침이었다. 딸기우유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내렸다.

 

갑작스럽게 내린 비로 거리는 분주 해졌다.

 

나는 비를 피하기 위해 가게쪽으로 몸을 바싹 붙였다.

 

순간 그녀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처다보던 그녀는

 

잠시후에 조그마한 우산을 하나 펼처들고 내게로 와 씌워주곤

 

아무런 말없이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고맙다는 뜻으로 그녀에게 웃어보였다.

 

그녀도 밝게 웃어주었다.

 

난 그녀의 우산 덕분에 하루종일 그녀와 함께 있는듯 했다.

 

그날 내린 비는 그렇게 설레이는 내 마음을 촉촉히 적셔주었다.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난 고민끝에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선물을 사기로 했다.

 

그녀는 치마를 즐겨입으니 예쁜 치마를 선물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처음부터 옷을 선물 하면 많이 부담스러워 할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의 긴머리에 잘 어울리는 머리핀을 사기로 했다.

 

갑자기 평소에 참 예쁘다고 생각하던 머리핀 하나가 떠올랐다.

 

악세사리 가게 쇼 윈도우에서 온화한 빛을 내며 날개짓하는

 

은색 나비 머리핀..

 

가끔 악세사리 가게를 지날때면 그 나비 머리핀이 참 예쁘다고

 

생각 한적은 많았지만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게될줄은 몰랐다.

 

어느날 나비핀을 사려고 악세사리 가게에 갔다.

 

값을 지불하려고 보니 지갑이 없었다.

 

잃어버렸나 보다. 하는 수 없이 가게를 그냥 나왔다.

 

다음날 구멍가게의 그녀는 딸기우유와 지갑을 함께 건네주었다.

 

정말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날 저녁 악세사리 가게에 가서 그 나비핀을 샀다.

 

날아가버릴까 가슴에 꼭 안고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나비핀을 받고 환하게 웃을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니

 

집까지 날아 갈 수 있을것 같았다.

 

건널목을 건널 때였다. 늦은 시간이라 길을 건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중간쯤 갔을 때였다. 귓가를 따갑게 하는 굉음이 나의 몸을 엄습했고

 

난 그 자리에 쓰러져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순간 모든것이 깜깜했고 한없이 잠이 쏟아졌다.

 

온세상이 희미하게 보였지만 손에 꼭 쥐고 있던 분홍색 선물상자만은

 

뚜렸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어머니께서 눈물에 젖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난 그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한쪽 다리를 잃었다는 고통보다 이런 모습으론 다신 그녀를 볼 수

 

없을것이라는 생각에 눈물만 흘렀다.

 

나비핀.. 은색 나비핀을 꼭 선물하고 싶었는데..

 

내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는데...

 

너무나 아득하기만한 바램들로 슬퍼만 하다 나비핀 만이라도

 

그녀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난 친구에게 부탁 했다.

 

아주 먼곳으로 떠나기에 이젠 볼 수 없으니 아쉬운 마음에 주는 선물이라는

 

글이 적힌 편지와 함께 조그만 선물 상자를 친구의 손에 쥐어 주었다.

 

며칠후면 다리 수술을 받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할머니와 삼촌이 거기에 사시기 때문에 예전부터 이민 계획이 있었는데

 

나의 사고로 이민이 확실히 결정된 것이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멀리서라도 그녀의 모습이 보고 싶어

 

그 버스정류장으로 목발을 짚고 갔다.

 

혹시라도 그녀가 나를 볼까 건너편 길에서 그녀를 찾았다.

 

그렇게 한참을 아무리 가게 유리쪽을 보아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길을 건너 가게 바로 앞가지 와서 조심스레 안을 들여다 보았다.

 

역시 그녀는 없었고 아주머니 한분이 가게를 보고계셨다.

 

가게로 들어가 딸기우유를 하나들고 아주머니에게로 갔다.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그녀에 대해 물었다.

 

"저..아주머니.. 혹시..전에 이 가게 하던 여자분... 어디..가셨나요?"

 

"네? 아... 그 아가씨 .. 그 아가씨 이 가게 나한테 넘겼다우..

 

 

이유는 모르겠구.. 나도 어디루 갔는지는 몰르겄네.."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은 바램을 아쉽게 접은채

 

난 그 가게에서 나왔다.

 

집으로 목발을 내짚으면서 버스정류장의 구멍가게..

 

나와 그녀의 추억이 담긴 그 가게를 돌아보고 또 돌아봤다.

 

안타까운 마음에 눈시울이 젖어왔다.

 

그녀의 가게가 눈물에 가려 흐려질 수록

 

짧지만 소중한 그녀와의 추억들이 선명히 떠올랐다.

 

난 그렇게 내 생애 첫사랑을 사랑한다는 말도

 

못한채 기억 저편으로 간직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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